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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82화 (282/500)

第六十七章 사마사(死魔死) (2)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

등여산은 미간을 잔뜩 좁혔다.

이상하다. 호발귀는 벌써 사마를 따라잡았어야 한다. 그런데도 거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사마는 진기를 사용한다. 무공이다. 근골을 발달시켜서 얻는 힘과 내공을 양성해서 얻는 힘이 조화를 이뤄서 표출되는…… 인간의 힘이다.

호발귀는 생기를 사용한다. 무공이라고 할 수 없다.

생기를 사용하면 무공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많이 생긴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면서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생기를 사용하게 되면 그동안 수련했던 무공이 단숨에 극상승으로 발전한다는 점이다.

등여산 자신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달리면 달릴수록 힘이 넘쳐 오르고 있다. 더 빨라지고, 더 강해진다는 느낌이다.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물론 체력이 어느 한계까지 치달은 후에는 이런 현상이 급속히 수그러들 것이다.

몸이 받쳐주는 한도 내에서는 생기가 급격하게 치솟는다.

진기는 점점 소멸하다가 체력의 한계점에 이르면 뚝 끊어진다. 생기는 강화되고 강화되다가 뚝 끊어진다.

아직 체력 한계점에 도달해 본 적이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진기처럼 힘이 쭉 바지지 않을까 싶다.

체력이 끊기는 지점은 몸이 받쳐주는 한계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몸이 가볍다. 날개만 달렸다면 정말 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신법을 전개할 때도 힘이 넘친다. 단숨에 사오 장을 쑥쑥 뻗어나간다.

정말로 이토록 상쾌하고 기뻤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신법을 펼쳐서 치달린다는 것이 사람 마음을 이토록 즐겁게 흥분시킬 줄은 몰랐다.

호발귀도 이런 현상을 겪고 있을 것이다.

즉, 호발귀는 처음 신형을 날릴 때보다 한층 더 강해졌다. 아마 달릴수록 더 강해질 것이다.

호발귀가 전력을 다했다면 사마를 따라잡을 수 있다.

그런데 호발귀와 사마 간의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거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호발귀는 생기가 고정되어 있나? 발전하는 게 아니라 단지 빌려 쓰는 것뿐인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등여산은 호발귀 뒤를 쫓으면서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호발귀가 사용하는 생기는 도대체 뭘까 하는 의문이다. 만약 호발귀의 생기가 발전하지 않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자신이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혈겁을 저지르지 못하게 묶어둘 수 있을 것 같은데.

슉슉! 슉슉슉!

사마가 앞서 나가고 호발귀가 뒤따라간다. 그 뒤를 등여산이 쫓아간다.

“아!”

등여산은 탄식했다.

기어이 사람 사는 마을이 나왔다.

가구가 십여 호에 불과한 작은 마을, 화전민촌으로 생각된다.

산속 깊은 곳에 밭을 일구고, 근근이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쉐에엑!

사마들이 화전민촌 안으로 스며들었다.

“키키키! 키키키키키!”

혈마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혈마는 밭일하는 사람들을 보자, 전신에서 붉은 혈기를 뭉실 피워냈다. 숨 막히는 살기다.

“엇! 어?”

등여산은 불현듯 참혹한 생각이 일어나서 눈을 부릅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상상인데…… 호발귀가 사마와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따라잡지 못해서 붙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일부러 간격을 유지했다.

호발귀의 터트리는 괴소…… 먹이를 보고 즐거워하는 포식자의 웃음이다.

호발귀는 사마가 자신을 먹이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처음부터 사마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뇌옥에서는 적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으로 나온 후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저들을 쫓아가 보면 마을이 나온다. 그들을 모두 죽일 때까지 사마는 얌전히 대기한다. 그리고 혈기를 마음껏 충족시키고 나면 다시 사마가 나타나 길 안내를 안다.

호발귀는 사마를 먹잇감에게 길 안내를 해주는 길잡이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맞아! 그래서 일부러 따라잡지 않고 놓아준 거야. 그냥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사마를 쫓아가면 살기를 충족시킬 수가 있다.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그러니 소멸시켜야 할 생기이지만, 놓아준다. 저들을 죽이면 큰 즐거움을 맛볼 수 없다.

