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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36화 (236/500)

第五十八章 제삼마(第三魔) (1)

등여산은 불안한 마음으로 홀리를 쳐다봤다.

혈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구혼음소다.

다행히 음고나 귀색혼령대법은 필요 없다. 그런 것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구혼음소만 읊어서 혈마를 벗어날 수 있다면 혈마가 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돌아오는 것만 보장된다면.

과연 구혼음소만으로 될까?

홀리가 말했다.

“참! 내가 알려준 구혼음소, 아직도 외우고 있지?”

“외우고 있어.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럼 네가 한번 해봐.”

“내가?”

“일단 호발귀는 날 알아봐. 그러니까 네가 하다가 안 되면 내가 하면 돼. 널 알아보는지도 확인해야지.”

“알았어.”

등여산이 구혼음소를 읊기 시작했다.

“타악 투 파 비투 쏘”

홀리가 가르쳐 준 구혼음소가 등여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첫 번째 구혼음소는 아니다. 세 번째 구혼음소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구혼음소는 시간이 없어서 아직 말해주지 못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아무 상관도 없다.

호발귀는 이미 첫 번째 구혼음소 조차 생명의 주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촌장에게 말했듯이 동네 개 짖는 소리나 구혼음소나 호발귀에는 똑같다.

등여산을 알아보느냐, 알아보지 못하느냐가 문제다.

“크크큭! 킥킥! 끄아아악! 까악!”

괴소가 더욱 거세졌다.

손발을 묶고 있던 철삭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철컹거렸다.

구혼음소를 읊조리고 있는데, 혈마는 더욱 광분하고 있다. 철삭을 끊어내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안 돼. 못 알아봐.’

홀리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호발귀가 등여산을 알아봤다면 지금쯤 괴소를 그쳤어야 한다.

혈기를 놓아주기 위해서 힘을 풀어야 한다. 그런데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쯤에서 그쳐야 하는데……’

홀리는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등여산 앞에서는 태연한 척했지만, 호발귀가 혈마로 변하는 것, 그녀만큼 불안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혈마에 대해서 아는 만큼 더 불안해지는 법이니까.

그때, 혈마가 움직임을 멈추고 등여산을 노려봤다.

활활 불타는 눈으로 당장 머리를 부숴서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노려본다.

“크크크! 키키! 까아악!”

괴소는 끊이지 않고 흘러나온다.

홀리의 눈이 터질 듯이 부릅떠졌다.

“알아봤어!”

홀리가 입가에 활짝 미소를 띠며 소리쳤다.

‘그래. 알아. 날 알아봤어.’

등여산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호발귀가 자신을 알아본 것뿐인데, 눈물이 날 만큼 고맙다. 십 년 먹은 채증이 풀린 것처럼 속이 시원해진다. 호발귀를 다시 얻은 느낌마저 든다.

“끄으으으……”

괴소가 구혼음소를 따라오고 있다.

스루파 나후 크크크 끄으으 사라 럼 로럼 크아 아 끄아아 루미리 컥컥!

등여산이 선창하면 호발귀가 따라온다.

등여산은 장진 스님이 말한다는 반야심경은 듣지 못했다.

불경은 호발귀의 머릿속에서만 울릴 것이다. 아마, 지금도 쩌렁쩌렁 울리고 있을 것이다.

‘고마워. 고마워. 날 알아봐 줘서 고맙고…… 돌아와 줘서 고마워.’

등여산은 구혼음소를 부지런히 읊었다.

털썩!

호발귀가 쓰러졌다.

혈색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심한 병을 앓았던 사람처럼 전신이 땀에 흠뻑 젖었다.

“이제 됐어. 가자.”

“응.”

홀리와 등여산은 호발귀가 털썩 무너지는 모습을 보자 옷깃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물러났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서 상태를 알아보고 싶지만, 일체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

서로 약조된 행동이다.

호발귀는 의식이 돌아오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어 한다.

의식을 잃은 순간부터 다시 찾은 순간까지 모든 상황을 되새김하고 있다.

지금 호발귀가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도 놔두고 간다.

사박! 사박!

두 여인은 발걸음 소리까지 죽인 채 동굴을 걸어 나왔다.

‘스님!’

호발귀는 장진 스님을 기다렸다. 하지만 스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정신이 든 후에도 제일 먼저 스님부터 떠올렸다. 스님이 나타났었나? 경전을 읊어줬나?

