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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44화 (244/500)

第五十九章 멸혼(滅魂) (4)

종이 뭉치에 적힌 대로 진기를 운기했다.

진기가 독맥으로 들어가서 임맥으로 나온다. 다시 단전에 취집된다. 그런 후에 다리와 팔로 번져간다.

강하게 응집된 진기가 탄력 있게 교맥(蹻脈)과 유맥(維脈)으로 흘러든다.

호발귀는 진기를 거침없이 휘둘렀다.

일반적인 운기법보다는 확실히 강한 면이 있다. 교맥과 유맥에서 나온 진기를 대맥(大脈)에 한 바퀴 휘돌릴 때는 단전에서 출발할 때보다 네 배는 강한 진기가 되어 있다.

하지만 역혈 작용은 하지 않는다.

역혈이라면 아주 좋은 공부를 가지고 있다. 역천금령공보다 강한 역혈은 없을 것이다.

생기를 건드리지도 않는다.

몸 안쪽 깊숙이 파고들기에는 운기가 너무 약하다.

주화입마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방면에서는 상당히 안정화된 무공이다.

‘이상한데?’

호발귀는 의구심을 품었다.

이 무공은 굳이 생기 부분까지 들어갈 필요가 없다. 운기를 하는 것만으로 끝난다.

마공이 아니다. 정종 무공이다.

호발귀의 선언은 다소 충격적이다.

“일리가 있어.”

등여산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약전주가 이 무공이 인체에 어떤 해를 끼치는지 알아내지 못했거든. 마공관주도 이상 유무를 찾아내지 못했고. 그럼 정종 무공이라는 말도 잘못된 건 아니지.”

“그럼 이 무공을 수련하고 미쳐서 날뛴 것은?”

홀리가 물었다.

“그것만 일치가 안 돼. 그런데 그 부분만 떼어내면 정종 무공이라는 말이 맞아.”

“흐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난 혈마록에서 정종 무공이 나왔다는 것도 이상해.”

도천패가 말했다.

악에서 피어난 꽃은 악이다. 근본이 악이면 꽃도 악이어야 한다.

이것도 정종 무공을 수련하는 사람들의 오판이다.

아주 고질적인 오류인데,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이런 신념을 뒷받침해줄 사건이 너무 많아서다.

“이 무공, 위력은 별로야. 우리 중에서 그 누구도 탐낼 만한 무공이 아니야.”

호발귀가 말했다.

“저기…… 그 말 속에는 나도 염두에 둔 건가?”

해자수가 말했다.

“하하하!”

호발귀는 크게 웃었다.

무공에 등급이 있다면 상중하 중 중 정도의 위치를 차지할 만한 무공이다.

“이건 형옥에 가서 미쳤다는 사람을 보기 전에는 판단할 수 없겠는데. 가지. 내가 가도 된다면서?”

“잠깐 그 전에 할 일이 있어. 혈마록을 태워야 해.”

등여산이 급히 말했다.

“혈마록은 두 부래.”

호발귀는 혈마록을 한 권만 적어주었다. 이권부터는 주지 않고 고문을 버텨냈다.

그 한 권 가지고 이 사단이다.

“호랑이 작성한 것과 필사본 한 부. 필사본은 조금 늦게 올 거고, 한 부는 마공관에 있다니까 가서 금방 태우고 올게.”

등여산이 일어섰다.

마공관 마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세 사람의 열쇠가 필요하다.

마공관을 지키는 당직이 열쇠 하나를 가지고 있고, 마공관주와 형옥주가 하나씩 소지한다.

등여산에 연락을 받은 세 사람은 미리 와 있었다.

“이따가 형옥에 들려서 그 사람을 좀 봐야겠어요.”

“언제든지 오게. 내가 있으면 더 좋고 내가 자리에 없더라도 아이들에게 충분히 말해 놓겠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파문에 추살 명령까지 받고. 충격이 컸지? 그러게 왜 혈마하고 같이 지내.”

형옥주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분위기 어색하게 만들기는. 들어가지?”

마공관주가 열쇠를 꺼냈다.

철컥! 철컥! 철컥!

열쇠 세 개가 차례로 자물쇠에 꽂혔다.

“혈마록을 불태우겠다고?”

“네.”

“혈마 무공은 언제쯤 전해줄 수 있을까? 재촉은 아니고…… 혈마 무공이라니까 궁금해서.”

“지금 적고 있으니까 저녁때까지는 전해드릴 수 있을 거예요.”

등여산이 말했다.

