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五十八章 제삼마(第三魔) (4)
천살단을 방문하겠다고 소식을 전한지 딱 이틀, 이틀 만에 천살단 무인들이 천음산을 둘러쌌다.
“어휴! 도대체 몇 명이나 온 거야? 밖에 나가봐. 아예 새카맣게 몰려왔어.”
“새까만 정도는 아닌데? 눈에 띄지도 않잖아.”
“저 정도면 새까만 거지 얼마나 몰려들어야 새까만 거유. 내 눈에는 파리 떼처럼 보이는구먼.”
홀리와 해자수가 티격태격했다.
사실, 해자수가 약간 과장을 하고 있다. 천살단 무인은 겨우 서른 명 남짓밖에 안 된다. 하나같이 고수라서 어느 한 사람도 만만해 보이는 사람이 없다.
“검벽이에요.”
등여산이 말했다.
“검벽? 단주의 호위? 하! 그럼 단주가 우릴 꽤 대우해준 거네? 검벽은 고위층 인사 아니면 움직이지 않잖아? 웬만한 사람은 눈길도 안 준다던데.”
“맞아요. 저도 검벽이 올 줄은 몰랐네요.”
등여산은 저들을 잘 안다. 누구보다도 잘 안다. 저들 개개인의 이름까지도 알고 있다.
저들은 검벽주 주치균의 수하였다.
주치균이 살단주를 맡은 관계로 지금은 부검주였던 임명강이 검벽 검주를 맡고 있다.
“가는 길에 시비를 피하려는 거예요. 우리를 호위할 마음도 없고, 별다른 도움도 주지 않을 거예요.”
“누가 저딴 놈들 도움을 받겠대? 아무 걱정하지 마셔. 우리 식구는 내가 아주 그냥 왕후장상처럼 모실 테니까. 걱정은 딱 붙들어 매고 세상 구경이나 해.”
해자수가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사박! 사박!
등여산은 숲길을 걸었다.
검벽이 왔다.
옛날에는 거의 날마다 얼굴을 마주했던 사람들이다. 농도 꽤 많이 했다. 그녀는 책사였지만, 검벽 무인들이 수련할 때 도움도 주었다.
등여산은 상당히 많은 무리(武理)를 안다. 검법도 많이 안다. 태산파 무공을 고강하게 수련한 고수이기도 하다. 수련하는 모습을 보면 늘 한두 마디씩 조언했다.
‘풋! 임명강이 이끄는 검벽은 어떤지 볼까? 워낙 고지식해서 융통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을 텐데.’
오랜만에 임명강을 만날 생각을 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파아앗!
날카로운 검기가 감지됐다.
검벽은 검기를 흘리지 않는다.
검기를 안으로 숨기는 법, 감추는 법을 수련한다.
임명강이 일부러 검기를 드러낸 것이다.
“부단주!”
등여산은 반가운 마음에 검기가 터진 곳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냉정했다.
“검벽주라고 불러라.”
거침없는 하대가 쏟아졌다.
등여산은 달리던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스읏!
임명강이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 임명강은 등여산을 깍듯이 받들어 모셨다. 존대도 꼬박꼬박했다. 그런데 지금은 거침없이 하대한다.
반가운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아! 제가 실수했네요. 옛 생각만 하고.”
“무슨 일이냐?”
“아무 일 없어요. 그저 얼굴이나.”
“파문자와 나눌 이야기 따위는 없다. 돌아가!”
임명강은 매우 차가웠다.
그냥 냉정한 정도가 아니라 적의에 찬 음성으로 말한다.
임명강은 노골적으로 적의를 보인다.
적의는 호발귀를 향한다.
검벽주 주치균에게서 연적을 뺏어간 천하의 몹쓸 놈이 바로 호발귀인 것이다. 천살단에서도 오직 검벽 무인들만 그렇게 생각한다.
그만큼 등여산과 주치균은 보기 좋은 한 쌍이었다.
둘 사이가 아무런 발전이 없었지만 결국은 두 사람이 혼인할 것으로 생각했다.
검벽은 등여산이 책사라서 깍듯이 대한 게 아니다. 검벽주의 부인이 되리라 생각한 측면도 상당히 컸다.
이 배신의 중심에는 분명히 호발귀가 있다.
