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六章 절후(絕後) (2)
호발귀는 온종일 물만 마셨다.
참응이 움직이지 않은 지 이틀째다. 이틀 동안이나 계속 물을 마셨다는 거다.
음식은 먹지 않고 물만 마신다.
츠읏! 째액! 찌찍!
호발귀 주위를 어른거리던 다람쥐가 소용돌이에 빨려들듯이 검 끝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보지 못한 것처럼 망설임 없이 앞으로 들어서 검에 몸을 찢었다.
검이 다람쥐를 죽인 것이 아니라 다람쥐가 스스로 검에 몸을 찢어낸 것처럼 보였다.
호발귀는 주위에 생기가 어른거리면 가차 없이 죽인다.
새와 다람쥐가 상당히 죽었다. 작은 멧돼지도 어김없이 죽임을 당했다.
괜히 혈마 곁을 어슬렁거리다가 사지가 떨어져 나갔다.
혈마는 그런 일을 제외하고는 움직이지 않는다.
꿀꺽! 꿀꺽!
또 계곡에 머리를 박고 물을 마셨다.
“도대체 지금 몸 상태가 어떻길래 저러지? 사람이 저렇게 물을 많이 마실 수도 있나?”
홀리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속에서 열불이 나는 거 아닐까요? 혈기가 혹시 화기(火氣) 종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왜 속에서 부아가 치밀면 냉수 먹고 속 차리기도 하잖습니까.”
해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발귀를 보고 있자면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하지만 호발귀의 상태를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생기의 세계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호발귀가 왜 물을 저토록 마시는지는 오직 호발귀만이 말해줄 수 있다.
벌컥! 벌컥! 벌컥! 벌컥!
호발귀가 개울에 얼굴을 대고 물을 들이켰다. 거의 반 시진 가까이 얼굴을 들지 않았다.
“까아아아악!”
갑자기 호발귀가 얼굴을 들더니 하늘을 향해 괴성을 토해냈다.
온 산이 쩌렁 울렸다.
마치 괴수가 울부짖는 듯한 괴성에 새들이 놀아서 일제히 날아올랐다. 짐승들도 황급히 도망갔다.
“웃!”
“윽!”
등여산과 홀리는 거의 동시에 신음을 흘렸다.
소리를 접하자, 온몸에서 전율이 일어났다. 솜털이 곤두서면서 소름이 오싹 끼쳤다.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산길을 걷다가 호랑이와 마주친 듯 엄청난 공포감이 일어났다.
끼아아악!
하늘 위를 맴돌던 참응도 깜짝 놀라서 푸두둑 날갯짓을 했다.
“엇! 저……”
해자수가 손을 들어서 참응을 가리켰다. 아니, 그가 가리키지 않아도 모두 참응을 보고 있었다.
참응은 마치 독수리에게 급습당한 듯 거칠게 날갯짓을 했다.
“끼아아아악!”
호발귀가 또 괴성을 내질렀다.
참응은 보이지 않는 그물에 걸린 듯 사력을 다해서 날개를 퍼덕였다.
누가 봐도 꼭 무엇엔가 걸려든 날짐승이 도주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으로 보였다.
“저거…… 걸려든 거지?”
홀리가 말했다.
그녀는 호발귀에게 끌려가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조금씩 끌려갔었다.
참응은 정말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
“호호! 호호호호! 호호호호!”
등여산이 갑자기 웃었다.
느닷없이 들리는 웃음소리에 홀리와 해자수가 힐끔 뒤를 돌아봤다.
두 사람은 등여산의 웃음을 알고 있으니 괜찮지만…… 남들이 보면 꼭 미친 여자처럼 보인다.
아니면 굉장히 잔인한 여자? 매가 날지 못하고 푸드덕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깔깔대며 웃고 있다니. 화살이라도 맞고 떨어지면 더 즐거워할 것 같지 않은가.
푸득! 푸드득!
참응이 무형의 그물을 끊어냈다.
매가 힘차게 날갯짓을 하더니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날아갔다.
“어떻게 한 거야?”
홀리가 물었다.
“아무것도. 그냥 웃기만 했어.”
등여산도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다만, 그녀의 웃음소리가 호발귀의 혈기에 영향을 끼쳤다. 참응을 옭아맨 그물을 끊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저 매는 다시 돌아오려나?”
해자수가 멀리 날아가는 매를 보면서 말했다.
돌아오지 않는다.
