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十章 울분 (1)
쉬이잇!
‘온다!’
호발귀는 공격을 감지했다.
어떤 느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공기가 약간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쉬잇! 파앗!
호발귀는 즉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공기가 흔들린 쪽을 향해 혈천도법 혈겁도를 펼쳤다.
아니, 혈겁도는 곧 혈천삼분으로 변형되어서 넓게 퍼져나갔다.
혈겁도로는 한 점을 향해서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혈천삼분으로는 일정 부분을 폭넓게 공격한다.
바람을 일으킨 곳에 일차 타격을 가하고, 그 주위까지 후려친다.
쒜에에엑!
순식간에 사 층 밀실에 검풍이 회오리쳤다.
검풍은 순식간에 멈췄다. 검도 멈추고, 호발귀도 멈췄다. 모든 움직임이 일체 사라졌다.
조용하다.
‘놓쳤어!’
호발귀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혈천도법을 펼쳤지만, 검에 걸리는 것이 없다. 상대방은 들어오기도 빨리 들어오지만 나가기도 빨리 나간다. 치고 빠지는 데 굉장히 능숙하다.
더욱이 상대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니 더 난감하다.
‘그렇군.’
호발귀는 이제야 비로소 이자가 호암산에서 자신을 왜 공격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았다. 등여산까지는 공격했지만, 자신이 나타나자 바로 사라졌다.
이자는 숨을 곳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밝은 대낮에 사방이 탁 트인 연무장에서 싸우면은 진다.
기도는 숨길 수 있어도 모습은 숨기지 못한다. 움직임은 감추지만 역시 모습이 드러난다.
지금과 같이 어둠이 자욱이 깔린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여기는 이 자의 영역이다.
스읏! 스으으읏!
호발귀는 검을 조용히 움직였다.
움직임에는 반드시 기척이 동반된다. 하지만 상대는 기척을 일으킨 지 않는다. 간신히 공기 흐름이 느껴질 뿐이다.
파앗! 파파파팟!
역천금령공이 거세게 타올랐다.
역천금령공과 이령귀화가 맞물리면서 마구 돌아간다. 진기가 밖으로 뻗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상대방의 생기를 탐지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여전히 생기는 잡히지 않는다.
‘후우!’
호발귀는 숨을 더욱 낮게 가라앉혔다.
상대방은 미친놈이 아니다. 미친놈 같으면 다짜고짜 달려든다. 하지만 이자는 숨을 죽인다.
어둠 속에 숨어서 기회를 엿본다. 절대로 미친 것이 아니다. 살인에 특화된 자다.
살수인가? 노인이 살수를 양성했나?
노인은 분명히 살인 병기라는 말을 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호발귀는 즉시 머릿속에 떠오른 모든 생각을 떨쳐냈다.
상대방이 누구든 상관없다. 상대방이 살수든 혈마든 관계하지 않는다. 어떠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
아예 궁금증조차 떠올리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나중 문제, 지금은 싸우는 순간이다.
구르르! 구르르! 구르르!
역천금령공이 매우 급하게 휘돌았다.
휘익!
‘온다! 잡았어!’
공기 흐름이 또 느껴졌다.
호발귀는 곧바로 마영심도 십칠 식을 떨쳐냈다. 공기 흐름이 느껴진 곳을 향해서 일 초부터 십칠 식까지 단숨에 후려쳤다.
방원 삼사 장을 검으로 에워쌌다.
호발귀의 그림자가 귀신처럼 번쩍거렸다.
신법은 마형귀적을 펼쳤다. 팟! 이쪽에서 사라지고 저쪽에서 나타난다.
파르르릉!
그의 검이 허공을 울려 쳤다. 그때,
퍽!
“큭!”
매우 짧은 격타음이 터졌다. 동시에 흘리는 듯 마는 듯한 미약한 신음도 들렸다.
“안돼!”
호발귀는 버럭 일갈을 내지르면서 급히 신형을 돌려 등여산에게 쏘아갔다.
보인다! 검은 그림자가 등여산 몸에 검을 틀어박고 있다.
쒜에에엑!
호발귀는 그림자를 향해 마영심도를 재차 펼쳤다.
그림자는 호발귀와의 승부를 철저하게 피했다. 그가 다가서자 즉시 물러나서 어둠 속으로 묻혀버렸다.
“등매!”
호발귀는 재빨리 등여산을 부둥켜안았다.
시퍼런 장검이 등여산의 등을 뚫고 들어와 배까지 삐져 나왔다.
