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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99화 (299/500)

第七十章 혈마제압(血魔制壓) (4)

살단 무인들은 빨리 달리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매우 느리게 이동했다.

살단 무인은 원래 야숙(野宿)을 밥 먹듯이 한다.

이럴 경우, 야숙에 익숙해지는 방법이 있다. 야숙에 필요한 물품을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담요 한 장에 몸을 둘둘 말고 자는 버릇을 기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이 그렇게 한다.

전임 살단주 오택골은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살단 무인은 싸우는 전사다. 언제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몸 상태를 최고로 끌어올려 놔야 한다. 싸움이 시작되면 반사적으로 퉁겨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야숙을 할망정 최고로 편안해야 한다.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쉬어야 한다. 찬 바람이 씽씽 부는 곳에서 잠을 자지만 침상에 누운 것처럼 안락해야 한다.

그래서 살단 내에 숙식만 담당하는 지원 무인을 배치했다.

한 명은 머물 장소를 선정한다. 한 명은 잠자리를 맡고, 한 명은 음식을 담당한다.

세 명이 살단에 앞서서 움직이며 모든 준비를 마친다.

이들은 싸움에 관여하지 않는다. 오직 살단을 지원하는 일에만 전념한다.

이들은 수시로 부단주와 연락을 취한다.

“오늘은 어디쯤에서 머무실 예정이십니까?”

“점심은 몇 시쯤에 하실 예정이십니까?”

살단이 추격에 나서거나 격렬한 싸움을 벌일 때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럴 때는 더 자줘 보고한다.

“건포와 물을 가지고 뒤따르겠습니다.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비바람만 피할 수 있는 간이 천막을 준비할까 합니다. 헝겊으로 만든 것이라 추위에 약한 데 괜찮겠습니까?”

살단 무인은 길을 가면서 술도 마시고, 돼지도 잡아먹었다.

해만 지면 미리 마련된 천막에 들어가서 다리를 펴고 누웠다. 따뜻한 물도 준비되어 있어서 목욕하는 자도 있다.

살단 무인은 경계도 느슨하다.

모닥불을 환히 피워놓고 그 앞에서 불을 쬐는 사람이 경계를 맡은 자다. 나머지는 천막 안에 들어가서 아예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노름을 즐기느라.

타닥! 타닥! 타닥!

모닥불이 타들어 갔다.

하늘은 밝다. 환한 보름달이 세상을 대낮처럼 밝혀준다. 별도 총총하다 밤하늘에 깨를 뿌려놓은 듯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이 세상을 비춘다.

타닥! 타탁!

주치균은 모닥불에 손을 내밀고 불을 쬈다.

맞은 편에는 연소부가 앉아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연소부는 주치균을 잘 알지 못한다. 주치균이 살단주로 취임할 때, 연소부는 살단에 있지 않았다. 손철목이 강호에서 거둬들인 손철목만의 무인이다.

손철목이었다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겠지만, 주치균을 전혀 알지 못하니 말을 함부로 할 구가 없었다.

“경계를 늘리지 않아도 될까요?”

연소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답답한 침묵을 이런 식으로라도 깨보려는 것이다.

끄덕! 끄덕!

주치균은 경계를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치균은 살단이나 연소부에 대해서 일절 묻지 않았다. 손철목이 어떤 식으로 살단을 이끌어 왔는지, 어떻게 무인들을 규합했는지도 묻지 않았다.

주치균은 살단에 아예 관심이 없는 표정이었다.

살단 무인들이 취침에 들었다. 떠들썩하던 소리가 잔잔해지고, 천막 곳곳에서 불이 꺼졌다.

주치균은 멍하니 불길만 바라보고 있다.

‘기도가 안 느껴져.’

연소부는 상당히 당황했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람이 바로 살단주 주치균이다. 호발귀를 잡은 사람이다. 그런데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무공을 전혀 모르는 사람과 앉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확 달려들어서 주먹을 내갈기면 단번에 나가떨어질 것 같다.

이 샌님 같은 청년이 호발귀를 잡았는가?

주치균을 샌님이라고 하면 안 된다. 주치균은 샌님과는 거리가 멀다. 온몸이 근육으로 똘똘 뭉쳐 있어서 매우 단단한 느낌이다.

눈매도 날카롭다. 하지만 용모가 워낙 빼어나서 단단하다는 느낌을 상쇄시켜 버린다.

