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五章 대적(對敵) (5)
홀리는 등여산의 말을 듣고 당장 진기를 일으켰다. 억지로라도 생기가 일어났을 때, 자신이 느꼈던 느낌을 재현해 볼 생각이었다. 등여산이 그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땅에 붙박인 느낌!
그래서 두 발을 땅에 박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용천혈에 진기를 주입했다. 강하게 두 발을 땅에 붙였다. 철판교(鐵板橋) 수법도 사용했다. 응조력(鷹爪力)을 응용해서 발가락을 매의 발톱처럼 오므려 땅을 콱 움켜잡았다.
쓰으으윽!
그녀의 몸은 여지없이 끌려갔다.
지금까지 행한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안 돼!’
홀리가 절망감에 피식 웃음을 흘릴 때, 그녀는 이상해진 등여산의 음성을 들었다.
- 생기를 일으켜야 해.
등여산의 음성이 이상하다. 미친 여자처럼 실실 웃으면서 말한다. 지금이 웃을 때인가?
홀리는 급히 등여산을 쳐다봤다.
맞다. 등여산이 웃고 있다. 그녀의 음성을 잘못 듣지 않았다. 웃으면서,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너무! 너무 즐거워한다.
‘희열!’
홀리는 그녀의 웃음 속에서 퍼뜩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지금까지 등여산이 소리친 것이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도 당장 깨달았다. 마치 엉킨 실타래가 확 풀리듯이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아주 맑고 또렷하게 알았다.
‘땅이 발을 잡아당겨야지, 발을 땅에 붙이려고 하면 안 돼. 땅이 일으키는 힘은 거대하지만, 내가 붙이는 힘은 진기의 영역을 넘지 못해. 그러니 호발귀가 강하지.’
자신이 맥없이 끌려가는 이유는 진기로 저항하기 때문이다.
호발귀는 무한 거력을 사용하고 있으니 그녀의 진기가 장난처럼 보일 것이다.
‘땅이 나를 붙잡아주면…… 날 누가 끌어당겨. 호발귀, 너도 안돼. 네가 아무리 강해도 땅보다 강할 수는 없잖아. 땅이 내 발을 붙잡고 놔주질 않아.’
생기를 처음 느꼈을 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어! 그러니 난 여기 붙박여 있어야 해.
이상하게도 몸이 매우 가벼웠다. 날개라도 달린 듯 어디든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땅이 두 발목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 구속, 그 결박이 너무 강해서 앞으로 평생 이 결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결박을 느껴야 해. 그래야 몸이 안정돼. 몸의 중심이 잡혀.’
홀리는 진기를 풀어버렸다.
현재 상황에서 진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호발귀가 끌고 가는 힘에 저항을 하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생기가 일어나는 것도 방해한다.
진기를 풀어버리고 두 다리를 땅에 맡겼다.
쓱! 스으윽!
홀리의 몸은 호발귀가 이끄는 대로 거침없이 딸려갔다.
그녀는 죽음이 코앞에 있어도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끌려가든 말든 관심이 없다는 투다.
그녀는 오직 땅만 생각했다.
‘땅이 끌어당기고 있어. 내 두 다리를.’
땅이 일으키는 결속, 결박만 생각했다. 다리를 붙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묶인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다리가 묶이니 몸도 움직이지 못한다.
철컥! 철컥!
두 발목에 철갑이 채워졌다.
쭈우욱!
호발귀가 그녀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땅이 그녀를 붙잡고 있다.
홀리는 눈을 떴다.
- 느낌은 곧 사라져. 한순간만 방심해도 사라져. 그러니 잘 지켜봐. 단단히 붙잡고 있어.
등여산이 노래하듯 살랑살랑 말했다.
‘이 느낌을 잃어버리면 안 돼.’
홀리는 등여산의 충고를 무시하지 않았다.
등여산은 도와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희열에 집중하고 있다. 그나마 말로 몇 마디 해주는 것이 최선이다. 어떻게든 두 사람에게 생기를 보여주려고 한다.
생기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다.
그들은 호발귀처럼 능숙하게 생기를 보지 못한다.
지금도 억지로 일으킬 뿐이지, 진기를 구사하듯이 자유롭게 사용하는 수준이 아니다. 호발귀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녀는 두 다리의 결박에 신경을 집중했다.
해자수가 질질 끌려가고 있지만,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두 다리는 이미 땅에 붙박여 있어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홀리는 용케도 등여산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생기를 사용했고, 호발귀에게 저항했다. 하지만 해자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못 한 채 질질 끌려갔다.
