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八章 무생(無生) (5)
호발귀의 혈기는 날이 갈수록 강해진다.
호발귀를 유인하면서 자신들의 생기를 키울 생각이었지만, 오히려 정반대로 호발귀 혈기만 극성해지는 느낌이다. 자신들의 생기는 오히려 쇠퇴하고.
생기가 쇠퇴할 리는 없다. 그런 징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생기도 진기와 마찬가지로 사용할수록 능숙해진다.
진기처럼 손에 잡힐 듯이 명확하게 감지되는 것은 아니어도 ‘이것이 분명히 있다!’ 하는 느낌은 든다.
그런데도 호발귀와 차이가 벌어진다고 느끼는 것은, 그만큼 호발귀가 강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교대해줘야 하지 않아?”
홀리가 말했다.
“아니. 조금 더.”
“지금 상당히 벅차 보이는데……”
“아직 아냐.”
등여산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느껴져?”
“아직 기분이 가라앉지 않아. 들뜨지도 않고. 아직은 괜찮아. 위험하지 않아.”
“그래, 그럼.”
홀리는 등여산이 하는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
홀리의 생기는 지면 응집력이라서 등여산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하지 못한다. 물론 그녀도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을 일으키지만, 등여산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등여산의 감정은 순간적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반응 면에서는 제일 빠르다.
등여산의 감정이 아직 편안하다면, 희열에 들떠 있다면 해자수가 위험하지 않다. 약간 기분이 나쁘다 싶을 때 교대해주면 해자수나 교대하는 사람 양쪽 모두 넉넉해진다.
하지만 그 교대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예전에는 교대하면 두 시진은 버텼는데, 이제는 한 시진도 겨우 버틴다.
호발귀가 그만큼 강하게 쫓아오고 있다.
“저기 토끼!”
홀리가 토끼를 보고 즉시 움직였다.
옆에서 따라가는 두 사람은 산짐승들을 보면 호발귀에게 몰아주었다.
그러면 쫓기는 사람이 잠시 시간을 번다. 짐승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자신들이 살려니 어쩔 수 없다.
호발귀는 혈겁을 일으키고 나면 물을 마시면서 쉰다.
왜 그런 일을 벌이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피를 보면 물을 마시면서 쉰다.
세 사람에게는 숨을 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살상을 아예 안 저지르면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맹렬하게 쫓아오니 견디지 못한다. 차라리 짐승 피라고 보게 해줘서 피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는 쪽이 편하다.
“가만!”
홀리가 눈살을 찡그렸다.
“뒤 깨끗이 정리했다고 했지?”
등여산도 이미 기미를 알아차렸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홀리에게 물었다.
“응. 천살단 무인, 다 정리했어. 형옥주도 정리하고. 사마도 확실히 죽였는데.”
“그럼 이 사람들은 새로 붙은 거네.”
“사마도 없는데 왜 붙었을까?”
홀리가 말했다.
천살단 무인들이 따라붙은 것은 별로 놀랍지 않다. 홀리와 해자수도 등여산을 쉽게 찾아왔다.
생기를 알아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 편하게 흔적을 쫓아서 따라왔다.
호발귀가 지나온 길은 상당히 거칠다.
많은 죽음이 깔려 있어서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혀 조심하지 않고 달리기 때문에 마치 들짐승이 달린 것처럼 명확한 족적을 새겨놓는다.
추격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찾아낸다.
“어쨌든 따라붙은 자들이 있으면 정리해야지. 가.”
홀리가 등여산에 어깨를 탁! 쳤다.
“뭘 가?”
“가서 해자수와 교대하라고.”
“아직 여유 있다고 했잖아. 뒤부터 정리하고……”
등여산이 말을 이어갈 때, 홀리가 다시 등여산을 떠밀었다.
“그냥 가서 교대하라고 하면 해. 아무리 그래도 넌 천살단 사람들 치지 못해.”
“풋! 이제는 인연도 완전히 끊어졌는데 뭘. 괜찮아.”
“괜찮아? 만약에 저들을 죽이려고 했는데 아는 얼굴이면 어떡할래?”
“죽여야지.”
“계집애, 거짓말도 잘해. 너 검벽과 친했다며? 네가 딱 죽이려고 하는데, 검벽 무인인 거야. 네가 아는 사람. 그런데도 가차 없이 죽일 수 있어?”
등여산이 말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냥 가. 여긴 나와 해자수가 정리해. 다음에 음문촌을 만나면 그때는 네가 움직여줘.”
“알았어.”
등여산이 홀리를 보며 빙긋 웃었다.
