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章 혈마제압(血魔制壓) (3)
“시신을 살펴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어. 호발귀가 어디쯤에서 어떤 식으로 공격당했는지 알아내야 해. 틀림없이 이 사람들을 죽이는 중에 암습당했을 거야.”
“암습?”
“응. 암습. 기습을 당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당했는지는 몰라. 그러니까 지금부터 찾아내야지.”
“암습 당한 건 어떻게 알아?”
“미끼. 무공으로 겨뤄서 이길 자신이 있다면 미끼가 필요 없어. 자신이 호발귀 앞에 나서면 되니까. 미끼를 썼다는 건, 호발귀의 시선을 미끼에게 돌렸다는 거야.”
“그럴 듯한데? 좋아. 살펴볼게.”
홀리는 등여산을 쫓아서 부시독에 썩어들어간 시신들을 살폈다.
살단 무인들은 아주 큰 실수를 했다.
미끼를 죽이고 부시독을 뿌려서 시신을 훼손했지만, 그들을 흩어놓은 곳에 그대로 놓아두었다.
그 덕분에 죽은 위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호발귀가 죽인 자들은 사지가 찢겨있지만, 살단 무인들이 죽인 사람은 시신 형태가 온전하다. 피와 살은 부시독에 썩었지만 뼈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뼈의 상태를 보면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 수 있다.
해자수는 시신을 보지 않았다. 두 여인이 시신을 들여다보는 동안, 그는 주변을 수색했다.
“뭐해?”
홀리가 해자수에게 물었다.
“그거 시신이 몇 구나 된다고 셋이 매달려요. 두 분이 알아서 살펴보시고…… 난 다른 흔적이 있나 싶어서.”
해자수는 풀숲을 뒤졌다. 고개를 내밀어 나무 사이도 쳐다봤다. 딱히 어떤 흔적을 찾는 것은 아니다. 무심이 사방을 쓸어보다가 눈길에 걸리는 것을 찾는다.
“후유!”
등여산이 한숨을 토해내며 허리를 폈다.
시신 열 구를 모두 살폈다.
호발귀가 죽인 사람과 살단 무인이 죽인 사람은 너무나도 확연하게 달랐다.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도 없이 슬쩍 훑어보기만 해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안다.
“호발귀 넷, 살단 여섯. 호발귀가 이곳에 와서 네 명밖에 죽이지 못했다는 거네. 네 말대로 암습 당한 것 같고.”
홀리가 말했다.
“뭐 찾은 거 있어요?”
등여산이 해자수를 보며 말했다.
“킥킥! 내가 누굽니까. 은인문 전인 아닙니까. 내가 십 년 전에 죽은 사람도 찾아내는 놈입죠.”
“흰소리 그만하고. 뭘 찾았는데 그래?”
홀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여기.”
해자수가 손으로 땅을 가리켰다.
“여기가 어디냐? 바로 천살단이 앉았던 자리라 이 말씀.”
“뭐?”
“정말요?”
등여산과 홀리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해자수가 가리킨 곳에는 솔잎이 수북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앉았던 흔적이 뚜렷하게 보였다.
흔적이 너무 명확해서 일부러 작심하고 찾았다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뒤처리를 전혀 안 했네.”
홀리가 말했다.
잠입할 경우에는 앉았던 자리, 누웠던 자리, 걸어간 흔적 등등 모든 것을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주치균 같은 경우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호발귀가 네 명을 죽인 후에 공격받았고, 주치균이 여기 앉아 있었고. 또 뭐 없나?”
홀리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씨, 설마 내가 이것 하나 알아냈으려고.”
해자수가 득의롭게 웃었다.
“또 있어?”
홀리가 반색했다.
“핏자국. 왜 핏자국을 생각하지 않을까? 너무 당연한 건데도 생각을 하지 않아요.”
해자수가 옆걸음으로 두 걸음 걸어서 땅을 가리켰다.
“여기 핏자국이 있고, 저기. 그리고 저기. 마지막으로 저기. 저기가 제일 많아. 아주 흥건해.”
핏자국은 모두 네 군데에 흩어져 있었다.
“여기서 처음 습격당했네.”
호발귀가 처음 습격당한 장소는 쉽게 찾아졌다. 처음 핏자국이 떨어져 있는 곳이다.
호발귀는 그로부터 몇 걸음 걷지 않아서 완전히 무너졌다.
주변은 깨끗하다. 어지럽혀져 있지 않다. 누군가가 싸운 흔적이 전혀 없다.
