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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50화 (250/500)

第六十章 울분 (5)

‘이럴 수가!’

노인은 경악했다.

자신이 공들여 만든 사마가 둘이나 죽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계속 도주하기에 바쁘다.

혈마가 사마를 정확히 쫓아간다.

사마 셋이면 혈마를 충분히 눕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고양이와 쥐다.

왕 쥐 몇 마리를 풀어놔야 쥐 잡아먹는데 맛이 들인 고양이를 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럴 수가!’

노인은 이미 사태가 기울어졌음을 예감했다.

혈마가 운이 좋아서 사마를 발견해낸 게 아니다. 어둠 속이 아니라 수림에서 싸워도 찾아낼 것이다.

‘일단 자리를 피해야지.’

노인은 즉각 움직이려다가 피를 철철 흘리면서 쓰러져 있는 등여산을 봤다.

검이 너무 깊게 박혀서 소생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노인은 혈마에게 쫓기고 있는 사마를 쳐다봤다.

사마는 꽤 오래 버티고 있다. 건각찰력술은 수련하기가 고단해서 탈이지 일단 수련을 하면 중원에서 제일 빠른 경공술의 대가로 거듭날 수 있다.

아무리 혈마라고 해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또 사마는 생기를 띄우고 있지 않아서 혈마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생기격타도 사용하지 못한다.

쒜에에에엑! 퍼억!

혈마가 검을 쳐냈다. 그리고 사마가 비틀거리다가 다시 도주했다.

“후유!”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에는 꼼짝없이 사마가 죽는 줄 알았다. 그랬다면 당장 혈마의 검이 자신을 향했을 것이다.

‘인질!’

노인은 등여산을 들어서 옆구리에 끼고 조심스럽게 사 층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혈마는 사마를 쫓는데 정신이 없다. 그래도 혹시 자신의 연인을 잡아가면 쫓아오지 않을까 불안했다. 하나 쫓아오지 않는다. 계속 사마만 쫓는다.

‘후! 진땀 나네.’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발걸음이 더욱 조심스러웠다.

노인은 자신의 무공을 잘 알고 있다. 강하다. 아주 강하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혈마나 사마, 이런 괴물들을 상대로 싸울 만한 무공은 아니다.

척! 스읏! 슷!

한 칸, 한 칸……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계단을 밟았다.

다행스럽게도 혈마는 노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직 사마만 쫓았다.

사 층 밀실이 충분히 신법을 펼칠 수 있을 만큼 넓기에 망정이지 좁은 공간이었다면 사마는 벌써 잡혀서 죽었다.

‘쩝! 아깝긴 한데.’

쫓기는 사마를 보자, 노인은 가슴이 아팠다.

어떻게 만든 물건인데.

사마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약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

강한 독에 중독되어서 사람이 아닌 괴물로 탈바꿈시켰다. 건각찰력술도 그런 와중에 심어놨다.

노인은 모든 무공은 쾌(快)로 집약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마를 만들 때도 속도에 신경을 썼다.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인다. 공격도 빠르고 수비도 빠르다.

검초도 빠르다. 특히 눈앞에서 팍! 사라지는 환술은 정점이다.

무공은 정신이 멀쩡할 때부터 시작한다.

마초(魔草)를 복용하고, 독액에 몸을 담그고, 독연(毒煙)을 마시면서 잠들기 전…… 이들은 이미 고수였다.

독액이 전신을 변화시킬수록, 무공은 점점 발전한다.

사마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는 이유는 몸을 돌보지 않고 수련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네 시진을 자지만, 사마는 한 시진만 잔다. 그것도 서서 잠깐 눈만 붙인다.

강렬한 독액이 신경을 망가트렸기 때문에 피곤한 줄도 모른다.

사마를 만드는 일은 굉장히 통쾌하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어떤 혹독한 수련도 주는 족족 받아먹는다.

살인하라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죽인다. 나 대신 검을 맞으라고 해도 기꺼이 맞는다.

이런 괴물을 자신이 만들어냈다.

‘밖에서 죽일 걸 그랬나? 아냐. 숲이 아무리 숨을 데가 많아도 어둠만은 못해. 아! 미련을 버리자. 이 싸움은 끝났어. 혈마 승리! 하지만…… 흐흐! 네놈도 죽어.’

스읏! 슷!

