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一章 혈행(血行) (1)
꽝! 꽈앙!
철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거세게 울렸다.
지하에서 누군가가 철문을 뚫고 나오려고 한다. 수십 명이 달라붙어도 꼼짝하지 않을 철문을 마구 두들긴다.
한데 뚫고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커다란 굉음을 울리면서 마구 흔들리는 철문을 보니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다.
지하에서 괴물이 뛰쳐나오는 나오는 게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꽝! 꽝!
철문이 계속해서 흔들렸다.
지하에 있는 괴물이 무엇으로 철문을 두들기던 저 정도로 타격을 가하면 육신에도 엄청난 충격이 전해질 것이다.
만약 주먹으로 철문을 때린다면 주먹 뼈가 아스러진다. 발로 찬다면 무릎뼈가 결딴날 것이다.
그 정도로 강한 타격이 철문에 가해진다.
꽝!
이건 확실히 발로 차는 소리다.
철문은 계단 위에 있다. 그래서 몸으로 부딪칠 수가 없다. 사실은 발로 차기도 힘들다. 밑에서 위로 쳐야 하니 오직 손으로만 두들겨야 한다.
하지만 누가 들어도 발로 차내는 소리가 울렸다.
쿠우웅!
철문이 흔들리고 지하 암동이 흔들렸다.
형옥 무인들은 사색이 되어서 서로를 쳐다봤다.
이건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하지 않은가. 지하 암동은 지진에 매우 취약하다.
지상에 있는 사람은 피할 수도 있지만, 지하에서는 피할 곳이 없다.
암동이 무너지면 그대로 매몰된다.
흙더미가 위로 몇 겹이나 쌓였는지 모르기 때문에 뚫고 나갈 수도 없다.
앉은 자리가 무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하 암동이 위태롭게 흔들리면 뇌옥 무인들은 상당히 불안해진다.
괴물이 뛰쳐나오지 못할 것은 안다.
철문은 인간이 부수기에는 너무도 탄탄하다. 성난 황소가 들이받아도 열리지 않는다.
다만, 저런 식으로 철문에 타격을 가하면 암동이 무너질 위험이 매우 크다.
꽝! 꽝! 꽝!
지하 괴물은 잠시도 쉬지 쉼 없이 철문을 두들겼다.
“저러다가 저거 진짜 부서지는 거 아니야?”
“설마 그게 부서지겠어? 두께 봤잖아. 한 뼘이 넘어. 그걸 어떻게 부셔.”
“내가 생각해도 못 부실 것 같기는 한데.”
“저러다가 잠잠해질 거야. 힘 빠지면 저라고 별 수 있어?”
형옥 무인들은 불안한 눈으로 지하 사층을 쳐다봤다.
스으으읏!
뇌옥 어둠 속에서 한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 형옥 무인들의 모든 관심은 지하 사층에 쏠려 있다.
지하에 있는 괴물이 너무도 엄청난 힘으로 철문을 두들기고 있는 바람에 형옥 전체가 사층을 보고 있다.
모든 무인이 오직 사층에만 신경을 집중시킨다.
밀운은 혼란을 틈타서 형옥 안으로 잠입했다.
그는 형옥으로 드나들 수 있는 길을 알고 있다. 형옥 무인들의 장단점을 환히 꿰뚫는다. 동굴을 뇌옥으로 쓸 경우, 취약점이 어둠에 있다는 것도 안다.
더욱이 지금은 바깥 경계에 신경을 집중시키지 못한다.
스으으! 스읏!
그는 어둠에서 어둠으로 움직였다. 일 층을 지나서 이 층으로, 그리고 삼층으로 내려왔다.
일 층에는 등여산이 없다.
이 층에도 없다. 홀리를 비롯해 여러 명이 있지만, 정작 등여산은 보이지 않는다.
천원주는 등여산을 구하라고 했다. 다른 사람도 구할 수 있지만, 최우선은 등여산이다.
아마도 다른 사람은 구할 수 없을 것 같다. 등여산만 빼내 가는 것도 벅차다.
‘음!’
삼층으로 내려온 밀운은 속으로 탄식을 흘렸다.
지하 삼층은 텅 비었다. 사람이 없다. 철문을 지키는 무인 두 명이 전부다.
삼층 한복판에 검에 관통당한 등여산이 쓰러져 있다.
밀운은 등여산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미간부터 찌푸렸다. 언뜻 봐도 목숨을 구하기는 너무 늦었다.
