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九章 정관기변(靜觀其變) (1)
사내는 기습을 눈치챘다. 웬 놈이 자신을 향해 곧바로 날아올 때, 즉시 위험을 감지했다.
‘제길!’
쒜에엑!
그는 즉시 신형을 솟구쳤다. 하지만 곧바로 신형을 퉁겨서 제 자리로 돌아왔다.
어느새 눈앞에 못생긴 중년인이 서 있다.
머리에 꾀죄죄한 헝겊으로 질끈 묶었고, 입고 있는 옷도 걸레 조각처럼 허름하다. 얼굴은 며칠 동안 씻지 않았는지 땟국물이 자르르 흐른다.
햇볕에 타서 그을린 구릿빛 피부, 거친 얼굴.
‘이놈의 새끼가 이렇게 강했나?’
사내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면서도 어느새 검을 뽑았고, 사내를 겨눴다.
“새끼가 뒈지려고 어딜 기어와?”
“……”
사내, 해자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묵묵히 검을 들어 올려서 그를 겨눌 뿐, 말이 없다.
그러고 보니 해자수의 움직임도 이상하다.
자신을 향해서 달려올 때는 비호같았는데, 막상 검을 겨누고 마주 서자 움직이질 않는다.
해자수는 앞을 볼 수 없는지 눈까지 감았다.
‘맹인검(盲人劍)?’
그런가? 맹인검인가? 맹인검이라면 상대할 방법이 있지.
맹인검은 초감각 검이다. 공기의 흔들림으로 검초를 읽어낸다.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신발 끌리는 소리…… 모든 소리가 검초로 이어진다.
하지만 공기조차 흔들지 않고 움직이는 방법을 안다면?
스스스스!
사내는 빠르게 좌우로 움직였다.
왼쪽으로 가는 듯하다가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가는 듯하다가 왼쪽으로 움직였다.
발걸음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해자수가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게끔 유도한다. 자신을 환히 읽게 만든다.
그러던 한순간 사내는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일절 소리 내지 않는다. 조용하다 모든 움직임이 사라졌다. 폭풍처럼 일어나던 기세가 갑자기 사라지면……
세상이 적막이 찾아온 듯한 느낌이 일어난다. 평소보다 훨씬 조용해진다.
그 순간, 사내는 기름 위를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는 이미 해자수의 등 뒤로 돌아왔다. 그리고 소리 없는 검, 낭중검(囊中劍)을 쳐냈다. 은밀히 적진에 잠입해서 경계 무인을 암살할 때 사용하는 검이다.
쓰윽!
순간, 해자수의 검이 매우 현란하게 십여 번이나 터졌다. 해자수의 몸이 검화(劍花)로 변하는 듯했다.
아름다운 꽃송이, 검으로 만든 꽃송이!
꽃송이의 꽃잎들이 사내를 향해 날아왔다.
파파파팍! 바바박!
사내는 뒤로 붕 날아가 떨어졌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일순간에 사내의 몸에는 검날이 십여 번이나 틀어박혔다.
꽂히고, 뽑히고, 꽂히고 뽑히고……
눈 깜짝할 순간에 사내는 벌집이 되어버렸다.
‘빠르다!’
첫 번째 사내가 공격당했을 때, 두 번째 사내는 즉시 도주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들이친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부시독을 터트렸다.
부시독은 냄새가 매우 지독하다.
부시독이 물체에 닿아서 부패시키는 냄새는 코를 찌를 정도로 독하다.
이 냄새는 순간적으로 사라진다. 불꽃처럼 확 피어났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십여 장 안에 사람이 있다면 코를 틀어막아야 할 정도로 지독한 악취를 맡는다.
세 번째 사내는 무조건 도주했다. 부시독 냄새가 풍겨왔지만, 뒤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대체로 부시독을 터트리면 십중팔구는 성공한다. 상대방이 죽는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첫 번째 사내가 죽는 모습을 봤다. 검과 한 몸이 되어서 날아오는 광경을 봤다. 번갯불보다도 빠른 검초였다.
부시독이 성공했다고 해도 일단은 도주한다.
쒜에엑!
그는 무영신법(無影身法)을 펼쳐서 소리를 죽이며 움직였다.
흔히 도주한다고 하면 응당 뒤로 물러나는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상대방의 허를 찌른다!
안쪽으로 파고들어서 숨을 죽이고 납작 엎드린다. 귀식대법(龜息大法)을 펼쳐서 숨을 죽이고, 이혈봉맥(移穴封脈)까지 펼치면 체온까지 떨어진다.
