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七章 사마사(死魔死) (4)
호발귀가 움직이면 사마도 움직인다. 호발귀가 등여산을 쫓아가면, 사마는 즉시 호발귀를 뒤따른다.
이것이 등여산의 계산이다.
홀리는 등여산의 계산이 틀릴 리 없다고 생각한다. 사마는 바로 움직였다. 하지만 전혀 기척을 감지해내지 못하겠다. 움직인 것 같지도 않다.
‘사마, 이놈들. 도대체 어떤 신법을 쓰는 거야? 기척을 잡아내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 쯧!’
홀리는 혀를 차면서 검을 뽑았다.
홀리는 강자와의 싸움에 능하다. 어려서부터 정말 강하다는 자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왔다. 아니, 음문촌 형제들은 어떤 고수보다도 뛰어나다.
사마도 그런 자 중 하나일 뿐이다.
‘너희 잡을 수 있어!’
그녀는 즉시 왼발에 힘을 주어서 땅을 비볐다.
땅에서 올라오는 생기를 감지하는 예비 동작이다. 이런 동작을 한 후에 생기를 감지했다. 그래서 이제는 발을 땅에 비비기만 하면 즉시 생기가 일어난다.
물론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생기는 느껴진다. 하지만 진기를 운기할 때처럼, 일정한 순서를 만들어두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녀만의 절차를 만들었다.
발을 땅에 비비면, 전신 모든 신경, 의식이 땅으로 집중된다.
주변에서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그녀는 오로지 지면에서 올라오는 생기에만 집중한다.
땅에서 올라온 응집력이 두 발을 끌어당긴다. 두 발이 고정되어 움직이지 못한다. 땅이 발을 놓아줄 때까지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망부석이 되었다.
이제는 조용히 기다린다.
호발귀처럼 그녀도 사마가 자신의 사정권 안에 들어서기를 차분하게 기다렸다.
그녀의 응집력은 다른 사람들의 생기와 다른 점이 있다. 아니, 궁극적으로는 같은 점인가?
그녀의 응집력은 오직 내면으로 향한다. 외부로 발산하는 기운이 아니다. 내면에서 응집되고, 소멸한다.
생기가 몸 안에서 휘돌아도 몸 밖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생기는 오직 땅과 그녀만의 관계다.
지면 응집력은 밖으로 퍼지지 않는다. 살기가 느껴진다거나, 검기가 엿보인다는 등 무인이 말하는 모든 기운이 소멸한다.
외인이 그녀의 기운을 알아채기는 지극히 어렵다.
스스슷!
사정권 안에 사마가 들어섰다.
사정권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서는 것을 감지했지만, 반드시 사마가 들어섰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산속을 어슬렁거리는 들짐승이 들어섰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처럼 홀리의 생기도 사람과 짐승의 생기를 구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홀리는 이번에 자신의 기운을 건드린 사람이 사마라고 확신한다.
‘사마!’
확신이 아니다. 툭! 하고 무엇인가가 사정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즉시 사마를 떠올렸다.
사마는 생기를 감지한다.
호발귀를 감지하는 것은 호발귀라는 사람을 감자하는 것이 아니라 호발귀 몸속에 흐르는 혈기를 감지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나 등여산, 해자수의 생기도 느낀다.
여기서 하나 더…… 생기는 무인과 범인과 들짐승, 날짐승을 구분하지 않는다. 모두 똑같은 생기로 받아들인다. 숨을 쉬는 동물이라면 모두 생기를 토해내니까.
하지만 만약 호발귀나 등여산, 해자수 그리고 사마가 사정권을 침입하면 즉시 알아챈다.
‘아! 누가 왔구나!’
이들이 풍기는 생기는 독특하다. 각기 다른 맛, 다른 냄새, 다른 느낌을 풍긴다.
생기가 각기 다르다.
그러니 그들이 다가섰다면 그 누구보다도 더 빨리 알아챈다.
지금, 그녀의 사정권을 건드리는 기운은 아주 이상하다. 이것은 살아있는 사람이 뿜어내는 생기가 아니다. 죽은 사람이 흘리는 사기(死氣)다. 사마가 사기를 흘린다.
사마는 인간이 내뿜는 온기를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숨 쉬고, 피가 흐르고, 장기가 움직이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열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 온기는 즉각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 냄새를 실어 나르기도 한다.
감각이 예민한 사람은 누가 등 뒤로 다가서면 당장 알아챈다. 뒷머리에 눈이 없어도 안다. 타인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감각이 활짝 열려있다면 당연히 알아챈다.
생기를 감지하는 사람은 타인과 감응하는 범위가 매우 넓다.
‘잡았어!’
