第七十一章 탈취(奪取) (2)
- 누군가가 나타나면 즉시 죽여라!
부단주 연소부가 명령을 내렸다.
이런 명령은 매우 즐겁게 따른다. 일단, 위험부담이 전혀 없다. 굳이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도 없다.
살단 무인은 검을 들고 호발귀 옆에 섰다.
호발귀는 틀림없는 맹수다. 하지만 여전히 이빨이 날카롭지만, 이미 힘을 잃었다.
사지가 무력해진 맹수는 겁날 게 없다.
아니, 그래도 겁난다. 가까이 다가섰다가 괜히 이빨이라도 들이대면 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는 공포심이 밀려든다. 금방이라도 감고 있는 눈을 번쩍 뜰 것 같다.
“힘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죽지는 않았으니까.”
살단 무인은 축 늘어져서 손가락 하나 들어 올리지 못하는 호발귀가 여전히 무서웠다.
그래서 죽일 때도 머리부터 내리칠 생각이다.
호발귀 머리 쪽으로 이동해서 장검의 길이를 최대한 이용해서 일단 머리뼈부터 쪼갠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으면 가까이 다가가서 일시에 목을 쳐낸다.
그것이 가장 안전하게 죽이는 방법이다.
아아악!
동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휴우! 저런 여자하고 싸우지 않기를 다행이지.’
살단 무인은 중얼거렸다.
음문촌 마녀가 살단 무인 여섯 명을 순식간에 죽였다.
서른여섯 명이 합심해서 합공을 펼치고 있지만, 여전히 굳건하게 버틴다.
여자는 좀처럼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쉽게 잡힐 것 같지도 않다.
철삭을 피하고, 창을 쳐낸다. 하지만 비표까지 던져지면…… 아마도 잡히지 않을까 싶다.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마라.’
살단 무인은 검을 꽉 쥐고 호발귀를 노려봤다.
‘이놈들, 제법이네.’
해자수는 피식 웃었다.
살단 무인이 일곱 명이나 숨어 있다. 그런데 위치가 매우 묘하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위치에 있다. 한 사람이 죽으면 즉시 알아챌 수 있는 구조다.
일곱 명이 서로를 볼 수 있는 구조.
누구든 한 명이 공격을 당하면 다른 여섯 명이 즉시 달려든다.
원래는 다섯 명이 펼치는 진법(陣法)으로 오성합격진(五星合擊陣)이라고 한다.
주로 표사들이 표물을 운송할 때 취하는 진법이다.
표사들의 진법이라고 해서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오성합격진에는 표사들의 경험이 녹아 있다. 기습당해서 죽고,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오고…… 표물을 운송하면서 겪었던 모든 습격을 고려해서 다듬어 낸 진형이다.
수많은 죽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실전 진법인 것이다.
살단 무인은 오성합격진에 두 명을 추가했다.
‘자 그럼. 아씨가 시작했으니 나도.’
해자수는 눈을 감고 머릿속에 와선(渦旋)을 그렸다. 상상으로 만들어낸 돌개바람이 팽 돌아간다.
푸아아앗!
생기가 일어났다.
홀리는 왼발을 땅에 비벼서 생기의 단초를 마련했다고 했다. 생기를 일으키는 시작점이다.
해자수도 생기를 일으킬 단초를 만들었다.
해자수는 무엇엔가 끌려가는…… 말로 설명할 수도 없는 생기라서 심안(心眼)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무엇엔가 끌려가는 환상!
와선! 회오리바람!
두 눈을 미간에 집중시킨다. 두 눈이 어느 한 점에 고정되면, 두 눈은 움직이지 못한다. 천축(天竺)에서는 삼안(三眼)이라고 하는데, 삼안까지 알 생각은 없다.
다만 생기를 일으키는 단초로 이용할 뿐이다.
정확히 두 눈이 미간에 꽂힐 때 두 눈은 움직임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 미간이 돌기 시작한다.
빙글빙글 회전을 일으키면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킨다.
그것을 기초로 생기가 일어난다.
해자수는 곧 소용돌이에 휩쓸려서 끝도 할 수 없는 공간으로 끌려간다.
머릿속이 매우 복잡한 반면, 몸은 지극히 조용하다.
모든 움직임은 몸통 안에서만 일어난다. 몸통 바깥 부분은 전혀 바람이 일어나지 않는다.
스으읏!
해자수는 조용히 움직였다.
돌풍이 일어날 때 와선이 일어날 때 그의 몸은 매우 조용해진다.