완벽하게 죽은 사람이 된다.
스읏!
그는 땅에 납작 엎드렸다. 순간,
쓱!
그가 땅에 엎드리기 무섭게 사내 몸에 검이 닿았다.
‘웃!’
사내는 깜짝 놀라서 급히 귀식대법을 풀었다. 이혈봉맥은 미처 펼치지도 못한 상태였다.
“살단?”
여인의 음성이 차다.
“으!”
사내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신음만 흘릴 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스읏! 툭!
여인, 홀리가 검을 슬슬 움직여서 사내 몸을 건드렸다. 옷 위로 사내 몸을 수색했다. 그리고 가슴 어딘가를 건드렸을 때, 툭툭 검 끝에 딱딱한 물체가 닿았다.
“이거지?”
홀리가 물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리 없다. 부시독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사내는 맞는다고 말하지 못했다. 어떤 기운에 짓눌렸는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순간.
탁!
검 끝이 병을 쳐서 깼다.
“아아악! 아아아악!”
사내는 데굴데굴 구르면서 처절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부시독에 생살이 썩어들어갔다. 살을 썩히고, 피를 태우고, 단숨에 심장까지 뚫어버린다.
“아아아아아악!”
사내는 있는 대로 고함을 내질렀다.
“준비!”
손철목이 살단 무인에게 명령했다.
“안 됩니다!”
십이비자가 급히 만류했다.
손철목은 인상을 팍! 찡그리면서 십이비자를 쏘아봤다.
“이 정도 비명이면 호발귀 귀에도 들렸습니다. 호발귀가 방향을 틀어서 이쪽으로 달려온다는 이야기죠.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살 행위, 지금이라도 뒤로 물러서야 합니다. 호발귀와 싸울 생각이 아니라면.”
“그 말에 목숨을 걸겠나?”
손철목이 십이비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십이비자는 한 걸음 물러섰다.
“목숨을 걸 이유까지야 없죠. 전 비보전 비자 입장에서 조언을 드리는 것일 뿐, 듣고 안 듣고는 부단주님 마음이겠죠. 제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간여하겠습니까.”
“쓸데없는 놈! 목숨 걸 생각이 없으면 뒤로 물러가 있어!”
“그러면 제가 필요 없는 듯하니…… 전 이만.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전 목숨을 구하는 게 선급해서.”
쒜에엑!
십이비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뒤로 빠졌다. 아니, 전력을 다해서 뒤로 빠졌다.
손철목은 찌푸린 미간을 풀지 못했다.
비명이 두 번 터졌다. 자기 죽음을 알리는 신호다. 비명이 터진 것은 두 번이지만…… 그보다 더 많이 죽었을 것이다. 몇 명이나 당했을까?
스으으읏!
전방을 수색 나갔던 정탐꾼이 돌아왔다. 모습을 드러낸 자는 두 명뿐이다.
“넷이 당했습니다. 홀리에게 셋, 해자수에게 한 명.”
“어떤 수법에……”
“지금 호발귀가 쫓아옵니다.”
손철목이 살해수법을 물을 때, 정탐꾼은 더욱 선급한 말을 꺼냈다.
“뭐? 호발귀가?”
“네. 호발귀가 방향을 틀어서 이쪽으로 달려옵니다.”
십이비자의 판단이 맞았다.
손철목은 즉각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정탐꾼을 죽인 자들에게 복수할 것인가, 물러설 것인가. 복수는 할 수 있지만, 호발귀와 부딪친다.
‘싸움은 나중에 해도 돼!’
“후퇴한다!”
손철목이 즉시 명령을 내렸다.
살단은 홀리와 해자수를 상대할 수 있다. 그들이 아무리 강해도 죽일 자신이 있다.
하지만 호발귀는 상대하지 못한다.
호발귀가 사용하는 것은 혈기다. 태초에 인간을 만들었다는 원천적인 힘을 사용한다.
이 산에 와서 십이비자를 만났고, 그가 안내하는 대로 호발귀의 흔적을 쫓아왔다. 그러면서 호발귀가 만들어 놓은 짐승들의 사체도 살펴봤다.
호발귀는 괴물이다.
호발귀는 늑대를 죽였다. 호랑이도 가차 없이 베었다. 호랑이 같은 경우에는 열여섯 토막으로 갈라져서 죽어 있었다. 그 질기디질긴 호랑이 가죽이 단숨에 썰려나갔다.