기식이 엄연하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숨이 끊어졌다. 가슴을 꿰뚫은 장검이 너무 치명적이다.
맥문을 짚어서 확인해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척 보면 안다. 저승에 간 사람을 끌어내는 단약이 있다면 몰라도 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밀운은 암울한 눈으로 경계 무인을 쓸어봤다.
등여산을 데리고 뇌옥을 탈출하려면 저들을 쓰러뜨려야 한다.
은밀히 숨어들어와서 살피는 것까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뇌옥 무인들의 이목쯤은 간단히 따돌린다. 무엇보다도 형옥 무인들은 이곳에 천살단 최 중심처라는 안온한 마음에 빠져 있다.
침입할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등여산은 시신에 불과한데, 뇌옥 무인 두 명을 죽이면서까지 데리고 나가야 하나?
밀운은 한순간 갈등했다.
등여산에게 조금이라도 살 가능성이 있다면 당장 움직이겠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늦었다.
스읏!
밀운은 단검을 뽑았다.
천원주가 어렵게 부탁했다. 천살단을 배신하고 등여산을 구해달라고 말했다.
시신에 불과할망정 데리고 나가야 한다.
형옥 무인을 죽여야 한다면 죽인다. 그때,
꽝!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우렁찬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토록 단단해 보이던 철문이 우지끈 부서져 나갔다.
스읏!
밀운은 즉시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어둠 속으로 숨었다.
이제 곧 혈마가 올라온다. 철문을 부수고 악귀가 되어서 올라설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사람을 죽인다.
혈마가 생기를 쫓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밀운은 귀식대법(龜息大法)을 펼쳤다.
숨을 죽인다. 체온을 떨어트린다. 전신 감각을 아주 느슨하게 풀어놓는다.
보통 사람은, 아니 상당히 뛰어난 무인까지도 이 정도 귀식대법이면 속일 수 있다.
하지만 혈마는 속이지 못한다.
귀식대법을 아무리 절묘하게 펼쳐도 생기는 드러난다.
목숨이 살아있는 이상, 혈마의 눈을 피하지 못한다. 또한 혈마와 부딪치면 삶을 도모하지 못한다.
‘최악이군.’
밀운은 즉시 독단을 꺼내서 꿀꺽 삼켰다.
대략 일다경 정도 완전히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역천금생단(逆天擒生丹)이다.
하늘의 섭리를 거슬린다고 말할 정도로 강력한 독단이다.
밀운의 무공으로 감당할 수 있는 초강적을 만났을 때, 혈천방주가 귀검 같은 자를 만났을 때, 티끌만 한 기척은 물론이고 생명의 기운까지 소실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하기 위해서 특별히 준비해둔 독단이다.
이 독단은 굉장히 치명적이다. 몸에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한다.
만성 두통이 일어날 것이다. 심장 발작도 일어난다.
자칫하면 부작용으로 죽을 수도 있다. 혼절한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할 경우도 고려한다.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폐 조직이 고사할 수도 있다.
장기 움직임이 멈추는 것도 부작용 중 하나다. 창자가 멈추면 굉장한 복통이 일어난다. 죽은 사람은 느끼지 못하지만 산 사람은 창자가 가닥가닥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창자의 움직임은 미묘해서 빠르게 움직여도 고통스럽게, 느리게 움직여도 고통스럽다. 딱 적당한 선에서 움직여야만 복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창자가 고통에 시달리면, 뇌는 그 고통을 담아둔다. 그러다가 정신이 들면 한꺼번에 쏟아낸다.
일종의 잔통(殘痛)이다.
실질적으로 고통은 일어나지 않는데 뇌가 고통이 일어난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 외에도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앞으로 죽는 순간까지, 늙어서 죽을 때까지, 몸에 일어나는 수많은 이상 증세를 전부 다 역천금생단을 복용한 탓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지금 당장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십 년 후나 이십 년 후 혹은 사오십 년 후에 불쑥 병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정말 위험할 때가 아니면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
밀운은 망설이지 않고 역천금생단을 복용했다.
“크으윽!”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다행스럽게도 형옥을 지키던 무인들은 그의 신음을 듣지 못했다. 삼층으로 걸어 올라오는 괴물에 넋이 빠져서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모를 판이다.
“컥!”
밀운을 비명을 쏟아낸 후, 몸을 바르르 떨었다.
