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二章 경고(警告) (1)
“으……!”
도천패는 손으로 배를 끌어안으면서 눈을 떴다.
의식이 들자마자 창자가 끊어질 듯 아파서 견디기 힘들었다.
뭐라고 할까? 창자가 가닥가닥 끊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숨이 너무 먹혀서 왔다.
도천패는 잠시 눈을 끔뻑거렸다.
통증은 없었다. 배가 찢어질 듯 아팠는데, 다시 느껴보니 어떤 통증도 일어나지 않았다.
환통(幻痛)이다.
혼절하기 직전에 느낀 통증이 깨어나는 순간에도 느껴진 것이다.
도천패 같은 고수는 환통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한다. 의식이 있을 때도 칼에 맞는 고통쯤은 컬컬! 웃어버리면서 흘려버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확실히 느꼈다.
복부를 두들겨 팬 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수다. 도천패라는 역사(力士)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 자다. 그러니 주먹으로 이만한 고통을 안긴 것이지.
‘호발귀!’
호발귀를 떠올리자 가만히 누워있을 수 없었다.
자신을 두들겨 팬 자는 분명히 호발귀다. 그리고 그는 혈마로 변해 있었다.
황급히 일어난 그는 주위를 쓸어봤다.
여기가 어디지?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지? 뇌옥이 아닌데?
주위에는 나무도 있고, 풀도 있다. 깊은 숲처럼 보인다. 바위도 보인다. 개울도 흐른다. 확실히 숲이다.
“여기…… 가?”
도천패는 주위를 쓸어보다가 옆에 사람이 누워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홍, 해자수, 등여산, 홀리!
“당매!”
도천패는 즉시 당홍을 안아 일으켰다.
“으음!”
당홍이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도천패는 급히 당홍에 완맥을 움켜쥐고 몸 상태부터 살폈다.
맥이 활발하게 뛴다. 외상이 어떤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내상은 없는 것 같다.
“휴우!”
도천패는 안도의 한숨을 불어 쉬었다.
당홍도 분명히 호발귀에게 일격을 얻어맞았다.
혼절 직전에 분명히 얻어맞는 것을 봤다. 몸이 붕 떠서 공중을 날았다. 그런데 아주 멀쩡하다.
“음!”
당홍이 신음을 흘리면서 눈을 떴다.
“깨어났어?”
“음…… 아! 머리 아파. 응? 여긴 어디야?”
당홍이 도천패의 얼굴을 보고 무심이 물었다.
그녀는 아직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모르는 듯했다.
뇌옥에 갇힌 사실도 잠깐 잊어버린 모양이다.
“어딘지 나도 모르겠어. 몸은? 몸은 어때?”
도천패가 급히 물었다.
당홍이 눈살을 심하게 찌푸리며 말했다.
“아! 호발귀! 호발귀는 어때?”
그녀도 혼절하기 직전에 호발귀에게 일격을 당한 것이 기억난 듯했다.
“모르겠어. 나도 방금 깨어났어.”
“음.”
당홍이 급히 일어나서 진기를 이끌어 전신을 살폈다.
“나 아주 멀쩡해, 왜 이렇게 멀쩡하지?”
당홍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이, 도천패는 해자수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어이! 일어나. 일어나라고!”
도천패가 진기 실린 손가락으로 해자수의 명문혈을 톡톡 두들겼다.
“아이쿠! 아, 아파. 너무 아파. 잠시만……”
해자수가 가슴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도천패는 해자수의 가슴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해자수가 가슴을 끌어안고 고통에 겨워서 절절맨다.
가슴은 할퀸 자국 하나 없이 아주 멀쩡한데.
역시 환통을 겪고 있다.
“책사 좀 살펴줘. 내가 살펴보려다가 가슴 부위에 외상이 심한 것 같아서 손대지 못했어.”
당홍이 깨어나는 것을 보자 도천패가 빨리 말했다.
“알았어.”
당홍은 대답부터 하고, 가장 상처가 심한 등여산에게 달려갔다.
등여산에 몸은 전신이 피로 범벅이다.
다행히 검에 찔린 상처는 금창약이 구멍을 막아주어서 더 이상 악화하지는 않았다. 화농도 생기지 않았다.
그 밖에 몸 상태는 비교적 깨끗하다.
“누가 치료를 했는데? 누군지 모르지만, 치료를 꽤 잘했어.”