살단이 아무리 강해도 그런 자하고는 부딪히지 못한다.
살단 무인은 호발귀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손철목은 그들보다는 냉정하다.
“십이비자가 도주한 곳이 후퇴선이다. 그곳까지 전력을 다해서 도주한다. 움직여!”
슉슉슉! 슈우우웃!
살단 무인들이 메뚜기처럼 날아올랐다.
손철목도 즉시 신형을 띄었다.
‘느닷없이 호발귀라니. 겨우 비명 좀 흘렸다고…… 첫 출전에서부터 시신만 남겨놓은 건가?’
손철목은 입맛이 썼다.
파아아아아앗!
호발귀가 홀리에게 덮쳐왔다.
홀리가 죽인 자는 아주 처절한 비명을 토해냈다. 동료들에게 죽음을 알리는 비명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막지 않았다. 저들에게 들으라고 숨통을 열어주었다.
한데 이 비명…… 여기에 홀리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 죽음이 결정된 순간, 생기는 급격하게 빠져나간다.
몸통 안에 가득 담긴 생기가 일순간에 터져나간다. 비명을 지르면 비명 속에도 섞여서 나간다.
그래서 비명을 들으면 소름이 끼치는 것이다.
비명 자체가 날카로워서 소름 끼치는 것이 아니다. 비명에 섞인 생기 소멸을 듣고, 느끼고,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몸서리치는 것이다.
이 소리, 생기 소멸이 호발귀를 자극했다.
호발귀에게는 등여산이라는 좋은 먹잇감이 있다. 그러니 다른 쪽으로 신경을 돌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등여산을 버리고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홀리는 당황하지 않았다.
호발귀에 쫓겨본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이제는 능숙하게 유인할 수 있다.
‘조금만 끌고 가면 돼. 책사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책사를 만나서 넘겨주고……’
그리고 다시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
‘이놈들 의외로 많은데?’
홀리는 메뚜기처럼 후다닥 일어나서 도주하는 자들을 봤다. 저들이 은밀함보다는 빨리 후퇴하는 쪽에 집중했기 때문에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어림짐작이지만 거의 백여 명에 이른다.
상당히 많다. 또 하나같이 무공이 높다. 품에 부시독이라는 지독한 흉물도 감추고 있다.
‘쉽지 않겠어.’
홀리는 호발귀가 쫓아오는 것보다도 천살단 무인들을 정리하는 게 더 어렵게 생각되었다.
실제로는 정반대이지만, 호발귀에게 쫓기는 것은 비교적 가벼운 일이 되어 버렸다.
“해자수! 이놈들 부시독을 가지고 있어! 하나는 내가 깨트렸고, 두 놈한테 남아 있을 거야! 다 수거해!”
홀리는 호발귀를 피해서 신형을 쏘아내며 소리쳤다.
부시독은 굉장히 쓸모가 있다. 천살단 무인들을 상대할 때나…… 어쩌면 호발귀를 상대할 때 쓰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눈으로 본 부시독의 약효라면 호발귀에게도 통하지 않을까 싶은데.
자신이 내지른 고함을 해자수가 들었을까?
그녀의 음성은 자신이 일으킨 옷자락 소리에 묻혀서 밖으로 뻗어나가지 못했다.
고함을 내지르고 있지만, 지금 그녀는 사력을 다해서 도주하는 중이다.
호발귀에게 쫓긴다는 것은 늑대 무리 천 마리에게 쫓기는 것보다 더 지독하다.
스으읏!
해자수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아주 미약한, 개미 움직임처럼 미약한 움직임이지만 분명하게 느껴졌다.
해자수가 자신의 음성을 들었다.
‘치잇! 남편한테 쫓기는 신세라니. 호발귀, 너 나중에 가만 안 둘 거야. 오늘 일, 두고두고 바가지 긁을 거야. 각오해! 평생 바가지 긁을 거니까.’
홀리는 도주하는 와중에도 호발귀를 쳐다봤다.
등여산은 즐거운 마음으로 도주한다고 한다. 기쁨을 잃어버리면 그녀의 신법도 무뎌진다. 그러니 일부로라도 호발귀와 있었던 즐거운 일을 생각한다고 한다.
등여산에게는 호발귀와의 추격전이 하나의 놀이다.
자신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자신은 좀처럼 즐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직 처절하게 도주해야만 한다.
이럴 때는 등여산이 부럽다.
쒜에에엑!
홀리는 전력을 다해서 신형을 쏘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