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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45화 (245/500)

第五十九章 멸혼(滅魂) (5)

등여산은 사층 계단을 밟아 내려가기 전에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 명?”

“한 명.”

등여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이라면 미친 자다. 지하 사층에는 오직 미친 자 한 명만 가둬 놓았다.

‘너무 과한데?’

무공을 일으키다가 주화입마하여 미쳤을 뿐인데, 왜 지하 사층에까지 가둬 놨을까. 자신이 책사였다면 삼 층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만큼 미친 자의 광태가 감수할 수 없는 정도인가?

아직 미친 자를 살펴보지 못했으니 어떤 말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자를 지하 사층에 가뒀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미쳤길래 이토록 비밀에 비밀을 필요로 하는 비중지처에 가둬 놓은 것일까.

등여산이 앞서고 호발귀가 뒤따랐다.

계단 중간층 내려왔을 때 철컹! 소리를 내며 철문이 닫혔다.

순간, 진한 어둠이 확 밀려왔다. 갑자기 빛이 사라지니 한 걸음도 떼어놓을 수 없었다. 그때,

파앗!

깊은 어둠 한 곳에서 횃불이 밝혀졌다.

횃불은 옆으로 옮겨간다. 불을 켠 사람이 옆에 있는 횃불에 불을 옮긴다.

한 곳, 두 곳, 세 곳, 네 곳.

모두 네 곳에 불이 켜졌다.

사층이 어떤 공간인지는 아직도 구분되지 않았다.

넓은 공간이 있고, 그 한 가운데에 불길 네 개가 살아서 꿈틀거린다.

횃불은 주위 십여 장 정도만 밝혔다.

“뭐 하는 거지?”

등여산이 중얼거렸다.

횃불이 닿지 않는 곳은 여전히 어둠이다. 깊은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횃불을 밝힌 자가 횃불 한가운데로 걸어가서 섰다.

‘노인?’

등여산은 의아했다.

그녀는 횃불 한가운데 서 있는 노인을 본 적이 없다.

천살단에 거주하는 자라면 분명히 봤어야 한다. 그녀는 천살단 모든 무인을 살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노인은 깡말랐다. 키가 작고 무척 왜소하다.

머리는 길게 늘어져 허리까지 길렀는데, 그나마도 씻지도 않고 다듬지도 않아서 마구 헝클어져 있다.

“저 사람 처음 봐.”

등여산이 불안한 눈으로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는 안심하라는 듯 등여산의 어깨에 손을 얹고 톡톡 두들겨 주었다.

나타난 노인은 최소한 갇혀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자유롭게 움직인다. 무공을 수련하다가 주화입마를 당했다고 볼 만한 부분이 전혀 없다.

등여산이 계단을 내려가 노인 앞으로 갔다.

“저는 등여산이라고 해요. 옛날에는 천살단 책사였고. 여기 주화입마된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등여산이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취하며 물었다.

“키키키!”

노인이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이봐, 헛수작 그만 집어치워. 이미 눈치까고 있잖아. 여기 함정이라는 거. 킥킥킥!”

노인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어이, 혈마! 넌 아직도 눈치 못 깐 거야? 쯧쯧! 이래서야 이거 어디 혈마라고 할 수 있나. 킥킥킥! 명마도 세월이 흐르면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더니 네 놈이 그런 거야? 킥킥.”

노인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호발귀를 보면서 웃었다.

순간, 등여산은 눈살을 심하게 찌푸렸다.

함정? 함정이다! 천살단이 만든 함정이다. 이미 위로 올라가는 모든 문이 닫혔다.

사층 철문만 닫힌 것이 아니다. 모든 층에 자물쇠가 걸렸다.

“내 실수야. 우리 함정에 걸린 거 같아.”

등여산이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어깨를 잡은 호발귀 손에 힘이 꾸욱 주어졌다.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인다.

“밖이 위험해. 어떡하지?”

자신들은 지하 사층에 갇혀서 곤욕을 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밖에 있는 사람도 위험할 게 뻔하다. 아마도 지금쯤 천살단 주력이 네 사람을 공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도 위험해.”

호발귀가 침착하게 말했다.

순간, 등여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호발귀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한 명만 있다고 했다. 바로 저 노인이다.

노인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으니 호발귀가 감지한 기운은 노인의 생기다.

저 노인이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호발귀가 위험하다고 한다. 노인의 생기 외에 분명히 다른 느낌을 잡아챈 것이다.