상대방은 너무 급하게 물러서느라 검을 회수하지 못했다. 찌른 상태에서 몸만 빼냈다.
“난 괜…… 괜찮아.”
등여산이 말했다.
아니다. 괜찮지 않다. 등여산의 몸이 축 늘어지고 있다. 손발에서 힘이 빠진다.
“너 안 괜찮아.”
그때, 등여산이 호발귀의 허리띠를 꽉 잡았다.
“날 내버려 두고…… 잡아. 나한테…… 신경…… 쓰면 안…… 돼.”
등여산의 음성이 굉장히 미약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헐떡였다.
그림자는 매우 정확하게 검을 꽂았다.
“그럴 수 없어.”
호발귀가 냉정하게 말했다.
등여산을 여기에 놓아두면 당장 표적이 된다. 놈은 등여산을 치고, 치고 또 칠 것이다. 등여산이 죽어도 계속해서 친다. 그것이 호발귀를 흔드는 길이라는 걸 안다.
말했지 않은가. 이놈은 살인에 특화된 놈이다. 살인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안다.
“제발……”
등여산이 호발귀를 간절히 쳐다봤다.
“이자…… 잡을 방법…… 있어. 날 믿어. 내게 방법이…… 정말 있어.”
“쉿! 조용. 말하지 마. 기운 빠져.”
“정말…… 믿어 달라니까. 나 이렇게…… 믿을 수 없는…… 여자였어? 칼 안 맞아. 안 맞으니까. 나 여기다 놓고…… 빨리……”
등여산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시간이 없다!’
어떻게 되든 승부를 빨리 내야 한다. 이대로 시간이 지체하면 등여산이 위험하다. 지금은 응급조치도 할 수 없다. 아직 싸움이 끝난 게 아니다.
호발귀는 등여산에 손을 꽉 쥐었다.
“칼 맞으면 안 돼.”
“걱정하…… 지마. 방…… 법이 있다…… 니까.”
호발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등여산을 봤다.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이 여자는 자신의 목숨을 미끼로 해서 상대방을 끌어내려고 한다.
등여산을 이만큼 겪어 왔는데 그녀를 모를까.
“정말 죽지 마라!”
호발귀는 그녀를 바닥에 눕히고 일어섰다. 지금은 이대로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모험을 할 때다. 내 목숨을 미끼로 승부를 건다.
츠읏!
호발귀는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모든 신경을 적한테 쏟는다. 대신, 전신을 텅 비운다.
역천금령공도 일으키지 않는다. 결국, 저들의 목표는 자신이지 않겠나. 그러니 기회를 주면 공격해올 것이다.
팟!
공기의 흐름이 파악되었다.
호발귀는 즉시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흐름을 두 번 공격했는데, 두 번 다 놓쳤다. 어떻게 이토록 빠른지 모르겠다.
적어도 자신이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나한테 흐름을 읽게 하고, 공격을 유도한 다음에 등매를 쳤어. 내가 저쪽으로 갈 때, 이놈은 반대로 거슬러 왔어. 그런 움직임을 전혀 알지 못했고.’
팟!
공기 흐름이 또 일어났다.
호발귀는 진심으로 전신을 텅 비웠다. 마음껏 공격해오도록 유도했다.
실제로 공격이 시작되면 검을 맞아줄 생각이었다. 아! 검이 없나? 그래서 공격해오지 못하나?
스읏! 파아아아앗!
호발귀는 전신을 텅 비웠지만, 진기마저 끊지는 않았다.
끊임없이 진기를 밖으로 흘려보냈다가 다시 거뒀다. 계속해서 탁기를 빨아들였다.
혈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 적은 많지만, 혈마가 되고 싶어서 진기를 쳐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진기가 밖으로 나갔다가 탁기를 물고 들어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나빠졌다. 호발귀는 거센 살심에 휩쓸렸다.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거세게 일어났다.
모두 죽이고 싶다!
어처구니없게도 땅에 쓰러져 있는 등여산까지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혈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팟!
공기 흐름이 또 느껴졌다.
이번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 몸이 텅 비었으니 와서 치라고 주문했다.
대신 등여산을 향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놈이 또 등여산을 공격할지 모른다. 한데.
파앗!
갑자기 호발귀 등 뒤에서 칼바람이 일어났다.
‘나?’
목표는 호발귀였다. 등여산을 공격하지 않고 텅 빈 허점을 치고 들어온다.
호발귀는 즉시 허리를 숙이면서 엄지와 중지를 붙였다. 그리고 탁! 귀화미요공을 터트렸다.
