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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65화 (265/500)

第六十三章 풍문(風聞) (5)

괴마는 행랑에 들어있던 건포를 질겅질겅 씹어 먹었다.

‘이거 왜 이러지? 걸신들렸나?’

괴마는 미간을 확 찡그렸다.

갈 길이 바쁜데…… 곧 천살단 무인들이 쫓아올 텐데, 어처구니없게도 배가 고프다.

행랑에는 건포가 넉넉하게 들어있었는데,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 입안에 건포 특유의 비린 고기 맛만 가득 맴돌 뿐, 뱃속이 계속 헛헛하다.

‘건포라서 그런가? 아닌데? 건포도 배가 부르는데.’

사실 건포는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 게 아니다. 공복을 달래기 위해서 먹는다. 하지만 영양은 충분해서 빠르게 움직여도 지치지 않는다.

괴마는 뜬금없이 밥이 무척 먹고 싶었다. 아니, 나물도 땅겼다. 건포가 아니라 진짜 고기도 먹고 싶었다. 금방 삶아낸 국수는 어떤가?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모를 맛이지 않나.

이상할 정도로 식탐이 강하게 일어났다.

‘헛!’

괴마는 무심이 건포를 씹어먹다가 깜짝 놀라서 먹고 있던 건포를 들여다봤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갑자기 속에서 부글부글 열불이 치솟았다.

그는 왜 식탐이 끊임없이 치솟는지 이유를 짐작했다. 지금은 막연히 추측하는 것뿐이지만,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제길! 아! 이런 개부랄 같은 일이!’

괴마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식탐을 모르는 사람이다. 오로지 사마 만드는 일에 전념해 왔기 때문에 먹는 것에는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어떤 때는 이틀 내리 굶은 적도 있다. 그래도 몰두하는 것이 있어서인지 전혀 배고프지 않았다.

너무 굶어서 현기증이 치밀 때, 겨우 몇 술 뜨는 것, 괴마에게 식사는 그런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끝도 없이 식탐이 일어난다. 음식을 먹고 싶다.

천살단에 이런 독이 있다.

마공관 마참지에서 죄인을 고문할 때 사용하는 독 중 하나다. 머릿속에 든 것을 토설시킬 때,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물론 직접 본 것은 아니고 말로만 전해 들었다.

아귀풍미단(餓鬼瘋米丹)!

배고파서 밥을 보면 미치는 단약!

아귀풍미단을 복용하면 끊임없이 먹게 된다. 과식, 폭식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배가 터질 정도로 먹으면 토하고 다시 먹기 시작한다. 그래도 배가 고프다.

사람을 그런 상태로 만든 후, 그 앞에서 닭도 굽고 돼지고기도 튀긴다.

이미 병에 걸려버린 자는 미치고 환장한다.

마참지에는 치가 떨리는 고문법이 많이 있다. 살이 썩고 남은 뼈마저 태워버린다는 고골승천법, 세근까지 갈가리 찢어버리는 사근멸지법, 독으로 고통을 주는 팔독법……

아귀풍미단 역시 그런 고문 수법에 비해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쇳덩어리를 불에 달궈서 살을 지지는 것보다 더 강렬하게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단언컨대 웬만한 고문보다 훨씬 뛰어난 고문 수법이다.

괴마는 자신이 비보전주의 계략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크크큿!”

괴마는 키득키득 웃었다.

천살단주…… 천살단 단주라는 놈이 굉장히 간악하지 않은가. 혹여 자신이 사마에 대해서 뭔가 숨겨놓은 것이 있을까 봐, 이런 식으로 토설시키려고 하나?

아니면 이렇게 식탐을 일으킬 이유가 뭔가!

‘아냐. 사마 문제가 아냐. 뭔가 있는데……’

괴마는 움직이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려고 했다. 건포에 섞인 아귀풍미단까지 복용한 마당이니, 섣불리 움직이면 아주 큰일 난다. 잘 생각해보고 움직여야 한다.

‘정말로 놈이 원하는 게……?’

머릿속으로는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알아내려고 하는데, 정작 몸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섰고, 민가를 향해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었다.

“끄으윽!”

신음이 흘러나왔다.

음식 냄새가 풍긴다. 밥 짓는 냄새가 너무 구수하다. 미치겠다. 저 밥을 먹고 싶다.

‘가면 안 돼! 저건 함정이야! 가면 당한다!’

괴마를 혀를 내밀어서 꽉 깨물었다.

혀가 얼마나 아픈 곳인가. 신경이 밀집되어서 조금만 깨물어도 눈물이 솟구칠 만큼 아픈 곳이지 않나. 그런 곳을 깨물면 잠시 식탐을 참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괴마는 혀를 꽉 깨물지 못했다.

혀를 깨물려는 순간, ‘뭐하러 참아? 가서 먹으면 되지. 먹고 싶잖아?’ 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괴마는 구수한 음식 냄새에 이끌려서 정신없이 달려갔다.