뭐가 있나? 기관진식인가? 혈천방처럼 사멸강진 같은 것이라도 펼쳐놨나?

호발귀가 침착하게 말했다.

“여기 오기 전에 공격받은 거, 기억해?”

“그때 그거?”

“아무래도 그거일 것 같아.”

습격에 굉장히 능한 자, 기척 없이 다가와서 공격하고는 흔적 없이 사라진 자.

“설마! 그때 죽은 사람들은 검벽이야!”

그자가 이곳에서 두 사람을 공격한다면, 천살단 사람이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천살단 사람이 검벽 무인을 살해했다?

왜? 조금 더 안으로 들어와서 호발귀를 공격하면 되는데, 왜 바깥에서 검벽만 공격하고는 사라졌지?

호발귀가 말했다.

“중요한 것은 나는 그때 아무 느낌도 잡아채지 못했다는 거야. 지금처럼.”

‘여기 굉장히 위험해!’

등여산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호발귀가 잡아채지 못한 기척의 주인공, 굉장히 빨랐던 자, 그자가 이곳에 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다. 지금도 호발귀는 기척을 감지하지 못한 상태다.

여기처럼 위험한 곳은 또 없다.

꿀꺽!

등여산은 마른 침을 삼켰다. 하지만 즉시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당장 할 일이 있다.

“시간을 끌어볼게. 그동안에 여기 누가 있는지 찾아내. 찾지 못하면 우린 정말 위험해.”

꾸욱!

호발귀가 알았다는 듯 어깨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궁금한 점이 있어요.”

등여산이 노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할아버지를 처음 봐요. 그런데 왜 저희를 공격하시려는 거예요? 그냥 나쁜 놈이니까 공격한다 이런 거 말고요. 할아버지는 강한 적의를 보이시잖아요.”

“큭큭큭! 너에게는 감정 없다. 내가 노리는 건 혈마야. 단주가 노리는 것도 혈마고. 킥킥! 너는 네가 똑똑한 줄 알지? 책사라고 불러주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겠지?”

“아뇨.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어요.”

“킥킥킥! 넌 되게 멍청해. 그러니 단주가 중책을 안 맡겼지.”

노인은 등여산을 잘 아는 듯 연신 웃어댔다.

이상한 점은…… 호발귀를 향한 적의가 아주 강렬하게 불타오른다는 것이다.

마치 원수를 대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당장이라도 때려잡고 싶어서 안달 난 듯하다.

등여산이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다. 그때 호발귀가 그녀의 어깨를 꽉 잡았다.

등여산 호발귀의 뜻을 알고 제 자리에 멈춰선 채로 말했다.

“절 잘 아시는 것 같네요. 전 오랫동안 여기 책사로 있었는데, 정말 처음 봬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혹시 들어본 분인가 해서 감히 여쭤봐요.”

“이름? 무명인. 킥킥! 내일부터는 ‘혈마를 잡은 분’으로 불리겠지? 혈마를 조정하는 분? 킥킥! 뭐라고 불러도 좋아. 이제 나는 이 천하의 주인이 될 거야. 키키키.”

지하 사층에는 확실히 미친 자가 갇혀 있다.

무공은 수련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진 문도는 아니다. 이 노인은 처음부터 미친 듯하다.

“단주님을 아시죠? 여긴 형옥주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에요. 단주님 직명(直命)이 통하는 곳이죠. 단주님이 양해하지 않았다면 이곳에 계시지 못할 거예요.”

등여산은 될 수 있는 대로 시간을 길게 끌었다.

호발귀가 여전히 아무런 기척도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상한데?’

호발귀는 머리끝이 쭈뼛 곤두서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뭐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불길한 느낌이 전신에 회오리친다.

누군가가 있다!

이것은 혈기로 잡아낸 것이 아니다. 막연한 직감이다.

생기를 볼 때처럼 푸르스름한 기운이 보인다거나, 진기로 파악할 때처럼 강렬한 기감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느낌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 생기는 딱 두 개다. 노인과 등여산이다.

그 밖에는 없다.

검벽 무인들이 습격받은 곳에서 한 번, 그리고 지금.

확실히 원정을 감출 수 있는 자다. 이게 가능한가? 어떻게 원정을 감췄을까?

호발귀는 등여산의 어깨를 손가락을 툭! 쳤다. 살짝 문지르듯이 부드럽게 쳤다.

한 명이 있다!