사마가 뛰어나서 내뺀 것이 아니다. 호발귀가 놓아준 것이다.

‘아! 호발귀! 너 정말 악마가 된 거야?’

등여산은 탄식했다.

쓱!

혈마가 화전민촌에 들어섰다.

밭일하던 노인이 혈마를 쳐다봤다.

살기를 워낙 진하게 피워올린 탓에 누구든 보기만 하면 오금을 지린다.

이 순간, 노인도 불길함을 눈치챘을 것이다.

슷!

혈마는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검을 들어서 노인을 가리켰다.

“헉! 허억! 으아아악! 사람 살려!”

노인은 줄에 묶인 듯 질질 끌려 왔다. 호발귀가 끌어당기지는 않았다. 제 발로 걸어왔다. 하지만 뚜벅뚜벅 걸어오는 걸음과는 달리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는 매우 절절했다.

“사, 살려줘! 살려줘!”

노인이 고래고래 악을 질렀다.

걷고 싶지 않은데 걷는다. 질질 끌려간다. 살기를 물씬 피우는 무인에게, 검 앞으로 딸려가고 있다.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휘리리릭! 촤아아악!

노인이 가까이 다가오자, 호발귀는 거침없이 혈천도법을 펼쳤다. 머리와 몸과 다리를 따로 떼어놓는다는 혈천삼분을 절정 고수에게 펼치듯 전력으로 펼쳤다.

“으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산골짜기를 울려 퍼졌다.

“아!”

등여산은 탄식했다.

갑자기 전신에서 힘이 쭉 빠졌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기도 힘들어서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에 이토록 힘이 풀려보기는 처음이다.

절망이 휘몰아친다. 답답함이 뭉실 피어난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하나.

혈천삼분은 절정 고수도 받아내기 힘들다. 하물며 한낱 노인이…… 노인의 시신은 종이처럼 잘게 찢어져서 흩뿌려졌다.

노인이 내지른 비명은 아직도 사방에서 울리는데, 노인은 이미 형체를 잃고 쓰러졌다.

등여산은 차마 살해 현장을 보기가 힘들어서 눈을 감아버렸다.

“사람 살려!”

“악마다!”

“야, 새끼야! 죽여! 죽여봐!”

온갖 소리가 다 들렸다.

저 혈검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자신이 호발귀를 유인해볼까? 안 된다. 지금은 어떤 유인도 통하지 않는다. 호발귀는 이미 먹잇감을 찾아냈다.

화전민촌에 먹잇감이 수두룩하게 있는데 또 다른 먹잇감이 나타났다고 대뜸 쫓아올 리 없다.

등여산이 호발귀 앞에 모습을 드러내도, 그녀 역시 저 많은 먹잇감 중의 한 명일 뿐이다. 그녀의 생기가 훨씬 강하지만, 화전민촌 사람들 두 명을 합친 것보다는 못하다.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한다.

“아악!”

“크아아악!”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

호발귀는 검으로 끌어당기는 흡인 살겁도 성이 차지 않는지, 검을 들고 직접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악귀가 피로 물든 땅을 걷는다.

쿵!

호발귀는 나무판자를 얽어서 만든 나무집 안으로 들어갔다.

“사, 살려줘. 악!”

집안에서 비명이 처참하게 울렸다.

호발귀가 혈겁을 저지른다.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인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혈마는 산속에 있다. 사람을 찾기가 무척 힘든 깊은 산이다.

만약 혈마가 중원으로 내려간다면, 그 결과는 정말 참혹할 것이다.

이 세상에 악마를 풀어놓는다고 생각해 보라. 살인에 미친 살인귀를 놔준다면, 더욱이 그 살인귀가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무공을 지니고 있다면.

세상이 바로 지옥이 된다.

이백 년 전, 혈마에게는 혈마후가 있었다. 혈마후가 혈마를 조종했다. 검을 쓰고 멈출 때를 구혼음소로 조정했다. 그래서인지 혈마의 목표는 늘 무인이었다.

