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八章 무생(無生) (3)
쒜엑! 쒜에엑!
손철목은 빠르게 움직였다.
손철목의 일조와 장향동의 이조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매우 친한 동료였지만, 지금은 서로 말을 나누지 않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서로 간에 관계가 틀어진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살단 부단주이며, 언제든 힘을 합쳐야 할 사이다. 또 관계가 틀어질 일도 없었다.
두 사람은 오직 살단을 강하게 만드는데 온 정신을 쏟았다.
살단을 다시 정비하는데 미쳐서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갔다.
강하다는 무인이 있으면 천 리를 마다하지 않고 가서 데려왔다.
약한 자, 태만한 자는 내쳤다. 칼을 맞아 죽어도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자들만 곁에 두었다.
이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라면 마공관 마서도 거침없이 꺼내서 썼다.
물론 나중에 후환이 되지 않을 무공을 선별했지만, 그래도 사납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서로 말도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두 사람은 이런 상황이 살단주가 폐관을 끝낸 후에야 풀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손철목과 장향동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살단을 만들어냈다.
예전에는 살단이라는 큰 조직을 부단주 두 명이 나눠 갖는 형태였다. 부단주 밑에 조장을 두고, 조장들이 마음껏 수하를 거둘 수 있게 만들었다.
조장들끼리 경쟁을 시켜서 강한 조와 약한 조가 드러나게 했다. 그러다 보면 약한 조는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강한 조만 살아남을 것이다.
살단도 강자존(强者存)이 지배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그런 형태의 살단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강한 조가 무너지면 약한 조는 싸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후로 조장이라는 직위를 없애버렸다.
모든 살단 무인은 같은 직위다. 선배도 없고, 후배도 없다. 위아래 구분은 있다. 부단주가 있고, 단주가 있다. 그 외에는 모두 같은 칼이다.
물론 일조와 이조의 살단은 완전히 다르다.
손철목도 장향동의 살단이 어떤 구조인지 알지 못한다. 어떤 자들을 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새끼를 키우기도 바쁜데, 그쪽을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나.
손철목은 일조를 자신의 특성에 맞게 만들었다.
만약 자신이 죽으면 다른 자가 와서 일조를 이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살단 일조 무인들은 이미 한 몸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으니까.
살단주 주치균이 직접 이끈다면 모를까…… 다른 자는 일조를 움직이지 못한다.
일조 무인들은 오직 손철목에게만 충성한다.
옛날 오택골이 이런 식으로 살단을 키웠다. 손철목은 오택골의 살단 구조에 강한 무공, 살기 짙은 근성을 더 보탰다. 한 마디로 오직 자기 말만 듣는 악귀로 만들어놨다.
오택골은 자신이 강했다. 수하들은 강할 필요가 없었다. 강한 자 곁에 강한 자들이 모여들었지만, 수하들의 무공 향상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손철목은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안다.
귀무살 귀무령 귀검과 검을 맞대면 일 초에 나가떨어진다. 워낙 무공 차이가 현저하게 벌어진다.
그래서 수하가 강할 필요가 있다. 오택골이나 귀검처럼 특출나게 빼어나지 못하다면 살단 전체가 강하면 된다. 무리로 개인을 이기면 되는 것이다.
현재, 살단 일조는 고열로 제련된 무쇠보다도 단단하다.
“저기가 화전민촌입니다.”
앞을 정탐하고 온 수색조가 말했다.
손철목은 앞을 더듬을 수 있는 촉수 여섯 명을 길러냈다.
원래는 스무 명쯤 만들어 놓을 생각이었는데, 조금이라도 마뜩잖은 자들은 모두 제하다 보니 여섯 명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도 수색, 정탐을 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여섯 명은 손철목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움직인다. 모두 사라져서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다. 각기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정탐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면 즉시 움직인다.
손철목은 이들의 능력을 충분히 믿는다.
“사마가 호발귀를 마지막으로 유인한 곳입니다.”
“그런가?”
“마을은 초토화되었습니다.”
“시신은?”
“남아있습니다.”
“가자.”
손철목이 말했다.
쉬이이잇! 쉬잇!
정탐자가 먼저 움직이고, 손철목이 뒤따라서 신형을 쏘아냈다. 그리고 손철목이 양성한 살단 일조 일흔여섯 명이 일제히 신형을 날려서 뒤따랐다.
살단 일조 일흔여섯 명, 정탐조까지 여든두 명.
정예 중의 정예이며, 충성심으로 똘똘 뭉쳐진 자들!
