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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64화 (264/500)

第六十三章 풍문(風聞) (4)

소문을 잠재워라!

비보전주에게 떨어진 엄명이다.

비보전 하면 제일 먼저 십육비자가 떠오른다. 그들은 목숨을 내놓고 중원 각지에서 암약하고 있다. 주로 정보를 취득하는 일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암살도 수행한다.

비보전은 천살단의 눈과 귀이기도 하다.

중원 각지에서 보내온 전서구를 관리한다. 정보를 담당하는 중요 기관인 셈이다.

세작전도 비슷한 일을 한다.

비보전이 중원을 활보하면서 활달하게 활동한다면, 세작전 세작은 특정 문파에 잠입해서 조용히 활동한다.

비보전이 자유분방한 세작이라면, 세작전 세작은 고정을 붙박여서 세작 활동을 한다. 위장 잠입한 세작이다.

그러니 비보전과 세작전이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비보전 십육비자는 여섯 명이 죽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열 명뿐이다. 그중 네 명이 중원에 나가 활동 중이다.

사라진 혈천방과 귀무살을 쫓고 있다.

천살단에 남아있던 여섯 명은 비보전주가 회합을 마치고 돌아오자 즉시 모여들었다.

“소문을 잠재우자.”

비보전주가 말했다.

앞뒷말 모두 잘라버리고 대뜸 본론부터 말했다.

“전주, 그렇다면 먼저 사실부터 알아야겠습니다. 이 소문 굉장히 황당한데, 사실입니까?”

일비자가 물었다.

“사실로 추측된다.”

비보전주가 모두를 쳐다보며 말했다.

“추측이라는 말은 저희 비보전에서는 사용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해주시죠?”

일비자가 냉정하게 말했다.

“사실이다.”

비보전주가 말을 바꿨다.

“아이구! 이거야 정말…… 아이, 어쩌려고 저희 천살단이 혈마까지 손댄 겁니까?”

사람 좋아 보이는 이비자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말했다.

“혈마는 호발귀다.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지금 단주님은 혈마를 조정하고 계셔. 아직은 불완전하고, 완벽한 방법을 찾는 중인 것 같다. 더 자세한 건 나도 모르고.”

“말이 쉬워서 소문을 잠재우는 거지, 이게 보통 일입니까? 어떻게 하시려고요?”

십사비자가 물었다.

“우리가 하던 식으로.”

비보전주가 말을 이어갔다.

의심으로 생긴 소문은 의심만 해소해주면 간단히 잠재워진다.

이 소문에서 의심은 두 가지다. 혈마가 나타났다. 천살단에서 혈마를 만들었다.

혈마가 살인을 저지른 것은 소문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정작 중요한 점은 혈마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아직 혈마를 본 사람이 없으면서도 소문만 믿고 천살단을 의심한다.

혈마의 존재는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니 혈마를 보여준다. 단, 천살단과 상관없다는 점을 확실히 한다.

두 번째는 천살단이 마공관 무공을 이용해서 혈마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렇게만 하면 사람들은 다시 천살단을 존경하게 될 것이다.

천살단을 의심했다는 사실에 미안해할 것이며, 소문낸 자들을 오히려 나무랄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간다면 소문을 누가 냈는지 근원을 파고들어 가야 한다. 그래야 소문이 뿌리째 뽑힌다.

이번 일은 세 번째 단계까지는 가지 않는다. 두 번째 단계에서 중단한다.

“전형적으로 우리가 하던 일인 건 맞는데…… 혈마가 우리와 상관없다는 점을 보여주려면 희생양이 필요한데. 생각해 둔 사람이라도 있으신지?”

오비자가 물었다.

“있지. 형옥으로 가자. 너희 오랜만에 연극 좀 해야겠다.”

비보전주가 일어섰다.

형옥은 형옥 무인들이 죽은 이후, 아무도 발길을 들여놓지 않는다. 폐쇄된 것은 아니지만, 들어서려는 사람이 없다. 대다수가 형옥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러니 형옥은 폐쇄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형옥주가 중원으로 나가 있어서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더 을씨년스럽다.

“여기는 뭐하러?”

이비자가 형옥 동굴을 쓸어보며 말했다.

“여기 한 명이 남아있다.”

“아! 아직도요?”

비보전주의 말처럼 형옥 가까이 가자 경계서는 무인이 보였다. 아무도 없는 형옥을 지키고 있다. 전주 말처럼 형옥 안에 누군가가 갇혀 있는 것이다.

‘희생양!’

