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249화 (249/500)

第六十章 울분 (4)

“크크크! 크크크크!”

입에서 괴소가 흘러나온다.

묘한 일이다. 음침한 웃음은 왜 토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은 하지 않은 행동인데, 귓가로 웃음소리가 들린다.

혈기가 극단을 향해서 치솟고 있다.

‘바로 지금!’

호발귀는 드디어 자신이 혈마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혈마가 되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멀쩡한 정신과 깊은 나락의 중간…… 정신이 떨어지기 직전이다.

이 순간을 그토록 찾고자 했다.

전신을 쇠사슬에 묶고 끊임없이 혈마가 되면서 발악한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찾고 싶어서였다.

드디어 한계점을 찾았다.

여기서 구혼음소를 읊으면…… 반야심경에 이은 자신만의 구혼음소를 떠올리면 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몸은 혈마로 변하되, 정신 일부는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자를 이길 수가 없다.

지금까지 혈마 무공을 모두 펼쳐보았지만, 그림자를 잡지 못했다. 오히려 등여산이 중상을 입었다.

지금 무공으로는 등여산을 지킬 수가 없다.

‘혈마!’

혈마가 되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다.

호발귀는 품에 안긴 등여산을 쳐다봤다.

“내 사랑. 내 여자.”

무의식중에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걷잡을 수 없이 치솟던 혈기가 머리 중심부를 강하게 타격했다.

실제로 어떤 타격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호발귀는 텅! 하는 울림을 들었다.

그리고 정신이 아득히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

“크크큭! 크크크큭!”

혈마는 안고 있던 등여산을 귀찮은 듯 홱 집어던졌다.

쿵!

등여산이 멀리 날아가 떨어졌다. 아주 거칠게, 인정사정없이 떨어져 뒹굴었다.

“끼아아악!”

혈마가 괴성을 토해냈다.

다리 밑에 그림자가 숨어 있다. 아주 조용히, 침착하게, 죽은 듯이 서 있다.

“칵칵칵칵!”

혈마는 괴성을 지르면서 그림자에게 달려들었다.

“엇!”

노인은 깜짝 놀라서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는 더는 생기를 쫓지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이 드러내는 생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 호발귀는 오감이 총동원되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피부로 느낀다. 적을 찾는 모든 방법이 총동원되었다.

노인이 생기를 아는 것은 아니다. 생기가 무엇인지는 알지만, 그것을 보고나 느끼지는 못한다.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혈마를 찾는 게 아닌가.

다만, 혈마의 움직임이 크게 달라졌다.

괴소를 지르기 전에는 순전히 느낌을 쫓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은 귀를 쫑긋 세우고, 코를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는다.

마치 사냥개가 짐승을 쫓듯이.

혈마는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그림자 두 명을 찾아냈다.

두 명은 각기 떨어진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한 명이 움직임을 보내면 혈마가 달려든다. 그러면 즉시 물러선다. 대신 다른 쪽에서 공격을 시작한다.

혈마는 양쪽 움직임을 한 사람이 일으킨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빠름이 나오는 것이다.

전형적인 속임수다.

웬만한 고수는 이런 속임수로 속일 수 없다. 하물며 호발귀나 등여산, 홀리 같은 자들은 두말할 나위 없이 초고수다. 더더욱 속임수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런 속임수가 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림자들이 기운을 숨길 수 있어서다.

이들은 사람이면 당연히 발산해야 하는 생기를 감춰버렸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의 생명을 반쯤 죽여버렸다.

일단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다. 생각이란 것을 하면 여러 가지 부산한 행동들이 나온다. 그러니 아예 머리를 죽인다.

두 번째로 몸을 죽였다.

정확히 말하면 몸이 일으키는 욕구를 완전히 말살시켜 버렸다.

이들은 절반은 죽은 인간이다. 싸우는 감각은 살아있지만 생각하는 기능은 사라졌다.

혈마를 연구하다가 툭 튀어나온 변종이다.

사마(死魔)!

혈마에 대비해서 만든 명칭이다.

사마는 천살단주가 말한 것처럼 인간 병기다. 영원히 배신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강한 창칼이며, 이 세상 어떤 인간도 죽일 수 있는 보배다.

사마는 혈마만큼 강하지 않다.

하지만 혈마는 싸우는 감각조차 잃어버린 광인이라는 점에서 사마가 월등히 우월할 수도 있다.

