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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63화 (263/500)

第六十三章 풍문(風聞) (3)

당주급 이상 전원회의가 열렸다.

현재 폐강 수련 중인 살단주를 제외하고 천살단 모든 간부가 천살단주의 집무실로 모였다.

“소문이 안 좋다면서?”

“그까짓 거 무시하셔도 됩니다. 저희가 움직이면 당장 소문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세작전주가 말했다.

천살단은 안 좋은 소문이 흘러 다닐 때마다 세작전을 이용했다. 세작전에서 관리하는 삼만 명이 일시에 한목소리를 내면 대부분 소문의 방향이 바뀌었다.

“아뇨. 이번에는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이번 소문은 마공관하고 연계가 되어 있습니다. 마공관은 마공을 모아둔 곳, 자칫하면 천살단이 혈천방과 동급으로 떨어집니다. 한 마디로 마도 집단이 된다는 것이죠.”

비보전주가 말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이 소문은 간과하면 안 됩니다.”

내위당주가 비보전주와 뜻을 같이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려고. 그동안 우리 천살단이 해온 일이 얼만데.”

전도전주가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열 개를 잘해 왔어도 한 개를 잘못하면 바로 낙인찍히는 곳이 무림입니다. 이번 일은 빠르게 대처하셔야 합니다. 자칫 때를 놓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습니다.”

비보전주가 강력하게 말했다.

세작전과 비보전은 무림 동향을 제일 민감하게 접하는 곳이다. 한데 두 곳의 생각이 다르다.

세작전은 어렵지 않은 문제로 보고 있고, 비보전은 매우 당황해한다.

여러 사람이 말을 했지만 의견이 분분했다.

“그런데 이 소문…… 어떻게 난 거야?”

천살단주가 의아하다는 듯 좌중을 쓸어보며 말했다.

사마와 혈마 사건은 철저한 비밀이다. 드러난 것이 전혀 없다. 세상은 혈마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모른다. 그런데 염창촌 주민들의 살해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염창촌은 산불로 소각되었다.

그 안에서 살인이 일어났는지, 산적이 들이쳤는지, 아이들 불장난으로 마을이 불탔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천살단은 혈마가 떠난 즉시 마을을 소각했다.

물론 누군가가 엿볼 것에 대비해서 경계도 철저히 세웠다.

마을을 소각하면서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니 그 와중에 누군가가 봤다면 그는 정말 초절정 고수일 것이다.

그만한 고수라면 혈마가 사람 죽이는 모습을 보고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목격자가 전혀 없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소문은 마치 눈으로 본 듯이 정확하다. 염창촌 주민들의 살해 장면이 뚜렷하게 그려진다.

“천원주. 천원주는 어떻게 생각해? 형옥은 천원주 소관인데, 보아하니 소문에 형옥도 걸려든 것 같던데. 형옥 무인들이 싹 전멸당했다고?”

천살단주가 천원주를 보며 말했다.

“예전에는 제 휘하였죠. 하지만 그 권한을 단주님께서 직접 거두셨는데, 잊으셨습니까?”

천원주가 차분히 말했다.

“그렇군. 내가 거뒀군. 후후!”

천살단주가 손으로 턱을 만지며 말했다.

“그럼…… 천원주는 형옥에 가보지 않았나? 형옥 무인들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형옥은 제 권한을 벗어났습니다.”

“쯧! 몰인정하기는. 그래도 한때는 수하였는데, 형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살펴봐야지.”

“형옥주가 알아서 했겠죠.”

“그럼 천원주는 이 소문이 어디서 흘러나갔다고 생각하지? 이거 분명 안에서 빠져나간 거야. 누가 말해주지 않고는 이토록 정확하게 소문날 리 없어.”

천원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집무실에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이거 소문이 어디서 흘러나갔는지를 알아야 정확한 대책을 세울 수 있는데. 안 그런가?”

“단주님.”

천원주가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천살단주가 손을 들어서 말을 막았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내 말이 끝나면 하지.”

“네, 죄송합니다.”

천원주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어쨌든 소문은 났고…… 이 소문은 마공관하고 연계됐으니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들이 많고…… 그러면 대처하도록 하지. 일단 이번 대처는 비보전이 맡아서 해.”

“단주님, 이 일은 천원주님께서……”

“아니. 요즘 천원주는 아주 피곤한 거 같아. 그러니 좀 쉬도록 배려하고. 그게 좋겠지? 천원주. 당분간 좀 쉬도록 해. 비보전주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세작전에서 소문 좀 내주고.”