각기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구명절초 한 가지씩은 가진 자들!
손철목은 자신한다. 이들을 데리고 중원을 활보하면 어떤 문파도 멸절시킬 수 있다고. 오택골이 살단을 이끌고 다닐 때처럼 자신의 살단도 단단하다고.
스스스! 스스슷!
그들은 곧 호발귀가 휩쓸리고 간 살육 현장에 도착했다.
“킥! 이거 봐라?”
“이거 재미있는 칼인데?”
“여기 봐. 여기. 살이 익었지? 하! 엄청나게 빠르네.”
살단 무인들이 죽은 노인의 시신을 자세히 분석했다.
노인의 시신은 엄청난 살검을 보여준다. 검이 워낙 빠르게 살을 파고들었다가 빠져나갔다.
쇠붙이가 너무 빠르게 움직여서 공기 마찰을 일으켰다.
살을 찢으면서 피부에 화상을 입혔다.
이러한 검흔은 매우 미미해서 검흔만 전문적으로 다룬 사람이 아니면 찾아내기 힘들다.
살단 무인 중에는 검흔만 연구한 전문가가 있다.
그들은 호발귀의 검초가 얼마나 빠른지 알아냈다. 살단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하지만 주눅 들지는 않는다. 아무리 빨라도 개인은 조직을 이기지 못한다.
쒜에엑! 쒜엑!
살단 무인 중 몇 명이 튀어나와서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신을 살폈다.
손철목은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화전민 촌으로 들어서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서 주위만 돌아봤다.
“다 봤습니다.”
마을을 돌아다닌 자는 모두 네 명이다. 그들이 함께 돌아왔다.
“호발귀를 만나면 모두 피해야 합니다. 우리 상대가 아닙니다. 저희 생각으로는 단주님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 좌우지간 그 정도로 강한 자입니다.”
“다른 점은?”
“섭혼공(攝魂功)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섭혼공?”
“그 부분은 자세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극렬히 저항하면서도 죽임을 당했다? 그런 징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정확히 어떤 현상인지는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손철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네 명은 시신을 살피는데 전문가다. 사건 현장을 보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거의 비슷하게 알아낸다.
손철목이 명령했다.
“흔적을 지운다.”
“네!”
살단 무인이 힘차게 대답했다.
이들은 반문하는 법이 없다. ‘어떻게?’라고 묻지 않는다. ‘왜?’라고 묻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지 않는다.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이행한다.
살단 무인 십여 명이 마을을 뒤져서 삽이며 곡괭이 같은 농기구를 찾아왔다.
그들은 토질이 푸석한 밭으로 가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나머지 사람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시신을 수습해왔다. 그리고 모두 한 구덩이에 묻었다.
“완전 소각.”
“네!”
살단 무인은 넓은 구덩이에 마른 나무를 던져 놓고 기름을 고루 뿌렸다.
화아악!
구덩이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불기둥은 쇠도 녹일 정도로 강렬하게 타올랐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길어봤자 반 시진이다. 반 시진 정도만 지나면 구덩이 안에 던져진 시신은 한 줌 재가 되어 버린다.
살단 무인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살육 현장을 지웠다.
물을 길어서 핏자국을 씻었다. 검을 맞은 곳은 더 뭉개서 무엇에 부서졌는지 모를 정도로 망가뜨렸다.
살단은 산 전체를 태워버리는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화전민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정도로 감쪽같이 흔적을 지워버린다.
누군가가 이곳을 들리는 사람이 있다면 화전민들이 살다가 떠난 것으로 여길 것이다.
구덩이에서 불길이 잦아들었다.
살단 무인은 흙으로 구덩이를 메웠다. 그리고 그 위에 거름까지 뿌렸다.
시신이 불탄 흔적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끝냈습니다.”
살단 무인이 보고했다.
“휘이이익!”
손철목은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사방으로 흩어졌던 촉수 여섯 명 중 한 명이 신형을 날려 다가왔다.
“길을 찾았습니다. 이쪽입니다.”
정탐자는 한 치도 망설임 없이 손철목을 안내했다.
“가자!”
그들은 다시 신형을 쏘아냈다.
살단은 죽어 있는 천살단 무인들을 찾아냈다.
“비보전 무인입니다.”
손철목은 죽은 자들을 쳐다봤다.
추격과 은폐에 특출난 자들로, 호발귀의 흔적을 제거하기 위해서 투입되었다.
하지만 모두 죽어 있다.
