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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68화 (268/500)

第六十四章 초감(初感) (3)

“참응이 뭐야? 전서구 같은 건가?”

홀리가 하늘에 떠 있는 매를 보면서 물었다.

하늘을 선회하고 있는 매는 여느 매와 다르지 않았다. 땅에서 움직이는 쥐나 토끼를 노리는 것처럼 보였다.

“우두커니 설 참(站), 매 응(鷹). 마차가 역에 서듯이 고정된 장소에 서 있는 매라는 뜻이야.”

“매를 추격자로 쓰는 거야?”

“매는 시력이 뛰어나잖아. 사람보다 다섯 배에서 열 배까지 멀리 볼 수 있어. 하늘에 떠 있고, 시력도 좋고. 목표를 찾는 데는 아주 그만이지.”

“천살단에서 훈련한 거야?”

“참응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목표 한 점을 점찍어주는 훈련이야.”

등여산이 참응을 쳐다봤다.

”사실 이게 가장 어려운 건데, 나도 잘 몰라. 비보전만의 비밀이라서. 또 목표를 점찍어주면 매는 그 목표를 노리고 쫓아가. 하지만 매가 목표에게 덮쳐들지 않도록 조절을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매와 비보전 무인이 붙어서 살다시피 해야 해.”

“그럼 저 매에 주인이 있다는 거야?”

“매 한 마리에 비보전 무인 한 명. 십육비자 중 한 명. 현재 십육비자 중에서 참응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은 네 명뿐이야. 일비자, 육비자, 구비자, 십이비자. 그중 육비자와 구비자는 죽었어. 일비자는 이런 일에 동원될 사람이 아니고. 형옥주에게 부림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비보전주가 자리를 내놓으면 바로 이어받을 사람이거든.”

“그럼 구비자네.”

“맞아. 저 매를 부리는 사람은 십이비자야.”

“십이비자라는 사람, 알아?”

등여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해?”

“별로. 나하고 십육비자하고는 뭐 얘기할 게 있어야지.”

“하긴 그렇겠다. 너, 천살단에 있을 때는 매우 높은 신분이었잖아. 어딜 감히 십육비자 따위가. 그렇지?”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고.”

“호호호! 계집애, 농담이야, 농담. 넌 무슨 농담도 못 하냐. 얼굴이 새빨개가지고.”

홀리가 웃었다.

하지만 홀리의 말이 사실이기도 하다. 십육비자와 책사는 직위 차이가 크다. 십육비자는 등여산에게 얘기조차 하지 못했다. 만날 기회도 없었고.

등여산은 상당이 높은 위치였다.

그런데도 등여산은 천살단이 하는 일에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아니, 투입되지 않았다.

언제나 천살단주가 독단적으로 지시를 하면 끝이다.

그녀는 무림 정세를 파악하고 조언해주는 역할만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혈천방을 상대하기 위한 책사가 아니라 무림 판도를 파악하기 위한 책사였다.

“쉿!”

해자수가 급히 걸음을 멈추며 손가락을 입에 댔다.

등여산과 홀리는 즉시 걸음을 멈췄다.

해자수가 인기척을 제일 먼저 느꼈지만, 등여산과 홀리도 거의 동시에 파악했다.

후우! 후우! 후!

앞쪽에서 거친 숨소리가 울렸다. 천살단 무인을 추격하면서 많이 듣던 숨소리다.

“이것들이 벌써 쉬나?”

해자수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우리가 얼마나 달렸지?”

홀리도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대략 한 시진.”

등여산이 앞을 쏘아보며 말했다.

천살단은 등여산 일행보다 일다경이나 앞서서 치달렸다. 일다경이 뭔가, 거의 이다경 가까이 앞서 나갔다.

등여산 일행이 전력을 다해서 매를 쫓아왔으니, 천살단 무인은 거의 한 시진 반 만에 쉬는 셈이다.

“한 시진. 한 시진 반. 왜 벌써 쉬지?”

해자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예전 같으면 쉴 틈도 없이 거칠게 달려 나갔을 것이다.

“또 쉬네.”

“좀 많이 쉰다. 그지?”

“불안해.”

“그럼 앞질러 가야지, 뭐.”

두 여자는 의견을 같이했다.

“아! 이건…… 내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나? 여기도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고! 자고로 사람이 쉴 때 감각이 가장 예민해지는 법이라는 걸 몰라서 그러나? 조금 기다렸다가 저놈들이 움직일 때 제치는 게 더 편하다니까.”

해자수가 불쑥 끼어들었다.

해자수 말은 맞다. 무인은 쉴 때도 감각을 놓지 않는다.