노괴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밟아 올라가 입구에 있는 철문을 조심스럽게 두들겼다

텅!

노인은 철문을 두들기면서도 혹여 혈마가 듣지 않을까 염려했다. 하지만 혈마는 사마를 쫓느라 정신이 없다. 정말로 사마 외에는 일절 신경 쓰지 않는다.

파파팟! 퍼어억!

사마가 벌써 삼 검을 맞았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통증을 이기지 못해서 쓰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마는 모기가 물었냐는 듯이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질주한다. 하지만 신법은 확실히 느려졌다.

이제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탕! 터엉! 텅! 텅! 텅!

노인은 철문을 다시 두들겼다. 그제야 철문이 열리면서 형옥 무인들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뭐해! 이 새끼들아! 빨리 문 열지 않고!”

노인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급히 철문 밖으로 튀어 나왔다.

“닫아! 빨리! 다, 다, 닫아!”

노인이 워낙 급하게 말해서인지 형옥 무인들이 사정도 듣지 않고 급히 철문을 닫아걸었다.

“휘우!”

노인은 사 층 밀실을 벗어난 후에야 크게 한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이내 사 층에 있는 약재를 떠올렸다.

“아차!”

지하 사 층에는 사마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가 다 있다.

마초를 비롯한 독액 스물한 가지, 근육을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흑봉침, 머릿속에 투입해서 뇌를 망가트리는 얘기 벌레까지 모두 다 있다.

노인은 잠시 철문 옆에 앉아서 눈을 끔벅거렸다.

이번 일은 확실히 실수다. 사마를 너무 믿었다. 아니, 혈마를 너무 얕잡아봤다. 설마 혈마가 사마의 빠름을 잡아낼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사마는 죽는다. 하지만 혈마도 잡았다.

혈마는 결코 사 층 밀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꼼짝없이 걸려들었다.

문제는 미쳐서 날뛰는 저놈을 어떻게 하느냐다.

“책사는 어떻게 하죠?”

형옥 무인이 검에 찔린 등여산을 보며 물었다.

“이거 뭐 살겠어? 내버려 둬.”

노인이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형옥 무인들이 재빨리 사라졌다.

그동안 노인의 성질을 한두 번 받아본 게 아닌 듯했다.

‘이제 남은 사마는 두 개. 사마를 더 만들려면 밀실에 있는 것들이 필요한데. 혈마 저 새끼가 다 때려 부술 거고. 어쨌든 네 놈은 확실히 잡아둬야겠다.’

노인은 인상을 찡그렸다.

노인은 혈마가 혈천방 사멸강진을 통과한 사실을 알고 있다.

사멸강진은 죽음의 절진이다. 그런데 그것을 통과했다.

물론 어떻게 통과했는지도 안다. 첫 번째 관문은 격파했고 두 번째부터는 혈천방주의 도움을 받았다.

놀라운 것은 첫 번째 진을 무력으로 통과했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무인 중에서 사멸강진 첫 번째 진을 돌파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천살단주는 물론이고 혈천방주도 사멸강진은 통과하지 못한다.

진을 통과하는 자는 괴물이다.

혈마는 괴물이다. 그래도 지하 사 층은 탈출하지 못한다.

“후후!”

노인은 철문 옆에 있는 쇠 손잡이를 확 내려 당겼다.

구르르릉! 구릉! 구르르릉!

발밑 지하실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지하 사 층에서 삼 층으로 올라서는 계단이 무너졌다. 지하 사 층의 높이는 무려 사장이나 된다. 등에 날개가 달리지 않은 이상 날아오르지 못한다.

또한, 사 층 입구를 틀어막은 철문은 옥현한철(玉鉉寒鐵)로 제작되었다.

제아무리 좋은 명도로 내리쳐도 열리지 않는다.

지하 사 층은 사마를 만든 곳이다. 천하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 요처다. 이런 곳의 경비를 함부로 했겠나. 때에 따라서는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만든다.

일단 혈마를 가두는 데는 성공했다.

* * *

천원주는 탁자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아니, 찻잔에 차를 따라 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형옥에서 굉음이 울렸습니다.”

조용한 보고가 이어졌다.

천원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심한 표정으로 이미 식어버린 찻물에 쳐다볼 뿐이다.

찻물에 그녀의 얼굴이 비친다.

