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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37화 (237/500)

第五十八章 제삼마(第三魔) (2)

호발귀는 온갖 것을 다 이용하고 있다.

술, 약, 독…… 실질적으로 피와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물질을 복용한다.

몸에 좋은 것이든 해가 되는 것이든 일단 자극이 될만하다 싶으면 무조건 사용하고 본다.

티끌만큼이라도 반응이 있었다 싶으면 다시 실험해서 확인한다.

지독한 자기 학대다.

호발귀는 단검이나 비수, 십자표, 비황석 같은 암기로 자해도 시도한다.

혈마로 들어서는 순간 혹은 혈마로 있는 동안에 본인 스스로 의식을 찾기 위한 방도를 여러모로 모색하고 있다.

그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다 사용해 본다.

하지만 현재로서 그 길은 요원해 보인다.

그제 저녁, 호발귀는 자신 스스로 검을 배에 찔러 넣었다.

등여산이나 홀리는 검을 깊게 찌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서 본인 스스로 자해한 것이다.

그 상태로 역천금령공을 운기했다. 당연히 혈마가 되었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사람을 죽이려고 으르렁거렸다.

검에서 뻗어 나온 살기가 동굴을 회오리쳤다.

후유증은 매우 컸다.

혈마에서 벗어난 후에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혼절해 있어야만 했다.

등여산은 꼬박 이틀 동안 수발했다.

홀리도 호발귀의 아내다. 하지만 홀리는 등여산이 나서는 동안에는 절대로 나서지 않는다.

아마도 나족 풍습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등여산은 홀리에게 평생 벗을 하자고 했지만 나족은 부인 간의 서열을 매우 중시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혼인 순위로 서열이 결정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혼인이 파탄 나지 않는 이상, 서열은 평생을 간다.

홀리는 등여산을 윗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부분은 쉽게 깨질 수 없다. 평생 같은 민족들과 어울리면서 살아온 그 풍습이 어디 가겠나.

피에 녹아 있고, 살에 붙어 있고, 뼈에 숨어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차분차분 녹여 나가야 한다.

이번에도 등여산이 호발귀를 수발드는 동안 홀리는 필요하다 싶은 물건만 갖다 놓을 뿐, 수발에 절대 간여하지 않았다.

호발귀에 대한 우선권은 철저하게 등여산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등여산은 이런 생각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였다. 한시적이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도 필요할 때다.

물론 홀리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나족 풍습은 반대한다. 맙소사! 서열이라니!

등여산이 받아들이는 것은 행동이다.

혈마가 된 호발귀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자신보다는 홀리다.

홀리는 혈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혈마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안다. 그래서 정작 필요할 때, 호발귀가 위태로울 때는 그녀가 힘을 써야 한다.

그때를 대비해서 지금은 쉬게 한다. 충분히 쉬게 한다.

잔병 수발을 들거나, 음식을 먹이거나, 붕대를 갈아주거나 등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자잘한 일은 자신이 대신하고 홀리는 정말 큰 일이 벌어졌을 때 힘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솔직히 애원이라도 하고 싶다.

등여산의 이런 마음은 홀리도 짐작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해 준다.

“휘유!”

등여산은 한숨을 내쉬었다.

호발귀를 만난 후에 느는 건 한숨뿐이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한숨을 토해낸다.

그녀는 숲길을 걸어갔다.

하루하고 반나절, 거의 이틀을 꼬박 밝혔더니 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다.

가서 잠을 자야겠다.

등여산은 걸음을 멈췄다.

눈앞에 반가운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예전처럼 한달음에 달려가지 못했다.

천원주 유리도 주당염!

천원주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천살단에 있을 때는 어머니처럼, 언니처럼 따랐다. 사내들만 득실거리는 곳이라서 특히 더 친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입장이 다르다.

사박! 사박!

등여산은 천원주에게 걸어갔다.

자신들이 이곳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천원주가 아니라 살단 무인들이 나타났다고 해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만큼 천살단 정보망은 넓다.

천원주가 언제나 그랬듯이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등여산을 반겼다.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마음은 편해요.”

“내가 듣는 것과는 다른데? 호발귀가 그렇게 속을 썩인다며?”

“아시다시피 호발귀가 저런 상태라서 마음이 편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편하고 몸은 고되네요.”

“좀 걸을까?”

“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숲을 걸었다.