“단주님께 듣자 하니 혈마 무공을 수련해도 인연이 없으면 혈마가 되지 않는다고?”

“네. 마공을 수련하는 것밖에 안 돼요.”

“호발귀는 어떤 인연이 있어서 혈마 무공을 수련했을까?”

등여산은 자기 생각을 피력하지 않았다.

호발귀는 투골지가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등여산은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부분도 말하지 않았다.

등여산이 생각하기에 진짜 혈마는 범어 암송에 있다.

범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글씨, 그 글씨를 호발귀처럼 달달 외워야 한다.

뜻도 모르고, 어떻게 읽는지도 모를 글씨를 그림처럼 외워야 한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결코 혈마록을 태우지 못한다.

등여산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 부분은 저도, 호발귀도 전혀 짐작조차 못 하고 있어요. 왜 호발귀 몸에서 혈마 무공이 재현됐는지. 혈마 무공이 전해지면 천천히 살펴봐 주세요.”

“허허! 책사가 알지 못한 걸 우리가 어떻게 찾겠나. 혈마는 우리 손을 떠난 거겠지.”

마공관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혈마록은 중앙 탁자에 펼쳐져 있네. 오늘 아침까지도 그걸 연구하고 있었는데. 뭐 하도 글씨가 이상해서 해독은 꿈도 못 꾸고 그저 들여다보기만 한 거지.”

“그런데 그 무공은 어떻게 뽑아내신 거예요?”

“사실 그 무공은 혈마록에서 뽑아냈다기보다는 그 도형을 보고 비슷하다 싶은 글자를 찾아서 연결해 봤지. 억지로 문장을 만든 건데, 그게 무공이 되더라고.”

“아, 네.”

“무공이 약하지? 정확한 내용이 아니라서 뭔가 많이 빠졌구나 하는 생각은 했는데. 그런데 그게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미칠 정도는 아니거든.”

마공관주가 편하게 말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정말 옛날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마공관주와 마공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저는 일단 혈마록부터 태우고 올게요.”

등여산이 마공관 안으로 들어섰다.

단주 말이 맞는다. 마공관에 있는 혈마록은 호발귀가 작성한 것이다. 표지만 봐도 호발귀 글씨체다. 천살단을 나서기 전에 이 책을 늘 곁에 끼고 살았기 때문에 너무 잘 안다.

혈마록 일 권.

지극히 일부밖에 되지 않는 책으로 무공을 뽑아냈다. 정말 대단한 집념이다.

등여산은 혈마록을 들어서 곧바로 화로 속에 던져넣었다.

화르르!

비급에 불이 붙었다.

한때, 수많은 목숨을 빼앗아간 혈마록에 불길에 타들어 간다.

“이럴 줄 알았어.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나.”

“그래도 지켜보라고 하시니까.”

마공관에는 비밀 장소가 있다. 작은 장소지만 마공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살필 수 있다.

누가 어떤 마서를 읽는지 비밀리에 지켜볼 수 있다.

이 장소는 마공관이 열린 후에야 쓸 수 있다. 단지 몇몇 사람만 알아서 마서를 옮겨온 자들은 짐작조차 못 한다.

그들이 서가에 마서를 꽂을 때, 바로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고, 비밀 장소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어떤 경우든 마서는 유출되지 않는다.

그런 용도로 만든 장소에서 등여산을 지켜봤다.

등여산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혈마록을 태웠다. 다른 마서를 들춰보지도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마서가 끝까지 타들어 가는 것을 지켜본다.

등여산은 적어도 동지들 뒤통수는 치지 않는다.

그녀가 한 말은 사실이다. 혈마록에 대해서 전혀 미련이 없다. 오히려 더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태우는 것이다.

“후! 옛날이 좋았는데. 왜 혈마 같은 놈에게 정을 주어서는.”

형옥주가 한숨을 내쉬며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살단에 있는 혈마록은 수거가 쉽지 않다. 아마도 천살단까지 가져오려면 이삼일은 소요될 것이다.

“정말 두 권밖에 없을까? 나 같으면 한 열댓 권 필사해 놓겠는데.”

해자수가 중얼거렸다.

해자수의 이번 말에는 맞장구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같은 생각이다. 혈마록이 더 있을 것 같다. 있어봤자 일 권뿐이지만, 온전히 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요 없어도 내주지 않는 것이 비급이다.

하지만 등여산은 천살단주를 철저하게 믿는다.

그녀의 믿음이 너무 확고해서 더는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두 권밖에 없다면 없는 것이다.

