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三章 풍문(風聞) (2)
스스! 스스! 스스스!
세 사람은 몸을 낮춰서 마을로 접근했다.
해자수 말이 맞았다. 앞쪽에서 산불이 달려든다. 염창 마을에서 일어난 불은 뒤에서 덮친다.
양쪽 산불 사이에 마을 하나가 존재한다.
마을은 조용했다. 하지만 조용한 가운데 귀신 같은 움직임이 일어났다.
쉬이잇!
갑자기 바람이 휙 일어나면서 죽은 시신을 낚아채 멀리 끌고 갔다. 그리고 어느 집 앞에 내던졌다.
“엇! 깜짝이야!”
해자수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천살단 부인들이 뒤처리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봤다.
천살단 무인들은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신 정리 같은 간단한 일을 하면서도 최대한 몸을 숨겼다. 귀신 같은 움직임은 절정의 신법을 발휘한 결과다.
해자수가 놀란 것처럼,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귀신이 나타나서 사람을 옮기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슷! 쉬이익! 싸악!
재빠른 몸놀림이 이어졌다. 마을 입구에 수북이 쌓였던 시신들이 마을 곳곳으로 분산되었다.
“맞네. 맞아. 끌어들여서 죽인 게 맞네. 이제 확실해졌네.”
해자수가 말했다.
등여산과 홀리도 마을 입구에 수북이 쌓인 시신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시신들…… 호발귀가 만든 것이다.
호발귀가 애꿎은 양민을 죽였다. 비록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행했다고 하지만, 살인은 용서받지 못한다.
살인을 유도한 사람이 나쁜가, 살인 병기가 되어 사람이 죽인 자가 나쁜가. 둘 다 나쁘다.
살인을 지시한 사람이나 죽인 사람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호발귀는 늘 이런 점을 염려했다. 그래서 혈마가 되면 반드시 죽여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는 혈마가 됐고, 죽일 방법이 전혀 없다.
혈마가 되기 전에 구혼음소를 내버려 두었다면, 아마 지금쯤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구혼음소가 이백 년 전에 혈마를 죽였듯이 호발귀에게도 작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호발귀는 구혼음소를 무력화 시켰다.
그때 알았어야 한다. 이상하게도 구혼음소가 먹히지 않을 때, 호발귀가 죽음에 떨어졌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했을 때,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한다.
혈마는 발전하고 있다.
옛날엔 통했던 방법이 지금의 혈마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혈마는 자신에게 해가 되는 방법을 연구하고 분쇄한다.
구혼음소를 읊조리면 장진 스님이 나타나서 반야심경을 외운다고 했다.
그 장진 스님의 반야심경이 바로 혈마의 방어막이다.
여타의 주문이나 구결을 사용하면 이상함을 느끼고 저항할까 봐 일부러 불경을 이용한다.
혈마가 순수한 구혼음소를 막아버린다. 그리고 변형된 주문으로 호발귀의 진짜 영혼을 일깨운다.
혈마 상태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정신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진정한 탈출구였는지 의문스럽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한때 호발귀가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구혼음소 자체는 완전히 효력을 잃었다.
어떤 구혼음소도 혈마를 다치게 하지 못한다.
반야심경은 외부의 구혼음소를 막고, 자신만의 주문으로 정신을 일깨운 것이 구혼음소를 완전히 틀어막기 위한 방책이었다면…… 혈마는 굉장히 음흉하기까지 하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구혼음소가 완전히 막혔다.
더는 구혼음소가 호발귀를 해치지 못한다. 장진 스님도 나타나지 않는다.
장진 스님이 나타나서 반야심경을 읊을 때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것이다.
이제는 혈마가 원하는 대로 누구도 혈마의 정신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귀색혼령대법은 어떨까? 전혀 쓸모가 없다.
어쩌면 혈마는 강력한 음약인 귀색무나 음조조차도 무력화 시킬지 모른다.
인간은 술을 마시면 취한다. 미약을 복용하면 정신을 잃는다.
극독을 복용하면 죽는다. 외부 물질이 체내에 침습해서 작용을 일으키면 그에 합당한 반응이 일어난다.
이것이 인간의 몸이다.
어떤 인간도 이런 작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작용이 빨리 일어나고 늦게 일어나는 차이는 있다.
작용이 일어나면 무방비로 당하는 사람이 있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경우든 작용은 일어난다.
혈마는 이러한 반응, 통제할 수 없는 신체 반응조차도 간단히 없애 버린다.