“이자들은 호발귀에게 당한 게 아닌데요? 검이 다릅니다. 신법보다는 검이 빠른…… 손목을 잘 쓰는 검초인 것 같습니다. 순간적인 변초에 굉장히 능해요.”
비보전 무인을 살펴본 결과다.
손철목을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살단 무인들이 죽은 자들의 몸을 수색했다. 천살단 표식이 있는 물건들을 거둬내기 위해서다.
원래 천살단 무인을 외유할 때, 천살단 표식을 지니지 않는다. 하지만 간혹 정신 나간 무인들이 있다. 천살단 문양이 찍힌 병기나 서신 등을 들고 나갈 때가 있다.
비보전 무인 중에는 그런 자가 없었다.
살단 무인이 시신에서 손을 털고 일어섰다.
“깨끗합니다.”
무인은 일반인과는 시신 처리 방법이 다르다. 무인은 묻어 줄 필요가 없다. 무인의 숙명은 싸움이다. 그러니 어디서 어떤 형태로 죽든 이상하지 않다.
“근처에 형옥주가 있을 텐데?”
“저쪽에 있습니다.”
살단은 훈련이 잘되어 있다. 한마디만 하면 열 가지 행동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쉬이이잇!
손철목은 무인의 안내를 받아서 형옥주에게 다가갔다.
“형옥주를 벤 검은 제삼의 검입니다. 아마도 등여산, 홀리, 해자수 중 두 명이 일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어떤 검에 죽었나?”
손철목이 형옥주의 시신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검, 상당히 묘합니다. 특이한 검이 아닙니다. 정교한 검도 아니고. 글쎄 뭐라고 할까? 보통? 그냥 별로 빠르지 않은 검에 푹 찔린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이해가 안 되지만, 그런 검에 당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법명(法名)은?”
“전혀.”
형옥주를 살펴본 자가 고개를 저었다.
검흔을 추격하는 네 명은 무공에 대한 안목이 상당히 깊다.
검흔만 보고도 어떤 검법에 당했는지 알아낸다. 한데 지금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
검법 명칭을 알아내기는 고사하고 정종 무공인지, 마공인지도 구분하지 못한다.
“이건 검초가 아니라…… 그냥 검을 푹 찌른 것 같은데. 살도 평범하게 갈랐고. 비보전 무인을 죽인 자와 형옥주를 죽인 자는 분명히 다릅니다. 하지만 검성(劍性)이 같습니다. 같은 류(類)의 검법일 겁니다.”
“지워.”
손철목이 눈살을 좁히면서 명했다.
그러자 보고하던 무인 중 두 명이 형옥주에게 가서 옥병에 든 물을 부었다.
치이이익!
형옥주의 시신은 물에 닿자마자 금방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얼굴이 썩어서 뼈가 드러났다.
가슴도 썩고 심장도 썩었다. 드러난 뼈도 시커멓다.
형옥주의 시신은 무서운 속도로 썩어들어갔다.
“가자!”
손철목이 말했다.
형옥주의 시신은 완전히 썩어서 곧 뼈만 남을 것이다.
부시독(腐屍毒)이 시신 한 구를 썩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일다경이다. 일다경 정도만 지나면 시커먼 뼈만 남는다. 부시독의 독 기운이 뼈까지 썩혀서 아주 흉측스러운 유골만 남게 된다. 물론, 유골 주인이 누군지 알 길은 전혀 없다.
손철목은 사마의 시신도 찾아냈다.
사마에 대해서는 천살단을 나오기 전에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사마가 어떻게 만들어졌다는 얘기는 듣지 않았다. 사마 두 명이 죽어 있을 테니 흔적을 지우라는 말만 들었다.
이들이다.
치치칙! 치이이익!
사마 두 명의 몸에 부시독이 부어졌다.
부시독은 시신을 썩일 때도 쓰지만, 암기로도 활용한다.
옥병에 든 액체가 살에 닿기만 하면 즉시 부패 작용을 일으킨다. 썩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 대책을 세울 수가 없다. 무조건 당하면 끝난다.
더욱이 부시독은 물이다. 물방울이 한 방울이라도 살에 닿으면 끝나는 것이다.
부시독은 굉장한 암기가 될 수 있다.
손철목은 부시독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약전주가 치를 떨 정도로 강렬한 부시독을 만들어냈고, 그것으로 이주 살단 일조를 무장시켰다.
이들, 살단 무인들은 품에 부시독 한두 병씩은 다들 가지고 있다.
“가자!”
쒜에에엑! 쉐엑!
그들은 일제히 신형을 쏘아냈다.
호발귀를 쫓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