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八章 무생(無生) (4)
저벅! 저벅!
천살단주가 마공관으로 걸어갔다.
마공관에는 마공관주가 미리 와서 대기해 있었다. 단주가 마공관으로 향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부랴부랴 달려와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 와도 되는데.”
“아닙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천원 일은 순조롭게 돼가고?”
“죄송합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천원 일이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천원주가 자리를 완전히 물러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삼각 사전 십삼당 주인들이 복종하지 않는다. 마공관주는 자신들과 같은 직분으로 여긴다.
마공관주가 천원주의 직무만 수행할 뿐이지, 여전히 직위는 같다고 생각한다.
“천원주를 빨리 정리해줘야 하는데. 아직 천원주가 있으니 쉽지 않지?”
단주가 마공관주를 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천원주는 업무 배분을 잘했어. 그러니 비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고. 하지만 직무 배분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
“네. 알고 있습니다. 세심하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열지.”
단주가 마공관 앞에서 말했다.
형옥주가 사마를 따라간 후, 마공관을 여는 열쇠는 마공관주가 전부 소장하고 있다.
열쇠를 수문 무인이 하나, 마공관주가 하나, 형옥주가 하나씩 나눠 가지던 보안장치는 이미 무너졌다.
철컥! 철컥! 철컥!
마공관주가 열쇠 세 개를 다 집어넣었다. 그리고 열쇠 두 개를 양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하나만……”
마공관주가 단주 뒤에 시립 해 있는 검벽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검벽주가 즉시 앞으로 나와서 열쇠 하나를 잡았다.
“인제 이거 필요 없잖아? 어차피 마공관은 폐쇄된 것으로 알려졌으니까.”
“네. 바로 바꾸겠습니다. 하나, 둘, 셋!”
철컥!
마공관주와 검벽주는 셋! 에 맞춰서 열쇠를 돌렸다.
마공관 출입을 막아주던 자물쇠가 맑은소리를 울리면서 열렸다.
천살단주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마공관주와 검벽주는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천살단주가 마공관에서 무엇을 할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엿볼 수 없다. 그저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뿐이다.
저벅! 저벅! 저벅!
천살단주는 마공관을 걸었다.
서가에 무공비급들이 빼곡하게 쌓여있다. 병기대에는 한때 이름을 날렸던 병기들이 꽂혀 있다. 비급마다, 병기마다 꽤 많은 사연이 담겨있다.
천살단주는 비급이나 병기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마공관은 오백 평 땅 위에 세워졌다. 하지만 정작 서가는 백 평도 채우지 못했다.
마공관에 소장할 정도로 가공할 마공이나 패공이 흔한 게 아니다.
서가를 지나면 넓은 공간이 나온다.
천살단주는 빈터를 걸어서 반대쪽 벽까지 걸어갔다.
“이쯤 어딜 텐데……”
단주가 손으로 벽을 쓸었다.
“여기군.”
드디어 원하는 곳을 찾았다. 벽면이 약간 오돌토돌해서 손바닥으로 쓸어보아야만 느낄 수 있다.
꾸욱! 구르르릉!
천살단주는 손에 잡힌 곳을 꾹 밀었다. 그러자 벽이 옆으로 밀려나며 어두컴컴한 공간이 드러났다.
스읏!
단주는 암동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좋군.”
천살단주가 만족한 듯 웃었다.
암동 안은 너무 어두워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마공관에 켜놓은 촛불도 새로운 암동까지 밝히지는 못했다.
그 속에 한 사람이 있다.
“못 찾겠군. 완벽해. 불을 켤까?”
단주가 말했다.
“초가 떨어졌습니다.”
암동에서 잔잔한 음성이 들려왔다.
“흠! 그쪽이군. 전혀 못 찾겠어. 무령환살공(無靈幻殺功)을 어느 정도나 수련한 게냐?”
단주가 물었다.
“팔 성입니다.”
“기취소멸(氣臭消滅)이 팔 성에 가능한가?”
탁탁!
단주가 말을 하면서 부싯돌을 켰다. 벽에 꽂혀 있던 횃불에 불을 붙였다.
“횃불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어둠 속에 더 있고 싶었겠지. 후후! 괜찮다.”
단주가 음성이 들린 곳을 쳐다봤다.
