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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57화 (257/500)

第六十二章 경고(警告) (2)

등여산은 차분히 일어나서 자세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운기조식부터 취했다.

그녀는 매우 침착했다.

그녀는 매우 심한 상처를 입었는데도, 다른 사람처럼 환통도 느끼지 않았다.

“반의반령이라는 말이 이해돼? 나는 도저히……”

도천패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같은 심정이다.

혼절했다는 말은 의식을 완전히 잃었다는 뜻이다.

세상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도 의식 일부분을 남겨놓는다는 말이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도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진기가 지속적으로 작용해서 세상을 인지하는 신경 중 어느 부분을 열어놓은 상태가 아닌가 추측되기는 한다.

등여산이 다 보고 다 느꼈다고 하니 그 말이 십분 맞을 것이다.

등여산을 안 믿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가 말한 기공이 너무 기이해서 쉽게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무인들이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인 것은 확실하다.

“하아!”

운기를 마친 등여산이 탁기를 크게 토해내며 눈을 떴다.

“아까 무슨 말이야? 호발귀가 우리를 구했다니? 우리를 때렸는데, 그게 우릴 구한 거야?”

등여산이 정신을 차리자 당홍이 재빨리 물었다.

“거참, 말 좀 하게 천천히 묻지.”

도천패가 당홍의 어깨를 끌어서 뒤로 물려 앉혔다.

등여산은 당홍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전혀 서둘지 않고 천천히.

“우린 뭐라고 할까? 그 사람 손을 탔어요.”

“손을 타? 그게 무슨 말이야?”

당홍이 다시 물었다.

“왜 어린애를 자꾸 안아주면 손탄다고 하잖아요. 자꾸 손을 대면 손맛 들린다고. 그것과 비슷해요. 전에 혈천방주의 초대를 받고 혈천방에 갈 때, 기억나요? 가는 동안에 그 사람은 끊임없이 우리 진기를 북돋아 줬어요.”

“그거야 당연히 기억하지. 그게 손 탄 거야?”

“네. 맞아요. 그때 호발귀가 일으킨 게 혈기였어요. 혈마 무공으로 혈기를 일으켜서 그 혈기로 경락을 두들겼죠. 진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하기보다는……”

“생기를 북돋아 줬다?”

당홍이 뒷말을 이었다.

“그래요. 생기를 북돋아 줬어요. 그 덕분에 진기가 더 활성화했고, 우리 내공은 급신장했죠.”

두말하면 잔소리다. 모두 호발귀 덕분에 이전보다 두 배 이상 강해졌다.

“호발귀가 전력으로 공격했다면…… 언니, 무사했을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지. 이렇게 멀쩡하잖아.”

“혈마가 된 상태에서도 호발귀는 우리를 알아봤어요. 본능적으로 알아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주먹을 쳐낼 때 살기를 거두고 진력을 풀었죠.”

“쳇! 두 번만 진력을 풀었다가는 뼛골 바스러지겠네. 아! 원망하는 건 아니고, 너무 아파서.”

해자수가 투덜거렸다.

모두 깨어나는 순간에 환통을 느꼈다. 실제로 통증이 없는데도 너무 아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데 그 정도로 타격한 것도 진기를 거둔 덕분이라니.

“맞아요. 진기를 거뒀다고 하지만 상당한 타격인 것은 분명해요. 하지만 우리 몸이 받아들였죠. 혈마는 우리 사정을 보고 친 것이 아니라 몸 상태를 보고 친 거예요. 이 정도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겠다 하고.”

“혈마가…… 그걸 느꼈다고?”

당홍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안다. 혈마는 이성이 없다. 오직 본능대로만 움직인다. 인간이라기보다는 동물이다. 살인에 굶주린 살인마다.

“느낀 게 아니라 본능이 그렇게 일어난 거겠죠. 그리고 우린 몸에 익숙한 혈기가 밀려드니까 당장 진기가 일어나서 융화해버린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손탔다고 말한 거예요. 다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너무 강하면 충격이 오는 법이죠. 우리가 나가떨어진 건 그것 때문이에요.”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너무 강하게 때렸어. 좀 살살 때려도 되는데. 우리가 뭐 진기가 거덜 난 상태도 아니었고.”

해자수가 투덜거렸다.

“호발귀는 홀리를 가장 강하게 쳤어요.”

“맞아. 붕 날아가 떨어졌다니까.”

해자수가 거들었다.

“호발귀는 홀리를 가장 많이 아끼나 봐요. 홀리를 가장 극한까지 밀어붙였잖아요.”

“피이!”

홀리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그러는 넌?”

“나?”

