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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38화 (238/500)

第五十八章 제삼마(第三魔) (3)

해자수는 호발귀가 철삭에 묶인 동굴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이래 봬도 비위가 상당히 약해서. 사람이 찢기고 이런 꼴은 보지 못하거든.”

아니다.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부분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다 아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는데 무슨 신경이 쓰이냐고?

천만에, 만만의 콩떡이다. 누구든 신경이 쓰인다. 특히 혈마 같은 경우에는 숨기고 싶은 비밀도 있기 마련이다. 부모·형제에게조차 알리고 싶지 않은 치부도 있을 수 있다.

모든 면에서 가장 자유롭게 움직이라고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사실 동굴 안의 일은 홀리가 대신하고 있으므로 해자수가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그런데 해자수가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예상은 했는데 이건 훨씬 더 심하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휴! 냄새.”

해자수가 고개를 휘휘 내둘렀다.

동굴 안에는 바람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용했던 모든 약과 독 냄새가 한꺼번에 섞여서 풍겼다.

피 냄새와 고름 냄새도 빼놓을 수 없는 악취다.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코가 마비될 지경이다.

“어쩐 일이야?”

홀리가 물었다.

“아니, 저 친구한테 할 말이 좀 있어서.”

해자수가 호발귀를 가리켰다.

“호발귀한테?”

“거참 아씨도 말버릇 좀 고치지. 이제 서방이 됐으면 호칭도 좀 나긋나긋하게 낭군이라거나 서방님이라거나 거 부르기 좋은 말이 오죽 많아? 호발귀가 뭐요, 호발귀가.”

“호발귀가 뭐 어때서? 딱 좋잖아. 입에 찰싹찰싹 달라붙고.”

“그건 다르지. 서방이 뭐 동네 강아지도 아니고. 그래도 서방 대접을 해줘야지.”

홀리는 서방이라는 말에 볼을 물들였다.

“어? 얼굴까지 붉히고? 왜 안 하던 짓을 하실까?”

“해자수!”

홀리가 소리를 빽 질렀다.

“아이 귀 따가워.”

“지금 나 놀리러 온 거야?”

“나 정말 이 친구한테 할 말이 있다니까. 왜 내가 할 말이 있다고 하면 안 믿지? 이것도 병이야, 병.”

해자수가 홀리를 지나쳐서 호발귀 앞에 앉았다.

“내 말 들을 정신은 있나?”

해자수가 호발귀의 상태를 살폈다.

“풋!”

호발귀가 피식 웃었다.

그러자 호발귀를 묶고 있던 철삭이 철컹거리면서 움직였다.

단지 어깨를 좀 내렸을 뿐인데, 그를 묶고 있는 철삭이 요란한 소리를 흘린다.

“그건 무겁지 않아? 보기만 해도 질리네.”

“쓸데없는 소리 말고, 할 얘기가 뭔데?”

홀리가 끼어들었다.

“아씨, 글쎄 이놈한테 할 말이 있다니까!”

“어? 오늘 계속 성질이네? 그럼 아씨라는 말도 하지 마! 난 이제 음문촌에서도 떠난 사람이잖아!”

“한 번 아씨면 영원한 아씨지 뭐!”

“어휴!”

홀리가 기막힌 듯 허리에 손을 얹었다.

해자수는 홀리를 쳐다보지 않고 호발귀를 뚫어지게 봤다.

“할 말이 있는데, 해도 될까?”

호발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대의니 뭐니 이런 건 골치 아파서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이고. 알지? 나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말해봐요.”

호발귀가 힘없이 말했다.

“부탁 좀 하려고.”

호발귀가 무슨 부탁이냐는 듯 해자수를 쳐다봤다.

지금 호발귀는 입을 열고 말을 할 기력조차 없었다.

검을 꽂을 때,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서 출혈이 컸다. 거기에 미친 듯이 발광까지 하는 바람에 상처를 만질 시기가 더 늦어졌다.

지금은 긴급한 상황은 지났지만, 여전히 고열과 통증에 시달리는 중이다.

해자수가 말했다.

“천살단에 좀 가줬으면 해서.”

“무슨 소리야!”

해자수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홀리가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천살단은 혈천방 못지않게 적대적이다. 천살단 살단하고는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지금 당장 그들이 기습을 걸어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천살단으로 가달라니.

“내가…… 이거 참 이거…… 이래서 오지랖이 넓으면 안 되는데. 내가 오다가 잠깐 봤는데.”

해자수는 천원주가 찾아온 사실을 말했다.