땅이 오른쪽 다리를 풀었다. 반대로 말하면 오른쪽에 있는 사마를 잡았다.
달려가도 된다. 사마를 공격해도 충분한 범위다.
이것도 반대로 말하면 지금 당장 사마 공격을 받아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는 거다.
공격할 수 있으면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홀리는 기다렸다. 충분히 쳐나갈 수 있는데도 기다렸다. 사마에게 선수를 양보한다.
다른 사람에게 홀리는 매우 진기가 약한 무인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홀리의 생기는 안으로 갈무리되기 때문에 밖으로 뻗어나갈 진기마저 안으로 응축시킨다. 그러니 외부에서 느끼는 진기는 매우 미약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검을 들고 있으니 무인이라고 봐줄 정도다.
이제 갓 무공을 배운 풋내기가 뭘 상대하겠다고 검을 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공도 형편없다.
이건 톡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가겠는데?
어떤 무인도 그 이상의 생각하기가 힘들다. 정말 풋내기처럼 보인다.
홀리는 그 점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다.
‘와! 기다리고 있잖아!’
홀리는 처분하게 기다렸다.
스슷! 스스슷!
사마가 양쪽으로 갈라섰다. 하지만 공격해 오지는 않았다. 서로 위치만 잡고 차분히 견제한다.
그들은 홀리가 강자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일반 무인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 세세히 읽어냈다.
‘이것들, 확실히 영물이네.’
홀리는 사마를 인간으로 대하고 싶지 않았다. 이들이 풍기는 기운도 죽은 사람만이 풍기는 사기다. 살아있는 사람이 어떻게 죽은 기운을 풍기는지 모르겠으나…… 요물들이다.
‘너희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는 수밖에.’
홀리는 자유롭게 풀린 오른발을 살살 움직였다.
땅이 오른발을 풀어주었다고 해서 단순히 오른쪽에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오른쪽에서도 동북쪽인지, 동남쪽인지, 아니면 정확히 정동(正東)인지 방향을 명확히 잡아야 한다.
오른발은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리고 왼발에 힘을 싣고 오른발을 옆으로 움직였다.
북북동, 북동, 정동, 동남…… 동남쪽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다. 갑자기 다리에 마비가 일어난 듯 힘이 탁 풀렸다.
사마는 동남쪽에 있다.
사마는 또 한 명이 있다. 그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자까지 찾지는 않았다.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가 위험 범위, 사정권 안에 들어서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생기는 오직 한 명만 탐지하고 있다.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자는 한 명뿐이다.
생기는 나머지 한 명도 곧 찾아낼 것이다.
틀림없이 동남에 있는 사마를 공격하는 중에 느껴질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자까지 의식할 겨를이 없다.
지금 그녀는 사마 한 명만 상대하는 것도 벅차다.
그녀는 오른발을 슬쩍 들어서 땅을 힘차게 내디뎠다. 순간,
파아아앙!
그녀의 신형이 용수철에 퉁겨진 화살처럼 동남쪽을 향해 쏘아져 갔다. 왼발을 잡아주고 있던 지면 응집력이 강력한 반탄력이 되어서 그녀를 퉁겨냈다.
쫙!
그녀는 두 손으로 검을 꽉 잡았다. 그리고 검 끝으로 사마를 가리켰다. 사마를 베기 위해서 어떤 초식을 구사하지는 않았다. 일절 무공을 배제한 채, 오직 검만 겨눴다.
비연어검(飛燕於劍)!
그녀의 몸은 물 찬 제비처럼 날렵하게 허공을 쏘아간다.
두 날개는 몸에 바짝 붙이고 오지 부리를 앞으로 쭉 내밀고 공격하는 제비처럼…… 검이 새 부리가 되고, 몸이 날개가 되어서 사마를 쪼개간다.
‘잡았어!’
홀리는 사마를 봤다. 한데,
팟!
사마가 눈앞에서 유령처럼 사라졌다.
홀리는 순식간에 십여 초를 전개했다.
파파팟! 파악! 푸아악!
땅이 파헤쳐지고, 풀이 베어서 흩날리고, 나뭇조각들이 잘려서 떨어졌다.
한바탕 광풍이 지나갔다.
‘후웃!’
홀리는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재빨리 왼발로 땅을 문질렀다.
생기를 찾는다.
사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생기가 만들어 준 초식, 비연어검으로 공격해 갈 때까지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검이 쪼개지는 순간, 사마도 유령처럼 사라졌다.
무척 빠르다. 어떻게 이렇게 빠를 수가 있나.
사마는 단순히 빠름만으로는 홀리를 능가한다. 그런데 왜 공격해 오지 않을까? 이 정도로 빠르다면 얼마든지 공격해 올 수 있을 텐데. 감당할 수 없는데.