이백 년 전에 중원에 휘몰아친 참상은 대단히 처참했다. 하지만 혈마후는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혈마를 조정해서 살겁에 이용한 것이 아니라 사력을 다해서 통제했다.

지금은 혈마를 통제할 사람이 없다.

저 혈마가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면……

‘안 돼!’

등여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무도 혈마를 막지 못한다. 혈마는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체를 죽일 것이다. 사람, 개, 소…… 모든 생명체를 말살시키면서 중원 천하를 떠돌 것이다.

그를 막을 사람이 없다.

‘방법을 찾아야 해. 어떻게 하지?’

등여산은 손발을 부르르 떨면서 오직 한 생각만 했다.

“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등여산은 자신도 모르게 손발이 덜덜 떨었다. 떨고 싶지 않은데 저절로 떨렸다.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몸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입술도 파르르 떨렸다.

지금 그녀는 호발귀를 다시 제정신으로 돌릴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너무 무리다. 어떻게 하면 호발귀를 죽일 수 있을까 하는 점만 생각한다.

호발귀를 죽이지 못한다고 해도 이 산에서 내보낼 수는 없다.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한이 있어도…… 호발귀만은 가둬 놓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등여산은 덜덜 떨기만 했다.

슈윳!

홀리가 등여산을 찾아왔다.

그녀는 등여산을 보자 잘 됐다는 뜻으로 씩 웃었다. 하지만 덜덜 떨고 있는 등여산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다가와 당장 손부터 잡았다.

“너 괜찮아? 왜 그래? 무슨 일인데?”

“휴우!”

등여산은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난 괜찮아. 뒤는 잘 막았고?”

등여산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다. 괜찮지 않다. 등여산은 웃고 있지만, 손발은 여전히 덜덜 떨고 있다.

사시나무 떨리는 걸 봤는가? 등여산은 사시나무보다도 더 심하게 떨고 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면 오히려 바보일 정도로 심하게 떤다.

홀리는 등여산을 꼭 껴안았다.

품에 안긴 등여산이 비 맞은 참새처럼 파르르 떨어댄다.

“무슨 일인데 그래?”

“……”

“일단 마음부터 진정시키고. 자, 괜찮아.”

홀리는 등여산의 등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홀리는 등여산이 왜 이렇게 떨고 있는지 금방 알아챘다.

“아아악!”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크게 울렸다.

“어!”

홀리가 깜짝 놀라서 비명 난 곳을 쳐다봤다. 마을이다.

눈길을 돌리자마자 땅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보인다. 검에 베인 육신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핏물이 작은 내가 되어서 흐른 자국도 선명하게 보인다.

“저거!”

홀리가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등여산이 팔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일어서지 못했다.

“나 조금 더 안아줘.”

홀리는 등여산을 빤히 쳐다봤다.

등여산이 힘들어서 안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을을 쳐다보지 말라는 뜻으로 자신을 안아달라고 말한 것이다.

홀리는 다시 앉으면서 등여산을 안았다.

“호발귀야?”

“응.”

“사람을 죽이는 중이고?”

“응.”

“몇 명이나?”

“서른 명? 마흔 명?”

“미쳤구나!”

“미친 거 같아. 우리…… 호발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등여산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음성은 전혀 담담하지 않았다. 음성이 몸처럼 바들바들 떨려 나왔다.

“휴우! 할 수 없지.”

홀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바보. 그것 때문에 이렇게 떠는 거야? 너 머리 좋은 거, 맞아? 내가 보기엔 순 바보 같아.”

“……?”

등여산이 홀리를 쳐다봤다.

“바보야, 우린 혈마후잖아. 혈마의 부인. 그런데 호발귀에게 혈마후는 부인이 아니라 혈마를 죽이는 사람이야. 그게 호발귀의 뜻이잖아. 우리의 운명은 처음부터 호발귀를 죽이는 거였어. 바보야, 떨지 마. 네가 떠니까 나까지 떨려.”

홀리가 등여산을 꼭 껴안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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