사실 해자수는 천원주나 등여산에게 정체를 숨길 만큼 무공이 고명하지 않다. 하지만 해자수에게는 간자의 본능이 있다.

무공은 약해도 숨을 죽이고 기척을 숨기는 재주가 탁월하다.

해자수는 음문촌장이 선택한 간자다.

그는 천원주와 등여산이 나누는 말을 모두 들었다.

“어머니? 책사한테 어머니가 있었어?”

홀리가 눈빛을 반짝 빛냈다.

“뭐 대충 들은 건데…… 살아있다고 말하는 거로 보면 책사도 죽은 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고. 다른 건 몰라도 혈육에 관계된 문제니까 이건 해결해줘야 하지 않을까 해서. 책사가 남남이라면 모르겠는데, 이미 한 이불 덮고 자는 사이잖아.”

“음!”

호발귀가 신음을 흘렸다.

“천살단 속내야 뻔하지 뭐. 하지만 천살단이라고 해도 널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 기껏해야 말로 협박하는 건데, 그건 머리싸움이지 않을까? 그 싸움은 책사에게 맡기고, 일단 가주는 것이 맞는 것 같아.”

해자수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책사 어머니라면 내 어머니야. 나도 가야 한다는 쪽에 한 표.”

홀리가 말했다.

음문촌 사람들은 아니 촌장의 자식들은 어머니에 대한 정을 깊게 받지 못했다.

촌장은 여인들에게 싫증을 참 잘 냈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싫어하는 정도가 특히 심해서 같이 잠조차 자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인들이 사라졌다.

여인 스스로 촌장에게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고, 배우자의 권리조차 포기한 채 오직 아이 키우는 여자로 살아가면 그때는 숨 쉬는 것을 허락했다.

하나 그런 시기도 겨우 삼사 년에 불과했다.

아이가 걷고, 뛰기 시작하면 어미로부터 떼어져서 혹독한 훈련에 돌입한다.

촌장의 자식들은 어머니를 알지 못한다.

자식과 떨어진 어머니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데, 아마도 죽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촌장은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다. 촌장 옆에는 늘 젊은 여인들이 붙어있다. 일자나 이자 같은 경우에는 자신보다 어린 여인에게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촌장의 자식들은 어머니라는 말에 어떤 한(恨)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해자수 말이 맞아. 천살단도 넌 어떻게 하지 못해. 가줘야 할 것 같은데?”

호발귀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데 말했다.

“등매를 불러줘. 왜 이런 이야기를 안 하고 혼자 끙끙대는 거야. 내가 그렇게 못 미덥나?”

“천살단으로 가자.”

모두가 다 모인 자리에서 호발귀가 선언하듯 말했다.

갑작스러운 말이지만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회합이라는 명목으로 모이기 전에 이미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어서 당연하다는 투로 받아들였다.

“안 돼!”

한 사람, 당사자인 등여산만은 회합의 목적을 알지 못한 채 왔다. 그래서 당장 반대했다.

“천살단에 혈마록이 있어. 그건 없애야 해.”

“사실대로 말해. 천원주님이 온 것, 알고 있잖아. 그래서 가자고 하는 거 아냐.”

“원하는 게 혈마 무공이잖아. 건네주지 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절대 안 돼. 이 세상 사내들이 너처럼 죽음을 자초할 것 같아? 죽느니 혈마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는 ‘너’네. 차라리 호발귀라고 부르는 게 낫다.”

해자수가 슬쩍 끼어들었다.

“쉿! 지금은 낄 때가 아니야.”

홀리가 주의를 시키었다.

두 사람 모두 등여산의 말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

호발귀가 마음을 정한 이상, 등여산과 말하는 것은 통보에 불과하다. 등여산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된다.

“세상에 혈마가 또 나타나면 안 돼. 혈마 무공을 전해주면 한 명으로 그치지 않을 거야. 이쪽에서 한 명 나타나면 저쪽에서는 두 명을 키울 거고, 그럼 이쪽에서는 또 세 명. 밑도 끝도 없어. 그러는 동안 세상은 아비규환이 돼.”

“구혼음소가 있잖아. 죽이면 되지.”

“넌 안 죽었잖아. 네가 수련한 혈마 무공은 혈마가 남긴 무공이 아니야. 뭔가 달라졌다고.”

“어떻게든 천살단에 남긴 혈마록은 없애야 하잖아?”

“나중에 하면 돼.”

“등매.”

“나 설득하지 마. 절대 안 돼.”