홀리도 등여산과 똑같은 약점이 있다. 아무리 모질게 굴어도 음문촌 사람들과 거칠게 싸우지 못한다. 사이가 워낙 안 좋으면 죽일 수도 있지만, 속을 터놓고 지낸 형제도 있다.
홀리와 등여산은 서로 같은 약점을 공유한다.
“하! 이거 뭐야? 간신히 숨 좀 돌리나 했더니.”
“숨 돌려.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래?”
“이 정도가 아닌데 뭘요. 이놈들 꽤 쎈데?”
해자수는 돌아오자마자 미간부터 찡그렸다.
“몇 명인지 찾아냈어?”
“네 명 아닙니까. 네 명.”
“그럼 서로 둘씩 가르면 되지?”
“아휴! 아씨, 나 지금까지 죽어라 뛰어다니다가 방금 온 사람입니다. 좀 봐 쥬수. 내가 한 명, 아씨가 세 명.”
“호호! 좋아. 봐줄게.”
“아휴! 두 번만 봐주다가는 다리에 쥐 나겠네.”
해자수가 투덜거렸다.
주위에 인기척이 느껴진다. 굉장히 은밀한 기척이다.
만약 예전처럼 진기를 사용했다면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하다. 적어도 추격, 잠입 분야에 이골이 난 자다.
그나마 생기를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는 단계이기에 추격자를 알아낼 수 있었다.
“가만…… 이놈들 이거 되게 예민한데? 기척이…… 어디, 다른 걸로 해볼까?”
해자수가 진기를 일으켰다.
“안 잡히지?”
“해보셨수?”
“해봤지. 진기로는 못 잡겠더라고.”
“우리 은인문 탐지술도 꽤 예민한 편인데, 이놈들은 못 잡네요. 킥킥! 예전 같으면 못 잡았다는 거잖아. 정말 나 많이 컸다. 이젠 싸움판도 기웃거리고.”
“많이 큰 정도가 아니라 고수야. 상당한 고수.”
홀리가 생긋 웃었다.
“이놈들…… 우리가 전에 죽인 자들보다 강하네요. 신법도 빠르고 은신술도 뛰어나고. 천살단에서 이 정도 놈들이라면 검벽 아니면 살단이죠.”
“혈천방이라면?”
“뭐 볼 거 있나요? 귀무살이지.”
해자수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즉시 말했다.
“그럼 크게. 혈천방이냐, 천살단이냐?”
“천살단입죠.”
해자수가 이번에도 즉시 말했다.
“왜?”
“이놈들 묘하다고 했잖아요. 귀무살 놈들은 어려서부터 살인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아예 몸에 살기가 배어 있죠. 그런데 이놈들은 살기까지 죽였단 말이지. 본격적으로 싸우고자 달려온 놈들이 일부러 살기를 죽인다? 볼 것도 없이 천살단이죠.”
“그런가?”
“그럼요. 틀리면 제 손에 장을 지집니다.”
“알았어. 손에 장까지 지질 필요는 없어. 호호!”
쉬이이익!
홀리가 움직였다.
해자수도 즉시 움직였다.
뒤따라온 자는 겨우 네 명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홀리는 굳이 해자수와 공격할 자를 나눴다. 저들이 기묘하게 위치를 잡았기 때문이다.
저들은 거의 동서남북, 사방으로 흩어져 있다.
한 곳은 공격받을 수 있어도 네 곳을 동시에 덮칠 수는 없다. 즉, 탈출로를 마련해 놓고 쫓아온다.
하지만 두 명이 공격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한 명을 치고, 도주하는 자를 쫓아가서 공격한다. 충분히 가능하다.
해자수는 홀리에게 세 명을 맡겼다. 동쪽을 치고, 남쪽을 치고, 서쪽까지 치라고 한 셈이다. 자신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자, 북쪽만 치겠다는 거다.
그 정도야 뭐…… 가능하다.
쒜엑! 쒜에엑!
홀리와 해자수는 즉시 앞뒤로 터져 나갔다.
홀리를 본 사내가 깜짝 놀라서 신형을 튕겨냈다.
‘아! 늦었다!’
사내의 얼굴에 즉시 절망감이 드리워졌다. 홀리는 단지 추격해 온 것이 아니다. 그를 찾아낸 것이 아니다. 이미 검과 한 몸이 되어서 들이받고 있다.
파아아앗!
검이 눈앞에서 번뜩였다.
‘이럴 수가!’
홀리가 쏘아오는 것을 보고 즉시 신형을 띄웠는데…… 어떻게 잡힐 수 있나. 어떻게 이토록 빠를 수 있나.
퍼억!
검이 가슴팍을 꿰뚫었다.
“아아아아아아악!”