모든 신경과 진기와 정력이 와선에 집중되기 때문에 밖으로 흘러나가는 기운이 없다.
조용하다!
갑자기 단단한 철벽이 불끈 일어섰다. 앞에 살단 무인이 있다.
슈릿!
해자수는 검으로 철벽을 베어냈다.
무인이라면 가장 기본으로 수련하는 횡소천군(橫掃千軍)을 펼쳤다. 검을 가로로 그었다.
쫘아악!
철벽이 단숨에 옆으로 갈라졌다.
파육음은 듣지 못했다. 살을 벨 때, 손에 전해지는 묵직한 감촉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회오리바람이 너무 거세다.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사람을 벴다는 느낌은 일어나지 않지만, 철벽이 갈라졌다는 사실은 안다.
쒜에엑! 쒜엑! 쒜에엑!
철벽 세 개가 벌떡 세워졌다. 그 뒤로 다시 세 개가 덮쳐왔다.
칠성합격진이 제대로 운용되고 있지만, 해자수는 이것조차도 감지하지 못했다.
사실 어떤 진법이 운용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없다.
해자수는 이미 철벽 여섯 개를 봤다. 어느 방향에서 어느 정도의 빠름으로 다가오는지 안다.
해자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아주 거칠게 움직이고 있다. 몸은 움직이지 않지만 내면은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한없이 빨려 들어간다.
다다다닥!
주변에 철벽이 쳐졌다.
해자수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철벽이 소용돌이를 건드리지 않았다.
소용돌이를 건드릴 때까지 기다린다. 어떤 식으로 공격해 오는지 모르지만, 기다린다.
쒜엑! 쒜에엑! 쒜엑! 쒜에엑!
파공음이 거칠게 일어났다.
만약 해자수가 진기로 싸웠다면 감히 방심하지 못하고 신경을 바싹 곤두세웠을 것이다.
지금 해자수는 몸 밖에서 일어나는 공격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거센 물살에 휩쓸려 가는 사람은 강둑에서 살인이 벌어져도 알지 못한다.
퍼퍽! 퍼어억!
드디어 철벽이 회오리바람 안으로 파고들었다. 순간,
슈릿! 촤아악! 츄아아악!
해자수는 앞에서 밀려오는 철벽을 단숨에 갈라버렸다. 그리고 몸을 휘돌며 좌우를 동시에 베어냈다.
퍽퍽퍽!
철벽 세 개가 순식간에 갈라졌다.
해자수의 공격은 매우 빠르다. 상대가 몸에 붙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시에 쳐낸다.
상대방이 내지른 병기는 실낱같은 차이로 몸을 훑고 지나간다. 정신을 차린 상태라면 머리끝이 쭈뼛 곤두설 정도로 아찔함을 느끼겠지만, 해자수는 알지 못한다.
해자수의 살법은 몸 주위, 일 장 안에서 벌어진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해자수는 또 철벽이 밀려드는 것을 감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철벽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이미 공간이 열렸다. 철벽 간에 간격이 넓어서 굳이 받아치지 않고도 뚫고 들어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호발귀의 혈기가 지척에서 감지된다.
슈우우웃!
그는 안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쒜에엑!
살단 무인은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치는 파공음을 들었다.
무엇인가가 쏘아져 온다. 너무 강한 것, 너무 빠른 인간이 달려오고 있다.
‘위험!’
그가 위기를 느꼈을 때는 이미 일이 벌어졌다.
살단 무인 네 명이 힘도 써보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단 일 합도 버티지 못했다.
상대는 순식간에 한 명을 베었고, 이어서 세 명을 쳤다.
‘죽인다!’
살단 무인은 즉시 연소부의 명령을 떠올렸다.
자신이 맡은 임무는 싸우는 게 아니다. 호발귀를 죽이는 것이다. 만약 임무를 행하지 못하면……
끔찍해진다. 걱정할 것 없다. 죽은 듯이 누워있는 혈마를 죽이고, 즉시 몸을 빼내자.
쉬잇!
그는 재빨리 호발귀의 머리맡으로 갔다. 그리고 생각했던 대로 검을 내리쳤다.
탁!
검이 호발귀의 머리를 찍었다.
검이 살을 찢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검 든 손으로 딱딱한 머리뼈에 닿는 느낌이 전해졌다. 혈마의 머리가 터지면서 붉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됐어. 꼼짝하지 못해. 이제는 목!’
그는 즉시 호발귀의 목을 치기 위해서 앞으로 다가섰다.
쉬이익!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쳐냈다.
