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四章 초감(初感) (1)
마공관주는 단주의 부름을 받았다.
“후후! 드디어.”
마공관주는 쓴웃음을 흘렸다.
이 일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비보전주가 형옥에 갇힌 괴마를 풀어주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일이 이렇게 될 줄 짐작하고 있었다.
“차 들지.”
단주가 마공관주에게 차를 권했다.
“네.”
마공관주는 단주가 권하는 차를 마셨다.
단주가 권하는 차는 늘 상쾌했다. 입안을 개운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마음도 시원하게 씻어주었다. 하지만 오늘 마시는 차는…… 왠지 텁텁하기만 하다.
“비보전주가 이번엔 나름대로 일을 만들었어.”
“네. 들었습니다.”
“딱 예상했던 그대로야. 비보전도 방법 좀 바꿔야지. 이렇게 빤히 수가 읽혀서야. 쯧!”
천살단주가 혀를 찼다.
“그런데 괴마는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겁니까? 괴마 같은 자가 어떻게 저희 천살단에 있을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내위당주는 뭐 하고 있었던 건지.”
마공관주가 차를 마시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충분히 이번 일을 걱정한다는 표정이다.
아니다. 사실 마공관주가 이런 말을 한 것은 괴마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안다는 뜻이다. ‘바로 당신이 관여한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을 넌지시 던진 것이다.
한 마디로 당신의 약점을 알고 있으니 당신도 나한테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있는데, 그런 일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픈 말을 하는군.”
천살단주가 손으로 턱을 만지면서 말했다.
“제 의문이 곧 중원 무림의 의문이지 않겠습니까?”
“음!”
단주는 턱만 만질 뿐 가타부타 말을 잇지 않았다.
마공관주는 차만 마셨다. 자신이 할 말은 다 했다.
이제 단주가 결정을 내릴 차례다. 전쟁을 벌일 것인지, 타협을 할 것인지. 단주는 틀림없이 타협을 제안해 올 텐데.
그때, 단주가 입을 열었다.
“마공관주.”
“네.”
“지금…… 우리가…… 우리 심장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면 어떻게 되겠나?”
“네?”
“지금 관주는 우리 안에 있는 누군가에게 칼을 겨누고 싶은 건가?”
‘전쟁!’
마공관주는 일시 말문이 막혀 대답하지 못했다.
천살단주의 뜻이 완강하다. 막는 자는 부러트릴 기세다.
천살단주의 음성은 매우 포근하지만 진한 살기가 감지된다. 아주 심하게 화를 내는 중이다.
옛날 모습 그대로, 천수신검이라는 별호 그대로 가로막는 자는 거침없이 베고 나가던 모습 그대로, 유음검문의 잔인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단주는 밀고 나갈 셈이다!’
마공관주가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말이 통하는군.”
“역시 그런 겁니까?”
“관주, 잠시만 쉬지.”
천살단에서 잠시 쉬는 것은 없다.
누군가가 어떤 지위에 오르면 그 지위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 수하들을 장악하는 것도 아주 큰 문제 중에 하나다. 일단 자신의 틀에 맞게 수하를 장악해 냈는데, 선임자가 왔으니 다시 자리를 내어준다?
그 말은 맞지 않는다.
단주의 말은 잠시 쉬라는 게 아니라 이번 일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뜻이다.
천살단주가 말했다.
“이번 일은 관주가 손해를 좀 봐야겠어. 좀 쉬고 있으면 더 좋은 위치로 불러줄 테니까.”
“……”
“지금까지 날 믿어 왔잖아. 이번에도 믿어봐. 내가 언제 내 사람 버리는 사람이던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단주의 부름을 받았을 때부터 그의 대답은 정해진 거였다.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없다.
“그래. 그럼 관주가 이해해 주니 편하게 일을 진행하도록 하지. 내일 비보전에서 각 문파에 통문을 보낼 걸세.”
슷!
천살단주가 책상 서랍에서 서신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단주 뒤에 시립 해 있던 검벽 무인이 서신을 집어서 마공관주에게 건네주었다.
‘늙은 구렁이.’
마공관주는 착잡한 심정으로 서신을 읽었다.
서신의 서두는 괴마로 시작한다.
괴마는 혈천방 공봉(供奉)이다. 혈천방과 함께 혈마 재현에 주력해 온 마인이다.
괴마와 혈천방은 오랫동안 공을 들인 끝에 마공관 침투에 성공했다. 마공관 마서를 이용해서 혈마를 만들어냈으며, 혈마를 이용해서 혈겁을 일으켰다.
소문은 거의 사실이다.
하지만 혈마가 염창촌에서 일으킨 혈겁이 첫 번째 혈겁은 아니다.