당홍이 말하면서 허리춤을 더듬었다.
침낭에서 침을 꺼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포로가 되어 있는 동안에 소지품을 모두 빼앗겼다.
침낭도 천살단 형옥 무인들이 가져갔다.
당홍은 그 사실을 깨닫고 손가락을 곧추세웠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으면 된다. 침이 없으면 지법(指法)으로 경혈을 타격한다.
툭!
곧추세워진 손가락으로 빗장뼈 아래 유부혈(兪府穴)을 찔렀다.
검이 몸을 관통했다. 외상보다도 장기 손상이 염려되는데, 앞서서 치료한 사람이 혈을 잘 짚어놨다.
손상된 부위로 진기가 집약되어서 치료가 원활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등여산의 회복 속도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다.
검이 가슴을 관통하다 보면 위장, 간, 폐, 심장 등등 장기들이 다치게 되어 있다. 이런 장기는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다. 특히 간은 죽을 정도로 나빠진 후에야 겨우 아픈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일명 ‘침묵의 장기’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장기들도 진기로 살펴보면 손상 정도가 확인된다.
등여산은 분명히 매우 심하게 손상되었는데, 급속히 치료되었다.
남들이 두 달, 석 달 걸려서 나을 것이 단 하루 만에 나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 특!
흉향혈(胸鄕穴), 신봉혈(神封穴)…… 가슴 부위에 있는 혈을 계속 짚었다.
그러다가 문득 등여산의 허리춤에 꽂힌 서신을 찾아냈다.
당홍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서신을 집었다. 무의식중에 한 행동이다. 하지만 곧 그 서신은 자신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손을 멈췄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뇌옥에서 구해냈다. 그리고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천살단으로부터 안전하다 싶은 장소까지 데려다 놨다. 치료까지 했다.
자신들을 구해준 사람은 분명히 천살단 무인이다.
천살단 무인이 천살단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준 것이다.
특히 홀리는 혈천방 사람이나 마찬가지인데도 구해냈다.
등여산에게 보낸 편지를 읽다 보면 자신들을 구해준 사람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남에게 드러내서는 안 되는 비밀을 엿본 셈이 된다.
등여산에게 서신을 꽂아 놨으니 그녀가 제일 먼저 읽어야 한다.
“됐어. 상처가 심하지만, 내상은 거의 나았어. 상처가 터지는 것만 조심하면 돼.”
당홍은 등여산을 놓고 홀리에게 갔다.
홀리는 혈마에게 제일 거세게 얻어맞았다.
죽을힘을 다해서 구혼음소를 읊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타격 대상이 되었다. 모두 그녀가 어떻게 맞는지 똑똑히 봤다.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일격이다.
“나쁜 새끼!”
당홍은 호발귀를 떠올리면서 욕을 했다.
그리고 급히 홀리의 완맥을 움켜잡고 상태를 살폈다. 그런데,
“어! 홀리…… 가?”
당홍은 이해할 수 없어서 눈만 끔뻑거렸다.
“왜?”
“왜요? 뭐가 잘못됐습니까?”
도천패와 해자수가 동시에 물어왔다.
해자수는 정신을 차렸는데, 몸에 아무 이상이 없다. 산공독도 말끔히 사라졌다.
“아니. 상태가 너무 멀쩡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홀리, 분명히 그 자식한테 맞았지? 내가 잘못 봤나?”
“아니. 맞았어.”
도천패가 확실히 말해주었다.
“그런데 너무 멀쩡해. 맥도 안정적이고. 정신만 차리면 될 것 같아.”
홀리가 아직 혼절해 있는 것은 타격당할 때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그 충격만 가시면 멀쩡해진다.
지금은 깊은 잠에 취해 있는 것과 똑같은 상태다.
당홍이 양손으로 홀리의 머리를 짚었다.
통천혈(通天穴)과 정령혈(正靈穴) 그리고 귀 위에 있는 뇌공혈(腦空穴)을 동시에 꾹 눌렀다.
“하아!”
홀리가 크게 숨을 쏟아냈다.
홀리는 당홍이 말한 대로 아주 멀쩡하다. 홀리가 맞는 모습을 모두가 봤는데…… 도저히 멀쩡할 수 없는데…… 사람이 붕 날아가서 뇌옥 벽에 부딪혔는데.
“악!”
홀리가 깨어나다 말고 느닷없이 비명을 쏟아냈다.