이백 년 전 혈마는 이 정도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다. 호발귀는 독의의 진경을 얻었는데, 아마도 그것이 호발귀를 무적 상태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어떡하지?”
홀리가 말했다.
“후우!”
등여산도 할 말이 없어서 한숨만 내쉬었다.
혈마가 한 일을 보니 그를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 암담하기만 하다.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죽여야 한다. 하지만 죽이는 방법조차 없다.
이제 혈마는 그녀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형옥에서 일 권을 날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상처 입은 사람의 몸에서 거칠게 검을 뽑는 행위, 아픈 사람을 발로 차는 행위, 묶인 여자를 주먹으로 가격하는 행동 속에는 낯선 자에 대한 공격심이 포함되어 있다.
비록 생기를 포함해서 오히려 그녀들을 도왔지만, 엄밀히 말하면 상처 입고 쓰러진 사람에게 폭행을 가한 것이다.
묶여 있는 홀리를 후려쳤다.
본인도 모르게 폭력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호발귀는 그 폭력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하물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이 난폭해졌다.
지금 혈마 앞에 선다면 모두 죽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어.”
등여산이 말했다.
“뭔데?”
“구혼음소.”
“풋! 구혼음소로는 혈마를 막을 수 없어. 몇 번이나 말했잖아. 똑똑한 여자가 오늘따라 왜 이래?”
“그래도 그것밖에 없어. 일단 내가 호발귀에게 구혼음소를 사용해 볼게. 그동안 다른 방법이 없나 잘 찾아봐.”
홀리가 등여산을 빤히 쳐다봤다.
“너 죽는 거 보라고?”
“그 말이 아니잖아.”
“그럼 구혼음소, 내가 써볼게. 구혼음소는 우리 음문촌 진결이야. 너보다는 내가 나아.”
홀리가 나섰다.
“그러니까 내가 한다는 거야. 넌 혈마에 대해서 잘 알잖아. 난 혈마에 대해서 잘 몰라. 이 세상에 마지막까지 남아서 혈마를 돕거나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너야. 내가 아니야.”
흘리는 등여산의 말에 침묵했다.
말로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대꾸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은 자유니까. 호발귀 앞에 정작 누가 서게 될지는 그때 가봐야 한다.
그런 심정은 등여산도 마찬가지다.
홀리가 대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수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곧 호발귀를 만나게 되면 당장 앞으로 뛰쳐나갈 여자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늦게 움직인 사람이 마지막까지 혈마를 책임지는 거지.’
두 여인은 같은 생각을 했다.
“휴우! 답답하네.”
옆에서 해자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두 여인의 마음을 알고 있고, 어느 편도 들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한숨만 쉰다.
시신을 마을 곳곳으로 완전히 분산시킨 천살단 무인들은 칼 맞은 상처에 염초, 유황, 목탄 가루를 골고루 뿌렸다.
세 가지 모두 화약을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다.
염초는 지극히 귀해서 함부로 쓸 수가 없는데, 천살단 무인들은 사람마다 골고루 뿌렸다.
이러니 산불이 시신에 닿으면 확 타버리는 것이다.
스읏! 타악! 탁!
마을 어귀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천살단 무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혹여 우연히 지켜보는 눈까지도 배제한다. 철저히 숨어서 귀신 노름을 하고 있다.
화아악! 화라라락!
거센 불길이 일어났다. 하지만 누가 불을 질렀는지 알 수가 없다.
불길은 댕겨졌지만 불 놓은 사람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완벽하게 숨어서 불을 댕겼다.
확! 화아아악! 화라라락!
불길은 마을 어귀에서 일어났지만, 곧 마을을 둥글게 포위했다. 마을을 따라서 한 바퀴 빙 돌면서 불길이 번졌다. 그리고 바깥에서 일어난 불길이 마을 안쪽으로 급격히 빨려 들어갔다.
휘이익! 퍼엉! 펑펑!
불길은 폭발음까지 흘리면서 번졌다.
“저건 기름으로 유도한 거야.”
해자수가 말했다.
등여산과 홀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정신이 없다.
기름이 어쩌고 하는데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두 사람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는 중이다.
한 마을을 완벽하게 소실시키는 법!
그렇다. 천살단 무인들은 마을을 완벽하게 소각시키고 있다. 그것도 매우 능숙하다.
“이거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해자수가 눈을 끔뻑이면서 말했다.
사실 등여산도 놀라는 중이었다.
저자들 천살단 무인이 맞나? 혈천방 무인이 아냐? 혈천방 마인이라면 이해하겠는데, 천살단이 저런 짓을?
