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章 혈마제압(血魔制壓) (1)
“크크크! 크크크!”
호발귀가 괴소를 토해내며 다가왔다.
호발귀는 생명체의 상태를 정확히 감지한다. 움직일 수 있는지 움직일 수 없는지 알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움직일 수 있으면 끌어당기고, 움직일 수 없다면 자신이 움직인다.
마혈을 짚인 사람들은 움직일 수 없다.
그 상태를 알고 호발귀가 다가온다.
“크크큭!”
호발귀가 첫 번째 사람에게 다가섰다.
나무에 앉아있던 여인이 파르르 떨었다. 비명도 절규도 지르지 못하고 파르르 떤다.
퍽! 파파파팟!
여인은 느닷없이 휘둘러진 검을 맞고 풀썩 쓰러졌다.
여인에게는 오늘 하루가 날벼락을 맞는 날이었을 것이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몸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고, 귓가에 낯선 자들의 음성이 들렸을 것이다. 그리고 또 움직이고 움직여지더니 느닷없이 불벼락이 터졌다.
“크크큭! 크큿!”
호발귀는 서둘지 않았다.
사람들이 움직일 수 없다면 서두를 이유가 없다. 어차피 전부 먹잇감이다.
파파파팟! 파파팟!
또 한 명이 죽었다.
이번에 죽은 사람은 여인에게서 두 걸음 떨어진 곳에서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크크크! 크크크크!”
호발귀는 연신 이상한 괴소를 흘렸다. 멀쩡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호발귀를 더욱 무섭게 만드는 것은 핏빛으로 물든 두 눈이다. 눈에 있는 혈관이 터졌는지 흰자위가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거기에다가 미친놈들이나 흘리는 광망까지 토해내니, 혈광을 줄줄이 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인질들은 전부 다 검은 헝겊으로 두 눈이 가려져 있었다. 호발귀를 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마혈이 제압되면서 아혈까지 제압되어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검에 맞아 죽는 순간에도 비명을 토해내지 못한다. 그저 죽어갈 뿐이다.
푹! 푸우욱! 파파파팟!
또 한 사람의 몸뚱이가 터져나갔다.
호발귀는 검을 느릿느릿 사용했다. 죽이는 찰나는 매우 빨랐다.
순간적으로 십여 초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쪽 생명에서 저쪽 생명으로 다가가는 순간은 매우 느리다.
호발귀는 혈겁을 즐기고 있다.
사마가 호발귀를 유인할 때는 사람을 충분히 제공했다. 마을에서 마을로 유인하면서 무수한 생명을 제공했다. 그때는 혈기가 넘쳐흘렀다.
등여산이 유인하면서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기껏 죽이는 것이 동물들, 그것도 한참을 달려야 겨우 한 마리 나타나는 정도였다. 상당히 혈기에 굶주린 상태다.
오늘은 혈기를 듬뿍 채웠다.
아직도 혈기를 채울 수 있는 생명이 남아있다.
반드시 끓어야 할 생명이다. 하지만 몇 명 남지 않았다. 그러니 맛있는 음식을 아껴 먹듯이 최대한 아껴서 소멸시킨다.
물론 이것도 추측일 뿐이다.
호발귀가 어떠한 상태에서 검을 쓰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스읏! 파파팟! 파파파팍!
또 한 명이 죽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시신을 가격하고 걸음을 옮기려다가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또 한 번 검을 쳐냈다.
파파파팟! 퍼퍼퍽!
호발귀가 죽은 시신을 재차 가격했다.
호발귀에게는 사람을 공격하는 데 어떤 기준이 있는 것 같다.
기준에 부합되면 대여섯 번 만에 검을 멈추고, 부합되지 않으면 재차 가격한다.
그럴 때면 무려 스무 차례 가깝게 검을 맞게 된다.
“크크큿! 크크크큭!”
호발귀가 만족한 듯 괴소를 내질렀다. 그때다.
슛! 푹!
호발귀의 옆구리에 검이 틀어박혔다. 작은 단검이지만 자루만 보일 정도로 깊이 박혔다.
호발귀는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듯 멀뚱멀뚱 옆구리를 쳐다봤다. 검을 빼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지혈할 생각도 없는 것 같다. ‘이게 왜 옆구리에 박혀 있지?’ 하는 표정이다.
“키키키킥! 키키킥!”
호발귀가 느릿하게 돌아섰다.
검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누가 쳐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또 다른 생명을 죽이기 위해 돌아섰다.
호발귀가 나무에 묶여 있는 장한을 노려봤다.
아직도 죽일 사람이 많이 있다. 숨 쉬는 생명이 움직이지 못한 상태로 굳어있다.
스읏!
호발귀가 걸음을 장한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순간,
푸욱!