주위가 조용하고, 움직임이 멎으니 감각은 더 예민해진다. 누군가가 불쑥 나타날 때를 항시 대비한다.

저렇게 가만히 앉아서 쉬고 있을 때가 움직일 때보다 더 위험하다.

저 중에 몇 명은 운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단전에서 일으킨 진기로 전신 감각을 쫙 끌어올린 상태다. 그러면 경계망이 두 겹, 세 겹으로 둘러쳐진 것과 똑같다.

“나중에, 나중에. 저놈들이 움직일 때. 아! 왜 일을 어렵게 할까?”

그러자, 홀리가 해자수를 보며 말했다.

“이번 일은 어떻게든 우리 좀 도와줘. 사실 나도 마음이 조급해서 미치겠어. 간신히 참고 있는 거 안 보여? 좀 도와줘. 지금은 없는 수단도 끌어내야 할 때야.”

“그 도와달라는 말이 내 입 다물라는 말이죠?”

“아니, 앞장서달라는 말이지.”

“아! 알았어. 알았어. 알았다고요.”

해자수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하지만 해자수는 이미 소매와 바짓단을 끈으로 묶는 중이었다.

혹여 풀잎에 옷자락이 쓸리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다.

저들을 뚫고 나갈 준비를 끝냈다.

스! 스! 스! 스!

지극히 조용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등여산은 천살단 무인들이 어디 소속인지 알지 못한다.

각 소속에 따라서 무인 특성이 있으니, 소속만 알아도 대처하기가 좀 쉬운데, 전혀 알지 못한다.

저들 모두 낯설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강하다.

천살단 무인치고 약한 자는 없지만, 그중에서도 강한 편이다. 굳이 말하자면 검벽이나 살단 무인 만큼이나 강하다.

도대체 어느 당, 어느 조직에서 저렇게 강한 무인들을 길러냈을까?

형옥 무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형옥 무인은 형옥에서 모두 절명했다.

스으읏!

해자수가 앞장서서 길을 열었다.

툭!

마른 나뭇가지 밟히는 소리가 울렸다.

세 사람은 동시에 멈췄다. 그들은 이목을 집중시켜서 천살단 무인을 지켜봤다.

천살단 무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방금 흘린 소리를 못 들었다.

“휴!”

등여산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무공이 강해졌지만, 이런 식의 움직임에는 익숙하지 않다.

태산파에서 무공을 수련할 때부터 잠행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다.

배울 이유가 없었다. 경쾌한 신법을 배우긴 했지만, 담장을 타거나 지붕 위를 뛸 생각은 없었다. 지금처럼 소리 없이 움직이기 위해서 수련한 것이 절대 아니다.

해자수가 등여산을 쳐다봤다.

등여산이 조심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으읏! 스읏!

그들은 시간을 충분히 들여가면서 천천히…… 천살단 무인들을 빠져나왔다.

참응이 꼼짝하지 않고 빙빙 선회한다.

참응은 혈마를 노려보고 있다. 그러니 참응이 선회한다는 것은 아직 혈마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젠 달……”

쒜에엑! 쉐엑!

해자수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두 여인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신형을 쏘아냈다.

“릴수 있…… 하! 또 이런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럴 땐 정말 기분 나쁘다니까.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야, 뭐야? 옛날에 누군 서방 하나 없어 봤나.”

해자수가 투덜거리면서 신형을 쏘아냈다.

천살단 무인들을 제치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이제는 마음껏 신형을 쏘아내도 발각되지 않을 것 같다.

또 발각되어도 무방하다. 애초 천살단 무인들을 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혈마를 찾기 위해서 쫓아왔을 뿐, 저들이 두려웠던 것은 아니다.

쒜에에엑!

해자수가 신형을 쏘아내자,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렸다.

슷!

앞으로 치달리던 등여산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홀리도 해자수도 동시에 멈췄다.

“왜?”

홀리가 물었다.

“더는 위험해.”

등여산의 말에 홀리가 즉시 전신 감각을 이끌어서 주변 기운을 읽었다.

츠으읏!

진기가 극성으로 피어났다.

“아!”

홀리가 나직이 탄성을 흘렸다.

그렇다. 호발귀의 기운이 느껴진다.

호발귀의 기운…… 그것은 진기로 느끼는 어떤 기운이 아니다. 감각으로 전해지는 느낌도 아니다. 예감 같은 것도 아니고…… 뭐라고 할까? 어떤 확신이다.

앞에 호발귀가 있다는, 호발귀라는 인간의 존재감이 확실하게 가슴 속에 들어온다.

“가만 이게……?”