얼굴에 기다란 검상이 그어져 있는 청년, 주치균이 암동 한구석에 앉아 있었다.
주치균은 석상이나 다름없다. 고요히 앉아서 운기를 하는 중인데, 마치 석불처럼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몸만 고요한 것이 아니라 눈빛도 고요하다.
“도광(刀光) 좀 보자.”
순간, 주치균이 눈을 가늘게 떴다.
파팟!
주치균의 두 눈에서 새파란 안광이 튀어나왔다.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변해서 단주를 찔러갔다.
“흠!”
단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안광이 너무 날카로워서 단주 자신도 모르게 신법을 전개해 피하려고 했다.
“좋군.”
팟!
안광이 사라졌다. 주치균의 눈빛은 언제 칼날을 토해냈냐는 듯이 평온했다.
눈빛이 평온하니 얼굴도 편안해 보인다. 너무 편안해서 얼굴에 그어진 검상까지도 매력 있게 보인다. 훤칠한 키에 피부가 하얀 미공자의 모습이다.
“모든 게 좋군. 그럼 어디 본격적으로 검을 볼까?”
천살단주가 말했다.
“상대해 주시겠습니까?”
“건방진!”
“죄송합니다. 후후!”
주치균은 입으로는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표정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 천살단주가 이런 식으로 말할 줄 알았다는 듯 편안하게 검을 끌어냈다.
스으으읏!
검이 느리게, 매우 느리게 뽑혔다.
주치균의 움직임이 너무 느려서…… 검을 뽑는 게 지루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스으읏!
주치균이 검을 썼다.
한데, 검초가 매우 느리다. 어린애도 피할 수 있겠다. 검초를 일부러 느리게 펼치는 것일까?
검은 느리게 흘러서 석벽을 그었다.
턱! 그그긋!
석벽이 검에 긁혔다. 너무 성의가 없게 그어냈기 때문에 흔적 같은 것은 남지 않았다.
주치균은 검에 단 일 푼의 힘도 얹지 않았다.
“잘하기는 했는데, 조금 더해야겠다.”
단주가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살단 일조를 호발귀에게 보냈다.”
“……?”
“네 수련이 약간 부족하긴 하다만…… 어떻게, 나가볼래?”
“호발귀 상태는 어떻습니까?”
“혈마가 되었다.”
“나가겠습니다.”
주치균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 가서 호발귀를 잡아 와. 명을 똑바로 들어. 죽이지 말고 잡아 오라고 했다.”
“알겠습니다.”
주치균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 아이 소식은 묻지 않는구나.”
“이미 호발귀의 여자입니다. 헌 여자, 가질 생각 없습니다.”
주치균이 검을 들고 일어섰다.
이백 년 전, 혈마가 무림을 피로 물들였다.
그 당시 정도 문파 무인들은 혈마에게 무더기로 쓰러졌다.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어떤 문파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소림사의 칠십이종 절예도, 무당파의 태극혜검도, 화산파의 매화검법도 모두 무너졌다. 하북팽가의 무적 도법도 쓰러졌다. 사천당문의 독술까지 막혔다.
혈마를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
황하 이북을 제패하던 북제(北帝), 황하 이남을 누비던 남황(南皇)…… 이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연수합격을 펼쳤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단 일 초에 절명했다.
무적으로 군림하던 북제남황이 손짓 한 번에 쓰러진 것이다.
혈마를 상대할 사람은 없었다. 혈마가 스스로 혈겁을 중단했기에 망정이지, 계속 진행했다면 아마도 무림은 재기불능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일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혈마가 나타났을 때, 먼저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는 없지 않나.
혈마가 혈기를 사용한다는 건 이미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혈기를 연구했다. 천살단, 혈천방은 물론이고 구대문파, 오대세가도 혈기 연구에 몰두했다.
그 당시 혈기에 관해서 연구하지 않은 문파가 없었다.
정도는 정도대로, 마도는 마도대로 연구하는 목적은 달랐지만, 모두 달려들었다.
그 세월이 장장 이백 년이 흐르다 보니, 이제는 거의 모든 문파가 연구를 접었다. 아직도 혈기에 연연하는 문파는 혈천방과 천살단, 그리고 음문촌 등 몇몇 문파뿐이다.