세 사람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참응을 구속하던 속박이 깨졌다. 호발귀의 혈기만 깨진 것이 아니라 천살단의 속박까지 한꺼번에 깨졌다.
참응이 감시 영역을 떠나간다.
다시 말하면 천살단 무인들이 더는 형옥주 뒤를 쫓아오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천살단 무인과 형옥주를 연결했던 밀마가 끊겼다.
“아!”
등여산이 부지불식간 탄성을 토해냈다.
“또 왜?”
“참응. 참응.”
등여산이 멀리 날아가는 참응을 보며 말했다.
“호발귀…… 호발귀 말이야. 참응을 노리는 중이었어. 참응이 귀찮아진 거야. 그래서 여기서 없애고 갈 생각이었어. 참응도 생기를 드러내니까, 호발귀가 보기에는 하늘에 푸른 빛이 떠 있겠지? 무척 신경에 거슬렸던 거야.”
하늘에 떠 있는 푸른 빛을 없애야 한다. 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혈기를 키웠다.
사람들 눈에는 호발귀가 움직이지 않는 듯이 보였다. 개울에서 물만 마시면서 무엇을 하나 싶었다. 하지만 호발귀는 계속해서 참응을 잡기 위해 혈기를 키웠다.
물을 마시면 혈기가 커지나?
어쨌든 이것은 호발귀 방법이다. 물을 마시면서 혈기의 영역을 조금씩, 조금씩 넓혀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참응을 공격했다.
“저 거리! 호발귀와 참응의 거리. 저 거리가 호발귀의 살상권이야.”
“저 거리라면 여기도 위험한데?”
홀리가 말했다.
“물러서! 물러서!”
등여산이 즉시 말했다.
홀리와 해자수는 등여산의 말을 듣자마자 즉시 신형을 튕겨냈다.
오직 두 사람만이 등여산이 하는 말을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다.
호발귀는 참응을 제일 목표로 설정했다. 그러니 다른 생기는 부수적인 목표였던 셈이다. 중간에 세 사람이 생기까지 떠올리면서 다가섰지만, 그때도 역시 참응이 제일 목표였다.
참응이 사라진 지금, 호발귀는 제일 목표를 다시 설정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생기 혹은 가장 신경에 거슬리는 생기를 추격할 것이다.
세 사람은 가장 신경에 거슬리는 생기 축에 속한다.
쒜에엑! 쒜엑! 쒜엑!
세 사람은 사력을 다해서 튕겨 나왔다.
그들이 물러서 있는 곳도 안전지대였지만, 호발귀의 사정권이 훨씬 길어졌다. 막연한 추측으로 ‘이 정도면 안전하겠지’하고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하악! 학!”
그들의 입에서 거친 숨이 쏟아졌다.
등여산도 숨을 가누지 못했다. 정말로 사력을 다해서 도주했다. 한 호흡에 삼십여 장은 달려온 것 같다.
“이 정도면 됐겠지?”
홀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물었다.
호발귀하고 참응하고의 거리가 살상권이다.
그 거리가 얼마나 될까?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참응은 하늘에 떠 있다. 땅에서 하늘까지 거리는 목축으로 확인할 수가 없다.
대충 백 장? 이백 장? 어느 정도 떨어져 있을 것 같다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사람 눈에는 백 장 높이나 이백 장 높이나 비슷하게 보인다.
“크큭! 큭큭큭! 큭큭!”
갑자기 등여산이 키득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홀리와 해자수는 그녀가 갑작스럽게 웃어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등여산은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잦을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웃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 중 아가씨가 제일 나은 것 같은데요.”
해자수가 홀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런가?”
“그렇죠. 나는 뭐 언제 뭔 짓을 할지 모르고, 책사님은 보다시피 저게 반 미친 거지 뭐. 아씨는 뭐 앉아만 있으면 되니까. 여기가 내 집 안방이다 하고 철퍼덕 앉으면 안전한 것이고 붕 뜨면 뭔가 일이 생긴 거고. 가장 편하지 뭐.”
“그럴 수도 있겠네.”
“그 뭐야 부작용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가장 안전하지 않을까 싶은데.”
홀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호발귀의 부작용은 혈마가 되는 것이다. 등여산의 부작용은 아마도 광녀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호발귀처럼 정신을 놓아버리는 광녀가 되지 않을까?
그런 점은 해자수도 마찬가지다.
