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九章 정관기변(靜觀其變) (3)
주치균의 생각은 매우 타당하다.
등여산이나 홀리는 주치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주치균이 새로 연성한 무공이 아니더라도, 검신의 비사칠초만 가지고도 두 여인을 넘어선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놓친 부분이 있다.
해자수까지 세 사람이 이미 생기를 알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호발귀 외에 다른 누군가가 혈기를 사용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형옥주와 비보전 무인이 죽었고, 사마가 당한 모습을 보았다.
홀리와 해자수에게 당했다. 하지만 무공이 발전했기 때문이지 생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 사람은 단순히 생기를 보고 느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무공에 활용하는 단계까지 올라섰다.
세 사람은 아직도 생기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단지 희열이 일어나면 생기가 일어난다는 정도? 땅이 두 다리를 붙잡고 있으면 안전하다는 정도?
그 정도 선에서 활용하는 것일 뿐 정확히 생기가 어디로 흘러들어와서 어떤 힘으로 작용하여 도움을 주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제 막 입문한 것이다.
하지만 이 차이는 매우 크다. 입문한 사람과 전혀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다.
이제 갓 입문한 사람이 형옥주를 죽이고 천살단 무인들을 몰살시켰다.
이 부분을 간과했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실수다.
손철목도 간과한 부분이 있다.
그는 검에 부시독을 묻혀서 휘두르면 독액이 안개처럼 흩뿌려진다고 했다.
그런 검초를 펼치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그 말은 맞는다.
하지만 손철목이 말한 검초는 이미 펼쳐졌다.
정탐을 나갔던 자가 홀리에게 부시독을 사용했다. 검에 독을 묻힌 것은 아니지만, 아예 옥병째로 허공에 확 흩뿌렸다. 살상 범위로 보면 훨씬 넓다.
홀리는 독무 공격을 피해냈다.
이런 사실을 손철목은 알지 못한다. 정탐 나간 자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호발귀가 달려드는 통에 후퇴하기 바빴다.
주치균이나 손철목이나 한가지씩 빈틈이 생겼다.
쒜에에엑!
홀리와 해자수는 전력을 다해서 신형을 쏘아냈다.
“이것들 뭐죠?”
해자수가 곁눈질하며 말했다.
“얘네들 살단이야. 우리가 신경 쓸 것 없어.”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자꾸 따라붙으니. 저것들은 목숨이 서너 개라도 되나.”
“내 고민은 책사야. 지금 책사 교대를 해줘야 하는데, 그러면 살단하고 부딪칠 것 같아서.”
“살단이면 책사님께 맡길 수 없죠. 책사님이 더 버틸 수 있겠죠?”
“아직은 더 버틸 수 있지. 여유를 남기고 교대했으니까. 하지만 곧 한계에 도달할 거야.”
“하! 저놈들 꽤 속 썩이네.”
해자수가 좌측 벼랑 위를 쳐다봤다.
홀리도 신형을 띄우면서 좌측 위쪽을 힐끔 곁눈질했다.
그쪽으로 무인의 기척이 감지된다. 숫자도 많아서 대충 십여 명쯤 되는 것 같다.
살단 무인 네 명이 죽었는데, 그래도 달라붙는다.
“이쪽으로 쭉 가면 어디야?”
“아휴! 나도 이곳 지리는 몰라요. 더욱이 계속 깊은 산속으로만 치달려서.”
“음!”
홀리는 침음했다.
살단이 사마를 데리고 왔다면 저들 목적을 이해하겠다. 사마로 호발귀를 유인할 생각이지 않겠나. 물론 그럴 경우에는 자신들부터 거꾸러트려야 한다.
그런데 저들은 사마를 데려오지 않았다.
살단은 굉장히 강하지만…… 호발귀에게는 무리다. 이런 식으로 쫓아와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호발귀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지도 못하는데.
호발귀가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기만 하겠다는 것일까?
아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굳이 살단이 나설 필요가 없다. 저들보다는 십육비자를 움직이는 게 더 낫다.
‘쟤네 호발귀를 상대할 생각은 아닌 거 같은데.’
실제로 호발귀가 달려들자 부리나케 도주했다. 호발귀를 상대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자식들! 얌전히 꽁무니나 따라오지. 뭐하러 풀방개처럼 들쭉날쭉 거리는 거야!’
해자수가 못마땅한 듯 혀를 쳤다.
홀리는 살단의 의중을 알 수 없어서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살단은 결코 이유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살단은 반드시 피가 튀는 곳에만 나타난다.
저들은 호발귀에게서 어떤 피를 보기 위해 달려든 것일까?
“일단 정신 바짝 차려.”