“호발귀는 네 몸에 박힌 검까지 뽑아갔어. 혈마가 되면 어떤 상태인지 알잖아. 정신이 완전히 돌아버려. 그런 상태에서도 네 몸에 박힌 검을 뽑아갔어. 그건 어떻게 설명해야 해?”

등여산은 대답 대신에 살짝 웃었다.

“계집애, 얄미워 죽겠다니까.”

홀리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홀리와 등여산은 이미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자신들 몸에서 일어난 상태를 정확하게 알아챘다.

호발귀가 자신들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어서, 호발귀의 손속을 선의로 해석할 수 있었다.

미친 혈마가 선의를 베푼다?

이런 생각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일단 그런 전제를 깔아놓으면 자신들 몸에서 일어난 변화도 단번에 이해된다.

모두가 본 바와 같이 호발귀는 홀리를 붕 날아가 떨어질 정도로 강력하게 타격했다.

홀리의 몸에 있던 악기(惡氣), 탁기(濁氣), 독기(毒氣)를 일시에 씻어내기 위해서 힘을 쓴 것이다.

‘이 정도면 됐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씻어내고도 넘칠 정도로 힘을 과하게 썼다.

정신이 완전히 잃은 자가 여인의 몸에서 검을 빼냈다.

이건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호발귀가 검이 필요해서 뽑았다고? 아니다. 혈마 같은 동물은 검이 필요하지 않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병기다.

혈마는 등여산을 죽여서는 안 되는 여인으로 인지했다.

사람들은 비로소 등여산이 왜 이렇게 침착하고 편안한지 이유를 알았다.

그녀는 혈마를 포기하지 않았다.

혈마가 자신을 알아본 이상, 반드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몸은 어때?”

홀리가 물었다.

“빨리도 묻네.”

“지금이라도 물었잖아.”

“괜찮아. 상처 때문에 빨리 움직이지는 못하겠어.”

“그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고.”

도천패가 자기 어깨 뒤쪽을 탁탁 쳤다.

“어! 그건 내 자린데? 지금 누구에게 허락받고 등을 내주지?”

당홍이 눈에 쌍심지를 돋웠다.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잖아.”

도천패가 미처 이런 반응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쩔쩔매면서 말했다.

“좋아! 한번 봐줬다. 여기 되게 편해. 잘 써.”

당홍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실례할게요.”

등여산도 사양하지 않았다.

호발귀가 혈마로 변했다. 세상 밖으로 나갔다. 무조건 지금은 빨리 움직여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지만.

“해자수님.”

“님? 님은 뭐야? 그냥 해자수라고 불러.”

“풋! 지금 바로 형옥을 살펴주세요.”

“형옥? 형옥은 천살단 애들이 싹 치웠어. 깨끗해. 그렇지 않아도 내가 한 번 들어갔다 왔는데, 깨끗해. 아무것도 없어. 아! 피비린내는 아직도 진동하더라. 아주 굉장했나 봐.”

“홀리.”

등여산이 홀리를 불렀다.

“알았어. 갔다 올게. 가.”

홀리가 해자수를 재촉했다.

“거참. 형옥은 내가 가서 보고 왔다니까.”

“백날 가서 보면 뭐 해? 정작 봐야 할 걸 못 보면서.”

“정말 아무것도 없다니까. 볼 게 없는데 뭘 보나? 어휴! 피비린내. 생각만 해도 구역질 나네. 거긴 냄새 때문에…… 웬만하면 내 말 믿고 그냥 참지? 내가 허튼소리는 안 하잖아?”

해자수가 마지못해 일어섰다.

“천살단이 치웠다면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을 텐데, 뭘 보려는 거야?”

당홍이 물었다.

“거봐! 거봐! 못 본 사람이 나만은 아니잖아. 여기 또 있잖아. 다 치웠다니까 그러네.”

해자수가 가기 싫다는 듯 다시 주저앉았다.

“시신은 치웠어도 혈흔이 남아있어요.”

“그렇지. 피가 흘렀으니까.”

“혈흔이 어떤 형태로 남아있는지 보면 호발귀가 어떤 식으로 죽이는지 알 수 있어요.”

“어떤 식으로 죽인다니 무슨 소리야?”

당홍이 물었다.

“그냥…… 뭔가…… 달라진 게 있을 것 같아요. 이건 단지 느낌뿐이라서 직접 혈흔 형태를 봐야만 말할 수 있어요. 지금은……”

등여산이 말끝을 흐렸다.

“알았어. 나도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혈흔 부분, 상세히 보고 올게. 가!”

홀리가 해자수의 등을 탁! 쳤다.

“아! 왜 때리고 그래! 거참 나이도 있는데.”

“아, 그래요? 가실래요?”

“그렇다고 존대까지는……”

해자수가 일어섰다.

“언니 괜찮은 약이 있으면.”