정말로 사약을 먹고 죽을 때처럼 몸이 마비되었다. 숨이 막혔다. 그리고 마침내 의식마저 잃었다.
밀운은 일시 죽었다.
꽈앙!
철문이 떨어져 나갔다.
형옥 무인들은 철문이 버텨줄 것으로 예상했는데,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
괴물은 철문을 부숴버렸다.
스읏!
괴물이 나타났다. 아니, 나타나자마자 갑자기 눈앞에서 번쩍! 불똥이 튀었다.
쇠와 쇠가 부딪칠 때처럼 빨간 섬광이 탁 튀어나왔다.
귀화미요공!
호발귀의 무공을 아는 사람은 이 순간적인 불꽃이 귀화미요공의 결정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불꽃을 보면 눈이 먼다.
“헉!”
철문을 지키던 무인들이 경악성을 내질렀다. 그들의 눈은 순간적으로 멀어버렸다. 동시에 몸도 굳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반 발짝조차 움직이지 못한다. 그 순간,
쒜에엑! 퍼엉! 펑!
망치로 허공을 후려갈기는 소리가 울렸다.
어느새 날아온 강력한 쇠망치가 두 무인의 머리를 가격했다.
두 주먹…… 살천광마의 구뢰마권이 우렁찬 벽력 소리와 함께 살을 찢고 뼈를 부러트렸다.
두 무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일 권에 머리가 깨졌다. 주먹에 맞았을 뿐인데 몸이 삼 장이나 날아가 떨어졌다.
너무도 강력한 권력이다. 깨진 머리에서 피와 뇌수가 한데 섞여 줄줄 흘러내린다.
“크크큭! 크크큿! 킥!”
괴물이 괴소를 흘렸다.
괴물의 전신은 피로 흠뻑 젖어 있다.
혈인이다.
괴물은 사람을 어떻게 죽였는지 죽인 자의 피로 온몸을 흠뻑 적신 상태다. 지하 사층에 있던 혈마들을 죽인 흔적일 텐데……
걸을 때마다 옷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괴물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인형을 봤다.
등여산! 검에 관통당한 모습, 죽은 듯이 누워있는 여인.
“크크크! 크큿!”
괴물이 이미 죽은 듯 숨도 쉬지 않고 있는 등여산을 향해서 걸어갔다.
“크윽!”
괴물이 등여산의 몸에 꽂힌 검을 잡고 쑥 잡아 뽑았다.
파앗!
무지막지하게, 상처를 돌보지 않고 막무가내로 검을 뽑았다.
순간, 핏물이 확 번졌다. 등여산의 몸에서 솟구친 핏물이 괴물을 혈의를 다시 적셨다.
괴물은 검이 필요한 것인가?
괴물은 검 외에 다른 것은 필요 없다는 듯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등여산을 발로 차버렸다.
퍼억!
발길로 걷어채는 소리가 무척 크게 들렸다.
소리만 듣고도 오장육부가 뭉개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강하게 맞았다.
퍼어억!
발길에 차인 작은 동체가 훨훨 날아가 벽에 맞고 쿵 떨어졌다.
벽에 부딪치는 소리까지 가슴 아프게 울린다.
이제 등여산은 더 볼 것도 없다. 괴물에게 저 정도로 얻어맞으면 성한 사람도 죽는다.
괴물의 발길질은 단순한 발차기가 아니다. 무영삼절 멸천겁을 썼다.
괴물은 손짓, 발짓이 모두 무공이다.
괴물은 그래도 성이 차지 않는지 손을 들어서 작은 동체를 후려쳤다.
등여산을 직접 주먹으로 가격한 것은 아니다.
격산타우(隔山打牛)처럼 허공을 격하고, 기력으로 동체를 후려쳤다. 손바람을 일으켜서 뇌옥 바닥에 쓰러져 있는 등여산을 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등여산은 이번에도 상당한 타격을 받았는지 펄쩍 뛰어올랐다가 다시 쿵 떨어졌다.
살아있는 잉어를 팔팔 끓는 기름 속에 넣었을 때처럼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크크크!”
괴인이 괴소를 내지르며 사방을 쓸어봤다.
살아있는 자는 없다. 귀인의 눈이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향했다.
스으읏! 슷!
괴물은 미끄러지듯 뇌옥을 가로질러 가서 계단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이 층으로 향하는 문을 발로 걷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