사실 혈마록은 몇 권이 있어도 상관없다.

해독도 안 되고, 일 권에 포함된 무공도 영감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다. 아니, 단 한 글자도 읽어내려가지 못한다.

호발귀가 염려하는 것은 혈마록의 변질이다.

지금도 이상한 무공 하나가 튀어나왔는데, 이런 무공들이 또 나오지 않는다고 보장하지 못한다.

정말 순수하게 정의를 위해서 없애려는 것이다.

“점심 먹고 형옥에 갈 거야. 아무래도 미쳤다는 사람, 상태를 봐야 뭐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지?”

마공관에서 나온 등여산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형옥은 항상 음침하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뭔가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것 같고, 벼룩 같은 것이 달라붙는 느낌도 든다.

들어서기가 께름칙하다.

죄를 지었거나 짓지 않았거나 형옥은 강한 압박감을 준다.

“형옥주님께 연락드렸어요.”

등여산이 말했다.

“연락받았습니다. 들어가십시오. 두 분이시죠?”

형옥을 지키던 무인이 호발귀와 등여산을 보고 즉시 문을 열어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출입이 금지된다. 오직 두 사람만 출입 허가를 받았다.

“형옥주님은?”

“마침 단주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곧장 지하 사층으로 내려가시면 이미 사람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옥지기가 공손하게 말했다.

지하 일 층은 잡혀 온 사람들이 대기하는 곳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사람이 별로 없다.

일 층을 지키는 형옥 무인 몇 명만이 책상에 앉아서 장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호발귀와 등여산이 들어가자 한 명이 벌떡 일어나서 지하 이 층으로 가는 계단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등여산은 무인이 가르치는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등여산도 형옥에 와본 적이 몇 번 없다. 지극히 중요한 일이 아니면 오지 않는다.

형옥은 일반적인 무인들을 징계하는 곳이라서 책사가 들릴 일이 거의 없다.

지하 이 층부터는 구조가 좀 답답하다.

계단을 밟아 내려서자, 기다란 복도가 나왔다.

복도 양옆에 철문이 여러 개 있다.

각방은 밀실이며 철문을 닫고 들어가면 안에서 사람이 죽어도 밖에서는 알지 못한다.

당연히 지하 이 층은 쥐죽은 듯이 고요하다.

지금 밀실 안에 누가 있는지, 고문을 받는 중인지 알 수가 없다.

지금 밀실 안에 누가 있을지 모르지만, 불로 지지고 몽둥이로 때려도 밖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몇 명?”

등여산이 호발귀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한 명도.”

호발귀는 밀실 안에서 생기를 읽지 못했다. 그 말은 살아있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일 층에 이어서 이 층까지…… 형옥 무인들밖에 없다.

“요즘 천살단이 좋아졌네. 이곳에 갇히는 사람이 없으면 좋은 거지. 뭐.”

등여산은 가볍게 생각했다.

“바로 내려가시죠.”

이 층을 지키던 무인이 지하 삼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가리켰다.

등여산은 계단을 밟아서 지하 삼층으로 내려갔다.

지하 삼층은 단기형, 일 년에서 이 년 정도 구금을 명받은 자들이 갇힌 곳이다.

등여산이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는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옥 전체가 텅 비었다. 하기는…… 평소에도 형옥에 갇힌 자는 별로 없었다. 천살단은 형벌이 매우 잔혹해서 죄를 짓고 들어온 자들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형옥 시설을 이토록 거대하고 완벽하게 갖춰 놓은 것은 일종의 전시효과다. 형옥을 이렇게 지어놓은 것만으로도 죄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그 누구도 천살단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 결과가 형옥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쪽으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지하 삼층을 지키던 무인이 사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가리켰다.

지하 사층은 절대 출입금지 구역이다. 오직 형옥주만 출입할 수 있다. 그래서 지하 사층에는 옥을 지키는 무인도 없다.

지하 사층은 어떤 공간인가?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이 형옥주에 한정된 것을 보면 일반 뇌옥은 아닐 것 같다.

천살단에서 지하 사층이 어떤 공간인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지하 사층은 거대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활짝 열려 있다.

“그 사람 삼층에다 가둬도 되지 않나? 삼층 뇌옥도 튼튼하잖아? 지금 갇혀 있는 사람도 없고 텅 비었는데.”

“죄송합니다. 저는 모릅니다.”

형옥 무인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 내가 괜히 곤란한 질문을 했네.”

등여산은 사층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 뒤를 호발귀가 바싹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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