“음!”

호발귀는 낮은 신음도 흘렸다.

곤란하다는 뜻이다. 한 명이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종적을 잡지 못하고 있다.

사층 밀실은 분명 텅 비어 있을 텐데, 어둠 속 어딘가에 있을 텐데, 전혀 느낌이 없다.

자신이 하는 말을 등여산이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못 알아들었어도 어쩔 수 없다. 호발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의사 표시를 다 했다.

사실 지금은 등여산에게 말을 전할 여유도 없다.

누군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그자를 찾아야 한다.

생기를 어떻게 숨겼는지 궁금해하는 것도 나중 문제다. 지금 당장 공격해 오면 막을 길이 없다.

호발귀는 역천금령공을 운기 했다.

으르르르릉!

내부에서 진기가 끓어올랐다. 역혈된 진기가 살갗을 통해서 흘러나갔다.

“음!”

호발귀가 저미한 신음을 흘린다. 아주 짧은 신음이었지만 얼마나 곤란하지 당장 느꼈다.

‘이럴 수가!’

등여산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했다.

호발귀가 생기를 찾지 못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호발귀가 혈마로 변하는 것은 나중 문제다.

상대방을 찾지 못하면 기습공격을 견디지 못한다.

등여산은 노인을 향해 빠르게 물었다.

방법은 하나, 노인에게 계속 말을 걸어서 공격시간을 늦추는 것이다. 그동안 호발귀가 적을 찾아주었으면 한다. 지금 같아서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저희 천살단에서도 혈마를 연구한 것으로 알아요. 혹시 할아버지께서 이 일을 전담하신 건가요?”

“저희? 킥킥! 이쪽에서는 널 죽이려고 발악인데, 너는 아직도 이들이 저희로 보여? 그게 멍청하다는 거야. 멍청하니까 적하고 아군도 구분하지 못하지.”

“알아요. 알지만 습관이 참…… 옛날에 전 분명히 천살단 친구였어요. 동료였죠. 지금은 적이에요. 저한테 추살 명령을 같이 내린 거 알고 있고.”

“킥킥킥! 아는 게 이런 델 와?”

“이런 식으로 함정을 파서 절 추살 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어요. 당한 사람이 바보니까. 제가 여쭙는 건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아! 혹시 혈마가 여기 있나요?”

“큭큭큭!”

“아! 검벽 무인들을 죽인 사람, 그거 혈마 맞죠?”

“킥킥킥!”

오인이 배를 움켜잡고 키득거렸다.

노인은 등여산이나 호발귀가 공격해 올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횃불 네 개 한가운데 전신을 환히 드러내고 있으면서도 전혀 경계하지 않는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일까? 아니다. 자신 있다는 거다.

누군가가 자신을 공격하려 들면 어둠 속에서 칼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 칼은 암습이 터지기 전에 먼저 상대를 죽인다. 아주 확고한 믿음이다.

노인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자를 신처럼 믿는다.

“검벽 무인들을 죽인 사람, 여기 있는 혈마 맞죠?”

“혈마, 혈마! 혈마라고 부르지 마! 혈마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인간 병기니까. 키키키! 키키키!”

“인간 병기요?”

“단주, 그 늙은이가 그러대. 내가 병기사를 바꿔놓았다나? 킥킥! 그 늙은이도 이제는 폭삭 맛이 갔다. 병기사를 바꾼 게 아니라 무림사를 바꾼 건데. 킥킥!”

노인은 자신이 만든 혈마에 대해서 매우 흡족해한다.

천살단주는 당대 제일 무인 중 한 명인데,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노인이 말했다.

“자 그러면 내가 자랑하는 인간 병기가 얼마나 강한지 구경해 봐야지? 너도 보고 싶지? 그래, 구경은 해야지. 킥킥! 이 불, 어떻게 할까? 꺼? 아니면 그냥 둬?”

“끄지 마세요. 저흰 보지 못하면 움직이지도 못하거든요.”

일반적으로 이런 식으로 약점을 노출하면 당장 불을 끈다. 약점은 즉시 이용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노인은 정반대로 말해야 한다. 자신 있다고 하면 당장 끈다. 사실대로 약점을 노출하면 불을 끄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은 이런 특성을 보인다.

“그러지. 이 불, 저놈한테는 손해지만 괜찮아. 킥킥! 잘 싸워봐.”

노인이 두 손을 들어서 손뼉을 탁!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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