지금 행하는 대로 마을을 소각하면 누구도 단서를 찾지 못한다. 혈마가 나타나서 살겁을 저질러서 마을을 소각한다. 그건 알겠는데, 방법이 너무 강력하다. 무척 정밀하다.
‘이건 한두 번 해본 게 아니야. 중원에서 이런 일이 또 있었는지 사례를 찾아봐야 해.’
등여산은 당장 손을 품에 넣었다.
지필묵을 꺼내려는 것이다. 밀지를 적어서 전서구에 날려 보내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서구가 없다. 전서를 보낼 것도 없다. 이제 천살단 책사가 아니지 않은가. 천살단에서 물러난 지 얼마나 됐는데, 아직도 옛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이제는 사례를 알고 싶어도 알 방법이 없다. 조사해 줄 사람이 없다.
도천패가 하오문을 움직인다고 했으니 그에게 부탁하면 어떨까? 하지만 그가 연락을 취해오기 전에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모든 연락이 다 끊겼다.
등여산이 일어섰다.
스스스슷! 스스스!
천살단을 불태운 무인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 눈은 속일 수 있지만, 세 사람의 눈과 귀는 속이지 못한다.
스스스! 스스슷!
그들은 조용히 천살단 꼬리를 따라붙었다.
원래는 전서구를 잡아서 이들의 움직임을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해자수 덕분에 비교적 쉽게 쫓아가고 있다.
만약 산불과 마중불 사이를 찾지 못했다면 한창 헤매고 있을 것이다.
* * *
“들었어? 혈마가 나타나서 염창촌 사람들을 싹 죽였다네.”
“혈마가 드디어 나타난 건가? 그러잖아도 혈마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리던데.”
“나타났다니까. 염창촌 사람들을 싹 죽이고 아예 불까지 질러서 흔적까지 싹 태워버렸대.”
“세상이 말세가 되려니.”
“그런데 더 놀라운 게 뭔 줄 알아?”
“뭔데?”
“그 혈마를 천살단에서 만들었다는 거야.”
“에이! 이 사람아! 어디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천살단이 뭐가 아쉽다고 혈마를 만들어!”
“정말이라니까. 근데 그게 탈이 나서 형옥이 발칵 뒤집힌 거지. 형옥에서 만들었거든. 형옥 지하에서 만들었는데 그놈이 미쳐서, 오히려 그 형옥 무인들을 싹 죽여버린 거야. 그리고 이게 탈출해서 염창촌으로 가서는 사람을 싹 죽여버린 거지.”
“그게 사실이야?”
“아, 사실이라니까. 내 아는 사람이 천살단에 있는데, 형옥 무인들이 싹 죽었대.”
“에이, 이 사람! 뻥도 어지간히 쳐. 자네 아는 사람이 천살단에 누가 있어.”
“있다니까 그러네.”
세상이 요동쳤다. 혈마에 대한 소문은 들불 번지듯이 순식간에 전 중원을 휘감아버렸다.
혈마가 나타났다는 사실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천살단이 혈마를 만들었다는 말은 반신반의다.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는다.
이 소문을 믿는 절반은 천살단에 마공관이 있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천살단은 극악무도한 패공, 마공, 사공들……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무공들을 모두 수집해서 마공관에 소장해 놨다.
그것들을 왜 불태우지 않고 쌓아두고 있나? 그것 역시 인간이 창안해 낸 무공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극악무도한 마공일지라도 혹여 후일 언젠가는 이 마공을 조정해서 아주 정심한 무공으로 다듬을 수도 있다.
모든 마공과 사공과 패공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다. ‘어떻게 이런 부분까지 생각했지?’라는, 발상 자체가 기이한 무공들이 많다.
충분히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이것이 천살단이 마공관을 만들어 놓은 순수한 의도이지만 세상은 마공관이라는 존재를 다르게 본다.
마공관이 있어서, 혈마를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은 천살단이 마공관의 마공을 본격적으로 이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놈들! 마공을 쓸어 모을 때부터 정상은 아니었어. 천살단주라는 사람 본 적이 있어? 없지? 얼마나 음흉하면 모습도 안 보여? 내 말이 맞지? 본 사람이 없잖아. 전에 살단주가 귀무살 귀검한테 죽었을 때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대.”
“조문은 했다던데?”
“천살단 안에서 했다는 말은 들었지. 그런데 그걸 누가 알아? 내가 듣기에는 암살당할까 봐 두려워서 집무실에만 처박혀 있다는데, 그게 정상이야?”
소문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