매우 강력한 수법에 당한 것 같다.
“하! 이거 어떤 수법에 당한 거지?”
해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발귀가 어디서 당했는지는 알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잖아. 빨리 쫓아가기나 하자.”
홀리가 말했다.
등여산은 홀리의 말을 듣지 않았다.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 핏자국을 따라서 걸었다. 네 번째 핏자국까지 따라간 후에 다시 돌아오면서 말했다.
“해자수님, 저쪽으로 가주실래요?”
등여산이 해자수에게 십여 장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저기요?”
“네.”
해자수는 등여산이 가리킨 곳으로 갔다.
“거기서 옆에 있는 사람을 죽여보세요.”
해자수는 등여산이 시키는 대로 부시독에 죽어간 사람을 공격했다. 실제로 건드리지는 않고 공격하는 시늉만 했다.
등여산은 주치균이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다시 한번요.”
해자수가 다시 손을 움직였다.
“두 번째요.”
해자수 걸음을 옮겨 두 번째 시신으로 갔다.
등여산이 가리킨 곳에 서자 시신 순서가 한 번에 쫙 들어왔다. 첫 번째 시신은 나무 밑에 앉아 있다. 두 번째 시신은 드러누워 있다. 순서를 정하지 않았지만, 어디로 갈지 알겠다.
해자수는 땅에 누워있는 시신에게 걸어갔다.
“다음요.”
해자수는 세 번째 시신으로 걸어가서 공격 시늉을 했다.
“네 번째.”
해자수는 등여산과 가까워졌다. 습격을 가해도 효과를 볼 수 있는 거리다.
“지금부터는 천천히 걸어주세요. 다섯 번째.”
“다섯 번째? 나머지는 살단 무인이 죽였잖아?”
홀리가 물었다.
“해자수님, 어디로 가야 할 것 같아요?”
“그거야 저기.”
해자수가 나무에 기대어 선 시신을 가리켰다.
“저기로 가세요. 천천히.”
해자수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네 번째 시신을 죽이고, 다섯 번째를 향해서 몸을 돌렸다.
그때 등여산이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엇!”
해자수가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
기가 막힌다! 등여산은 호발귀 옆에 섰다. 호발귀가 지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다.
“계속 걸어보세요.”
해자수는 등여산이 시키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순간,
탁!
등여산의 손이 왼쪽 아래 배에 닿았다.
등여산이 손을 내밀었으니 당연하다. 큰 힘도 필요 없다. 단지 손만 내밀었다.
“첫 번째.”
등여산이 말했다.
“뭐가…… 엇!”
홀리가 깜짝 놀라서 경악성을 내질렀다.
등여산의 손이 닿은 곳, 그 자리…… 첫 번째 핏자국이 남겨진 곳이다. 그러면 호발귀가 이런 식으로 당했나? 호발귀가 지나갈 때, 스륵 일어나서 쳤다고? 말도 안 돼!
지금 등여산 하는 말대로라면 호발귀는 을 전혀 보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걸어보세요.”
등여산이 말했다.
해자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걸음을 옮겼다.
등여산은 재빨리 해자수의 등 뒤로 돌아섰다.
호발귀가 앞으로 걸어가고, 주치균이 앞으로 걸음을 내딛자 자연스럽게 등 뒤에 서게 되었다.
탁!
등여산이 해자수의 등을 쳤다.
“두 번째 공격.”
“아! 핏자국이 맞네.”
해자수가 말했다.
등여산의 공격과 땅에 떨어져 있는 핏자국이 일치한다.
정말로 호발귀는 주치균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땅에 피가 떨어져 있으니 믿지 않을 수 없다.
등여산이 울상이 다 되어서 말했다.
“방금 친 곳은 지실혈이야.”
“이 수법 알아?”
홀리가 급히 물었다.
등여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 수법만. 어떻게 공격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어. 해자수님, 더 걸어보세요. 지실혈을 맞았으니 다리가 불편할 거예요. 절룩거리면서 걸으세요.”
“하아!”
해자수가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잖아도 땅에 깊이 팬 자국이 있다.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해자수의 눈까지 속이지는 못한다.
해자수는 패인 자국을 쫓아서 걸었다.
등여산은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낙엽 떨어지듯 부드럽게 툭 떨궜다.
탁!
손이 연액혈에 닿았다.
“여, 여기를 친다고요?”
해자수는 손이 연액혈에 닿자 깜짝 놀라서 물었다.
“이 자리, 맞네. 이 수법, 뭐야?”