장진 스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반야심경이 환청처럼 들려오기는 했지만, 스님이 말해준 것이 아니다.

‘분명히 시작은 등매야.’

호발귀는 눈살을 찌푸렸다.

구혼음소가 들리고, 반야심경이 떠올랐다. 분명히 시작은 외부에서부터 일어났다.

외부의 울림이 없어도 반야심경이 울린다면 수련은 끝난다.

지금 상태에서는 반야심경만 들리면 자신만의 주술을 끌어낼 수 있다. 그러면 혈마 탈피다.

반야심경이 울리지 않고 자신의 구혼음소가 들리는 것도 상관없다.

사실, 반야심경과 자신의 구혼음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불경이 울리면 곧바로 주술로 이어진다.

혈마를 깨고, 제정신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의 다독거림이 일어난다.

현재 상태에서, 시작은 외부에서 시작된다.

내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주위에 등여산이나 홀리가 없다면 다시 돌아온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하아!’

호발귀는 한숨을 토해냈다.

등여산과 홀리가 멀리 가지 못하고 동굴 밖에 있다. 그녀들의 생기가 읽힌다.

자신이 쓰러지면 다 잊어버리고 푹 쉬라고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걱정할까 봐 한숨도 크게 쉬지 못한다.

그저 속으로 삭일 뿐이다.

결국, 혈마가 되었다가 호발귀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과정에 숙달하면 전체 과정 중 한두 개 생략되어도 무리 없이 진행되는 수가 있다.

혈기가 일어나는 순간, 반사적으로 반야심경을 들으면 혈마에 빠지지 않을 수도 있다.

호발귀는 한 가닥 기대를 꿈꾸면서 축 늘어졌다.

탈진 상태가 일어난다. 몸에 힘이 쭉 빠진다. 현기증이 치밀고, 구역질까지 치솟는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호발귀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탁!

호발귀 얼굴 앞에서 환혼몽이 터졌다.

환혼몽은 혈천방주까지 잠재워버린 매우 강력한 미혼분이다.

당홍은 호발귀에게 열 명을 쓰러트릴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의 환혼몽을 터트렸다.

“크크크! 크크! 크크!”

호발귀는 환혼몽에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정면에서 환혼몽을 들이켰는데도 멀쩡하다.

“인간이 아니네. 괴물이네.”

당홍이 놀라서 말했다.

“언니, 이거 환혼몽 맞아요? 밀가루를 잘못 가지고 온 거 아닌가?”

홀리가 당황이 들고 있는 누런 봉지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왜? 아닌 거 같아? 그럼 너에게 써볼까?”

“호호호! 약이 듣지 않으니 나한테 신경질이네?”

홀리가 놀리듯이 말했다.

호발귀는 환혼몽을 들이키고도 여전히 흉성을 토해내고 있다. 미혼분이 전혀 듣지 않는다.

“이거, 써야 하나?”

당홍은 홀리가 놀리는 말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웬만하면 말장단을 맞춰줬을 텐데,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녀가 환혼몽 대신에 꺼낸 것은 칠보절독산(七步絶毒散)이다

중독되면 일곱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절명한다.

경맥 손상이 매우 빨라서 해약을 복용해도 반신불수로 남는 경우가 많다.

“환혼몽이 안 듣는다면 이미 반은 귀신이 된 건데. 해약은 있죠?”

이번에는 홀리도 장난하지 않았다.

환혼몽은 중독이 되어도 한숨 자고 나면 된다.

하지만 독분은 다르다. 그것도 칠보절독산이다.

“해약은 있지.”

“써봐요. 써달라고 했잖아요.”

등여산이 말했다.

“후우! 에이, 나도 모르겠다.”

당홍은 기름종이를 들고 호발귀에게 다가섰다.

“끼아악! 끼악! 까아아악!”

호발귀는 당홍이 다가오자 미친 듯이 괴성을 질렀다.

혈마는 사람 언어를 알지 못한다.

그저 맹수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만 흘린다.

당홍은 호발귀의 얼굴에 칠보절독산을 뿌렸다.

파아앗!

허공에 노란 분가루가 번졌다.

“물러서!”

독분을 쓴 곳은 동굴이다. 자칫 분가루가 동굴 안에 가득 퍼질 수도 있다.

물론 모두 피독단을 복용한 상태이지만, 그래도 혹시 탈이 날 수도 있다.