홀리는 사마에 관한 생각을 지워버리고, 다시 생기에 집중했다.
탁!
이번에는 왼쪽 다리에서 힘이 풀어진다.
먼저와 같은 방식으로 사마가 어디에 있는지, 왼쪽 다리가 어느 지점에서 힘이 가장 많이 풀리는지 파악했다.
스으으으읏! 타악!
‘북북서!’
사마가 위치한 방향은 북북서다.
‘이것들이!’
홀리는 어떻게 된 일인지 즉시 눈치챘다.
자신이 동남쪽에 있는 사마를 쫓아갈 때, 북북서에 있는 자가 즉시 사정권 안으로 들어왔다.
물론 생기가 사마를 감지해내는 것은 당연하다.
북북서에 나타난 사마를 경고해 주느라고 왼발에 힘이 풀렸다.
그 순간적인 작용이 홀리의 움직임을 약화시켰다. 오른쪽을 향해서 전력으로 쏘아가고 있는 와중에 탄력을 주어야 할 발에서 힘이 빠졌으니……
왼발의 무기력증은 검을 한 수 늦췄고,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사마를 놓치는 결과까지 낳았다.
이러니 공격해 오지 않는 것이다. 저들이 공격해 오면 그때는 홀리의 검이 한 수 빠를 것이다. 생기를 한쪽으로만 집중시킬 수 있다면 저들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홀리는 그 정도까지 생기를 다루지 못한다.
‘흐음!’
홀리는 땅의 기운을 느꼈다. 지면 응집력을 느꼈다.
오른쪽은 꼼짝하지 않는다. 대신 북북서에 있는 자가 계속해서 도발한다.
‘오라는 거지? 하지만 네놈한테 가면 저놈이 달려들 것이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다 보면 틈이 생길 것이고…… 이것들, 아주 약은 요물들이야.’
홀리는 양쪽을 견제하느라, 한 초 늦는 초식을 떨쳐낸다.
이 차이를 극복해 내지 못한다면 어느 쪽도 공격하지 못한다.
혹여 저들이 먼저 공격해 오면 그야말로 대환영이다. 그때는 즉시 반격할 수 있다.
‘후우!’
홀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등여산은 치달리고 있다. 아마도 호발귀를 따돌리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바로 교대를 해주어야 할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둘지는 않았다.
지금은 등여산을 믿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자신은 사마에게 묶여 있다. 자신이 사마를 공격한다고 생각했는데, 반대 상황이다. 사마가 자신을 꽁꽁 묶어둔 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호발귀는 등여산을 쫓아갔다. 죽이기 위해서.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생기를 사용하면 진기를 사용할 때처럼 피곤하지 않다. 진기 소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땅에서 올라온 지기(地氣)가 단번에 몸을 자극한다. 그리고 자극점에서 피어난 파장이 몸 전체로 퍼져 나간다.
기가 막힌 것은 이러한 움직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극점이 어딘지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냥 몸속 어딘가에서 잔뜩 응집되었다가 확 퍼진다.
생기는 일시에 퍼진다.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는 것과 같다. 촛불을 밝히면 빛이 어떻게 퍼지나? 촛불 주변에서부터 조금씩 어둠을 밀어내면서 번져나가나? 아니다. 방 안을 일시에 확 밝힌다.
촛불이 어둠을 밀어내는 과정을 순서로 정할 수도 있다.
촛불 바로 옆이 먼저 밝혀지고, 그다음 어둠을 밀어내고, 그래서 결국은 가장 멀리 떨어진 벽까지 비춘다.
이런 순서가 맞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차분히 빚이 퍼져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눈은 빛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일시에 확 밝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촛불이 방안을 밝힌다. 이 말이 맞는다.
생기가 몸에 기운을 준다. 이 말이 맞는다.
진기처럼 경맥의 순서를 정하지 않는다. 어디를 흘러서 어떤 식으로 경혈을 자극하는지 알지 못한다. 앗! 하면 확 밝아진다.
일어난 것은 소멸한다.
생기도 당연히 소멸할 것이다. 그러나 소멸 과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계속해서 생기가 밀려오고, 몸 전체로 퍼져 나간다. 하지만 어떻게 소멸하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밝음이 밀려온다.
물론 이런 밝음이 몸 밖으로 퍼져 나가지도 않는다. 몸 안에서만 휘돈다. 홀리에게 터져나갈 듯한 활력을 준 후, 스르륵 소멸한다.
사마와의 기나긴 대치가 이어진다.
하지만 생기가 끝없이 활력을 밀어 올리고 있는 이상, 홀리는 언제까지고 버틸 수 있다.
‘누가 먼저 지치나 해보자 이거지.’
홀리는 차분히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