홀리가 땅에 묻은 피를 보면서 물었다.
“파신금령술. 마공관에 소장된 무공이야. 너무 패악해서 사용이 금지된 무공이고, 이백 년 전 혈마에게 가문을 유린당한 제갈세가(諸葛世家) 제갈탄(諸葛坦)이 만든 무공이야. 어디를 맞든 세 군데 중 한 군데만 맞으면 죽게 되어 있어.”
“호호! 천살단이 마공관을 본격적으로 쓰고 있구나?”
“……”
등여산을 말일 하지 못했다.
천살단 무인 중 마공관을 제일 많이 들락거린 사람이라면 바로 자신이다.
혈마록을 연구하기 위해서 다른 무공도 많이 살폈다. 특히 이백 년 전에 창안되거나, 혈마에게 당한 사람이 만든 무공은 더욱 세심히 살펴보았다.
파신금령술의 무서운 점은 단검을 찌르는 깊이와 각도에 있다. 바늘 하나 차이로 삶과 죽음을 갈라버린다.
물론 살았다고 해도 산목숨이 아니다. 혈이 망가져서 목숨을 부지하더라고 불구가 되는 것은 면치 못한다.
파신금령술은 매우 잔혹하다. 사용할 수만 있다면 혈마라도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매우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사용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파신금령술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마찬가지다.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 누가 혈마에게 다가가서 혈마가 쳐낸 검을 피해내고, 파신금령술을 쓸 수 있을까.
단지 원한에 사무쳐서 만들어낸 허상의 공부일 뿐이다.
“문제는 그게 아냐.”
등여산이 말했다.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호발귀는 살단주를 보지 못했어.”
등여산은 주치균이 앉았던 자리를 가리켰다.
호발귀가 네 명을 죽일 때까지, 주치균은 한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보지 못했다. 직접 눈에 띄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느낌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호발귀는 느낌도 갖지 않았다. 혈겁에 눈이 뒤집혀서 생기만 찾다 보면 그럴 수 있다. 오직 죽일 생각만 할 테니까.
“해자수님!”
등여산이 해자수를 다시 불렀다.
“돌아보세요.”
해자수가 네 번째 사람을 죽이고 다섯 번째 사람을 향해서 돌아섰다. 그때, 등여산이 일어섰다.
“봐.”
호발귀의 시야에 걸려들지 않는다.
주치균이 바로 옆에서 일어섰으니 고수가 아니라 일반인이라도 느낌이 들었어야 한다. 한데 호발귀는 주치균을 무시하고 걸어갔다. 주치균을 보지 못했다. 느끼지 못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홀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난 여기서 단검을 꽂을 거야. 파신금령술을 펼치는데, 호발귀는 전혀 알지 못해. 지금 해자수님과 내 거리…… 이 정도 거리에서 공격하는데 어떻게 모를까?”
할 말이 없다.
이것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길을 가다가 바로 옆에서 사람이 일어섰다. 모를 수 있나? 눈이 마주치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한가?
등여산이 말했다.
“호발귀는 두 눈으로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느끼지도 못했어. 생기를 파악하지 못한 거야.”
“그, 그게 가능해?”
홀리가 말을 더듬거렸다. 너무 놀라운 일이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생기를 감췄다면……
호발귀를 상대할 수 있다. 호발귀의 장점은 생기 제압인데, 제압할 생기가 없으니 아무 짓도 하지 못한다. 허수아비가 된다.
주치균은 생기를 감췄다.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니 생기가 소멸할 리는 없다. 오직 죽은 사람만이 생기를 잃는다. 그러니 주치균의 경우에는 생기를 감춘 게 분명하다.
등여산이 말했다.
“살단주가 생기를 감췄다면, 우리도 상대가 안 돼. 그럼 우린 온전히 무공으로 비사칠초를 상대해야 해. 거기에 살단 무인들까지. 호발귀를 구하기가 어려워져.”
“그럼 어떡하지?”
“우리 생기는 주치균에게만 통하지 않아. 살단 무인에게는 여전히 통해.”
“그야 그렇지.”
“내가 주치균을 유인해낼게.”
“야! 너!”
“주치균을 유인해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 나 아니면 주치균, 안 움직여. 내가 붙잡고 있는 동안, 호발귀를 구출해. 달리 다른 방법이 있으면 말하고.”
홀리와 해자수는 등여산을 빤히 쳐다봤다.
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주치균이 생기를 숨긴다면, 공격할 방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