‘기어이. 후우!’

천원주는 남몰래 한숨을 토해냈다.

감찰당이 움직이고, 약전이 부산을 떨었다. 형옥은 오랜만에 문을 열었다.

그들 모두 천원주 휘하의 무인들이다.

약전주, 감찰당주, 형옥주…… 하지만 천원주에게 보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천살단의 보고체계는 엄격하다.

보고 누락은 태형 삼십 대에 처한다.

삼십 대…… 가벼운가? 아니다. 진기를 실어서 때리면 한 대만 맞고도 즉사할 수 있다.

그래서 태형 삼십 대는 경고에서부터 죽음까지 어떤 결정이라도 내릴 수 있는 백지 어음이다. 징벌을 완전히 상급자에게 맡긴다는 뜻이다.

이번 보고 누락 건은 그들 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목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입이라도 맞춘 듯 그 누구도 보고하지 않는다. 단독 행동을 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든 행동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약전이 움직이는 것을 필두로 해서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되었다. 수십 번 예행연습이라도 한 듯이.

오늘 바로 명령을 받고 행한 행동은 아니다.

천원주는 찻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보려고 해서 본 것은 아니다. 눈길을 던지다 보니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천원주는 자신의 얼굴을 무심히 봤다.

곧 자신의 얼굴이 사라지고, 등여산의 얼굴이 드리워졌다. 활짝 웃는 얼굴이다.

“단주 명령이겠지?”

힘없이 중얼거린 소리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판단됩니다.”

전주, 당주, 형옥주가 천원주에게 보고하지 않고 단독으로 움직였다는 것은 천살단주의 직명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만한 명령이 없다면 그들은 정말 큰일 난다.

“밀운(密雲).”

“네.”

방금 보고를 한 자가 대답했다.

“네 목숨을 빌려야겠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시하십시오.”

밀운이라는 자가 즉시 대답했다.

“밀운.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지금까지 원주님의 은혜 많이 받습니다. 말씀…… 부탁드립니다.”

“책사를 구해야겠다.”

“알겠습니다.”

밀운은 그런 말인 줄 알았다는 듯 흔쾌히 대답했다.

“혹여 목숨을 구하거든……”

“원주님.”

천원주는 말문을 닫았다.

이런 일을 하고도 살기를 바랄 수는 없다.

일단, 천살단 형옥은 난공불락의 요새다. 형옥에 갇힌 죄수를 빼내 온다는 것은 꿈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현재 등여산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다.

형옥 사정은 밀운도 모른다.

도대체 어떻게 구하라는 말인가.

둘째로 운이 좋아서 책사를 빼냈다고 치자.

밀운의 행동은 천살단주의 직명을 정면으로 거슬리는 일이 된다. 단주의 명을 어기는 자, 즉참이다.

밀운이 형옥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는 죽은 목숨이다.

“가보겠습니다. 더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천원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멍하니 찻물만 쳐다봤다.

‘이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랬는데……’

입에서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단주는 오래전부터 괴마(怪魔) 하구량(夏仇梁)과 함께 혈마를 연구했다.

그 사실은 진작 알았다. 약전을 통해서 온갖 독이 다량으로 제공되었다.

그리고 약전주로부터 그런 사실을 가감 없이 보고 받았다. 그러니 모를 수 없다.

그때까지만 해도 천살단주는 거리낌이 없었다.

혈마를 연구할 뿐, 도의에 어긋난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믿음까지 심어주었다.

오늘 도천패와 당홍 앞에 나타난 괴인 두 명이 바로 그 혈마일 것이다. 괴마 하구량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도천패는 그들이 한 명인 줄 알았지만, 밀운은 두 명이라고 했다.

혈마가 환술을 사용한다. 이인 일조로 만들어내는 환술이다. 그리고 이 무공은 마공관에 있는 마공이기도 하다. 그러면 마공관 관주까지 가세한 건가?

‘단주…… 이렇게 되면 우리가 혈천방과 다를 게 뭐가 있다고. 이백 년. 이백 년 세월이 우리와 혈천방을 같은 족속으로 만들어 버렸나 봅니다.’

천원주는 찻잔을 내려다봤다.

휘이잉!

밀운이 떠나서인가? 방안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유독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천원주는 한기를 느끼고 옷깃을 여몄다.

추운 날씨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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