비자들은 대뜸 형옥에서 벌어질 일을 예감하고 빙긋 웃었다.

형옥을 지키던 무인들은 비보전주가 나타나자 사전에 연통을 받았는지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철컥! 철컥!

그들은 형옥으로 들어가는 문도 순순히 열어주었다.

“혹시 하구량 노 선배 아니십니까?”

비보전주가 추레한 노괴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크크크! 키키키!”

괴마 하구량이 입가에 살소를 띄우며 웃었다.

“인사부터 올립니다. 저는 비보전주라고 합니다. 오늘 우연히 노선배께서 여기 잡혀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긴가민가했는데 정말 노선배께서 잡혀 계시는군요.”

“크크크! 크크!”

괴마 하구량이 무슨 수작이냐는 듯 비보전주를 쳐다봤다.

“저희 천살단에는 이번 혈마 건에 반대하는 사람이 두 명 있습니다. 천원주님과 나. 천원주님은 지금 모든 권한을 박탈당한 채 구금당하셨고, 저 역시 곧 천원주님과 같은 처지가 될 겁니다. 그 전에 당신을 탈출시키려고 합니다.”

비보전주가 괴마에게 다가가서 손발에 채워진 족쇄를 풀려고 했다.

괴마가 몸을 비틀어서 비보전주의 손길을 피했다. 그리고 이빨을 드러내어 비보전주의 어깨를 와락 깨물었다.

“윽! 후후! 여기 있으면 단주님께 죽습니다. 선택하십시오. 나가셔도 좋고 나가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저는 할 바를 다 했으니까, 받아들이건 말건 마음대로 하세요.”

철컥! 철컥!

비보전주는 손발에 묶인 철갑부터 풀었다.

“노선배께서 탈출하면 곧 알려집니다. 지금 밖에 있는 무인들은 제가 제압해놨습니다만 한 시진 후에 교대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아무리 늦어도 한 시진 후에는 탈출 사실이 알려진다는 거죠. 그 안에 최대한 몸을 빼내시길.”

비보전주는 괴마에게 행랑과 검을 내밀었다.

행랑 안에는 돈 꾸러미와 마른 건포, 그리고 갈아입을 옷이 들어있었다.

스릉!

괴마는 검을 뽑았다.

날은 잘 갈려 있었다.

“크크크크!”

괴마가 비보전주를 쏘아봤다.

“후후! 아마도 이게 제 마지막 결정일 겁니다. 어차피 경계 무인들을 쓰러뜨린 이상, 저 역시 무사하지는 못할 것 같고. 하지만 저는 천살단이 제 고향입니다. 여기다 뼈를 묻을 수밖에 없죠. 더는 도와드리지 못합니다. 참! 혈마를 만나면 반드시 죽여주시길. 그런 주장을 펴셨다기에 풀어드리는 것이니까.”

비보전주는 괴마에게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듯 차게 돌아섰다.

괴마는 말을 하지 못했다.

천살단주가 아혈(啞穴)을 어떻게 쳤는지, 아무리 입을 벙긋거려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

천살단주의 독문수법으로 당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성대를 풀지 못할 것이다.

천살단주가 직접 막힌 혈을 풀어주거나 아니면 아주 고명한 점혈 대가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 어떠한 점혈 대가도 천살단주의 독문 수법만큼은 풀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평생을 벙어리로 살아야 한다.

‘빌어먹을 새끼!’

욕도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다. 속에서만 옹알이처럼 옹알옹알 흘러나온다.

괴마는 비보전주가 놓고 간 행랑과 검을 쳐다봤다

괴마는 비보전주의 말을 믿지 않는다. 천원주와 비보전주가 단주에게 반기를 들었다고 하는데, 웃기는 소리다.

‘그 말을 믿으라고?’

물론, 두 사람이 반기를 들 수는 있다. 하지만 반기를 드는 방식은 이런 식으로 저항하는 게 아니다. 만약 천원주가 반기를 들었다면 천원주는 자신의 직분을 내려놓고 은거를 택할 것이다.

꼴 보기 싫은 사람은 보지 않는 것, 그것이 천원주의 방식이다.

그동안 지하 사층에 머물러 있었다고 해서, 천살단 내막까지 파악하지 못했을 거로 생각했나?

비보전주가 행랑과 검을 놓고 갔다는 것은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내가 여기서 나가면…… 당장 사마를 쫓아가지. 암! 일단은 형옥주에게서 사마를 뺏을 거고. 그 능구렁이 새끼부터 요절낼 거야. 새끼! 감히 날 제압해!’