또 습격이다. 등 뒤, 골반 위쪽 지실혈(志室穴)에 단검이 깊이 박혔다.
“큿!”
이번에는 호발귀도 담담하게 넘어가지 못했다. 짧은 단말마를 흘리면서 비틀거렸다. 먼저 받은 일격보다 확실히 훨씬 강한 충격을 받은 게 틀림없다.
호발귀가 살광을 번뜩이면서 주위를 돌아봤다. 하지만 여전히 습격한 자는 찾지 못했다.
성난 눈으로 주위를 훑어보았지만, 가장 가까운 생명은 나무에 묶인 자다.
“크크크큿! 크큭!”
호발귀는 지실혈에 꽂힌 단검도 뽑지 않았다. 가벼운 상처가 절대 아니다. 매우 위중한 곳에 일격을 맞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절절맸을 것이다.
지실혈은 신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요통이나 신장에 이상이 생기면 통증이 일어나는 혈이기도 하다.
이 혈이 굳어있으면 천하에 다시 없는 보약도 듣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반대로 지실혈을 잘 풀어주면 허리와 신장이 좋아지면서 정력도 강해진다.
이 말은 지실혈을 타격당하면 당장 허리와 신장 쪽에 무리가 간다는 말도 된다.
범인은 주먹으로만 맞아도 견디지 못하고 풀썩 무너진다.
호발귀는 상처가 거치적거리는 듯 비틀거렸다. 하지만 나무에 묶인 자를 죽이기 위해서 움직였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고통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치 길을 가다가 길바닥에 떨어진 못에 밟힌 것처럼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단검 두 개가 박혔다.
첫 번째 단검은 일월혈(日月穴)을 찔렀다.
일월혈은 늑막과 연관되어 있다. 일월혈을 타격당하면 늑막이 찢어진다. 흉강에 구멍이 생긴다.
우측 일월혈은 간담에 생긴 질병을 치료하고, 왼쪽 일월혈은 위경련을 치료하는 혈이지만…… 호발귀의 경우에는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다.
흉강에 고인 흉수가 터져나갔다.
당장 호흡곤란이 오고 가슴 통증이 치밀 것이다. 너무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쩔쩔매야 한다.
그런 고통을…… 호발귀는 소가 닭 보듯이 무심하게 지나쳤다.
뭐 이런 인간이 있나, 이게 정말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두 번째 단검은 지실혈을 찔렀다.
보통 사람 같으면 여기서 무너졌다.
일월혈이나 지실혈이나 매우 중요한 혈도다. 하지만 혈을 생각하지 않고 무의식중에 칼을 찔러도 이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 찌르면 일월혈이고, 뒤에서 찌르면 지실혈에 닿는다. 열 명이 칼을 쓰면 서너 명은 이 자리를 찌를 것이다.
손에 닿기 가장 편한 곳이면서도 본능적으로 위험한 부위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호발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지실혈을 찔린 후에는 다리를 절룩거렸다. 왼쪽 다리를 잘 쓰지 못하고 질질 끌었다.
주치균은 세 번째 단검을 들었다.
무령환살공이 통한다. 호발귀는 자신이 눈앞에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한다.
두 눈으로 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검을 찌른 후에는 시야에서 벗어난다.
재빨리 움직여서 호발귀가 고개를 돌리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선다.
호발귀는 기척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 검을 찌를 때 흘리는 파공음 등등 모든 소음을 완벽하게 제거했다.
주치균은 호흡도 참고 있다.
완벽한 폐기 상태다.
무령환살공을 펼치면 십 중 칠팔은 폐병으로 죽는다. 나머지는 정신 이상이 된다고 한다.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천하가 두려워하는 혈마가 이렇게 맥없이 당하고 있지 않은가.
스읏!
나무를 향해 걸어가는 호발귀 등 뒤로 다가섰다.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이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이렇게 바싹 다가섰는데?
무령환살공을 펼치면 생명 잃은 바위가 된다. 눈으로 보지 않으면 전혀 알지 못한다.
숨이 끊어지고,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내려가고, 혈액 순환도 느려진다.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이런 상태에서는 움직일 수 없다.
그런데 무령환살공은 움직인다.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영역을 깨트려서 가능하게 만들었다.
물론 인체에 무리가 간다.
바싹 마른행주를 억지로 쥐어짜서 물기를 뽑아내는 것과 같다고 할까?
무생(無生)을 이루는 것은 무척 어렵다. 말했잖은가.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의 상태가 된다는 것인데, 이게 가능한가.
무령환살공은 고요함을 이룬다. 최고의 적정(寂靜)을 이루는 순간이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평생 사용해야 할 진기를 한순간에 쏟아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오른쪽 겨드랑이 밑을 노린다. 연액혈(淵腋穴)에 단검을 틀어박았다.