비록 싸움을 두려워해서 동료들에게조차 멸시받는 몸이지만, 그래도 무공은 제대로 수련했다. 설마 움직이지 못하는 자를 베지 못할까. 아무리 못났어도 그 정도는 아니다. 순간,
탁!
무엇인가 날아와 그의 미간을 강하게 뚫었다.
그는 목을 쳐내려 가던 모습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뒤쪽에 있던 나무에 그대로 꽂혔다.
장검이 머리를 뚫고 나무에 박혔다.
미처 비명도 흘릴 사이가 없었다. 얼굴에 무엇인가 부딪쳤다고 느낀 순간, 이미 숨이 끊겼다.
쒜에엑!
해자수는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달리는 것과 똑같은 속도인데…… 그 속도 그대로 내처 달려서 땅에 쓰러져있는 호발귀를 낚아챘다.
호발귀는 손발이 등 뒤로 묶여 있다.
해자수는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은 정확하게 손발을 묶은 금잠사를 낚아챘다. 와선이 가장 들기 쉬운 곳을 알려주었다.
쒜엑!
그는 짐승을 떠매가듯이 호발귀를 어깨에 걸머메고, 단숨에 숲으로 사라졌다.
“아! 너무 빨라!”
“뭐 이런 개같은 경우가 다 있어. 저놈 뭐 하는 놈이야?”
뒤따라 내려선 살단 무인들이 어처구니없어서 중얼거렸다.
해자수가 칠성합격진을 깨고 혈마를 낚아채 갈 동안, 자신들은 해자수 옷자락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빠르다.
그들은 나무에 박힌 무인을 쳐다봤다.
평소에 못난 놈이라고 놀리던 자인데, 죽는 순간만큼은 무인답게 죽었다.
“가자. 저거라도 잡아야지.”
무인 세 명은 철고방진에 갇혀 있는 홀리를 향해 쏘아갔다.
‘구했어!’
호리는 해자수의 움직임을 감지해냈다.
살단이 뒤쪽에도 무인을 배치했을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침투해도 매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물며 호발귀를 잡아놓은 쪽은 더할 것이고.
하지만 미안하게도 생기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살단 무인이 상대로 보이지 않는다.
손속을 섞기에는 매우 쉬운 상대다. 싸움이 아니라 도살이다.
주치균만 없다면 호발귀를 빼내 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이제 내가 탈출할 차례!’
“하앗!”
홀리는 신형을 허공으로 띄웠다. 그리고 이 순간, 지면 응집력을 일으켰다.
땅이 전신에 자유를 주었다.
사방에서 위험이 몰려들고 있다. 이미 눈으로 확인한 위험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대응 방법은 전혀 달라진다.
쒜에엑!
산맥검법 중 혈맥참이 터졌다.
순간, 검에서 폭화(爆花)가 피어났다. 꽃잎이 일시에 터져서 산산이 조각나는 듯했다.
땅이 다리는 풀어준 것은 마음껏 날아가라는 것, 하늘거리는 꽃잎처럼 마음껏 검초를 펼친다.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면서 거침없이 검초를 전개한다.
그녀는 정말 신나게 검초를 휘둘렀다.
해자수는 적이 나타나면 철벽이 보인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철벽같은 것이 막아서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것을 부순다고……
그녀는 부실 게 없다. 가벼운 몸을 마음껏 뛰기만 하면 된다. 해자수가 철벽을 부수는 것보다 나비가 하늘 가득히 꽃가루를 뿌리는 것이 훨씬 더 쉽다.
까앙! 깡! 깡!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공격이 이어졌다.
장창이 싹둑 잘려 나갔다. 철삭도 뎅겅 잘렸다. 손가락 두 개 굵기의 철삭이 무처럼 잘렸다.
페에에엑!
검광은 살단 무인을 휩쓸었다.
“피해!”
누군가의 입에서 저절로 쏟아진 경악성이다.
“크아악!”
“커억!”
살단 무인들이 연신 비명을 흘리면서 쓰러졌다.
홀리는 다시 한번 허공으로 신형을 띄웠다. 그리고 앞에 있던 살단 무인의 어깨를 발로 내리찍었다.
“컥!”
무인의 어깨뼈가 으스러졌다.
홀리는 어깨를 짓밟은 탄력을 이용해서 다시 신형을 솟구쳤다. 그리고 최대한 멀리 날아가 내려섰다.
쒜에엑!
그녀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살단 무인들은 멍하니 지켜볼 뿐, 쫓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