순간, 눈앞에서 번갯불이 번쩍 빛났다.
패애애애앵!
호발귀의 칼은 무서운 속도로 휘돌았다.
호발귀는 검을 잡지 않았다.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손가락에 검 중앙을 올려놓고 팽이처럼 패애앵 휘돌렸다.
그리고 회전하는 칼이 휘르륵 날아가서 그림자를 쳤다.
퍼억!
이번에는 둔탁한 울림이 일어났다. 상대방을 쳤다.
호발귀는 즉시 달라붙어서 검병을 잡았다. 그리고 매우 사납게 혈천도법을 펼쳤다.
쒜에엑! 쒜에엑! 쒜엑!
하지만 이어진 공격은 허공만 베었다. 분명히 상대방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했다.
검이 그림자를 베고 지나갔는데, 허공 가르는 소리만 울린다.
환상이다. 아니 잔영이라는 편이 맞다.
상대방은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사라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무공이지?’
“크크크! 크크!”
호발귀의 입에서 괴소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생각은 자신이 일으킨 것이었지만 입에서 흘러나온 괴소는 그가 토한 게 아니다. 저절로 흘러나온 것이다.
‘그래도 검 한 대는 맞았어.’
검에 피가 묻어 있다. 재빨리 피하기는 했지만, 일격이 배를 타격했다. 아마도 움직이는 데 지장이 많을 것이다.
‘아! 등매!’
등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호발귀는 생각이 미치자마자 즉시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노인을 인질로 해서 등여산의 안전을 지킬 생각이다. 이 생각이 왜 이제야 떠올랐는지.
“키키! 이놈아, 나야? 이제 내가 눈에 보인 거야?”
노인이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하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횃불 한가운데에 앉아서 멀거니 구경만 했다.
순간, 어둠 속에서 인형 하나가 덮쳐왔다.
호발귀는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되돌렸다. 마영심도 십칠 식이 그림자를 휘감았다.
퍽퍽퍽! 퍽퍽! 퍽퍽퍽퍽!
검이 그림자를 쳤다.
피가 튄다. 검에 베인 살점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가 벽에 부딪쳐 떨어진다.
검은 그림자는 확실히 걸렸다. 검이 상대를 치고, 치고 또 친다. 계속 친다.
팍! 팍팍!
확실히 걸렸다. 피가 튀고 뼈가 으스러진다.
평소 같으면 한 번 배는 것으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혈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상대방이 어육이 된다. 완전히 잘 다져진 고깃덩어리가 되어간다.
호발귀는 적어도 검은 그림자를 서른 번 이상 타격했다. 검이 그만큼 많이 틀어박혔다.
그림자는 검을 맞으면서 뒤로 밀렸다. 그러다가 털썩 쓰러졌다. 그때였다.
팍!
또 한 번 짧은 격타음이 터졌다.
호발귀는 즉시 뒤돌아섰다. 격타음은 등 뒤에서 터졌다. 등여산이 있는 곳이다.
검은 그림자…… 검은 그림자가 등여산의 가슴에 검을 꼽고 있다.
“아아아악!”
호발귀는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파앗!
검은 그림자가 또 사라졌다.
“이놈!”
검은 그림자는 한두 명이 아니다. 일단 두 명이다.
생기와 기척을 숨길 수 있으니 두 명이 있어도 한 명인 줄 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순식간에 이동한 것처럼 착각한다.
호발귀는 즉시 등여산을 부둥켜안았다.
등여산의 몸에는 검 두 자루가 꽂혀 있다.
한 자루는 등을 뚫고 배까지 삐져나왔다. 다른 한 자루는 가슴을 뚫고 들어가서 등 뒤로 빠져나왔다.
두 검 다 치명적이다.
등여산은 이미 의식을 잃어버렸다.
두 번째 검에 찔리면서 순간적으로 의식을 놓아버렸다.
호발귀는 등여산을 옆구리에 끼었다. 그리고 사력을 다해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계단에는 이미 그림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쒝! 파앗!
계단 밑에서 검이 불쑥 튀어나와 다리를 쳤다.
호발귀는 계단을 밟아 올라가다가 털썩 무너졌다.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급해서 검이 날아오는 걸 느끼지 못했다.
아니, 등여산이 당했다는 사실이 모든 이성과 감각을 무너뜨렸다.
그만큼 등여산이 당한 충격은 컸다.
“크크큭! 크크크큭! 끄아아아악!”
호발귀가 괴소를 내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