손을 머리 위로 올린 후, 하늘하늘 떨어지는 낙엽처럼 부드럽게 손을 떨군다. 단검을 든 손이 부드럽게 어깨를 스치면서 겨드랑이 밑으로 파고든다.
푸욱!
단검이 연액혈에 꽂혔다.
연액혈은 겨드랑이에서 세 치 밑에 있는 오목한 혈이다.
연(淵)은 오목한 곳을 말하며, 액(液)은 겨드랑이 액(腋)을 말한다. 겨드랑이 밑에 있어서 연액혈이라 부른다.
연액혈은 매우 예민한 혈이다. 침은 삼 푼을 놓고, 뜸은 뜨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연액혈에는 늑간신경이 있다. 늑간 동정맥도 흐른다.
치명적인 사혈이다. 검에 맞으면 칼날이 신경을 끊고, 동맥을 잘라내며, 폐를 찌른다.
천하제일의 신의가 바로 옆에 있어도 생명을 보존할 수 없는 곳이다.
“쿨록!”
호발귀가 큰기침을 쏟아내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드디어 호발귀가 무너졌다. 혈마가 쓰러졌다. 이백 년 동안 무적 무신으로 군림하던 혈마가 무릎을 꿇었다.
호발귀는 일어나려고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미 사지에서 힘이 빠져버렸다. 벌레처럼 꿈틀거리기만 할 뿐, 굽혀진 무릎조차 펴지 못하고 있다.
“운 좋은 놈이군.”
주치균이 호발귀를 보며 피식 웃었다.
만약 천살단주가 생포해 오라고 하지 않았다면, 호발귀 몸에 꽂힌 단검은 벌써 죽음을 불러왔을 것이다.
호발귀는 첫 번째 단검에서 즉사했을 수도 있다. 첫 번째 단검을 피했어도 두 번째 단검에서는 즉사했다.
주치균이 제대로 검을 썼다면 틀림없이 즉사다.
마지막 세 번째 단검까지 틀어박힌 인간이 살 수 있다고 보나? 손속에 사정을 담아서 정확히 찌르지 않았기 때문에 산 것이다.
연액혈은 찔렀지만, 신경도 자르지 않았고 동맥 손상도 주지 않았다. 폐도 찌르지 않았다.
호발귀 같은 놈들? 죽이고 싶으면 언제든지 죽인다.
주치균은 혈마를 가지고 논 것이 뿌듯했다.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살리고 싶으면 살린다. 얼마나 뿌듯한가. 동네 강아지처럼 호발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지 않은가.
“후우!”
주치균은 꾹 눌러 참았던 탁기를 풀어냈다.
순간, 호발귀가 고개를 빨딱 젖혀 뒤를 돌아봤다. 주치균이 무령환살공을 풀자, 단박에 생기를 찾아냈다.
일순, 호발귀와 주치균의 눈이 마주쳤다.
“웃!”
주치균은 깜짝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호발귀의 눈이 혈광으로 번뜩인다.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린다.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하는 처지이면서도 여전히 맹수처럼 으르렁거린다.
“후우! 놀랐잖아. 후후! 맹수는 맹수군. 마귀는 마귀야. 하하!”
주치균은 웃었다.
일월, 지실, 연액으로 이어지는 금제법을 파신금령술(把身擒靈術)이라고 한다.
무령환살공과 마찬가지로 이백 년 전부터 혈마를 잡기 위해 연구된 제혈법(除穴法)이다.
파신금령술을 제대로 사용하면 천신도 죽일 수 있다.
“내가 너한테 주눅이 들긴 들었었군. 쳐다보기만 하는데도 이리 놀랐으니. 후후!”
주치균에게는 아직 장검이 남아있다.
장검으로는 목을 쳐낸다. 그럼으로써 파신금령술이 완성된다. 단검으로 나포하고, 장검으로 생명을 끊는다
스릉! 철컥!
주치균은 장검을 거뒀다.
사실은 장검으로 팔다리 중 일부를 잘라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끌고 가기에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 그동안 당한 게 얼마인데 이 정도로 속이 풀리겠나.
하지만 결국은 검을 쓰지 못했다.
파신금령술을 사용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안다. 그도 정확히 아는 수법이다. 하지만 여기서 손발을 잘라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지 못한다.
사지를 잘라내면 과다 출혈이 일어난다. 보통 사람에게는 과다 출혈이 나쁜 쪽으로 작용하는데, 혈마에게도 그럴지는 알지 못한다.
혈마의 어떤 부분을 자극해서 돌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호발귀를 제압했으니 일단은 이대로 끌고 간다.
“삐이이익!”
주치균은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