사마는 생전에 사용했던 무공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호랑이가 사슴을 사냥할 때처럼 공격본능, 공격 수법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생각이라는 것이 없는 초일류고수가 사마다.

또한, 사마는 통제하기 쉽고 시간과 재료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혈마와 사마의 싸움이라. 큿!’

노인은 턱을 괴고 앉아서 재미있는 구경을 했다.

혈마가 사마를 찾고 있고, 사마는 호시탐탐 공격기회를 노린다.

사마가 노리는 공격기회 속에는 등여산을 이용하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다.

인질을 이용해서 공격한다.

혈마는 결코 생각하지 못할 공격 방법이다. 정신이 온전할 때 주입해 놨고, 뼛속에 저장해 놓은 사마만이 사용할 수 있는 지극히 뛰어나고 효과 좋은 공격이다.

혈마는 냄새를 쫓았다.

보통 사람은 인내를 맡지 못한다. 인내가 심한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맡기 힘들다.

하지만 혈마는 살 냄새를 맡는다.

혈기로 똘똘 뭉쳐진 혈마는 인체의 감각이 수배 이상 증진되어 있다. 눈도 밝고, 귀도 청명하며, 후각은 짐승을 능가할 정도다. 그러니 살 냄새를 맡는 것은 일도 아니다.

쒜에에엑!

혈마가 사마를 찾았다.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 냄새로 찾았다. 그리고 즉각 공격해 들어갔다.

팟!

혈마가 계단 밑에 있는 사마를 공격하자, 벽에 붙어 있던 사마가 즉시 움직였다.

혈마를 속이는 움직임이다.

사람이 그쪽에 있지 않고 이쪽에 있다고 말한다.

혈마는 다른 쪽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원래 노리던 사마를 단숨에 쫓아갔다.

팍!

혈천도법, 혈천겁이 터졌다.

사마는 빠르게 움직여서 검을 피했다. 하지만 재차 이어진 두 번째 혈천겁은 피하지 못했다.

팍! 팍! 팍…… 팍!

사마는 머리에 검을 십여 번이나 맞았다.

“크크큭! 킥킥! 끄아아악!”

혈마를 괴소를 지르면서 내리치고,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오직 머리만 노리고 계속 내리쳤다.

사마의 머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끼아아아악!”

혈마가 괴소를 흘리면서 검을 힘껏 내리찍었다.

퍼억!

사마는 단숨에 몸이 갈라졌다. 머리에서 들어온 검이 가슴까지 갈라버렸다.

스읏! 푸아악!

검을 뽑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끄아아아악! 킥킥! 킥킥킥!”

혈마는 만족한 듯 웃었다.

혈마는 지금 누구를 죽인 것일까? 사람을 죽였을 때는 지금처럼 기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스읏!

혈마가 몸을 돌려 사 층 밀실을 훑어봤다.

사 층에는 생기를 가진 자가 두 명 있다. 노인과 등여산이다. 또 생기를 숨긴 자가 한 명 있다. 사마가 벽에 바싹 붙어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스읏!

혈마가 사마를 향해 움직였다.

혈마는 생기를 가진 자보다도 생기를 숨긴 자, 사마를 쫓는다. 인간보다 사마가 공격 우선순위에서 앞선다.

인간은…… 생기를 가진 자들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환히 드러난다. 움직임 또한 혈마보다 느리다.

이런 자들이 위협될 리 없다.

반면에 사마는 위협이 된다.

실제로 혈마는 다리에 일 검을 맞았다. 피가 흐르고 있다. 수차례 방향을 잘못 잡고 농락당하기도 했다.

혈마는 사마를 적으로 간주했다.

사람과 사마가 같이 있을 때, 혈마는 절대적으로 사마부터 쫓는다. 지금처럼.

파파파팟! 파파파팟! 파팟!

혈마는 정확히 사마가 서 있던 벽을 격타했다.

“마음대로 해봐. 도주하든 싸우든. 어디 보자. 네가 뭘 택하는지.”

노인은 사마에게 다른 명령을 내렸다.

이전 명령은 공격이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호발귀의 숨을 끊으라고 명령했었다.

사마는 열 개 내외의 명령을 알아듣는다.

노인은 명령을 토해내자마자 재빨리 움직여서 한쪽에 쓰러져 있는 등여산을 낚아챘다.