혈마 혈겁은 예전에도 있었다. 은사곡과 귀문이 혈마에게 초토화되었다.
혈천방은 혈마를 시험하는 무대로 자신들의 귀문을 이용했다. 향후, 귀무살로 키워질 무인들이 혈마에게 척살 당했다. 혈마는 굉장한 무력을 지녔다.
거기서 자신을 얻은 혈천방은 혈마를 중원 무림에 투입했다. 하지만 투입 초기에 천살단 무인들에게 발각되었고, 첫 번째 교전이 염창촌에서 벌어졌다.
불행히도 천살단이 뒤늦게 도착해서 혈겁을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계속 추격 중이다.
염창촌 혈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서로 간에 교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전이 없었다면 은사곡이나 환산만 혈겁처럼 소리소문없이 묻혔을 것이다.
이에 천살단은 마공관 책임자인 마공관주와 상위 책임자인 천원주가 지난 일에 책임을 지고 사임한다.
현재 천살단은 마공관을 폐쇄했다. 마공관 마서는 모조리 불태웠고, 두 번 다시 마공관을 설치하지 않는다.
혈마를 재현은 괴마는 추격해서 참살했다.
괴마의 머리는 왕옥산(王屋山)에 단을 설치하고 효시해 놨으니 직접 확인하라.
천살단은 이번 일에 엄중한 책임을 느끼며 혈마가 척살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추격하겠다.
장문의 서신이다.
이 서신이 중원 각 문파에 전달될 것이다. 사실상 중원 천하에 천살단의 무고함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미 비보전과 세작전을 통해서 도둑 소굴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알려지고 있다. 도둑 소굴에서 탈출한 사람이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상세하게 말한 탓에 소문이 빠르게 번지는 중이다.
거기에 이런 통문까지 발송되면 예전 소문은 씻은 듯이 감춰진다.
여기서 한 사람, 영웅이 되는 사람이 있다. 형옥주다. 형옥주는 혈마를 추격하는 최전선 인물이 된다.
형옥주는 곧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기쁨의 감격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비록 많이 늦었지만, 비로소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 터이니까.
“알겠습니다. 수긍하겠습니다.”
마공관주가 머리를 숙였다.
* * *
“이거야 원!”
도천패는 혀를 찼다.
하오문에도 천살단 통문이 전달되었다.
하오문에 전달된 통문은 빠르게 필사되어, 각 지부에 전달되었다. 이미 소문을 내고 있던 많은 사람이 통문을 읽었고, 소문내는 일을 중지했다.
당연히 도천패도 통문을 읽었다.
천살단은 소문의 일부를 깨끗하게 인정했다.
인정함으로써 의문을 해소했다. 맞는가? 맞다. 본인이 ‘맞다’라고 시인한다. 그러면 다음은 ‘왜?’라는 물음이 들어간다. ‘어떻게 그런 일이!’라고 묻는다.
여기서 천살단은 죄를 괴마에게 뒤집어씌웠다.
도둑 소굴 사람들의 증언과 괴마의 머리가 모든 게 사실이라고 증명해 준다.
괴마가 마검법을 사용했다. 마공관에 소장된 마공이다. 마공관에 침투해서 비급을 빼낸 일이 사실로 증명되었다.
천살단은 괴마가 침투한 경로까지 상세히 설명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괴마가 마공관에 침투했다는 사실이 크게 부각되었다는 게 중요하다.
사실 괴마는 정사마 어느 쪽 인물도 아니다.
워낙 괴이한 행동을 많이 해서 괴마라는 별호가 붙었지만, 마도 쪽 인물은 아니다. 그는 정사마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혈마 재현에만 몰두한 광인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괴마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안다.
괴마가 혈마에 미쳤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반인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인은…… 웬만큼 나이가 있는 무인은 모두가 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괴마가 혈마를 재현시켰다는 말은 그 어떤 말보다도 강력하게 먹힌다.
모두가 괴마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괴마 정도로 미쳤다면 어떤 형태든 혈마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본다.
더욱이 혈천방 도움을 받아서 마공관까지 침투했다? 생각할 것도 없다. 그 정도면 확실히 만들어냈다.
괴마의 얼굴을 아는 사람도 있다.
그중 일부가 왕옥산에 가서 효수된 머리를 봤다. 진짜 괴마의 머리이니 틀릴 리 없다.
방부 처리를 해서 얼굴색이 변색했지만, 모습은 틀림없이 괴마다.
백이면 백 모두 괴마가 맞는다고 증언한다. 앞뒤가 척척 맞아 들어간다.
괴마가 혈천방에 적을 뒀을 리 없다. 하지만 이 사실도 맞아 들어간다.