매우 빼어난 용모에 육신의 단단함이 묻혀버리는 경우다. 거기에 기도까지 읽히지 않으니.

“죄송하지만 어떤 무공을 수련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알고 있잖아.”

주치균이 말했다.

“검신님의 전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한데 듣던 것과는 기도가 전혀 달라서.”

주치균이 피식 웃었다.

“많이 다르다고?”

“네. 많이 달라 보입니다.”

“어떻게 다른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 주먹 한 방이면 나가떨어지실 분 같습니다.”

“주먹이 센가 보지?”

“네? 아! 죄송합니다. 저는 말이 그렇다는 뜻으로.”

연소부가 황급히 머리를 숙였다.

“내 말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어. 내가 너한테 하는 말 중 구 할은 헛소리야. 새겨들을 필요, 없다는 말이지. 그냥 툭툭 내뱉는 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

“네.”

“내일 날이 밝으면 손님이 온다.”

파앗!

손님이라는 말에 연소부의 눈빛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손님들…… 무시하지 마. 형옥주와 비보전 무인을 죽였다면…… 후후! 기대되는군.”

주치균이 웃었다.

“비보전 무인도 무인입니까? 그런 놈들 몇 놈 죽였다고……”

“어떻게 내 말 중에 비보전만 알아들었지? 형옥주를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나?”

“죄송합니다.”

연소부가 고개를 숙였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주치균은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데, 엄청난 압력이 어깨를 짓누른다. 분명히 아무런 기도도 뿜어내지 않는데, 엄청난 압박감이 밀려온다.

주치균이 말했다.

“형옥주는 불광노하검을 수련했어. 형옥주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불광노하검이 꺾었다는 말이다.”

“불광노하검!”

연소부가 깜짝 놀라서 주치균을 쳐다봤다.

“방심하면 많이 다쳐. 단단히 준비해.”

“네! 단단히 준비하겠습니다.”

“내일 손님이 오면, 난 다른 싸움을 하게 될 거야. 날 끌어낼 텐데, 딸려가 줘야지. 그러면 저놈은 너희가 막아야 해. 내 도움 없이 살단만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저놈은 빼앗기지 않겠습니다.”

연소부가 축 늘어져 있는 호발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빼앗겨도 상관없고.”

“네? 빼앗겨도 상관…… 없습니까?”

“빼앗기게 되면 목을 쳐.”

“죽이라는 말씀?”

“대신 목을 친 자는 목숨을 내놔야 할 거야. 단주님의 분노를 살 테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치겠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 이런 일은 가장 못난 놈을 시켜. 살단에 어울리지 않고 겉도는 놈. 머릿속에 딴생각이 있는 놈. 그런 놈을 써야 할 순간인 거야.”

“네.”

연소부가 대답했다.

주치균은 등여산의 기척을 읽었다.

‘벌써? 후후! 왔군. 마음이 급했어.’

등여산이 주위에 있다. 근처를 얼씬거린다. 단지 느낌일 뿐이지만, 틀림없이 곁에 있다.

그녀가 야습을 가해올까? 그럴 수도 있다.

‘아냐. 야습은 일러.’

주치균은 고개를 저었다.

등여산은 야습을 가해오지 않는다. 확신한다.

그녀는 호발귀가 자신에게 잡힌 것을 안다. 혈마가 무인에게 잡힌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에게 혈마를 잡을 수 있는 무공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기습을 가해서 호발귀를 꺾은 자와 싸운다?

생각해 볼 문제다. 아니, 행동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 자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이길 수 없다면 살단주의 눈을 피해서 빼내야 하는데, 할 수 있을까?

등여산은 지금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쉽게 달려들지 않는다. 계속 생각을 거듭해도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공격은 자연스럽게 늦춰진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늦출 수는 없다. 살단이 천살단 본단 근처에 이르면 그때는 해답을 찾지 못해도 공격해야 한다.

승산이 없지만, 등여산처럼 무모한 여자라면 공격해 온다.

그렇게 예상했는데…… 벌써 달라붙었다.

확실히 머리 하나는 좋은 여자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해답을 찾을 수 없을 텐데.

