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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76화 (276/500)

第六十六章 절후(絕後) (1)

홀리와 등여산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호발귀를 쳐다봤다.

생기를 알지 못했을 때는 호발귀가 단지 미친 사람에 불과했다.

어떤 광기 같은 것에 휩쓸려서 정신을 잃은 사람일 뿐이지. 여전히 혈마가 아닌 호발귀였다.

호발귀는 예전에도 혈마의 정신세계로 이끌려 들어간 적이 있다. 하지만 다시 빠져나왔다.

늘 제정신을 찾았고, 주변 사람들을 알아봤다.

혈천방에서도 그랬다. 혈마에게는 구혼음소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홀리만큼은 알아봤다.

그녀를 알아보고, 다시 구혼음소를 받아들이고, 호발귀로 돌아왔다.

호발귀는 이번에도 자신들을 알아볼 것이고, 맑은 정신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그런데 생기라는 것을 알고 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호발귀는 악마다.

이제는 부인하지 못한다. 호발귀는 사람의 인성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현재 호발귀는 오직 생기를 소멸시켜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만 하고 있다.

아니, 생각이라면 차라리 고칠 수라도 있다. 다르게 생각할 여지라도 있다. 혈기라는 것은 전혀 수정할 수 없는 고정된 광기라는 것이 문제다.

혈마가 일으키는 살기는 본능이다.

등여산이 희열 속에 파묻힐 때처럼, 홀리의 두 발이 땅에 붙어서 움직이지 못할 때처럼, 해자수가 어딘지 모를 곳으로 끌려가는 현상처럼……

호발귀도 붉은 혈기에 갇혀서 눈앞에서 반짝이는 푸른 빛을 소멸시킬 뿐이다.

이것은 막지 못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호발귀 앞에 서면 죽는다!

“도망! 도망가! 도망가!”

등여산이 더듬더듬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음성은 곧 날카로운 절규로 변했다.

“탈출해! 정신 차리고!”

홀리가 해자수의 어깨를 잡아채면서 말했다.

해자수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뛰쳐나갔다.

스슷! 스스스슷! 쒜에엑!

세 명은 재빨리 한계선을 벗어났다.

다행스럽게도 호발귀는 혈기를 일으키지 않았다.

푸른 빛이 일렁거렸지만 죽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혈기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그도 건드리지 않는다.

호발귀가 혈기를 통제하는 것은 아닐 테고, 무엇 때문일까?

그사이 세 사람은 사정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이 정도면 안전거리를 만들었다 싶을 정도로 멀리 빠져나왔다.

하악! 하! 하아아!

어찌나 급하게 뛰쳐나왔는지 숨이 턱에 닿았다.

호발귀는 세 사람이 물러나는 데도 쳐다보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던 듯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그가 개울에 얼굴을 묻고 물을 마셨다.

꿀꺽! 꿀꺽! 꿀꺽!

목마른 짐승이 물을 먹듯이 한참을 마셨다

참응이 허공에 맴돌고 있는 이유, 바로 이것이다.

호발귀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 호발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세 사람은 호발귀 상태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도 생기를 감지했지만, 아직은 호발귀가 느끼는 깊이까지 들어가지 못했다.

아니 들어가기가 무섭다.

지금, 호발귀는 혈기라는 것에 휘둘려 있다.

같은 내용이라면 홀리는 지반 응집력을 놓으면 안 된다. 두 자리가 땅에 붙어 있어야 한다.

만약, 그런 생기에 휘말려 들어가면 홀리는 정말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한다.

힘으로도 풀어낼 수 없고, 의지나 진기로도 움직이지 못한다.

두 다리가 땅에 붙어서 정말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한다.

등여산은 호발귀와 가장 가까운 상태가 된다. 광인.

희열 속에 파묻힌다는 것은 미쳤다는 말과도 같다. 호발귀가 혈기에 미친 것처럼, 등여산은 희열에 미쳐서 계속 깔깔거리면서 돌아다닌다.

사람이 죽은 상갓집에 가서도 깔깔대면서 웃는다. 밥을 먹으면서도 깔깔대며 웃는다.

이게 미친 것이지 뭐가 미친 것인가.

생기가 어떤 힘을 주든 간에 지금보다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망설여진다.

세 사람은 호발귀의 사정권에서 벗어나 잠시 정신을 추슬렀다.