‘휴우!’
등여산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검벽의 적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앞으로 천살단까지 가는 길에 호발귀에 대한 견제가 계속될 것이다. 이들이 적의를 띈다고 해서 호발귀가 어려움에 부닥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신경은 쓰인다.
등여산은 아직도 검벽이 다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제가 잘못 온 것 같네요. 미안해요.”
등여산은 뒤돌아섰다.
여러 가지를 묻고 싶었다.
천원주에게는 묻지 못한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친우, 주치균은 잘 있는지 궁금했다.
호발귀에게 패한 이후, 작심하고 폐관 수련에 들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그 후로는 아무 소식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말도 묻지 못하고 돌아선다.
“언제 출발할 거냐?”
돌아선 그녀에게 임명강이 차갑게 물어왔다.
“대략적인 출발 날짜는 앞선 연락에 적어서 보냈어요. 알고 오셨잖아요.”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 같아서 묻는 말이다. 괜히 몸값 올리려고 버티는 것 같아서. 후후!”
임명강이 싸늘하게 말했다.
‘응?’
등여산은 임명강의 말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건 적의가 훨씬 강하다. 최소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생략한 채 거침없이 말한다.
등여산은 임명강의 말에서 불길함을 느꼈다.
단순히 호발귀가 책사를 유혹해 냈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이유보다는 훨씬 강하고 절절한 내막이 있다. 바로 주치균에 관한 일이다.
‘주치균에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움직이도록 해볼게요.”
등여산은 차분히 대답했다.
임명강은 검벽을 열 명씩 세 개조로 나눴다.
전탐조 열 명은 맨 앞에서 적정을 탐지한다. 매복이나 함정이 없는지 살핀다.
본대 열 명은 제자리에서 단주를 지킨다.
암행조 열 명은 각자 흩어져서 본대를 살핀다.
은신술을 펼쳐서 은밀히 따라와야 한다. 절대로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평상시 임무다.
기습이 벌어지면…… 전탐조 열 명은 선 자리에서 즉사할 것이다.
적이 제일 먼저 칠 곳은 전탐조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으면서 사력을 다해 침입 사실을 알린다.
본대는 적을 맞이해서 싸운다. 결사적으로 단주를 지킨다.
암행조는 즉각 움직인다. 단주를 낚아채서 탈출한다. 같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도주한다.
검벽의 임무는 싸우는 게 아니다. 단주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행동 방침이 도주에 맞춰져 있다. 가장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런 방식은 주치균이 검벽주일 때 이미 틀이 잡혔다.
검벽의 이런 호위 형태를 이루기까지는 등여산의 의견도 적지 않게 참조되었다.
검벽이 이번에 보호해야 할 인원은 조금 많다.
사실 이들에게는 보호라는 게 필요 없다.
호발귀 일행 중에서 검벽 무인들보다 무공이 낮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아! 해자수가 있구나. 한 명 있다.
이들은 모두 강자들이다.
혈마를 거론하지 않아도 당금 무림에서 이들을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러니 사실 보호라기보다는 길 안내를 한다는 쪽이 맞을 것이다.
‘무공이 훨씬 강해졌어.’
임명강은 등여산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천살단 책사였을 무렵에 비하면 깜짝 놀랄 정도로 무공이 강해졌다.
등여산의 몸에서 풍기는 기도가 가히 일대 검호라고 해도 부족할 정도로 강하다.
호발귀 곁에 있으면 하루가 다르게 무공이 강해진다더니 그 말이 맞나?
임명강은 아직 호발귀를 보지 못했다.
호발귀는 천음산 깊은 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먼발치에서나마 모두 봤는데, 호발귀는 코빼기조차 못 보고 있다.
“전탐조는 왜 보고가 없어! 알아봐!”
임명강이 신경질적으로 쩌렁 고함질렀다.
평상시, 전탐조는 매 시진마다 보고한다. 이동 시에는 보고 간격이 일다경으로 좁혀진다.
그런데 보고가 없다.
‘이것들이 해이해져서는!’
전탐조가 보고할 시간이 훌쩍 넘어섰다. 아마도 한적한 곳에 오니 기강이 해이해진 모양이다. 그때,
삐이익!
앞쪽에서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울렸다.
