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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34화 (234/500)

第五十七章 암류(暗流) (4)

“그럴 줄 알았지. 하하하!”

혈천방주가 크게 웃었다.

지심옥에서 홀리를 봤을 때, 그녀가 이미 음문촌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음문촌 사람들은 특유의 야생 냄새를 풍긴다.

산에서 잡은 멧돼지는 집돼지와는 전혀 다른 난폭함을 보인다.

음문촌이 그렇다. 똑같이 검을 들었어도 혈천방 무인보다 음문촌 무인들이 훨씬 난폭하다.

홀리에게서는 그런 난폭함이 사라졌다.

물론 그녀도 중원 여느 여인들보다는 난폭하다. 훨씬 사납고, 거칠다. 하지만 뭔가…… 냄새가 빠졌다.

그녀는 토초처럼 몸뚱이를 함부로 굴려 가면서 혈마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는 이미 중원인이 다 됐다. 그래서인가? 그런 냄새가 빠진 것인가?

“흠! 혈마를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 음문촌도 별 볼 일 없다는 건데. 그래도 구혼음소는 먹혔어.”

혈천방주는 지금의 구혼음소를 생각하는 게 아니다. 환혼몽 속에서 토해진 구혼음소를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이 보지 못했다. 듣지도 못했다.

환혼몽에 중독되어 나가떨어져 있을 때, 석실 안에서 혈마 제련 작업이 진행되었다.

귀색무와 환혼몽이 어우러진 이상, 호발귀는 혈마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홀리를 분명히 구혼음소를 읊조렸다.

바로 그 구혼음소를 생각한다.

분명히 그때만큼은 진결이 먹혀들었다. 호발귀를 자극했다. 혈마로 만들었다.

그 상황을 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다.

‘이제 음문촌장은 있는 것, 없는 것 다 토해내게 되어 있고…… 그럼 그쪽은 서둘 필요가 없지? 이미 잡아놓은 물고기니까.’

혈천방주는 음문촌장보다는 호발귀 쪽을 생각했다.

호발귀와 같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버려진 자들이다.

우선 당장 홀리부터 살펴보면, 그녀는 음문촌이나 혈천방 어느 쪽에서 설 수 없다. 그렇다고 중원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세상 모두가 그녀의 적이다.

등여산은 어떤가? 그녀도 버려졌다.

천살단은 이미 그녀의 축출을 공식화했다. 이 세상에서 따로 떨어진 외톨이가 되었다.

당홍도 내쳐진 여자다.

독의는 혈천방으로부터 버림받았다.

거기에 당홍이 직접 혈천방에 검을 겨누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천살단이 그녀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하지만, 천살단과 당홍은 여전히 적대관계다.

도천패는? 그자는 말할 것도 없다.

오죽하면 투심문에서조차 버려졌을까.

호발귀가 아니었다면 평생 대장간에서 쇠나 두들기다가 죽어갔을 것이다.

모두 버려진 사람들만 모였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군. 후후!”

혈천방주는 붓을 들어서 서신을 써 내려갔다.

서신 내용은 간단하다. 지심옥에서 있었던 일이 비교적 사실대로 기재되었다.

비교적? 그렇다. 비교적이다.

사실 그대로 적지 않았다. 아니, 사실대로 적었다. 다만 약간 가감을 했다.

주요 골자는 사실이다.

호발귀가 혈마가 됐고 홀리의 구혼음소에 영향을 받았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내용을 기재했다.

호발귀는 혈마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고 있다.

혈천방주는 붓을 놓고 서신을 다시 읽어봤다.

“흠! 좋아.”

혈천방주는 서신을 봉투에 넣고 풀로 붙였다.

“이것을 천살단에 전해라.”

“천살단입니까?”

소귀가 매우 놀란 듯 다시 물었다.

“우리 혈천방에 침입해 있는 간자를 이용해.”

“아! 네.”

소귀가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 즉시 대답했다.

“후후후!”

혈천방주는 웃었다.

서신은 혈천방주가 귀무살 총령인 귀검에게 보내는 것이다.

혈마에 관계된 이야기인 만큼 귀검도 알아야 할 사항이다.

또한, 방주가 귀무살 총령에게 직접 서신을 보낼 만큼 중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이 서신이 간자 손에 들어가면 곧바로 천살단에 전해질 것이다.

혈천방주가 서신을 건네며 한마디 했다.

“그래도 잘 지켜봐. 반드시 천살단에 전해져야 하니까.”

“네.”

소귀가 힘차게 대답했다.

혈천방은 혈마를 만들지 못한다.

음문촌도 이제는 틀린 것 같다. 하지만 아직 혈마는 남아있다. 천살단에서도 혈마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그쪽 혈마를 이용하거나 호발귀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호발귀는 이용하기가 까다롭다.

그래서 일단 천살단 혈마부터 이용하려고 한다.

“천살단주. 당신이 아무리 능구렁이 같아도 이번에는 걸려들지 않을 수 없을걸? 알아도 걸리고 몰라도 걸리는…… 하하하! 이런 걸 보고 외통이라고 하지. 하하!”

혈천방주는 크게 웃었다.

***

“오늘이 사흘째지?”

“응.”

“사흘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어. 이럴 수도 있나? 이놈들 이거 완전히 자포자기한 거 아냐?”

“아니, 이럴 때일수록 더 위험해.”