“어떡하지?”

홀리가 난감한 표정으로 호발귀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호발귀는 그녀들도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들을 알아볼 것이라는 희망 자체를 버렸다.

“이거…… 곁에 다가서는 것은 틀린 노릇이고…… 손을 쓸 방도가 없네.”

해자수가 중얼거렸다.

“가까이 갈 순 없지만 유인할 수는 있어.”

등여산이 말했다.

모두 등여산을 쳐다봤다.

“대신 우린 목숨을 걸어야 해.”

“어떻게 하자는 건데?”

“생기로 생기를 끌어당기면 돼. 사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호발귀를 끌어당길 수가 있어.”

“그러면 호발귀가 쫓아올 텐데……”

해자수가 말끝을 흐렸다.

호발귀가 혈기를 일으키자, 등여산의 희열이 단번에 깨졌다.

호발귀의 절대적인 혈기 앞에 이제 막 알기 시작한 생기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홀리의 지면 응집력도 무너졌다.

해자수는 말할 것도 없다. 절대로 호발귀에게는 끌려갈 수 없다. 그러니 아예 생기라는 것을 일으키지 못한다.

세 사람은 호발귀와 부딪치자마자 단박에 알았다.

생기라는 것은 티끌만 한 차이로도 절대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들은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여기에는 요행이라는 것이 없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다.

둘은 하나보다도 강하다. 어려운가? 요행은 없다. 생각해야 할 변수도 없다. 절대적인 진리다

백 장 높이의 산과 백일 장 높이의 산이 나란히 서 있다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똑같이 높은 산일 뿐이다.

어느 산이 더 높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생기의 세계에서는 두 산의 간극이 하늘과 땅 차이처럼 차이가 벌어진다.

단 일 푼이라도 높으면 아래 것을 잡아먹는다.

세 사람은 호발귀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억지로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다. 호발귀 앞에서는 순간적으로 저항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대항은 하지 못한다.

등여산이 말했다.

“호발귀가 쫓아오면 우리는 감당이 안 돼요. 그러니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말한 거죠.”

“아휴! 그놈의 목숨은…… 내가 모가지를 열댓 개 가지고 다니나 봐. 어떻게 매번 목숨이 걸리냐?”

해자수가 투덜댔다.

“일단 몸부터 추슬러요. 사마부터 제거해야 하니까.”

“사마? 우리가 사마하고 될까?”

홀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되지. 아직도 몰라? 우리는 지금 확연히 달라졌어. 사마하고 싸울 때의 우리가 아니야. 호발귀한테는 안 되지만, 사마는 충분히 넘길 수 있어.”

등여산이 자신 있게 말했다.

“세상 참…… 사마한테 얻어터진 게 겨우 반 시진 전인데.”

해자수가 고개를 내두르며 말했다.

반 시진 전, 그들은 사마에게 형편없이 뭉개졌다. 검에 찔리고, 가슴이 헤집어졌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겨우 반 시진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매우 심한 상처를 입은지 겨우 반 시진이 지났을 뿐인데, 지금 그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반 시진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기운을 움직이고 있다.

반 시진 전에도 이 기운으로 사마와 대적했다. 하지만 그때는 겨우 걸음마 단계였고, 지금은 달음박질을 할 수 있다.

그때처럼 흐릿한 환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선명하게 확인된 기운을 움직이다.

“일단 몸부터 추슬러. 호발귀가 움직이기 전에 사마를 제거해야 해. 그것도 쉽지 않을 테지만…… 호발귀가 움직이면 즉시 유인해야 해. 그러면 우리도 사마처럼 부지런히 정신없이 뛰어야 할 거야. 쉴 시간이나 있으려나.”

등여산이 말했다.

“쯧! 어쩌다가 내가 저놈한테 쫓기는 신세가 되었나? 분명히 첫 번째 순서는 나지?”

“그걸 말이라고?”

홀리가 웃으면서 받았다.

“이런다니까. 꼭 죽을 자리에는 날 먼저 세워. 쯧!”

해자수가 털썩 주저앉아서 눈을 감았다.

호발귀가 쫓아오는 것을 감당하는 것도 큰일이다. 하지만 그 전에 사마부터 제거해야 한다. 아마 그 싸움도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지독한 싸움이 될 것이다.

등여산은 다른 생각을 했다.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생기가 우주 만물의 기운이라면,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면, 이 기운은 인간에게 이로워야 한다.