사내는 처절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검이 가슴을 후벼파는 아픔보다도 비명이 훨씬 처절했다.
그는 일부러 아주 거세게 고함을 내질렀다. 동료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다.
쒜에엑!
홀리는 또 다른 자를 향해 또 날아갔다.
생기로 감지하는…… 생기감지(生氣感知)는 굉장히 정확하다. 백발백중, 전혀 틀리지 않는다.
생기로 감지해서 ‘저곳에 누군가 있다!’하고 느끼면 분명히 존재한다. 누군가 따라온다는 느끼면 따라온다. 숫자도 알아맞힌다. 두 명이구나 하면 두 명이다.
그러니 보지 않아도 공격할 수 있다. 반드시 눈으로 확인한 후에 공격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생기감지로 상대방을 파악한 후에 공격하는 방법은 상대가 예상한 것보다 적어도 두 수 이상 빠르다.
쒜에엑!
홀리는 비연어검을 펼쳤다. 또 다른 사내를 향해서 몸과 검을 던졌다.
순간, 갑자기 앞에서 환한 빛이 일어났다.
좁은 협로를 벗어나기 눈앞에 드넓은 사막이 펼쳐진 것처럼, 시야가 확 트인다.
기분이 좋다. 답답한 마음이 확 뚫린다.
몸도 가벼워졌다. 지금까지도 가벼웠지만, 훨씬 더 가볍다. 몸이 종이처럼 가벼워서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위험!’
홀리는 위험을 감지했다.
그녀의 생기는 등여산의 생기와 매우 다르다. 등여산은 기분이 좋을수록 좋은 것이지만, 그녀는 정반대다. 확! 풀어주는 느낌은 위험이 커졌다는 뜻이다.
홀리는 자신이 어느 정도나 위험해졌는지 안다.
호발귀가 바로 등 뒤까지 쫓아와서 막 검을 쏟아내려고 할 때, 검에 혈기를 담아서 그녀를 끌어들이려고 할 때, 혈기에 묶여서 몸이 질질 끌려갈 때…… 그때 지금처럼 환한 느낌이 일어났다. 몸이 자유롭게 확 풀렸다.
지금 그때만큼 위험하다.
파앗!
홀리는 비연어검을 풀고 신형을 옆으로 튕겨냈다.
상대도 안 되는 자를 공격하는 중이지만, 미련 없이 공격을 포기했다. 바로 수비로 돌아섰다.
그때다. 눈앞에서 무엇인가 희끄무레한 것이 확 펴졌다.
치이익! 치직! 치이익!
희끄무레한 물체에 닿은 것들이 묘한 소리를 내면서 타들어 갔다. 하니, 썩었다.
풀, 나무, 바위, 흙까지 썩는다. 땅이 움푹 파인다.
독기가 매우 강하다. 나뭇잎이 단숨에 시커멓게 변색하는가 싶더니 이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부시독!”
홀리는 눈살을 확 찌푸렸다.
고개를 홱 돌려 목표로 한 사내를 보자,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보였다.
사내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하던 비장의 절초가 무위로 돌아가자 상당히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마냥 절망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즉시 손을 품에 찔러 넣었다.
사내의 손에는 또 다른 옥병이 들려있었다. 그 순간.
쒜엑! 파아악!
검과 하나가 된 홀리의 몸이 사내의 가슴을 들이쳤다.
검은 정확하게 목젖 밑 선기혈(璇璣穴)을 꿰뚫었다. 양쪽 가슴뼈를 이어주는 중앙 뼈를 산산이 조각냈다.
뚜둑!
혹중혈(或中穴)을 가른다. 왼쪽 가슴뼈가 갈라진다.
뚜욱!
검이 신장혈(神臧穴)을 갈랐다. 세 번째 갈비뼈가 잘렸다.
검은 옥당혈(玉堂穴)을 들이친 다음 오른쪽으로 돌아서 신장혈, 혹중혈을 거친 후 다시 선기혈로 돌아왔다.
검이 몸의 정중앙을 한 바퀴 돌았다. 살을 찢고, 뼈를 갈라내고, 장기를 토막 냈다.
“칵!”
사내는 앞선 사내처럼 최대한 비명을 크게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음성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공격이 너무 잔혹했다.
부시독에 분노한 검이 홀리의 하여금 음문촌의 처형 방식을 펼치게 만들었다.
스읏!
흘리는 쓰러지는 사내의 손에서 옥병을 낚아챘다.
옥병 안에는 검붉은 물이 찰랑거렸다.
“이놈들이 부시독까지 쓰고 있어? 천살단, 이놈들! 웃기는 놈들이잖아?”
홀리가 눈을 고양이처럼 추켜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