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八章 무생(無生) (2)
참응은 비보전에도 딱 두 마리밖에 없다.
원래는 네 마리였는데, 두 마리는 주인이 죽는 바람에 조정자를 잃어버렸다.
주인 없는 참응은 그야말로 끈 떨어진 연이다.
주인이 죽으면 방생을 해주는데, 끈을 풀어줘도 비보전 주위를 맴돌면서 떠나지 않는다.
지금도 참응 두 마리는 비보전을 맴돈다.
참응은 그토록 충성심이 강하다. 주인이 죽으면 시신 곁을 떠나지 않는다. 죽는 순간까지 주인이 죽은 자리가 평생 삶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그런 참응이 갑자기 미쳐서 날뛴다.
아니, 호발귀가 참응을 공격했다. 화살을 쏘아도 닿지 않을 거리에서 추격하고 있었는데…… 그런 참응을 지상으로 끌어내려서 격살하려고 한다.
십이비자는 참응이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손을 쓰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조종술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호발귀가 공격하자 참응은 살기 위해서 발버둥 쳤다. 필사적으로 날갯짓을 했다. 이러한 발악 속에서 참응을 옥죄던 모든 끈이 단숨에 끊어졌다.
참응은 호발귀의 공격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십이비자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토록 충성심 깊은 놈이 어찌나 놀랐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훨훨 날아갔다.
삐이! 삐익! 삐이이이!
십이비자는 진기를 가득 끌어내서 참응을 불렀다.
돌아오지 않는다. 참응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안다. 저건 필사적이다. 오직 호발귀 손에서 벗어나는 것만 생각한다는 듯 죽을힘을 다해서 날아간다.
‘틀렸어.’
십이비자는 참응을 포기했다. 그리고 즉시 몸을 숨겼다. 참응이 공격당했다면 자신도 무사하지 못한다.
십이비자는 본단 무인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해자수가 놀라운 무공으로 본단 무인들을 죽였다.
해자수의 무공은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닌데,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강해졌다. 지금 같아서는 검벽이나 살단 무인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뿐만이 아니다. 홀리는 형옥주를 간단하게 제쳤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홀리는 형옥주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형옥주가 놀라운 무공을 선보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패공(覇功)이 불쑥 튀어나왔다.
십이비자는 형옥주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모든 광경을 다 지켜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엇에 정신이 팔렸는지 등여산이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등여산은 참응이 날아가자 참응 뒤에 비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 십이비자의 존재를 아예 무시했다. 아니면 아예 신경 쓸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거나.
그 덕분에 십이비자는 모든 사실을 차분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일기를 쓰듯이 비보전에 전서를 보냈다. 혈마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보고했다.
비보전의 회답은 ‘계속 주시’다.
이 명령은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본단 무인이 모두 죽었다. 조금 있으면 사마까지도 위태로울 것 같다. 지금 당장 어떤 조처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계속 주시’ 명령이 떨어졌으니 지켜본다.
물론 지켜본다고 해서 두 눈으로 직접 관찰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로 가깝게 다가서면 자신도 위태로워진다.
지금 저들은…… 호발귀뿐만이 아니라 다른 자들도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옆에서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당장 알아챈다.
십이비자는 두 눈으로 지켜볼 생각을 포기했다.
눈으로 볼 정도로 가까이 다가서면 반드시 발각된다. 그래서 멀찍이 뒤따라가면서 주변 상황을 보고 사태를 추론한다. 땅에 널린 주검들을 보면서 진행 상황을 짐작한다.
십이비자는 사마의 죽음도 확인했다.
죽은 자들이 사마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사마는 형옥주가 독단적으로 관리했기 때문에 호발귀는 사마와 접촉하지 못했다. 하다못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산에 낯선 자 두 명이 죽어있다.
두 명 다 처참한 몰골이다. 한 명은 검의 난자 당했고, 또 한 명은 돌멩이에 얼굴이 뭉개졌다.
‘이놈들 어떻게 이렇게 무공이 강해진 거지? 이해할 수 없네?’
십이비자는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홀리와 해자수 그리고 등여산의 무공은 확실히 강해졌다. 형옥주마저 피살당할 정도라면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바싹 따라붙기가 겁난다.
십이비자는 사마가 죽은 후의 일도 꼼꼼하게 보고했다.
등여산, 홀리, 해자수가 호발귀를 끌고 간다. 예전에 사마가 했던 일을 그들이 한다.