호발귀도 등여산도 어머니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오직 혈마 무공만 가지고 말했다. 천살단에 가는 이유도 딱 하나, 혈마록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럼…… 혈마 무공을 수련해도 혈마가 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갈 수 있을까?”

“이건 또 무슨 소리래?”

호발귀의 이번 말은 확실히 충격이었다.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가 자신 있게 말했다.

“내가 수련한 혈마 무공을 온전히 전해줘도 혈마를 만들 수 없어. 혈마, 절대 안 나와. 날 믿어.”

“그게…… 무슨 소리야?”

당홍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혈마록에 무공이 몇 개 기재되어 있는지 말해볼까?”

호발귀가 빙긋 웃으면서 쳐다봤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도 아니고…… 여덟 개는 아닌 게 분명하지?”

도천패가 당홍을 보며 말했다.

혈마록 속에는 혈마 무공 여덟 개가 기재되어 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여덟 가지 무공이 어떤 것인지 명칭까지도 세세하게 알고 있다.

아마도 이 여덟 가지 무공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그때, 등여산이 말했다.

“아홉 개.”

“뭐?”

당홍이 재빨리 등여산을 쳐다봤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모두 놀란 표정이 역력하다. 등여산이 알고 있는 또 하나의 무공은 무엇인가?

“뭔지 알지?”

호발귀가 등여산에게 물었다.

“투골지. 표지에 적혀 있던 무공이잖아. 아니, 표지가 투골지로 쓰여 있었어.”

“맞아. 투골지.”

호발귀가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모두 혈마록에 무공 여덟 개가 기재되어 있는 줄 안다.

표지에 무공 하나가 더 첨부되어 있었다. 모두 표지에 적힌 무공은 무시하고 넘어가 버렸다.

별로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무인이니까 표지도 투골지로 썼겠거니 하고 무심히 지나쳤다.

호발귀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혈마록을 적어줄 때도 표지에 적힌 부분은 적어주지 않았다.

일부러 적지 않은 게 아니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참회동에서 무공 수련을 할 때도 투골지는 사용하지 않았다. 수련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무공이 있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을 알면 기가 막혀진다.

생기를 보는데 가장 중요한 무공이 바로 투골지다.

투골지가 있어야지만 역천금령공과 이령귀화가 하나로 연결된다.

투골지가 없으면 각 무공이 순환을 이루지 못한다. 몸통 하나에 머리가 달린 양쪽 끝에 달린 괴물 쌍두사가 나오지를 않는다.

아예 혈마가 시작되지 않는다.

투골지는 단순한 지법이 아니다. 뼈를 꿰뚫는다는 말은 지법의 강력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여덟 가지 무공을 일렬로 세워놓고 일시에 관통한다는 뜻이다.

호발귀는 혈마 무공을 수련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투골지를 운용했다.

이런 사실을 근래에서야 알았다.

가장 중요한 요점을 빼버리면 혈마 무공 여덟 개는 단지 강력한 마공일 뿐이다.

역천금령공과 구뢰마권은 살천광마의 무공이다.

귀화미요공은 귀령문(鬼靈門)의 무공이고, 마영심도는 마도(魔刀) 호은초(濠垠哨)의 무공이다.

혈마가 창안한 무공이 아니라 마두들이 사용했던 무공인 것이다.

투골지가 없다면 마공 여덟 개는 단순한 마공의 취합에 지나지 않는다.

천살단 마공관에 있는 수많은 마공서에서 여덟 개를 뽑아 든 것에 불과하다.

“그런 게 있었어? 그럼 투골지도 우리가 아는 투골지가 아닌 거네?”

비로소 등여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투골지는 불에 그을린 듯한 자국을 내. 너무 흔적이 뚜렷해서 단박에 알 수 있어. 하지만 그런 흔적이 오히려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지. 맞아. 투골지가 아니야. 뭔지는 나도 모르고.”

“정말 가줄 거야?”

등여산이 언제 반대했냐 싶게 환히 웃었다.

“소식을 보내. 가겠다고. 하지만 출발 날짜는 보름 뒤로. 보름 정도는 더 수련해야겠어. 여기서 조금이라도 기미를 찾은 다음에 가야지. 이대로 가면 정말 위험해.”

“알았어.”

등여산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호발귀는 자신을 생각해서 천살단에 가는 것이다.

그렇다. 천원주에 대한 의리, 천살단주에 대한 정리, 이 모든 부분을 고려해주었다.

또 혈마록을 없애는 데 의미가 있기도 하다.

‘잘 된 거야.’

등여산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살아계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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