등여산이 당홍을 보며 말했다.

“지금은 없지. 잠깐만 기다려. 이 근처 뒤져보면 쓸 만한 약초가 있을 거야. 금방 마련해 올게.”

당홍도 움직였다.

“으음!”

홀리는 침음했다.

등여산의 말이 맞는다. 혈흔 상태가 매우 이상하다. 피가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딱 한 곳만 흥건하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으니 핏자국도 여기저기 사방으로 흩어져 있어야 하는데, 이건 마치 핏물을 한 군데 쏟아 놓은 것 같다.

천살단 형옥 무인들이 시신을 말끔히 치우고 피까지 닦아냈지만, 워낙 한 군데 많은 피가 모여 있었기 때문에 미처 흔적마저 지우지는 못했다.

“이거 이상하네? 왜 이런 혈흔이 생기지? 혈천방에서 쓰던 방법이 아니야. 이게 어떻게 죽인 거죠? 이해를 못 하겠네.”

해자수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피가 연못을 이루고 있다. 핏물은 말끔히 사라졌지만, 동굴 바닥에 고인 흔적이 혈소(血沼)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여기, 핏물이 고여있었다.

다시 말해서 형옥 무인들이 모두 이 자리에서, 한 곳에서 죽었다.

동굴 여기저기 흩어져서 죽은 것이 아니다. 혈마를 보고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혈마에게 달려들었다.

혈마를 포위하고 우르르 달려들다가 검에 맞아 죽었다.

앞에서 공격한 자가 죽으면 뒤에 있는 자가 또 달려들었다.

계속, 계속…… 불나방처럼 달려들어서 불에 타 죽었다.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된다.

형옥 무인들이 그만큼 전투력이 강한 용사들이었나? 형옥 무인들은 죽음을 초월한 전사들이었나?

이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됐어. 가.”

홀리가 말했다.

“안에 더 안 뒤져보고요?”

“뒤져볼 거 없어. 다른 데는 흔적이 없어. 다른 데서는 죽이지 않았으니까.”

‘이 자리에서만 죽였어. 그러니 흔적도 여기밖에 없어.’

홀리는 확신했다. 그래서 다른 곳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신형을 날렸다.

쉬이익!

그녀의 신형이 유성처럼 빠르게 쏘아졌다.

“또 이런다! 아가씨! 같이 가자니까! 아참! 인정머리하고는.”

해자수는 홀리를 쫓아서 곧바로 뒤따라 신형을 쏘아냈다.

“어? 이거 몸이 왜 이래?”

해자수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몸이 매우 가벼워졌다. 내 몸이 아닌 것 같다.

홀리는 해자수의 말을 들은 후에야 자기 몸도 훨씬 가벼워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중원을 나올 무렵, 그녀의 무공은 형제 중에 첫째라고 할 수가 없었다.

무공서열로 보면 거의 중간쯤? 자신보다 위라고 인정하기 싫은 사람이 분명히 있으니 중간쯤은 되었을 것이다.

호발귀의 도움을 받고 내공이 급진전하면서 무공이 상당히 강해졌다. 형제 중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음문촌장인 아버지와도 겨룰 수 있었다. 검을 들고 형제들과 겨뤄보지는 않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을 이길 수 없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도 한결 가볍고 빠르다. 전신에 힘이 넘치다 못해서 터져나갈 것 같다. 신법을 전개하고 있지만, 두 발이 진기를 따르지 못한다고 느껴진다.

이번에 형옥에서 일격을 맞은 후 그녀의 무공은 또다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해자수도 마찬가지다. 몸이 무척 가볍다.

해자수는 이미 절정 고수가 되었다. 일류고수다. 이제는 음문촌 형제들도 해자수를 무공으로 핍박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은 어떨까? 마찬가지다. 도천패, 당홍 모두 강해졌다.

그중 제일은 단연 등여산일 것이다.

그녀가 내색은 하지 않지만, 아마 그녀 자신도 놀랄 정도로 높은 성취를 이뤘을 것이다.

사실, 등여산의 무공은 일행 중 제일 약했다.

해자수는 넘어섰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견주기 어려웠다.

나름대로 태산파 무공을 절정으로 수련했고, 천살단에서는 이름난 고수로 인정받지만…… 그래도 약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는 누구도 감히 그런 말을 하지 못한다.

등여산이 진실로 무공을 펼칠 때, 세상은 깜짝 놀랄 준비를 해야 한다.

‘됐어. 이 정도면 안심하고 움직여도 돼.’

다섯 명 모두 일당백 무인이 되었다.

이제는 살단도, 귀무살도 두렵지 않다. 지금부터는 오히려 그들이 두려워해야 한다.

쉬이익!

신형을 날리는 홀리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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