등여산 일행이 호발귀를 유인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들이 남긴 발자취를 보고서야 알았다.
십이비자는 의문이 생겼다.
‘대체 저놈들 목적이 뭐지? 호발귀를 상대하려고 하나?’
하지만 십이비자는 곧 의문을 지워버렸다.
비자는 판단하면 안 된다. 오직 목표에 집중만 하면 된다. 두 눈으로 보고 들은 사실만 전하면 된다.
사실, 이것이 비자 임무의 시작이자 끝이다.
십이비자는 본단에 전서를 보냈다.
* * *
비보전주는 인상을 찡그렸다.
‘사마까지!’
전서는 이틀 차이로 날아든다.
호발귀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은 천살단 주위를 맴돌고 있다.
사마가 죽었다면 이제 저들이 어디로 갈지 전혀 알지 못한다. 형옥주가 길을 인도했어야 하는데…… 사마가 죽었으니 예정된 길로 끌고 갈 수 없다.
비보전주는 즉각 추격 계획을 세웠다.
비보전 십육비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 고…… 세작전 세작들도 활용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재각 음자들도 써야 한다. 천살단 모든 인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까지……’
비보전주는 손을 떼기로 작심했다.
더는 십육비자를 쓰지 않는다. 비보전은 천살단 조직 중 하나이니 당연히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더 손대면 곤란해진다.
십육비자가 위험하다.
비보전주는 전서에서 피바람을 읽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 사건에 가담한 모든 사람이 죽었다. 호발귀와 엮이면 모두 죽는다. 그토록 총명하던 살단주조차도 폐인이 되기 직전이다.
천살단주의 특혜를 입고 폐관 수련 중이지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예측하기 곤란하다.
어쨌든 살단주 주치균은 상처를 많이 입었다.
‘참응까지 공격한다. 그러면 대책이 없어. 우리 애들은 여기서 멈춘다. 더는 안 돼.’
비보전주는 전서를 들고 일어섰다.
천살단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거렸다.
팔짱을 끼고, 한 손으로 턱을 만지면서 벽 끝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되돌아 걸었다.
단주가 잠시 멈춰서서 창밖을 쳐다봤다. 그러다가는 또 걸었다.
비보전주는 묵묵히 단주의 하명을 기다렸다.
‘이런 일은 천원주님이 막아주셨을 때가 좋았는데.’
비보전주는 천원주를 떠올렸다.
천원주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굳이 자신이 직접 단주를 뵙고 보고할 필요가 없었다.
말 한마디도 건네기 어려운 천살단주보다는 늘 상냥하고 부드럽던 천원주에게 말하는 편이 훨씬 좋았다. 천원주와 마주 앉았다면 즐겁게 담소를 나눴을 것이다.
또 천원주는 각 당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당주들이 하는 말을 기탄없이 받아들였다.
당주들이 욕심껏 말을 해도 어떤 말이든 다 이해했다. 결코 오해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천원주는 설명을 다 들은 후, 밀어붙일 부분은 설득하고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주었다. 명령으로 하달해도 되지만, 언제나 이해와 설득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단주에게는 속마음을 기탄없이 말하기가 껄끄럽다. 자칫하면 직무 태만이 된다.
자기가 맡은 조직만 위할 뿐, 천살단 전체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자라고 오해받기 딱 좋다.
“비보전에서는 더 나서기 어렵다고?”
“호발귀를 따라붙을 사람이…… 없습니다.”
“안내를 해줄 사람도 없나?”
“안내는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십이비자가 부지런히 쫓고 있으니 충분히 길 안내를 해줄 겁니다.”
“그래. 그럼 살단을 보내지.”
천살단주가 너무 쉽게 말했다.
“네? 지금 살단주는 폐관 중이 아닌지?”
“폐관 중이지. 하지만 단주가 없다고 살단까지 움직이지 말란 법은 없잖아? 그래서 부단주가 있는 것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일은 살단이 제일 적합해.”
“네.”
“살단을 보낼 테니까 십이비자에게 협조 잘하라고 전하고.”
“네. 알겠습니다.”
비보전주가 기쁜 마음으로 대답했다.
천살단주는 비보전 인원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뜸 살단을 지명하는 것으로 봐서는 이쯤에서 살단을 투입할 것을 생각해왔던 듯하다.
비보전주는 준비해 온 지도를 내놨다.