당홍은 호발귀의 반응을 자세히 주시했다.

독한 독을 쓴 만큼 중독 여부를 세심히 살펴야 한다.

조금이라도 이상 반응이 일어나면 즉시 해약을 복용시킨다.

“까아아악! 끼익! 키키킥!”

호발귀는 여전히 괴성을 질렀다.

중독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중독은 분명히 되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몸 밖으로 배출되었다.

칠 공에서 검은 진물이 흘러내린다. 이마에 맺힌 땀도 검다.

호발귀는 바지에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독기를 배출시킬 수 있는 모든 장기를 전부 사용해서 독기를 밀어낸다.

독섬칠공은 이런 현상을 나타내지 않는다.

몸속에 응집시키는 예는 있어도 진물로 뿜어내지는 못한다.

호발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독기를 해소한다.

“이것도 안 돼.”

당홍이 안심인지 실망인지 모를 음성으로 말했다.

“안 되기를 다행이지. 칠보절독산이 통했다면 그거 마음 졸여서 어디 살겠어?”

홀리가 안쓰러운 눈길로 호발귀를 쳐다봤다.

여러 가지 실험을 한다.

오늘은 독에 대한 실험이다.

미혼약도 써보고 극독도 사용해 본다.

약한 독부터 절독까지 두루 사용해 본다. 그래서 혈마가 어떤 반응을 하는지 살펴본다.

독이 혈마를 제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랬다면 이백 년 전 혈마는 진작 죽었다.

무공이 약하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화약이나 독이다. 암살이다.

혈마를 죽이고자 하는 암살 시도는 수백 번에 이르렀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실험은 호발귀가 자청했다.

독공을 당하면 반야심경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구혼음소 외에 다른 것으로도 혈마를 벗어날 수 있다면 안전장치가 하나 더 늘어난다.

지금은 등여산과 홀리 두 사람만이 호발귀를 깨울 수 있다.

아쉽게도 호발귀는 도천패와 당홍을 알아보지 못했다.

두 사람이 혈마 앞에 섰지만, 흉성만 높아졌다. 당장이라도 쳐죽일 듯이 으르렁거렸다.

혈마후만이 혈마를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진다.

“오늘은 안 되겠어. 독으로는 할 게 없어.”

당홍이 두 손을 들어버렸다.

“만취 상태로 운기해도 멀쩡해지고, 침을 사용해도 안 되고, 독도 흘려내고. 혈마가 되면 암살은 거의 불가능해지네. 이게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어쨌든 오늘은 끄집어내야겠어.”

등여산이 호발귀에게 다가서려고 했다.

“오늘은 내가.”

홀리가 등여산을 잡아챘다.

“가서 좀 쉬어. 이틀째 꼼짝하지 않고 곁을 지켰잖아. 그러다가 네가 먼저 나가떨어져.”

등여산은 홀리를 봤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수고해. 난 좀 쉴게.”

홀리가 호발귀 앞에 앉았다.

“끼익! 까아아악! 까아악!”

호발귀는 홀리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금은 그렇다. 그냥 눈앞에 서 있기만 하면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 등여산도 알아보지 못했다.

“오늘은 너무 사납네.”

홀리가 말했다.

“까아아악! 끼아악!”

호발귀는 쇠사슬을 철컹철컹 움직이면서 달려들려고 했다.

혈마는 아직도 혈마후를 알아보지 못한다.

홀리의 음성이 아직 고막을 뚫지 못했다.

“내가 생각한 혈마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어. 사납기는 했지만 위풍당당한 모습? 내가 좀 엉뚱하지? 혈마를 모시는 종족이란 걸 알게 되니까, 좀 사내다운 혈마가 그리웠나 봐.”

홀리는 구혼음소 대신에 일상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끄으으으……!”

호발귀의 괴음이 일정한 음률을 타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중이다.

머릿속에서는 반야심경이 떠올랐을지 모르지만, 신음은 구혼음소를 쫓아간다.

“혈마가 나타나면 내가 혈마후가 되어야 하잖아. 토초도 있지만, 적수로 안 봤고. 호호!”

“끄으으! 끼아아……!”

“이런 모습, 정말 싫다.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너는 늘 아프네. 어떻게 하루하루가 죽음이야. 우린 죽음을 벗어나면 이야기가 안 돼. 그렇지?”

홀리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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