“정신이야 늘 곤두세우고 있죠.”
“이쪽으로 계속 가면 산을 넘어가게 돼. 저들이 움직이는 방향과 겹쳐. 쟤네 정상 부근에서 뭔가 수작을 부릴 것 같은데,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두고 보자고.”
“그런데 저놈들이 정말 호발귀를 건드릴까요?”
“글쎄?”
홀리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못했다.
호발귀를 공격하면 죽는다. 하지만 뒤만 쫓자고 따라붙은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들이 저들을 발견했으니, 호발귀도 이미 저들을 찾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등여산을 쫓고 있다.
혈마라고 해도 백 장, 이백 장 높이를 훌쩍 뛰어올라서 저들을 공격할 수는 없다. 저들은 그림의 떡이다.
쒜엑! 쒜에엑!
두 사람은 호발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뒤쫓아갔다.
“어!”
등여산은 깜짝 놀랐다.
도망치는 와중에 기분이 확 나빠졌다. 한참 기분이 좋았는데, 갑자기 의욕이 뚝 떨어졌다.
호발귀 때문에 나빠진 것은 아니다. 호발귀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는 과정을 알고 있는데, 지금처럼 급격하게 나빠지진 않는다.
감정이 변하기 전에 일단 짜릿한 느낌부터 일어난다.
생기가 혈기를 접하는 순간 접전이 일어난다. 기분은 그 후에 나빠진다.
‘무슨 일이지?’
등여산은 신형을 쏘아내면서 빠르게 좌우를 훑어봤다.
느낌이 확! 와닿는 곳이 있다. 좌측 절벽 위, 사람들 모습이 어른거린다.
저들은 매우 빠르게 움직인다. 무인이다!
‘그렇다면 살단!’
자신과 홀리가 파악한 살단 무인은 네 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홀리가 처리했다.
그들이 죽어가면서 내지른 비명도 들었다.
호발귀가 비명을 듣고 방향을 바꾸기까지 했다. 홀리가 다시 호발귀를 끌어오지 않았다면 상당히 난감할 뻔했다.
홀리가 살단 무인들을 제거한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또? 그렇다면 저들은 다른 자들이다. 인원도 거의 십여 명이나 된다.
‘아뿔싸!’
등여산은 퍼뜩 어떤 생각이 치밀었다. 너무 당혹스러운 생각이어서 하마터면 걸음을 멈출 뻔했다.
걸음을 멈추면 당장 호발귀에게 뒷덜미를 차인다.
등여산은 정신 바짝 차리고 신형을 쏘아냈다.
저들이 절벽 위에서 어른거리면 호발귀의 촉수에 감지된다. 자신이 저들을 찾아냈으니, 호발귀도 이미 찾아냈다. 그리고 벌써 방향 바꿀 준비를 마쳤다.
그렇다. 지금 호발귀의 눈은 자신보다는 저들을 향하고 있다.
아직도 계속해서 자신을 쫓아오는 것은 마침 가는 길이 같아서일 뿐이다. 이쯤에서 자신이 옆으로 방향을 튼다고 해도 호발귀는 따라오지 않는다.
이미 저들이 목표다.
호발귀의 추격을 자신에게 돌릴 방법은 없다.
홀리와 해자수가 힘을 합쳐서 함께 해준다면 또 모르겠다. 그때는 이쪽도 생기 무더기가 표출되니, 호발귀의 이목이 돌려질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달리는 와중이라서 두 사람에게 연락을 취할 방도가 없다.
‘나는 과일 조각 하나에 불과하고, 저쪽은 과일 무더기야. 당연히 저쪽으로 따라가겠지.’
틀림없이 호발귀는 저들을 쫓아간다.
저들이 왜 저런 짓을 하지? 저들은 자신들이 이미 호발귀의 목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까? 자신들의 행동이 호발귀를 끌어당기는 짓이라는 걸 알까?
아마도 저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이걸 어떡하지?’
등여산은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호발귀를 막을 생각은 없다. 호발귀가 저들에게 달려가서 도륙한다고 해도 말리지 않는다.
이미 천살단을 떠난 몸이다.
그래도 몸담았던 문파라고 감언이설인 줄 모르고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제는 천살단 사람은 누구도 믿지 못한다. 천원주님과 밀운이라는 사람만 빼고.
정말 그럴까? 호발귀가 저들을 도륙해도 아무렇지 않을까?
살단은 주치균이 이끈다. 주치균은 누가 뭐라고 해도 친구다. 그리고 자신은 친구에게 상처를 안겨 주었다.
주치균이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고 따랐는지 잘 안다.
주치균을 남자로 본 적은 없다. 늘 옆에 있는 친구로 여겼다.