등여산은 천원주에게 이곳에 어떻게 왔냐고 묻지 않았다.

천원주도 혈천방에서 있었던 일을 묻지 않았다. 이미 짐작하고 있고, 알고 있다.

“잘 계셨죠?”

등여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희가 혈천방을 쳐주는 통에 우리는 손도 안 쓰고 코 풀었지. 호호! 이런 일은 자주 있을수록 좋은데. 그지?”

“혈천방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요?”

“그놈들이 언제 대놓고 움직이던?”

천원주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잠깐 방심해서 놓쳤어요. 따라붙을 수 있었는데.”

“우리 실책이 컸어. 파문하는 게 아닌데. 혈마에 대한 공포가 그만큼 컸던 거지.”

천원주가 차분하게 말했다.

천살단 파문은 굉장히 지엄하다. 파문에 처했다가 복권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파문된 후에 파문될 원인이 잘못이었다고 밝혀졌어도 복권시키지 않는다. 파문을 당하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는 전통을 깨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을 복권시키기 위해서 찾아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파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너를 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신호 정도로 해석할까?

“원주님.”

등여산은 천원주를 쳐다봤다.

“뭐예요? 궁금하게. 정말 말하기 힘드신가 보네. 자꾸 말을 돌리시기만 하고.”

등여산이 천살단에 있을 때처럼 천원주에게 격의 없이 물었다.

“휴우!”

천원주는 한숨부터 토해냈다.

정말 말하기 싫은 표정이다. 하지만 맡은 소임이 있으니 말할 수밖에 없다.

“네가 있을 때, 혈마록을 연구했잖아.”

“네.”

“네가 남긴 것을 기본으로 해서 혈마록을 계속 연구했는데, 이상한 게 튀어나왔어.”

“이상한 거요?”

“글쎄? 뭐라고 해야 하나? 혈마 무공은 아닌데 마공은 틀림없는 것 같아.”

등여산은 퍼뜩 혈마 무공을 떠올렸다. 혈마록을 연구해서 튀어나온 게 있다면 혈마 무공일 것이다.

“그것을 문도 열 명에게 수련시켰는데, 그 열 명이 서로 상잔을 해버렸어.”

“상잔!”

등여산이 깜짝 놀라서 천원주를 쳐다봤다.

천원주가 곱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상잔 수법이 굉장히 지독해. 배가 그어져서 내장이 흘러내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칼을 휘둘러. 마치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어. 매우 잔혹해. 뭐라고 할까? 나는 상관없다, 너만 죽이면 된다. 이런 느낌이랄까?”

“열 명이 모두 죽었겠네요?”

천원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게…… 혈마 무공이 아니라고 생각해.”

천살단은 이미 혈마 무공을 파악했다.

심공 세 개, 도법 두 개, 검법 두 개, 권법 한 개. 모두 여덟 개가 주축을 이룬다.

이 무공들은 굳이 혈마록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백 년 전 혈마가 사용하던 무공들이라서, 주요 골개를 쉽게 파악했다. 펼칠 수는 없어도 알아볼 수는 있다.

혈마록에서 나온 무공을 수련했는데, 혈마 무공이 아니다? 그럴 수 있다.

등여산은 혈마록을 한 권 가까이 해독했다.

물론 정확하지 않다. 당시는 정확하게 해독했다고 자신했지만, 나중에 호발귀에게 들은 무공과 비교하면 엉터리로 해독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천살단이 그걸 바탕으로 해서 어떤 무공을 뽑아냈다면 그 무공은 대단히 잘못된 무공이다.

솔직히 무공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뭐가 잘못된 것 같네요.”

“용건을 말해야겠다. 파문한 마당에 염치없지만, 네가 와서 그 무공을 살펴줬으면 해.”

“혈마록, 덮어버리시면 되잖아요.”

“너도 봤지만, 혈마가 한 명만 나와도 우리는 상대가 안 돼. 워낙 차원이 다른 무공이라서. 그런데 혈천방은 이미 혈마를 만들어 냈잖아. 토초라고 했나? 그 여자가 만들어낸 혈마. 얼마나 놀라워. 그런 혈마가 네 명이나 있다면서? 그중 두 명만 보내도, 아니 한 명만 보내도 우리 천살단은 전멸이야.”

“토초는 죽었어요.”

“그런 여자, 또 나오겠지. 홀리도 혈마를 만들 수 있다면서?”