입으로 부는 피리가 아니다. 손으로 눌러서 소리 내는 것으로 전탐조 비상 신호다.
‘죽었다!’
임명강은 즉시 검을 잡고 전면을 주시했다.
검벽 무인들한테는 따로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다.
이들 모두 신호 소리를 들었다. 누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이미 병장기를 부여잡고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삐이익! 삐익!
이번에는 소리가 연달아 두 번 울렸다.
먼저 죽은 자보다는 다소 여유가 있었다. 칼을 맞기 직전, 살길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 소리를 울렸다.
뒤에 울린 소리는 죽어가면서 사력을 다해 울린 것이다.
슷!
임명강이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본대 여덟 명이 재빨리 임명강 주위로 다가와서 바깥쪽을 향해 원진(圓陣)을 펼쳤다.
원진은 앞으로 이동하면 타원형이 되기 때문에 거북 구 자를 써서 구진(龜陣)이라고도 부른다. 이동하는 형태가 꼭 거북이가 기어가는 것 같단다.
스으으읏! 스읏!
구진이 빠르게 전진했다.
한 명이 쓰러져 있다. 본대 무인으로 전탐조 상황을 살피라고 보낸 자다.
그는 목에 일 검을 맞았다.
잘 드는 칼로 단숨에 목젖을 갈라내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삐익! 삐익! 삐익!
임명강은 즉시 손가락 두 개를 입에 넣고 휘파람을 세 번 불었다.
기습!
‘누구냐?’
임명강은 혼란스러웠다.
혈천방은 이제 막 본방을 옮겼다. 움직일 여력이 없다. 본방이 혈마에게 박살 났다고 들었는데, 어느 전력으로 공격해 올까. 혈천방은 공격해오지 못한다.
그러면 누가 공격해 왔나?
중원에는 무인이 많다.
혈천방과 천살단, 두 방파만 있는 게 아니다. 구대문파를 비롯해서 수많은 중소방파가 난립해 있다. 특정한 문파에 적을 두지 않은 고수도 많다.
하지만 검벽이 천음산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천살단뿐이다. 이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혈천방과 십만 방도를 자랑하는 개방(丐幫) 정도다.
아무리 생각해도 검벽을 공격할 자가 없다.
‘이놈은 호발귀가 아니라 검벽을 공격했어. 우릴 죽여도 되는 놈…… 혈천방밖에 없는데.’
슷!
임명강이 손을 들었다.
스스슷! 스스스슷!
구진이 빠르게 이동했다.
시신이 또 한 구 발견되었다. 역시 깨끗하게 목이 베였다. 베어진 목으로 피가 콸콸 쏟아진다.
“아직 숨이 붙어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목이 반이나 잘렸다. 이미 절명한 시신이다.
숨이 붙어있어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미 영혼은 저승길을 걸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탐조 열 명, 전멸했다.
기가 막힐 노릇인데…… 열 명이 죽는 동안 임명강은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혹시 호발귀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호발귀라면 검벽 무인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다.
아니다. 호발귀는 믿을 수 없지만, 등여산은 믿을 수 있다.
검벽 무인과 등여산은 한 가족처럼 가까웠다.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실망도 큰 것이다. 등여산이 넘어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갔기 때문에 더 밉다.
그녀는 절대로 검벽 무인들을 살상하지 않는다.
슷!
임명강이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전진 아니라 후퇴다. 적을 잡는 게 아니라 안위를 보존한다.
적은 검벽 무인 열한 명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였다. 열한 명이 죽는 동안 누구도 비명을 흘리지 못했다.
겨우 손에 든 가죽 피리를 흘렸을 뿐이다.
검벽이 상대할 수 없는 초고수다.
이런 자를 잡겠다고 앞으로 나서면 모두 섬멸당한다.
스슷! 스스스슷!
전탐조의 죽음을 확인한 본대 무인들이 빠르게 후퇴했다.
후미에서 본대를 지켜보던 무인도 바짝 긴장했다. 그들의 긴장감이 피부로 느껴진다.
탁탁!
임명강은 손으로 앞에 있는 무인의 머리를 두들겼다.
“넌 안으로 파고들어라. 책사에게 습격 사실을 알려.”
“넷!”
머리를 맞은 자가 재빨리 신형을 날려서 숲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