나무를 보살피고, 죽은 풀을 되살리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식물에게 이로움을 주는 기운이어야 한다. 아니면 어떤 물질이어야 한다.

물론 이롭다는 것과 공평하다는 것은 조금 다르다.

호랑이에게 충분한 기운을 주고, 토끼에게도 충분한 기운을 주었다면 공평할까? 호랑이가 달려들면 피할 수 있을까? 주는 쪽에서는 최대한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받는 쪽에서는 상황에 따라서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생기는 이런 부분까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이 기운은 그냥 존재하기만 한다.

가져가는 사람이 많이 가져가기도 하고, 적게 가져가기도 한다. 욕심을 한껏 부리면 충분히 준다. 모르고 갖지 않으면 주지 않는다. 일부러 가져가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생기는 천하의 투쟁에는 간여하지 않는다.

싸우거나 말거나 줄 수 있는 것을 토해낸다. 공기 속에 묻어서 전달되는 물질이니 만치, 공기와 특성을 같이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주 만물의 기운은 생태계를 보전하는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호발귀의 혈기는, 그리고 자신들이 느끼는 생기는 생태계를 파괴한다.

호발귀는 눈에 띄는 모든 생명체를 죽이고 있다. 이것이 과연 우주 만물의 기운인가? 아니다. 우주 만물의 기운을 흠씬 받으면 미친 여자처럼 언제 어디서나 깔깔대면서 웃고 다녀야 하나? 동료가 죽었어도 희열에 들떠 있어야 하나?

이건 뭔가 이상하다.

생기는 인간이 사용할 수 없는 것일까? 너무 큰 기운이라서 인간이 받아들이게 되면 탈이 생기나?

도대체 이 생기의 본질이 무엇인가?

등여산은 이 의문을 풀어야만 호발귀를 혈마에게서 빼내 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발귀를 혈마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이 의문을 풀어야 한다. 아니, 의문을 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나, 나, 나도 문제야.’

해답은 자신에게서 찾으면 된다.

희열을 느끼지 않고 생기를 일으키는 방법, 정상적인 감정 상태에서 생기를 일으킬 수 있다면?

생각은 맞지만 말은 안 된다. 매우 큰 모순이다.

지극한 희열 속에 파묻혀야만 생기가 일어난다. 희열을 느끼지 않으면 생기도 감지되지 않는다.

희열과 생기는 함께 간다.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분리해야만 정상적인 상태가 된다.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거나 생기를 사용하거나……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생기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를 만드는 기운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게 생기다.

이 엄청난 모순이라니.

‘뭐가 단단히 잘못되었어.’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진작 알았다. 호발귀가 혈마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항상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왜 만인에게 이로운 기운이 해악을 끼치나.

호발귀는 ‘오염’이라고 했다.

정상적인 생기가 밖으로 뛰쳐나가서 피, 살기, 분노 등등을 실어 온 탓에 오염된 것이라고.

등여산은 이 말에도 회의적이었다.

생기가 생령(生靈)을 보존한다면, 생기 자체는 세상에서 가장 굳건해야 한다. 인간이 툭 하면 일으키는 분노나 살기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호발귀가 하는 말을 믿었다.

호발귀가 혈기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으니, 무조건 모든 말을 믿어야만 했다. 생기라는 것을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하니 해줄 말도 없었다.

지금, 생기를 느끼니 의심이 부쩍 일어난다.

“휴우!”

등여산은 한숨을 토해냈다.

희열을 느끼지 않아도 생기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아니다. 일으킨다는 말은 크게 잘못되었다.

희열은 일으킬 수 있지만, 생기는 일으키지 못한다.

생기는 스스로 찾아온다.

진기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기운이 아니다. 스스로 찾아와야만 쓸 수 있다.

지금은 희열의 일으키면 생기도 따라서 일어난다는 방법을 찾은 것뿐이다.

그런데 이 방법…… 너무 위험하지 않나.

등여산은 눈을 감고 희열을 일으켰다.

가슴이 기쁨으로 넘친다. 온 세상이 나를 위해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 같다.

츠으으읏!

가슴이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솔직히 등여산은 기쁨 이외에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기운이 밀려든다는 느낌도 없다.

자신이 생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생기의 실체를 접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기쁨 속에 머물러 있으면 모든 게 다 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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