아니, 확실하지는 않다. 중원은 넓으니 어느 문파에서 계속 혈기를 연구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혈기는 연구 불가 영역이다.
혈마는 두 번 다시 탄생하지 않는다. 이백 년 전에 나타난 혈마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무림은 혈마가 일으킨 대혈겁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괴마 하구량이 양성한 사마는 혈마 연구의 한 부분이다. 혈천방이 만든 혈마도 혈마 연구의 한 부분이다.
혈마 연구는 한 부분으로만 진행하지 않는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이게 맞을 수도 있고, 저게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가능성이 있다 싶은 부분은 모두 건드린다. 건드려봐서 될 법하다 싶으면 깊게 파고들어 간다. 그리고 또 다른 가능성도 계속 탐구한다.
혈마 연구는 여러 방향에서 시도되고 있다.
주치균이 수련한 무령환살공도 그중 하나다.
무령환살공은 체액으로 진기를 감싼다. 완전히 진기가 단전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도록 도포한다. 외부로 발산되는 모든 기운을 막아버린다.
또한 숨도 참는다. 폐기(廢氣)다. 완벽한 폐기다.
무령환살공을 팔 성 정도 수련했다면 거의 일다경 이상 폐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주치균은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사람은 제자리에 있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천살단주처럼 전혀 기척을 찾지 못한다. 완벽하게 죽은 사람이 되어서 최후의 일 초를 노린다.
주치균은 정신이 멀쩡한 사마다.
괴마가 만든 사마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지만, 생명(生命)을 숨긴다는 생각은 일치한다. 괴마는 생명을 숨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마를 만들었고, 천살단은 무령환살공을 만들었다.
물론 이것이 끝은 아니다.
혈기는 다양한 방면에서 연구되었고, 다른 측면에서 접근한 연구가 또 있다. 실전에 쓰지 못하고 있을 뿐.
무령환살공도 사실상 실전 투입은 어렵다. 이 무공은 완벽하지 않다. 아직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 말은…… 미완성 무학을 수련하면 부작용에 시달린다는 뜻이다.
당장 눈에 드러나는 부분은 폐가 망가진다는 것이다.
무령환살공을 계속해서 수련하면 폐에 무리가 간다. 열 명 중 일곱, 여덟 명을 폐병으로 숨을 거뒀다.
나머지 두세 명은 정신 이상이 되었다.
무령환살공은 뇌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영향 때문인지도 찾아내지 못했다. 워낙 사례가 적어서…… 당연히 이 부분들은 아직 미해결 상태다.
주치균은 상당히 불안한 무공을 수련했다.
하지만 진기를 읽는 무공이나, 혈마처럼 인간의 생기를 읽는 무공에는 아주 큰 효과를 발휘한다.
감히 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천살단주는 무령환살공이 있어서 괴마의 사마를 아끼지 않았다. 괴마를 사용해서 호발귀의 사정권이 어느 정도인지, 호발귀가 무기(無氣) 상태도 파악할 수 있는지 등등 여러 가지 알 수 없던 부분을 알아냈으니 투자한 가치는 얻었다.
생각했던 대로 진기를 감추는 것, 무기는 호발귀에게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진기를 감춰도 당장 찾아낸다. 그리고 섭혼술을 사용해서 검 앞에 끌어내어 죽인다.
무기가 아니라 무생(無生), 생명을 감춰야 한다.
주치균은 마공관 밖으로 나왔다.
마공관주와 검벽주가 마공관 밖에 서 있다가 주치균이 나오는 것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폐관을 끝낸 건가?”
마공관주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말 좀 올리지? 살단주가 마공관주보다 한 직분 위인데. 다른 사람이 보면 천살단에는 위아래도 없다고 하겠어.”
주치균이 차게 말했다.
마공관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얼음장처럼 차가운 주치균의 눈빛을 대하자 마지 못한 듯 머리를 숙였다.
“연성을 축하드립니다.”
주치균 말대로 직분에 의해서…… 말을 높인다. 하지만 마공관주의 속마음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옛날 살단주 오택골은 천살단주조차도 무시했다.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런 영향이 주치균에게도 미치는 건가? 어떻게 살단주만 되면 이놈이나 저놈이나 싹수도 없어지는지.
‘빨리 천원주가 돼야지. 애송이 놈이!’
마공관주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