“홀리는 여기 있어요. 절대로 혈마, 만들지 않아요.”

“그럼 호발귀가 혈마가 될 가능성은?”

“……”

등여산을 말을 잇지 못했다.

“혈마록을 덮으면 우린 상대가 안 돼.”

“하아!”

등여산은 나직이 탄식했다.

천살단에 혈마록이 남겨져 있다.

호발귀가 써준 혈마록이다. 해독도 되지 않은, 영원히 개봉되지 않을 보물이다.

하지만 천살단은 계속 보물을 열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무공이 나오는 일도 어쩔 수 없이 생긴다.

혈마록을 남겨놓고 온 것이 잘못이다.

자신이 아니면 혈마록을 해독할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한 것도 대단한 오만이다.

“원주님, 지금은 죄송하지만 혈마록, 봐 드릴 수 없어요.”

“알아. 우리가 파문까지 했는데 파문한 쪽에서 도와달라고 하는 게 말도 안 되지. 이런 말 하는 내가 창피하네? 하지만 너 아니면 볼 사람이 없어서.”

“제가 아니라 호발귀가 봐줬으면 하는 거 아닌가요? 사실, 혈마록은 핑계고 호발귀에게 혈마 무공을 얻으시려는 거죠? 원주님, 호발귀가 혈마 무공을 버리기 위해서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아시면 이런 말씀 못 해요.”

“휴우! 세상 참 어렵다.”

천원주가 한숨을 뿜어냈다.

“혈마 무공은 마공이에요. 절대로 손대면 안 되는.”

등여산이 차분하게 말했다.

“저 파문하신 거 잘하신 거고요.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호발귀, 정상으로 돌아가기 요원해요. 혈마가 되느니 죽자는 게 호발귀 심정이라면 이해하시겠어요?”

천원주가 팔을 들어서 등여산의 어깨에 둘렀다.

“옛날에 네가…… 내게 알려준 말이 있다. 설득이 최선이고, 제압이 차선이고, 그다음은 뭐라고 했지?”

등여산이 고개를 팔딱 들어서 천원주를 쳐다봤다.

천원주가 말했다.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보다 못한 방책.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서로 원수가 되고 말 일.”

“원주님, 말하지 않으시면 안 되요?”

“네 어미. 살아있다.”

“……!”

등여산은 말문이 턱 막혔다.

제압보다 못한 방책은 협박이다.

가족을 인질로 잡는 것도 협박이지만, 상대방이 알고 싶은 일은 미끼로 내거는 것도 협박이다.

협박으로 움직이게 한다.

“원주님, 선을 넘으셨어요.”

“안다. 그만큼 우리 천살단, 절박해.”

천원주에 어깨에 두른 손으로 쓱쓱! 팔을 문질렀다.

천원주는 거절하지 못할 미끼를 내걸었다.

어머니가 살아있다!

어머니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안다. 언제든 소식을 알려줄 수 있다. 단, 호발귀가 혈마 무공을 내놓는다면.

등여산에게 천원주는 어머니요 누이였다. 천살단주는 할아버지 역할을 해주셨다.

그만큼 온갖 속내를 다 보이면서 지내왔다.

그런 두 분이 협박을 해왔다. 아니, 미끼를 던졌다.

이런 식으로라도 혈마 무공을 얻어야 할 만큼 절박하다는 것인데…… 그 부분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혈마 무공을 내놓을 수는 없다.

어머니 소식을 알자고 호발귀에게 천살단으로 가자는 말도 하지 못한다.

‘어머니!’

등여산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전신에 피로 낭자한 여인이 태산을 오른다.

한 걸음 움직이고 숨을 돌릴 만큼 상처가 깊다. 어딘가…… 깊은 숲속에서 노인을 만났고, 아이의 손을 건넨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매우 아련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런 모습으로 기억되는지 모르겠다. 여인은 왜 피가 낭자한지, 아이를 건네받은 노인은 누구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말을 참으로 오랜만에 들었다.

‘어떻게 하지?’

등여산은 푹 쉬려고 초옥으로 왔지만,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생각을 너무 오래 해서인지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파져 왔다.

“휴우!”

그녀는 또 한숨을 쉬었다.

한숨! 한숨! 한숨!

화병 생기는 사람들이 왜 한숨을 그렇게 많이 쉬는지 알겠다. 가슴이 답답하다. 터질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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