“현재 십이비자가 위치한 곳을 그려왔습니다. 이게 이틀 전이니…… 지도에 적힌 곳을 찾아간다고 해도 십이비자가 남긴 밀마를 쫓아가야 할 겁니다.”
“후후! 살단에게 그런 게 필요할까?”
“네?”
비보전주가 언뜻 단주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되물었다.
“그런 게 있어야만 호발귀를 쫓을 수 있다고 하면 천살단 살단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해서 말이지.”
“아, 네.”
비보전주는 꺼냈던 지도를 다시 집어넣었다.
지도가 있으면 확실히 편하다. 십이비자가 있는 곳까지 단숨에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단주는 살단의 능력을 보고 싶어 한다.
아무것도 주어이지 않은 상태에서 호발귀를 찾으라고 했을 때, 그들이 찾을 수 있는지 보고 싶은 것이다.
옛날 살단이라면 충분히 찾아냈다.
미도회랑 오택골은 살단을 정말 강하게 이끌었다. 그가 살단주였을 때는 이런 일쯤은 눈 감고도 해냈다.
살단은 그야말로 천살단에 유일한 창이요 칼이었다.
오택골이 죽고 검벽주 주치균이 살단을 맡으면서, 살단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살단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주치균은 살단주가 되기에는 약하다는 게 중론이었는데, 모두의 우려대로 살단이 무너졌다.
이쪽에서 무너지고, 저쪽에서 무너지고…… 그토록 기세 좋던 살단에서 죽는 자들이 속출했다.
오택골의 살단은 성난 맹수처럼 날뛰었다. 하지만 주치균의 살단은 썩은 짚단보다도 약하다.
살단은 현재 재정비 중이다.
주치균은 폐관 수련에 들어갔고, 살단은 부단주의 책임하에 다시 가다듬어지고 있다.
살단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비보전주도 살단의 움직임은 전혀 알지 못한다. 살단은 비보전조차도 ‘조사 불가’ 대상이다. 그래서 궁금하기는 하지만 엿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
“볼일 끝났으면 나가봐.”
천살단주가 말했다.
비보전주는 단주의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그제야 피부를 맴돌던 싸늘한 검기, 차디찬 살기가 사라졌다.
확실히 천살단은 변했다.
옛날 검벽 무인은 천살단 식구에게 검기를 쏘아내지 않았다. 예전에도 검벽 임무는 단주를 호위하는 것이었지만, 천살단 무인들까지 경계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모두 다 경계한다.
검벽이 천살단 무인조차도 믿지 않는다.
“휴우!”
비보전주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등여산이 책사로 있고, 주치균이 검벽주였을 때…… 두 남녀가 깔깔대고 웃을 때…… 모두가 태평성대처럼 조용한 가운데 차분히 일을 진행할 때…… 그때가 좋았다.
‘혈마록이 나타나기 전인가? 후후!’
혈마록이 나타난 후부터 천살단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쩌랴. 혈마록은 그만한 무게를 지닌 것을.
“살단에게 움직이라고 해.”
“네.”
검벽주 임명강이 대답했다.
“둘 다 보낼 필요는 없잖아? 하나만 보내지. 어느 쪽이 좋을까? 왼쪽, 오른쪽?”
임명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나?”
“전 단주님 명령만 받듭니다.”
“사람 참 고지식하기는. 오른쪽을 보내지. 오른쪽 보고 가라고 해.”
“네.”
검벽주가 대답했다.
살단주 주치균은 살단을 두 개로 쪼개놓았다. 폐관 수련에 들어가기 전, 부단주 두 명에게 각기 자신만의 살단을 소신껏 꾸미라고 명령했다.
오택골이 살단을 한 손에 휘어잡고 거침없이 중원을 질타했다면, 주치균은 부단주 두 명을 곁에 세우고 질주한다. 양손에 부단주라는 검을 쥐고 있다.
오른손에는 손철목, 왼손에는 장향동을 쥐었다. 부단주 두 명을 휘두르면 살단 두 개가 움직인다.
물론 지금까지는 오택골의 살단이 더 막강했다.
부단주가 이끄는 살단은 무공, 기질, 전투 경험 등등 모든 면에서 예전 살단에 미치지 못했다.
살단이 다시 조직을 정비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나 완성되었을까? 필요한 시기에 힘을 쓰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없는 것만 못한데, 지금은 어떨까?
살단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천살단 모든 무인이 궁금해하는 사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