민가에서는 잔치를 벌이는 듯 온갖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고기를 기름에 튀겨내고, 굽고, 채소를 볶고, 밖에 걸어놓은 솥에서는 밥이 익어가고…… 국수를 삶아서 광주리에 올려놓은 것까지…… 전부 먹고 싶었다.

휘청! 휘청!

괴마는 정신없이 음식 냄새가 풍기는 곳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서너 명 정도 있을 줄 알았는데, 무더기로 있다.

“큭큭큭!”

괴마는 괴소를 토해냈다.

그의 웃음 속에는 살기가 가득 배어 나왔다. 두 눈에서도 흉흉한 살광이 쏟아졌다.

‘저놈들 다 죽여야 해.’

괴마는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비보전주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천살단주가 무엇인가를 시켰을 텐데…… 하지만 놈들이 원하는 대로 순순히 끌려들어 가면 재미 없다. 내가 원하는 쪽으로 끌어내야 한다.

일단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천살단이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게 은밀히 움직이는 것이다. 자신을 본 사람은 싹 죽여서 눈과 입을 닫아 버린다.

스릉!

괴마는 검을 뽑자마자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족족 검으로 쳐내기 시작했다.

쒜에엑!

“크아아악!”

비명이 처절하게 울렸다.

비보전주가 함정을 팠다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혹시 이곳 마을 사람 중에 천살단 무인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있으면 어떤가? 조무래기들 정도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로 부딪쳐보니 무인이 없다. 하나같이 일반 양민들 뿐이라서 펑펑 나가떨어진다.

“크크크큭!”

쒜에에엑!

괴마는 더욱더 거세게 몰아쳤다.

순식간에 양민들이 죽어 넘어갔다. 개중에는 검이나 칼 같은 것을 들고 달려드는 자도 있었지만, 괴마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저 힘만 믿고 날뛰는 무리일 뿐이다.

잠시 후, 마을은 깨끗이 정리되었다.

산 사람은 없다. 이곳을 봐도 시신, 저곳을 봐도 시신뿐이다.

“크크큭! 크크큭!”

괴마는 정신없이 음식들을 주워 먹기 시작했다. 사방에 널려있는 게 음식이었다.

“끄으윽!”

배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계속해서 먹었다. 잠시도 먹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쉬이잇! 쉬익!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괴마 주위로 천살단 무인들이 내려섰다.

괴마는 밥이 든 솥을 잔뜩 끌어안고 퍼먹고 있다가 그들을 보고 키득키득 웃었다.

“크크큭! 크큿!”

입안에 가득 물고 있던 밥알이 웃을 때마다 밖으로 튀어나왔다.

“뭐야? 이거 완전히 밥버러지잖아?”

나타난 자 중의 한 명이 인상을 찡그렸다.

괴마는 놀리는 듯한 말을 귓가로 흘리며 사방을 쏘아봤다. 이들 외에 또 다른 자가 있을까 싶어서.

있다! 상당히 많은 자들이 있다.

‘어? 저놈들?’

괴마는 잠시 당황했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인 줄 알았는데, 아직 죽이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마을 곳곳에 숨어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 두 눈에 공포를 안고.

식탐에 휘둘려서 미처 숨어있는 사람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나름대로는 찾는다고 찾았지만, 사람을 찾기보다는 먹는 것이 급했다. 냄새가 워낙 강렬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사람이 없으니 다 죽었다고 생각하지, 누가 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할까.

대단한 실수다. 보통 같으면 저지르지 않을 실수다.

실수하고도 실수한 줄 몰랐다. 아귀풍미단에 중독되면 이렇게 된다.

괴마는 재빨리 나타난 자들의 무공 수위를 살폈다.

놀라울 정도로 강하지도 않지만 무시할 만큼 약하지도 않다. 딱 천살단 무인이다.

“킥킥! 킥!”

괴마는 키득키득 웃었다. 일부러 웃음을 흘렸다. 그들을 무시한다는 듯이.

이렇게 찾아오면 순순히 목숨을 내줄 줄 알았나? 어림없다.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지.

쒜에에엑!

괴마는 들고 있던 솥을 앞에 있는 자에게 휙 던졌다. 아주 강렬하게, 피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거세게 던졌다. 그리고 재빨리 검초를 전개했다.

쒜에에엑!

검광이 번뜩이자, 상대방은 움찔거리면서 물러섰다.

“마령삼광(魔靈三光)!”

상대방이 괴마의 검초를 알아봤다.

무엇보다도 정면으로 괴마의 검초를 받지 못했다.

비록 괴마가 중독되었지만, 아직 검초는 녹슬지 않았다. 십육비자가 받아내기에는 위험한 부분이 많다.

순간적으로 포위망이 뚫렸다.