어떤 말도 나눌 수 있는. 그리고 친구로서 그를 매우 좋아했던 것도 사실이다.
현재, 주치균은 폐관수련 중이다.
그것 역시 호발귀에게 상처를 받고 능력 부족을 절감한 끝에 내린 선택이다.
호발귀가 주치균을 페관수련으로 몰아넣은 셈이다.
저들은 주치균의 수하다. 어떻게 해야지 되나? 호발귀가 곧바로 저쪽으로 달려갈 텐데, 저들을 도륙할 텐데…… 저들이 지금이라도 퇴각해야 하는데.
호발귀가 살단 무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면, 그때는 손쓸 방법이 전혀 없다.
아니, 지금은 벌써 늦었다. 어쩔 수 없지만, 이미 일이 벌어졌다.
‘아아! 어떻게 해. 막을 방법이 없어.’
등여산은 한숨을 토해냈다.
쒜엑!
호발귀가 방향을 틀었다.
등여산은 산정으로 가지 않고 팔부능선에서 길 없는 숲을 헤치며 옆으로 돌았다.
그런데 호발귀가 등여산을 따라오지 않았다.
쒜에엑!
호발귀가 곧장 산정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마치 먹이를 노리고 달려드는 호랑이처럼 거침없이 달려갔다.
마침 살단 무인들도 산정을 향해 달렸다.
호발귀와 저들이 만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아마도 산정 부근에서 부딪칠 것 같다.
“아!”
등여산은 탄식을 쏟아내며 걸음을 멈췄다.
호발귀가 목표를 변경하면 쫓기던 사람은 안전해진다.
이미 눈에서 놓아버렸기 때문에 어떤 짓을 해도 다시 쫓길 우려는 없다. 털썩 주저앉아도 된다.
홀리와 해자수는 호발귀의 사정권 밖에서 움직였다. 만약 그들이 사정권 안으로 들어섰다면 당장 등여산을 버리고 그들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호발귀는 인원이 많은 쪽으로 움직인다.
맹수가 먹잇감이 많은 쪽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다. 이런 행동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그저 많이 죽일 수 있는 곳으로 움직일 뿐이다.
호발귀가 목표를 완전히 변경했다. 혈겁을 일으킬 수 있는 무리를 찾아냈다. 등여산은 이미 신경도 쓰지 않는다. 홀리와 해자수가 가세해도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하악! 하악! 학!”
등여산은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쒜엑! 쒜에엑!
홀리와 해자수가 등여산 옆에 내려섰다.
“저 사람들 살단?”
등여산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물었다.
“맞아.”
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를 다 막았다며?”
“우리가 찾아낸 건 일부야. 이번에 살단이 꽤 많이 왔어. 얼핏 봤는데 거의 한 백 명쯤 온 것 같아.”
“백 명!”
등여산이 미간을 확 찡그렸다.
“백 명이면 살단 무인 전체인데.”
등여산이 중얼거렸다.
예전 살단주 오택골이 살단을 이끌 무렵, 살단 인원이 백여 명이었다. 물론 지금은 변화가 많이 일어났다.
상당히 많은 수가 왔지만, 살단 전체인지 알지 못한다.
“살단주는 오지 않은 것 같아. 못 봤어.”
“맞아요. 주치균인가 뭔가 하는 자는 코빼기도 못 봤걸랑요. 저 중에 책사님이 아는 자는 없을 겁니다요.”
해자수가 홀리 말을 이었다.
“하악! 학! 학!”
등여산은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
“우린 어떻게 하지? 오면서 많이 생각했는데, 저 혈겁 아무래도 못 막겠어.”
홀리가 말했다.
“못 막아. 백 명이 왔다고? 백 명 다 죽을 거야. 우리 봤잖아. 혈천방에서 호발귀가 어떻게 했는지.”
“어휴!”
해자수가 그때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내둘렀다.
호발귀는 혈천방 무인들을 처참하게 도륙했다. 팔당 무인들을 오육백 명이나 죽였다.
그때는 혈마가 되기도 전이다.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도 그만한 무위를 떨쳐냈다.
지금은 더 잔혹하다. 백 명이라고 했나? 저들 모두 몰살당할 것이다.
“어쨌든 백 명을 죽이면 한동안 움직이지는 않겠네. 보나 마나 하루쯤은 물만 마실걸? 우리도 좀 쉽시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쉬겠수. 죽는 사람이야 억울하겠지만.”
해자수가 신발을 벗어서 안에 든 모래를 탁탁 털어냈다.
호발귀가 산정을 향해 쏘아간다. 그런 모습을 멀거니 지켜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호발귀를 막을 방도가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