말이 좋아서 앞으로 딸려가는 것이지…… 내면에서 딸려가기 시작하면 자칫 정신을 잃는다. 무공으로 치면 주화입마 상태가 된다. 영혼이 딸려가서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해자수가 광인이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럼 자신은 정말 안전한가? 땅이 단단히 붙들어 주고 있으니…… 최악이라고 해봐야 멀뚱멀뚱 서 있는 것일까? 아니다. 땅이 붙잡는다는 지면 응집력은 무형의 뇌옥이 될 수 있다. 멀쩡한 상태로 감옥에 가두는 것이다.
서서 움직이지 못한다. 그것이 감옥이지 무엇이겠나.
이럴 정도까지 생기에 휘둘리면…… 자신 역시 광녀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움직이지 못하니 답답해서 미치는 것이다.
모두가…… 생기를 감지한 모두가 아주 안 좋은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홀리는 등여산이 웃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호호호! 호호호호! 깔깔깔!”
등여산은 한바탕 미친 듯이 웃고 나더니 활짝 웃는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기분 좋아?”
홀리가 먼저 물었다.
등여산은 피식 웃으면서 깜짝 놀랄 말을 했다.
“방금 호발귀가 우릴 찾아왔었어.”
“뭐? 방금?”
홀리와 해자수가 놀란 표정으로 등여산을 쳐다봤다. 미친 듯이 웃을 때 뭔가 있다 싶기는 했는데.
“넌 뭐한 거야?”
“아무것도. 혈기가 건드린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냥 지켜보기만 했어. 우릴 공격할 건지, 끌어당길 건지, 그냥 지나가는 건지 알 수가 없잖아.”
“그런데?”
“마음이 불안하지는 않았어. 기쁜 느낌 그대로? 혈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즐거움이 깨지지 않더라고,”
“그랬구나.”
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 홀리와 해자수는 등여산이 자신들보다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호발귀의 혈기를 느끼지 못했다. 전혀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등여산은 알아냈다. 느낌으로 알아냈고, 생기로 확인했다.
분명히 등여산이 한 수 앞서 나가고 있다.
등여산이 말했다.
“우리 정말 조심해야 할 게 있어.”
등여산이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우리는 참응보다 가까이 있었어. 그런데 호발귀가 우리를 공격하지 않고, 참응을 공격했거든.”
“참응이 제일 목표이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냐.”
“그럼? 참응한데 뭐 특별한 게 있었나?”
“확실히 참응보다는 우리가 더 신경에 거슬렸을 거야. 생기도 우리가 더 강하고, 더욱이 우린 세 명이고. 그런데 우리보다 참응을 먼저 공격했어.”
등여산이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
“호발귀가 참응을 먼저 공격한 것은…… 우리가 만만해서야. 나도 이번에 알았어.”
꿀꺽!
해자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번에도 호발귀는 우리를 찾아냈어. 우리가 살상권 안에 들어와 있거든.”
“지금 여기도?”
홀리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등여산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을 감지하고 단숨에 삼십여 장을 물러섰는데도 역시 살상권 안에 들어와 있다. 실제로 호발귀가 혈기를 일으켜서 자신들을 더듬고 지나갔다.
“호발귀가 왜 우릴 가만 놔둔 겁니까? 찾아냈다면서.”
해자수가 진작 물었을 말을 뒤늦게 물었다.
“말했잖아요. 만만해서.”
“네?”
“너무 만만하고…… 언제든 잡을 수 있어서. 우리보다는 참응이 잡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러니 참응부터 공격한 거죠. 다른 이유는 없어요. 지금 호발귀, 물을 마시고 있어요. 저 물을 다 마시고 나면 우릴 잡을 거예요.”
“뭐, 뭐, 뭐요!”
해자수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너무 잡기 쉬운 존재여서 건드리지 않았다고?
“그럼 우리 빨리 도주해야 하지 않나요?”
“대략 반 시진 정도 여유가 있어요. 호발귀는 물을 마시기 시작하면 거의 반 시진 정도 마시더라고요. 아주 천천히 즐기면서 마시는 것 같아요.”
“그런 것까지 파악한 거야?”
홀리가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우리 명심해야 할 것. 호발귀 사정권 안에 들어가면 누구보다도 쉽게 잡힌다. 그리고 죽는다. 이건 항상 가슴에 새겨둬야 하고. 곧 호발귀가 공격해 올 거야. 준비해야 해.”
세 사람은 호발귀를 쳐다봤다.
참응을 쫓아낸 호발귀가 또 물을 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에 물을 먹으면 그는 바로 움직일 것이다.
“휴우!”
홀리가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