하지만 미안하게도 주치균은 등여산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상할 수 있었다. 자신을 앞으로 꾀어내고, 홀리와 해자수에게 호발귀를 구하라고 시킬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호발귀를 구하겠다는 거다.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법이 고육책(苦肉策) 같아.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 이기겠다는 병법이잖아. 난 죽어도 괜찮다. 이 싸움만은 이기겠다. 이거잖아. 그러니 고육책을 쓰면 넘어가지 않을 수 없어. 누구라도 넘어갈 거야.

승산이 없을 때, 등여산이 쓸 방법은 고육책밖에 없다. 자신을 던져서 길을 여는 것이다.

이것도 예상이지만 내일 낮이나 늦어도 저녁때쯤이면 들이칠 것으로 생각된다.

등여산의 무공은 신경 쓰지 않는다.

태산파의 절공, 그녀가 수련한 무공에 대해서는 주치균도 그녀만큼이나 잘 알고 있다.

등여산은 부인하지만…… 연인이 수련한 무공이다. 어떻게 모를 수 있나.

솔직히 신경이 쓰이는 무공은 아니다. 상당히 강한 무공이기는 하지만 비사칠초나 건곤구혼검에 견주지 못한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그렇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는 충분히 조심해야 한다.

그녀가 공격을 가해 올 때는 자신이 호발귀를 어떻게 잡았나 하는 부분에 대해서 해답을 얻은 후일 것이다. 특히 예정보다 앞당겨서 공격해 온다면 틀림없다.

‘어디……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이번에는 어떻게 하는지 보지. 나를 뚫을 수 있을지 아니면 절대 무공 앞에서는 네 머리도 어쩔 수 없는 것인지. 호발귀를 유인만 할 뿐, 어쩌지 못한 것을 보면 네 머리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만. 후후!’

주치균은 웃었다.

등여산이 책사였고 자신이 검벽주였을 때, 둘 사이에 호발귀가 끼어들지 않았을 때, 등여산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을 때…… 그때는 모든 일에서 책사를 우선했다.

책사가 한마디 하는 것이 무인 열 명이 나서서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했다. 무공은 자신이 뛰어나지만, 인물로 보면 등여산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과 등여산을 보고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말했다.

자신 생각은 달랐다. 이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내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등여산을 하늘에서 노니는 선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절대적으로 믿었던 때가 있다.

하지만 그녀가 호발귀를 선택한 순간, 그녀에 대한 모든 믿음이 무너졌다.

그녀는 사람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못난 여자다. 우러르고 떠받들어줄 존재가 아니라 경멸해야 할 여자다.

정(正)을 버리고 사마 세계로 돌아섰으니, 편히 죽지도 못할 것이다.

적(敵)!

등여산은 적일 뿐이다.

‘어디 내 대책이 어떤 것인지 구경이나 해보자.’

주치균은 팔베개를 하고 드러누웠다.

호발귀를 잡은 기쁨은 그렇게 크지 않다. 호발귀만 잡으면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저 그렇다. 묘하게도 호발귀를 잡자, 당장 천살단주가 떠올랐다.

천살단주…… 확실히 문제다.

자신에게 무령환살공을 알려준 사람이 단주다 파신금령술도 단주가 알려줬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단주가 주었다.

그렇다면 단주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마공관 비밀 석실에서 단주는 자신을 잡아내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무령환살공을 펼치자, 어떤 기척도 감지해내지 못했다. 만약 그 어둠 속에서 단주를 암습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호발귀를 잡았듯이 단주도 잡았을까?

단주는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도 단주는 마지막 순간에 아주 강하게 말했다. 똑바로 들으라고. 죽이라는 게 아니라 살려서 데려오라고. 자상한 할아버지의 음성이 아니라 천살단주의 명령이었다.

그렇다면 단주는 자신을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명을 어기면 잡을 수 있다 이거지. 도대체 뭘 가지고 있는 거야?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야. 하지만 언젠간 알게 되겠지. 당신의 모든 것을.’

주치균은 이제 단주도 존경하지 않는다.

옛날의 감정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 세상은 힘이 우선인 세상이다.

자신이 단주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될 때, 단주는 죽는다. 이제는 가차 없이 검을 쓸 수가 있다.

앞으로 앞을 가로막는 자는 다 죽일 것이다.

이 세상은 혈마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주치균이라는 사람을 두려워해야 한다. 조만간 천하가 숨죽이며 눈치를 볼 날이 찾아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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