“네.”

세작전주가 대답했다.

천원주는 딱딱한 표정으로 책상만 쳐다봤다.

형옥에 이어서 비보전까지…… 천원주의 권한 박탈이 연속해서 이루어진다. 거기에 좀 쉬라는 말까지 나왔다면 직위를 내려놓으라는 말과도 같다.

“그럼 그렇게 하지. 가서 일들 봐. 천원주는 좀 남고.”

천살단주가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물러났다.

“너희들도 자리 좀 비켜.”

천살단주가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말했다. 한시도 곁을 떠난 적 없는 검벽 무인들마저 물리쳤다.

집무실에는 단주와 천원주만 남았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

문득, 천살단주가 말했다.

“네. 잘못 생각하고 계세요.”

“허허! 나이가 드니 자꾸 어리석어져. 내 나이 정도면 오판을 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게 꼭 옳은 일처럼만 느껴져.”

“단주님,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천살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게 옳은 일처럼 여기신다면, 그런 생각이 드신다면 죄송하지만 물러나실 때가 된 거 같아요.”

“올바른 사리 판단을 못 한다는 거군.”

“네.”

“천원주…… 천원주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나? 이번 일이 잘못된 거라고.”

두 사람은 조용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심각한 대화가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듯 매우 편안한 음성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천원주가 말했다.

“혈마는 깨어나서는 안 되는 마물이에요.”

“혈마, 명검(名劍)이라고 했잖나.”

“어떤 식으로든, 혈마가 아무리 좋은 명검이라고 해도 깨우면 안 돼요. 혈마가 명검인지도 의문스럽지만, 정말 명검이라고 해도 혈마만큼은 깨어나서는 안 돼요.”

“혈마가 명검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군.”

“명검은 한순간만 방심하면 흉검(凶劍)으로 변하죠. 오히려 주인을 해칠 마검이 되는 거예요. 혈마는 길들일 수는 없어요. 길들여진 적도 없고요.”

“음!”

“단주님, 제발 혈마 건은 여기서 생각을 접어주세요. 제가 간청드립니다.”

천원주가 간곡하게 부탁했다.

“결국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거군. 내가 잘못 생각했다. 후후! 뼈아픈 지적이야.”

“죄송해요.”

“그런데 천원주, 난 지금도 내 생각이 잘못됐다고 여겨지질 않아. 천원주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결국 이렇게 어긋날 거 같아서 천원주를 잠시 쉬라고 한 거야.”

“알고 있습니다.”

“천원주, 내게 시간을 육 개월만 주지 않겠나?”

“제가 감히 시간을 드리고 말고 할 수는 없어요.”

“자넨 정말 딱딱할 때는 얼음장 같아. 그렇게 성질머리 좀 고치라고 해도. 쯧! 자네 말이 맞아. 내가 특별히 자네 양해를 구할 필요는 없겠지.”

“……”

“그래도 구하고 싶은 것을 어쩌나. 난 항상 자네를…… 딸처럼 여겨왔지. 내 딸이라고 생각했어. 허허! 자네가 책사를 생각하는 것만큼 나도 자네를 깊이 생각해.”

“저도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번 일 접어주세요.”

“육 개월만 내 생각대로 밀고 나가보지. 물론 그 안에 내 생각이 잘못됐다고 여겨지면 당장 그만둘 것이고. 난 반년 정도면 내 생각이 옳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

“단주님, 육 개월이면 너무 늦습니다. 육 개월이면 혈마가 이미 중원을 피로 물들기 시작할 거예요. 그때가 되면 단주님이 아무리 후회하셔도 혈마를 막지 못합니다.”

“그럴까?”

“지금 호발귀는 이백 년 전 혈마보다 훨씬 더 강해요. 중원 전체가 피로 물들 거예요.”

“그런 일은 없을 거네.”

“단주님!”

천살단주가 빙긋 웃었다.

“천원주.”

천살단주가 천원주를 빤히 쳐다봤다.

“내게 말이네. 내게 혈마를 단숨에 죽일 수 있는 비기가 있다면 믿겠나?”

“네?”

천원주는 깜짝 놀라서 천살단주를 쳐다봤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혈마를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단 말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어떻게 그런!”

“그래서 혈마를 건드려볼 생각을 한 거지. 이래도 내가 생각을 잘못한 것일까? 아! 애꿎은 마을 사람들이 죽은 거…… 애통하지. 하지만 큰일을 하다 보면 작은 희생은 감수해야 하는 법이지 않나. 혈마만 손에 넣으면 마도는 이 땅에 발 못 붙여. 영원히.”