“해자수, 끌어당기는 느낌에 집중해요. 그냥 모든 걸 놔버려요. 믿어야 하는데. 믿어야 살아요.”
등여산은 어린애를 구슬리듯 다정하게 속삭였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해자수는 결코 생기를 일으키지 못한다.
등여산은 해자수가 왜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지, 아니 왜 못하는지 퍼뜩 눈치챘다.
홀리의 생기는 땅이다. 땅이 붙잡아 주는 결속이다. 다시 말해서 버티는 일이다. 그러니 망설일 것 없이 할 수가 있다.
끌려가지 않겠다는 마음과 버틴다는 일은 상통한다.
하지만 해자수의 생기는 추납이다.
추납을 제대로 시행하려면…… 무엇인가가 끌어당기는 대로 끌려가야 한다.
지금은 호발귀가 끌어당기고 있다. 네 목숨을 끊어버리겠다고 끌어당긴다. 그러니 그 속으로 뛰어들라고? 끌어당기는 힘에 전신을 맡기라고?
그 일은 아무도 하지 못한다.
호발귀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버티는 것만 해도 벅차다. 하물며 자신이 그 속으로 뛰어들면 단숨에 도륙된다. 몰라서 그러나? 호발귀는 검권 안에 들어선 사람을 살려두지 않지 않은가. 당장 죽으라는 말인가.
등여산의 말을 따르자면 해자수는 당장 하고 있는 저항을 거둬야 한다. 그리고 정반대의 행동을 해야만 한다. 죽음을 피하지 말고 죽음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에이씨. 이렇게 죽을 줄 알았다면 새끼나 잔뜩 퍼질러 놓을 것을. 에이 아깝네. 아등바등 발바닥에 불나게 뛰어만 다니다가 뒈지잖아. 제길!”
해자수가 툴툴 웃었다.
해자수는 눈치가 굉장히 빠르다.
홀리도 등여산도 꼼짝하지 못한다. 두 사람 모두 누구를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실, 호발귀에게 끌려가지 않고 버틴다는 것만 해도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그도 등여산이 한 말을 들었다. 그래서 책사의 말을 쫓아 생기를 일으켜 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는데…… 머리가 빙빙 돌았어. 너무 빨리 빨려 들어가서. 내가 뭘 하는지도 몰랐고. 그 정도로 빨려 들어가려면…… 지금 당장 저 검에 몸을 부딪쳐야 해. 이구!’
할 수 없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생기를 완벽하게 믿고 있지만, 차마 그 일만은 하지 못한다.
“휴우!”
해자수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
쉬이익!
바람 소리가 울리며 등여산이 바싹 다가왔다. 그리고 해자수의 옷깃을 잡아챘다.
팟! 파파팟!
그 순간, 다시 검기가 두 사람을 묶어 버렸다.
등여산의 생기는 움직임과 동시에 흩어졌다. 원래는 흩어지지 않는데, 호발귀가 후려친 것 같다.
등여산의 생기를 두들겼기 때문에 순식간에 흩어졌다.
등여산은 해자수와 함께 끈끈한 검의 올가미에 묶였다.
스읏! 슈우욱!
등여산과 해자수가 동시에 끌려갔다.
“뭐하러. 나는 괜찮은데. 책사까지 위험해 처할 필요가……”
“지금부터 내가 생기를 일으킬 거예요.”
끄덕! 끄덕!
해자수는 입 다물고 정신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생기, 기억해요?”
끄덕! 끄덕!
“그때 그 느낌으로 몸을 맡겨요. 호발귀에게 맡기지 말고 나한테 달려들어요.”
“책사님한테요?”
“내가 앞을 막을 거예요. 그러니 끌려가는 대로 몸을 맡기면 내게 부딪치게 돼요. 절대로 호발귀에게 부딪치지 않으니까 안심하고 몸을 던져요. 끌려가요.”
“아, 안 됩니다.”
해자수가 손사래를 쳤다.
그가 끌려가는 힘…… 그 힘은 그 어떤 힘보다도 강하고 빠르다. 번갯불보다도 빠르다.
환상 속에서 일어나는 빠름이라서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머리가 빙빙 돌 정도로 빨랐다.
그런 힘으로 부딪치면 등여산은 크게 다친다.
꼬리에 불붙은 황소가 달려오는데, 소를 잡겠다고 앞을 막아선다면 어떻게 되겠나. 단숨에 짓뭉개진다.