천살단은 은사곡과 환산만 사건을 언급했다.
호발귀가 죽을힘을 다해서 부셨던 혈천방 귀문이다. 귀문 일곱 군데 중 두 곳이다.
천살단은 그 사건을 혈마가 일으킨 혈겁으로 둔갑시켰다.
사실 은사곡 혹은 환산만 인근 주민들은 그곳에서 벌어진 혈겁을 알고 있다.
하늘을 뒤집어 버린 폭발, 폭음, 세상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린 독기.
그 사건 이후, 환산만과 은사곡은 사람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죽음의 땅이 되었다. 발을 딛는 자는 어김없이 죽는 아주 두려운 땅이 된 것이다.
그 누구도 그곳에는 발길을 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 사건을 혈마가 만들었다.
이 정도로 증거를 내밀면 믿을 수밖에 없다.
천원주와 마공관주가 사임까지 했으니 더 믿을 수밖에 없다.
염창촌 혈겁은 당연히 혈마가 저질렀다. 천살단과 전혀 상관없는 혈마가 살인했고, 천살단은 그런 혈마를 제지하고자 계속 추격하고 있다.
앞으로도 혈겁은 계속 벌어진다. 혈마, 그 미친놈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데 말릴 방법이 없지 않나. 누가 이런 일을 벌였지? 혈천방과 괴마다.
앞으로 벌어진 혈겁을 보고 천살단을 욕할 사람은 없다.
혈마가 그렇게 간단한 자는 아니지 않나. 아무리 천살단이라고 해도 혈마를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천살단이 큰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하고 염려할 것이다.
“우리는 소문낼 만큼 소문내줬고. 이 사건은 여기서 덥지?”
하오문주가 말했다.
하오문주는 중후한 중년인이다. 기녀나 마부, 배수들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묵직한 싸움꾼 모습이다.
투심문이 일인 문파가 아니라 여타 배수문파였다면 문주로 모셨어야 할 사람이기도 했다.
“무슨 말씀을 하세요? 낸 돈이 있는데, 돈값은 해주셔야죠. 계속 소문을 내주세요.”
당홍이 말했다.
“우리가 낸 소문하고 이 통문하고 배척돼. 이 통문을 무너트릴 소문이 아니라면 여기서 접는 게 좋지. 이 통문을 뒤집을 만한 증거가 있나? 있으면 계속 일해주고.”
당홍도 입을 다물었다.
누가 생각해도 천살단이 내민 증거가 소문보다도 더 확실하다.
“아쉽다는 건 알겠는데, 여기서 더 손대면 우리가 죽어. 이번 거래는 재밌었고, 다음에 또 좋은 건 있으면 가지고 오라고. 이번에 마무리 못 한 것도 있으니까, 다음에는 좀 싸게 해주지.”
하오문주가 피식 웃으면서 일어섰다.
도천패는 하오문주를 잡지 못했다.
사실, 하오문은 더 할 게 없다. 하오문주의 말이 백번 맞다.
천살단이 직접 해명한 이상, 여기서 더 나아가면 그다음은 소문의 진원지를 찾게 된다.
결국 천살단은 하오문을 알게 되고, 하오문도가 소리 없이 죽어 나갈 것이다.
일을 더 진행하면, 이후부터는 하오문도 역시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하오문주가 재빨리 손을 터는 것이다. 천살단과 엮이면 아주 끝이 좋지 않으니까.
“나는 천살단으로 가봐야겠어. 천원주께서 사임하셨다는데, 그냥 사임했을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일이 있는지 직접 알아봐야지. 큰 힘은 안 되겠지만.”
밀운이 말했다.
“위험할 텐데.”
“우리 하는 일치고 위험하지 않은 일이 있었나, 어디. 후후!”
밀운이 웃었다.
도천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도 홀리와 합류를……”
“아니. 안 돼. 우리는 움직이지 않아.”
당홍이 말했다.
“우린 여기 조금 더 남아있는 게 좋겠어. 책사도 이 통문을 알게 될 거야. 그러면 곧 뒤집을 방법을 마련해서 줄 텐데, 바로 그 일을 하려면 하오문을 잡고 있어야 해.”
“후후! 당매, 하오문은 손 털었어. 저놈들, 손 턴 일은 두 번 다시 안 해.”
“누구 마음대로? 호호호! 하오문, 처음부터 우리 소문이 천살단과 관계있다는 것을 알았잖아? 하오문주 말이야. 자기 딴에는 적당한 선에서 손을 떼면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우리랑 손잡은 이상 쉽게 못 빠져나가. 하오문도 피를 흘릴 때는 흘려야지. 돈 많이 줬잖아. 그렇다면 조금 더 잡고 있어야지.”
당홍이 웃으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