해자수도 침음했다.

정말 묘한 기분이다. 호발귀를 전혀 느낄 수 없는데, 그가 앞에 있다는 느낌이 일어난다.

갑자기 다가온 횡액을 용케 피했을 때, ‘조상님이 돌보아주시고 있구나’하고 느끼는 그런 안도감이 일어난다. 안도감? 맞다. 안도감이다.

호발귀가 앞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불쑥 일어난다.

호발귀와 홀리가 느끼는 그 느낌, 안도감을 해자수도 느꼈다.

“이 감정…… 뭐지? 이게 뭐죠?”

해자수가 홀리를 보며 물었다.

일반인이라면 무심이 지나쳐버렸겠지만, 그들은 무인이다. 몸에서 일어나는 감정, 느낌 또는 지금과 같은 확신 혹은 안도감을 구분해 낼 줄 안다.

“호발귀가 말하는 생기일 거야.”

“가만! 그럼 우리도 그걸 느끼는 겁니까?”

“아니. 호발귀처럼 가지고 놀 정도는 아니고, 호발귀가 워낙 강력하게 발산하고 있어서 느끼는 거지. 다른 사람에 비해서 우리는 이런 기운에 익숙해 있잖아.”

형옥에서 무의식중에 호발귀의 생기를 받아들인 것처럼, 생기를 감지하는 통로가 열려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쉽고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지금은 익숙한 느낌이나 기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럼 요 앞에 호발귀가 있는 게 맞네요?”

“그럴 거야.”

“이제 어떡하죠?”

“앞으로 나가야지.”

등여산이 말했다.

“그래. 호발귀가 앞에 있으니 가서 만나야지. 너흰 여기 있어. 내가 먼저 가서 보고 올게.”

홀리가 앞장서려고 했다.

조금 전, 등여산은 모두에게 위험하다면서 걸음을 멈췄다.

맞다. 앞으로 가면 호발귀가 눈치챈다. 앞에 있는 자는 호발귀가 아니라 혈마다. 등여산이나 홀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을 보는 즉시 손을 쓸 것이다.

호발귀가 공격하면 두 여인은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즉사한다. 어쩌면 마을 사람들을 죽였듯이 자기 부인도 검 앞으로 끌어들여 죽일지 모른다.

누구도 호발귀 앞으로 나설 수 없다.

앞으로 나서려는 홀리는 등여산이 잡았다.

“아니, 이건 내가 해. 내가 갈게.”

“내가 간다니까!”

“아니. 내가 가.”

“참 철없이 구네. 조용히 좀 있어.”

“난 혈마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어. 음문촌에서는 혈마를 꾸준히 연구했잖아. 호발귀를 혈마에게서 끄집어낼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야. 난 없어도 그만이지만 너는 꼭 있어야지 해. 그러니 너야말로 철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남아있어.”

“큿! 이게 어디서 쉰 소리를 하고 그래? 음문촌에서 연구한 혈마는 호발귀 상태가 아냐. 완전히 엉뚱한 거야. 너도 알잖아? 구혼음소도 먹히지 않고, 귀색혼령대법, 귀색무. 어느 것 하나 먹혀들지 않아. 뭐 하나 내세울 게 있어야지. 지금은 너나 나나 똑같아. 잘 알면서 왜 이래? 호발귀가 나보다는 널 더 아낀다는 건 만천하가 다 알아. 그러니 남아 있으라고.”

“내가 첫 번째야.”

“뭐?”

“내가 첫째 부인, 네가 둘째. 이건 우리 서로 인정하기로 했지? 그럼 내가 어른이야. 어른 말 들어.”

“치사하게 서열 따질 거야!”

“지금은.”

“야!”

홀리가 부지불식간 소리를 빽 질렀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서 주위를 살펴봤다.

다행히 듣는 사람이 없다. 천만다행이다.

천살단 무인들이 듣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은 백 명이 있어도 두렵지 않다. 호발귀가 듣는 게 문제다. 그가 들으면 당장 사달이 난다.

요행히 홀리의 음성은 바람 소리에 묻혀버렸다.

“홀리. 정말 내가 갈게.”

등여산이 홀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쳇! 알았어. 가. 대신 조심하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느껴지면 바로 뛰쳐나와. 알았지?”

“알았어.”

“계집아!”

홀리가 떠나려는 등여산을 잡아챘다.

“만약 너 호발귀한테 일 당하면 나 역시 호발귀 곁에 있지 못해. 우리 셋, 같은 운명이야. 정말 조심해.”

등여산이 피식 웃었다.

“알았어. 정말 조심할게.”

스으읏!

등여산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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