힘의 문제가 아니다. 항우장사가 앞을 막아서면 되지 않겠냐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어린애가 막아섰을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 정도로 자신이 끌려가는 힘은 강하다.
“제가 받아줄 수 있어요.”
“아니, 그게……”
“해자수님이 저 검에 죽으면 나중에 호발귀가 제정신을 차렸을 때, 살아갈 수 있겠어요?”
“나 같은 놈은……”
“해자수님!”
“휴우! 알았어요, 알았어. 까짓거 해보지 뭐.”
“시간이 없어요. 지금 바로 시작해요.”
등여산이 눈을 감았다. 순간 등여산의 입가에 아름다운 미소가 피어났다.
너무도 환한 미소다.
철없는 어린아이가 깔깔대며 웃는 그런 환한 웃음이 얼굴에 피어났다.
‘아! 아름답다! 예뻐!’
해자수는 현재 처지도 잊고 등여산의 웃음에 흠뻑 반해버렸다.
“해요.”
등여산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순간, 해자수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내가 이게 무슨 추태를. 웃음에 흘려서는…… 이구!’
해자수는 즉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생기 치료에 몰입했을 때 느꼈던 그 빨림을 생각했다.
확 잡아끄는 느낌!
머리가 빙빙 돌 정도로 빠르게 끌려 들어가는 느낌!
‘힘을 풀고……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야 그런 식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어.’
천운인가? 마침 호발귀가 또 두 사람을 끌어당겼다.
쭈욱!
항거하지 못할 힘이 두 사람을 훅 잡아당겼다.
하지만 해자수는 끌려가지 않았다. 앞에서 등여산이 끌려가는 것을 막아주었다.
해자수는 끄는 힘만 느꼈다.
물론 등여산이라고 편한 모습은 아니다. 그녀도 힘들게 버티고 있다. 그러면서도 입가에 웃음은 지우지 않는다. 아니, 더 희열에 들떠 있는 모습이 꼭 마약에 취한 것 같다.
해자수는 등여산의 이런 모습, 처음 봤다.
쾌락에 젖어서 풀려있는 눈, 하얗게 드러난 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 영락없이 춘약(春藥)에 취해서 욕정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홍기(紅妓)의 모습이다.
‘아! 위험해!’
해자수는 등여산의 모습에서 강력한 춘기(春氣)를 느꼈다.
환희에 젖은 등여산의 모습은 어떤 춘약보다도 강력하게 양기를 자극했다.
해자수가 은인문 출신이 아니었다면, 지옥에서나 겪을 인내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정신을 놓아버리고 등여산의 유혹 속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등여산은 지금 자기 모습이 어떤 식으로 보이는지 알지 못했다.
희열 속에 파묻힌다는 것이 얼마나 강렬한 유혹인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성녀(聖女)와 탕녀(蕩女).
해자수는 등여산에게서 두 모습을 동시에 봤다.
책사 등여산은 성녀의 모습이다. 맑고 깨끗하다. 너무 맑아서 흠이 날까 두렵다.
생기에 젖은 등여산은 탕녀를 방불케 한다. 예전까지는 이런 느낌을 전혀 받지 않았는데, 생기를 강력하게 일으킨 지금은 확실히 퇴폐적인 모습이다.
해자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호발귀가 잡아끄는 힘, 그 힘에 자신을 맡겼다.
쉐에엑!
그의 몸이 빠르게 끌려갔다.
해자수는 일부러 신형을 날리지 않았다. 끌려가려고 애를 쓰지도 않았다. 단지 몸에 힘만 풀었다. 저항하지 않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힘에 몸을 맡겼다.
슈우우웃! 파앗!
해자수는 등여산에게 와락 달려들어서 꽉 껴안았다.
그는 두 다리도 들어 올렸다.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달려들어서 와라 안기듯이 등여산에게 안겼다.
해자수는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오직 주변에서 일어난 힘에 몸을 맡겼을 뿐이다.
사실, 지금 그는 너무 강력하게 빨려드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툭!
해자수와 등여산을 묶었던 무형의 줄이 뚝 끊어졌다.
해자수는 빨려 들어가는 힘에 이끌려서 떼구루루 십여 장이나 굴러갔다.
해자수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얼굴이며 피부며 땅에 긁힌 상처로 가득했다.
등여산도 땅바닥에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곧 다시 일어나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활짝 웃는 얼굴로…… 부처가 띄었다는 염화시중의 미소를 베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