꿀꺽!

천원주는 마른침을 삼켰다.

천살단주는 흰소리하지 않는다. 말을 잘 하지 않지만, 입 밖에 낸 말은 반드시 지킨다.

천살단주에게 혈마를 죽일 수 있는 비기가 있다.

이 말은 믿어도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단주 입에서 나온 말이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말이 달라진다. 혈마를 길들여보고 싶은 생각, 충분히 들 수 있다. 혈마를 확실히 죽일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다면, 지금 혈마가 하는 살인이 우습게 보일 것이다.

천살단주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다.

혈마는 지상 최강의 무인이다. 그런 무인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얼마나 획기적인 일인가.

혈마가 제정신으로 무공을 쓰지 못한다. 미친 상태에서만 사용한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러니 누군가의 조정을 받아야 한다.

혈마는 결코 온전한 무인이라고 할 수 없다.

이백 년 전, 혈마는 혈마후의 병기였다.

천살단주는 그때처럼 혈마를 자신의 병기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옛날 혈마 후처럼.

천살단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목적이라면 사람을 죽이지 않고 시험할 수가 방법을 찾았어야 한다.

사마를 만들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모색했어야 한다.

염창촌에서, 그리고 산 너머 복운촌(伏雲村)에서 벌어진 살인은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혈천방이 저질렀어도 분노할 일인데, 천살단이 저질렀다.

이 업보를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하늘은 분명히 노할 것이다. 사실이 밝혀지면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천하를 위한다고 해도 그런 만행은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

그런 일은 한두 번만 저질러도 용납할 수 없는데, 천살단주는 계속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살인이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것이다.

마심(魔心)이다. 마도인의 마음이다.

천원주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천살단주의 생각을 돌이킬 수가 없다. 그렇다고 천살단주에게 검을 들이대고 싶지도 않다.

단주가 혈마를 죽일 수 있다는 말, 그리고 육 개월만 지켜보라는 말을 믿고 싶다. 그 육 개월 동안에 수없는 죄악이 벌어지겠지만.

“제가 어디에 있기를 바라세요?”

천원주가 물었다.

“난 자네가 내 일에 어떠한 영향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네. 내 눈에서도 좀 멀어졌으면 좋겠어. 보이지 않는 곳, 그러면서도 가까운 곳에. 참회동이 어떤가?”

“받아들일 수 없어요.”

“아니. 참회동이 딱 좋아. 참회동에서 육 개월만 있어 주게.”

천원주는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단주의 마심이 이렇게까지 강렬한가!

단주는 그녀의 얼굴조차 보기 보지 않으려고 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쥐꼬리만 한 죄책감이나 자괴감 뭐 이런 종류의 감정들을 완전히 배제하려고 한다.

아니면 세상에서 맺은 인연의 끈을 철저히 잘라낸 후, 이번 일에 몰두하려고 한다.

단주는 세 사람에게 정을 주었다. 자신과 책사와 살단주 주치균이다.

주치균은 폐관 수련 중이고, 책사는 내쳐졌다.

적이 되어서 밖으로 나갔다. 남은 사람은 자신뿐이다. 자신을 참회동에 가두면 천살단주의 마음은 더욱더 강하게 고정된다.

천살단주는 폐관 수련 중인 살단주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기필코 오른팔로 만들 것이다. 천살단에서 단주 외에 가장 강한 무인으로 만들고 있다.

축출한 책사는 더욱 완벽하게 죽일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구금 명령과 책사의 암살 명령이 동시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책사에 대한 말은 무척 많다. 형옥에서 사라졌고, 사마에게 가슴이 꿰뚫리기도 했지만, 시신을 본 사람이 없어서 막연하게 추정만 할 뿐이다.

간신히 형옥에서 살아났지만, 무공을 펼칠 수는 없다.

살지 못했다. 누군가가 죽은 시신을 옮겼다. 홀리 등과 함께 사라졌으니 살았을 것이다. 그것이 살았다는 증거는 못 된다 등등.

책사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단주는 세상에 대한 인연을 확실히 마무리 짓고 있다. 책사가 살아있다면 죽을 것이다.

천원주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참회동으로 가죠.”

“그래. 육 개월 후에 보지. 우리 서로 웃으면서 보게 될 거야.”

천살단주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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