등여산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판단이 되지 않는 상태다. 기식이 엄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혈마를 협박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이 여자 죽어!”

노인은 음성에 진기를 실어서 쩌렁 소리쳤다.

노인의 음성이 사 층 밀실을 금방이라도 무너트릴 듯 요란하게 울렸다.

혈마의 심기를 흔들어서 사마에게 공격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혈마가 잠시라도 눈길을 돌린다면 성공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백 번 낫다.

하지만 혈마는 노인의 말을 완전히 무시했다.

쒜에엑! 쒜에에엑!

혈마가 사마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다. 혈마는 노인과 등여산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주위에 누가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쳐다보지 않는다.

혈마는 사마에게 단단히 꽂혔다.

노인의 인질극은 아무런 효험도 발휘하지 못했다.

어쩌면 혈마는 등여산이 죽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를 죽인 사마를 쫓는 게 아닐까?

“킥킥킥! 끄아악! 끼이익!”

혈마가 연신 괴소를 흘렸다.

잡을 듯, 잡을 듯…… 금방이라도 잡을 듯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마는 확실히 도주를 선택했다. 죽을힘을 다해서 도주한다.

또 혈마는 사마를 바싹 뒤쫓고 있다. 사마가 찰나라도 멈칫거리면 바로 검이 폭발할 것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매우 놀랍다.

사마는 전력을 다해서 도주하는 중에도 기척을 흘리지 않는다.

기운을 드러내지 않는다. 진기는 물론이고, 인간이라고 느껴질 만한 모든 요소가 배제되었다.

노인이 내놓은 사마는 마지막 실험을 통과했다.

사마를 매우 굶주린 호랑이 우리 속에 들여보낸다. 그리고 반응을 본다.

물론 이 실험에는 약간의 장치를 한다.

맹수의 시력이 닿지 않는 어둠이 필요하고, 후각을 죽일 수 있는 약전의 약이 필요하다. 맹수의 눈과 코를 떼어놓고 오직 귀만 열어놓은 채 실험한다.

맹수의 눈과 코는 인간을 몇 배나 능가한다. 물론 청각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사마 정도 된다면 맹수의 눈과 코는 피하지 못해도 청각은 피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노인이 생각한 사마의 구조다.

사마는 기본적으로 매우 빠른 신법을 수련했다.

사마 세 명이 호발귀를 속일 때, 단순한 속임수만 가동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수련한 신법도 사용되었다.

건각찰력술(健脚擦力術)!

노인이 사마에게 주입한 신법이다.

손을 수련하는 외공으로 유명한 공부가 있다. 철사장(鐵砂掌)이다.

팔팔 끓는 모래에 손을 쑤셔 넣으며 손을 단련시키는데, 쇠처럼 단단한 손을 얻으려면 약물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약초를 즙 내서 손에 발라 근골을 강화한다.

이 약물은 독성이 너무 강해서 피부가 새카맣게 타는 것은 일상적이고, 자칫하면 힘줄까지 태워서 강한 손은커녕 손을 쓰지 못하는 불구로 만들기도 한다.

건각찰력술이 그 방법이다.

약물로 다리 근육을 모두 태워버린다. 쇠처럼 강하게 단련시킨다. 근육, 힘줄, 뼈…… 다리 전체가 쇠몽둥이처럼 탄탄해진다. 또한, 아주 강한 탄력도 생긴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절대로 견디지 못할 고통이 엄습하지만, 사마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다.

쒜에에엑! 쒜에엑!

혈마가 쫓고 사마가 도주한다.

사마는 이미 자기가 발각됐다는 걸 안다. 그래서 사력을 다해 도주한다.

천적의 등장을 예감한 것이다.

혈마와 사마는 인간이 아니다. 짐승이다. 짐승의 순수한 본능으로 사마는 혈마를 두려워한다.

마찬가지로 혈마는 자신의 존재에 위협이 되는 적을 죽이려고 한다.

혈마가 인간을 죽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단순한 살심의 발로이지만 사마를 죽이는 것은 혈마에게도 생존 문제다.

“끼아아아악!”

혈마가 괴소를 내지르며 검을 쳐냈다.

휘이이잉!

혈마의 검이 사마의 등을 스치며 지나갔다.

이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사마는 혈마 앞에서 숨지 못한다. 생기를 감추고, 건각찰력술로 경이적인 신법을 펼쳐도 혈마에게 발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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