괴마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뻥 뚫린 포위망을 통해서 냅다 도주했다.

“쫓아!”

“잡아.”

뒤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렸다.

“크크크크! 크크!”

‘쫓아와 봐! 이 새끼들아! 다 죽여버릴 테니까!’

괴마는 정신없이 도주했다.

“마령삼광…… 꽤 강한데?”

“쉽게 봤는데, 마검법이 상당해. 저 정도는 단주님과 비슷하지 않을까? 수를 써야겠는데.”

“그럼 쓰지 뭐.”

십육비자는 유유히 괴마를 쫓아갔다.

괴마가 들이친 곳은 산적들의 소굴이다. 오비자가 산적을 매수해서 음식을 준비시켰다.

산적들은 소탕되었다.

괴마도 잡고, 산적도 소탕하는 일거양득의 계획이다.

하지만 산 사람이 있다. 산적은 죽었지만, 그들의 식솔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들이 괴마가 하는 짓을 봤다.

저놈이 또 오기 전에 도주해!

그 한마디면 마을 사람을 밀어내기에는 충분했다.

마을 사람들이 어디로 갈까? 우선 당장은 아랫마을로 간다.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모두 말할 것이다.

천살단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정신광란자를 쫓고 있다고. 그리고 천살단 무인들이 외친 ‘마령삼광’이라는 말을 퍼트릴 것이다. 정신착란자가 마령삼광이라는 마공관 마검법을 사용했다고.

“하악! 학!”

괴마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폭식증이 가셨다. 미친 듯이 먹고 싶다는 마음도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자 증세가 사라졌다.

확실히 약 중독이다.

‘천만다행!’

괴마는 한숨을 쏟아냈다.

쫓아오던 자들도 다 떨어냈다.

놈들도 빨랐지만 괴마는 정말 빨랐다. 사마를 무공을 주입하면서 마공관 무공을 많이 섭렵했다. 그러니 천살단이 마공관 마공을 사용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마령삼광? 내 검법이 마령삼광이라고? 미친놈들. 눈깔이 삐어도 단단히 삐었지.’

괴마가 마령삼광 마검법을 알지 못한다. 그가 구사한 검초는 절환검법(絶環劍法)이라는 것이다. 그다지 이름난 검법은 아니다. 몸에 익어서 부지불식간 튀어나왔을 뿐이지.

하지만 지금은 정신이 온전하다. 놈들이 또 나타나면 이제는 정말 마공관 마공을 사용할 생각이다.

원래 괴마는 무공에 재능이 없었다. 하지만 사마를 만들 정도로 무공에 대한 이해는 깊었다. 그런 괴마가 이 정도로 날뛸 수 있는 것도 크나큰 발전을 한 셈이다.

괴마는 흐르는 개울물에 머리를 박고 꿀꺽꿀꺽 물을 삼켰다. 물을 많이 마셔서 몸속에 남아 있는 아귀풍미단의 독기를 말끔히 씻어내려는 거다. 한데,

스으으읏! 스읏!

어느새 주위로 천살단 무인들이 내려섰다.

벌써 꼬리를 잡혔다. 포위당했고, 벌써 공격 준비를 끝냈다.

이들의 무공은 괴마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천살단 어디 소속이냐?”

“비보전.”

“비보전? 그럼 너희 애새끼들이 십육비자인가 뭔가 하는 족제비들이야?”

“족제비라는 말은 처음 듣고.”

스읏! 슷!

십육비자가 검을 겨눴다.

“내가 그렇게 만만할 줄 알아!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들이!”

괴마도 검을 쳐들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공관 마공을 쓸 참이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일어났다.

쒜엑! 쒜에엑!

“흥!”

괴마가 비웃음을 흘리며 재빨리 등 뒤를 향해 검을 쳐냈다.

하지만 그가 쳐낸 검은 빈 허공만 휩쓸었다 등 뒤에서 일어난 파공음은 허초, 그의 주위를 돌리려는 속임수였다.

‘웃!’

괴마가 화들짝 놀랄 때, 사방에서 소리 없이 다가온 검이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쒜엑! 쒜에엑! 쒜엑! 쒜에엑!

살이 팬다. 피가 튄다.

괴마가 알고 있는 무공은 비급 상의 무공에 불과했다. 괴마는 사마를 만드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다. 무공은 많이 알지만, 실전 경험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아니, 너무 오랫동안 싸워보지 않았다.

그가 제대로 무공을 펼치지 못한 데는 천살단주의 혈도 제압도 한 몫 단단히 했다. 천살단주의 점혈법이 혈 몇 군데를 막고 있어서 진기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십육비자의 검이 몸을 뚫었다.

“끄으으윽!”

괴마가 비명을 쏟아내며 털썩 쓰러졌다.

검이 다시 호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그리고 괴마의 머리를 땅에 툭!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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