홀리도 환통을 겪고 있다. 호발귀에게 얻어맞고 혼절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환통을 겪으면서 깨어났다. 그만큼 거세게 얻어맞았다.
당홍이 손에 진기를 운집해서 홀리의 명문혈을 탁탁 쳤다.
“훅!”
홀리가 거센 숨을 쏟아내며 정신을 차렸다.
“정신 좀 들어?”
당홍의 말에 홀리가 눈을 배시시 떴다.
그녀는 정신을 수습하려는 듯 당홍의 얼굴에 눈을 맞추고 잠시 생각을 추슬렀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호발귀!”
당홍이 급하게 일어나는 홀리를 부둥켜안았다.
“우선 몸부터 추스르고, 몸 어때?”
당홍의 말에도 홀리는 계속 일어서려고 했다.
“호발귀가…… 안 돼. 혈마가 되어서는 안 돼. 빨리 따라가서 수습해줘야 해.”
“정신 좀 차려!”
당홍이 홀리의 어깨를 확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홀리가 멍한 표정으로 당홍을 쳐다봤다.
“우선 몸부터 살피라고! 어때!”
그제야 홀리는 당홍을 쳐다보더니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진기를 운기해서 몸을 살폈다.
비로소 제정신이 돌아왔다.
“언니, 이상해. 나 너무 멀쩡해. 언니가 치료해 준 거야?”
홀리가 당홍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무 이상 없지?”
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상 없어. 이 사람도 이상 없고, 이상 없죠?”
당홍이 해자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해자수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상 없는 정도가 아니라 기운이 넘친다니까. 날개가 달렸으면 훨훨 날기라도 하겠어.”
당홍이 홀리를 보면서 말했다.
“우리 모두 아무 이상 없어. 우리도 호발귀에게 일격을 얻어맞았거든. 네가 제일 세게 맞고, 그다음은 이 사람. 나와 해자수는 일격에 나가떨어졌고.”
“……”
홀리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생각해보려는 것이다.
“더 이상한 건 책사야. 책사도 멀쩡해. 가서 봐봐. 책사는 가슴에 검을 맞았거든. 검이 완전히 관통했어. 그 상처 외에는 멀쩡해. 정말 화타가 치료한 거 같아.”
홀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지 못했다.
음문촌은 혈마에 대해서 상당히 깊게 연구했다.
혈마를 만들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호발귀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요?”
“아니. 우리도 방금 깨어났다니까.”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요?”
“형옥 근처야. 여긴 함부로 돌아다닐 데가 아냐. 앗차! 하면 발각된다니까.”
해자수는 어느새 주변을 탐색했다.
“형옥 근처?”
“형옥이 코앞이야. 간신히 호굴만 벗어났어.”
“음!”
도천패가 침음했다.
도천패는 지금도 유령처럼 움직이던 자를 잊지 못한다. 그자들이 두 명이든, 세 명이든 상관없다.
양쪽에서 합공했던 것이라고 해도…… 이기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다음에 만나면 어떨까? 쌍학을 유효적절하게 구사하면 버틸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그런 자가 주변에 포진해 있다면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자칫 위험을 자초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책사는 깨울 수 있겠어요?”
“깨울 수 있어. 내상은 멀쩡하다고 했잖아. 외상이 심한 편인데, 그것도 잘 치료됐어.”
그때다. 죽은 듯이 누워있던 등여산이 말했다.
“나 깨어있어요.”
“어! 일어났어?”
해자수가 반색하며 달려와 등여산을 빤히 내려다봤다.
등여산은 누운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우리를 살려준 사람은…… 호발귀에요.”
“뭐? 아냐. 넌 혼절해 있어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그 새끼가 홀리를 죽으라고 팼다니까!”
당홍이 지금도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말했다.
“우리 태산파 무공 중에 반의반령(反意半靈)이라는 기공이 있어요. 목숨이 경각에 처했을 때, 의식 한 줄기만 남겨놓고 신체의 모든 기능을 죽이는 기공인데…… 그래서 혼절한 듯 보였지만, 전 다 기억해요. 다 느꼈어요.”
“그…… 으래? 그런 기공도 있었나?”
해자수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형옥 지하 사층에 혈마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난 혈마에게 당했고, 화가 난 호발귀가 혈기를 막지 않았어요. 그래서 혈마가 되었죠. 휴우!”
등여산이 한숨을 쉬면서 일어나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