괴마는 천살단주를 떠올렸다.

천살단주를 무공으로 제압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일어나지 않는다. 천살단주는 무공 귀재이고, 자신은 혈마 제작에 특화된 귀재다.

하지만 사마만 손에 쥔다면 천살단주도 죽일 수 있다.

물론 이런 사실은 천살단주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걸 알면서도 탈출을 시키는 이유가 뭘까? 왜 내보내는 거지? 순순히 보내는 것도 아니고 계략까지 쓰면서?

‘형옥주가 사마를 제대로 부리지 못하나? 아닌데. 내가 다 가르쳐줬는데.’

괴마는 자신이 사마를 부릴 생각은 없었다.

날카로운 칼을 잡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칼날에 손상된다. 자신은 혈마를 만들어내는 일에 관심이 있지, 혈마를 이용해서 세상을 뒤집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잘못 알고 있다. 아마 천살단주도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혈도를 제압하는 괴상한 짓거리를 저지른 게 아닌가.

그래서 기꺼이 형옥주에게 사마 사용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그래 맞아. 형옥주가 제대로 사마를 쓰지 못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나를 이용해서 살짝 사마에게 붙였다가 원하는 것을 알아낸 후에는?’

다시 잡아들인다.

물론 이런 일은 그가 사마를 장악하기 전에 벌여야 한다. 사마를 장악한 후에는 오히려 천살단 무인들이 다칠 테니까.

“크크크!”

괴마는 웃었다.

천살단주의 속을 빤히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괴마는 혈마를 만드는 일에는 굉장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외의 일에는 바보나 다름없다.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다. 살아오면서 아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자신에게 닥친 일도 너무 간단히 생각했다.

‘어쨌든 일단 나가서 사마부터 장악하고…… 나머지는 그다음에 생각하지. 큭큭!’

괴마는 일어서서 비보전주가 놓고 간 행랑과 검을 챙겼다.

스읏!

한 층, 한 층 형옥 계단을 밟으면서 올라왔다.

형옥 이 층까지는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는데, 일 층에 올라서자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무인들이 보였다.

그들은 한눈에 봐도 죽었다. 방금 당한 듯 시뻘건 피를 줄줄 쏟아내고 있다. 어떤 자는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는데, 의식이 돌아오기는 틀렸다.

함정을 제법 그럴듯하게 팠다.

천살단주가 자신을 살려둔 이유는 딱 하나다. 혹시 사마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서다. 현재 사마는 형옥주가 다루고 있지만, 언제든 이상이 생길 수 있다.

그때를 대비해서 살려두었을 뿐…… 천살단주라는 놈, 자신을 살려줄 생각이 없다.

천살단주는 무려 오십 년을 알아 온 우정을 끊었다. 친구를 전혀 미련 없이 점혈했다.

더 이상 사마를 만들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인가? 아니다. 사마를 더 이상 만들 수 없다는 걸 확인한 순간 꾹꾹 숨겨두었던 본심이 튀어나왔다.

천살단주는 언제든 용도가 떨어지면 없앨 생각이었다.

‘이 새끼…… 내가 이대로 죽을 줄 알아? 사마를 찾으면…… 크크! 사마에게 암언(暗言)을 새겨놓은 건 꿈에도 모를걸? 내가 사마만 찾으면…… 큿큿!’

천살단, 다시 찾아온다.

그때는 사마를 끌고 온다. 사마가 유인하는 혈마도 끌고 올 생각이다. 그때가 되면 천살단주의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참 볼만 할 것이다.

쉐에에엑!

괴마는 신형을 쏘아냈다.

형옥 밖으로 영원히 나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비보전주 덕분에 빨리 나왔다.

괴마는 천원주나 비보전주의 안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스슷! 스으읏!

쓰러져 있던 부인들이 일어섰다.

그들은 싸늘한 눈으로 꽁지에 불붙은 듯 냅다 도망치고 있는 괴마를 쳐다봤다.

스읏!

사라졌던 비보전주도 나타났다.

“그놈 참 잘도 도망간다.”

십일비자가 말했다.

“자, 판은 깔렸으니까 잘 놀아봐.”

비보전주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방금까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무인들, 십육비자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들은 죽음을 가장할 줄 안다. 괴마가 의심하고 그들의 맥을 짚어봤어도 발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 맥을 짚지 않을 정도로 확실히 죽을 줄 아니까.

“자, 가볼까?”

쉬잇! 쉬이이잇!

십육비자 중 다섯 명은 삼비자가 깔아놓은 판을 즐기기 위해 신형을 쏘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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