당홍이 미간을 찌푸렸다.

뇌옥에서 나온 이후 사흘이 지났는데, 혈천방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호발귀는 저들이 보이는 곳에 있다.

도천패가 으슥한 곳으로 안내했지만, 혈천방 입장에서는 여전히 본방 안에 있는 불청객이다.

그런데도 일절 건드리지 않고 있다.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놈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풋! 아침이면 일어나고, 일어나서는 검도 차지 않고 움직이고, 저녁이면 잠자리에 들고. 이상한 행동이 보일 리 없잖아. 일부로 이렇게 하는 건데.”

“일부러?”

“재들 우리 보라고 이렇게 움직이는 거야.”

“음!”

이번에는 도천패가 침음했다.

혈천방은 함부로 공격해오지 못한다. 죽을힘을 다해서 공격했던 팔방 무인 팔백 명 중 오백 명 이상이 죽었다.

하룻밤 새에 단 한 사람에게.

이런 싸움은 아마도 무림사에 전무후무할 것이다.

혈천방 남은 무인들이 작심하고 달려들어도 호발귀 한 사람을 당해내지 못한다.

저들의 무반응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얘네들 전혀 움직일 것 같지 않지?”

도천패가 말했다.

“움직여. 책사가 움직인다고 했잖아. 그럼 움직일 거야.”

당홍이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호발귀는 혈천방주가 움직일 것이라는 데 확신을 갖지 못했다.

십중팔구 움직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래도 움직이지 않을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책사 의견을 구했다.

“움직여. 확실해.”

이 말보다 더 확실한 말이 어디 있나.

책사 등여산이 움직인다고 했으니 확실히 움직일 것이다.

그때를 잘 포착해서 조심스럽게 추격해야 한다.

“일단 오늘 하루도 지났고.”

도천패가 슬그머니 당홍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탁!

당홍이 어깨에 둘려진 손을 때렸다.

“지금 감시 중! 도대체 요즘 왜 이래?”

“후유!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여색을 밝히면 일찍 죽는다는데 죽으려고 그러나.”

“점점! 재수 없는 소리 할 거야! 정신 차려서 정면 주시! 감시하는 사람이 기본이 안 됐어.”

“어쩌냐. 내 눈에만 꽃만 보이는데.”

“호호! 이제는 닭살 돋는 소리도 할 줄 아네?”

“가자. 안고 싶다.”

“안 돼. 지켜봐야지 돼.”

“오늘 움직이는 놈 아무도 없어. 이미 해도 졌고. 그리고 이놈들이 움직이면 내 귀를 속일 수 있을 것 같아?”

도천패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면서 당홍은 와락 안아 올렸다.

“이렇게 여자를 밝히는 사람이 지금까지 어떻게 혼자 산 거야?”

“여자를 밝히는 게 아니라 당매를 밝히는 거야. 내 당매 외에 다른 여자에게 눈길 주는 것 봤어?”

“지금까지는 다른 여자가 없었거든.”

“책사하고 홀리도 여자인데 눈길도 주지 않잖아. 난 오직 당매 뿐이라니까. 그리고! 내가 이렇게 변한 건 당매도 책임이 있어. 책임 회피하지 마.”

“내 책임? 내가 뭘 했다고?”

“나한테 여자를 알게 해줬잖아. 그 책임이 오죽 커야 말이지.”

도천패가 당홍을 번쩍 안아 들고 방으로 걸어갔다.

지난밤, 일단의 무인들이 사라졌다.

“하! 이거…… 잠깐 눈길 돌렸는데. 내가 책임지고 찾아낼게.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천패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혈천방주를 비롯한 휘하 무인들, 후옥 마인들, 그리고 음문촌 사람들까지 싹 사라졌다.

남아있는 사람도 있다.

혈천방 말단 무인들은 주축 세력이 빠져나간 줄도 모르고 경계를 강화했다.

“혈천방주는 밖으로 걸어 나가지 않았어.”

등여산이 말했다.

“밖으로 걸어 나가지 않았다면…… 안에서 빠져나가는 출구가 있다는 말이네?”

홀리가 물었다.

“맞아. 이곳에 사멸강진이 존재해. 이곳을 만든 사람이 진식의 대가라는 거야. 그러니 비밀 출입구쯤 만들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어. 보위,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봤어도 빠져나가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거예요.”

“정말 미안해.”

당홍도 사과했다.

“언니,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이 사람들 나가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 호발귀밖에 없어요. 그러니 잘잘못을 따지자면 이 사람 잘못이 제일 커요.”

등여산이 호발귀를 보며 말했다.

“그 시간은 내 휴식시간인데? 햐! 이젠 보위 잘못까지 내 책임이라네? 이거 생기 보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호발귀가 짐짓 농을 쳤다.

혈천방주는 계획적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호발귀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일부러 눈을 피해서 움직였다.

향후, 다시 만나겠지만 일단은 접촉을 끊겠다는 뜻이다.

“호호호! 서러우면 그 재주, 나 줘.”

홀리가 말했다.

“나도 받을래. 미치는 부분은 빼고, 생기를 읽을 수 있는 부분만 줬으면 좋겠는데.”

등여산도 거들었다.

“하!”

호발귀는 기가 막힌 듯 하늘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옛날, 강하에 혈천방 본방이 있었어.”

“알아.”

“내가 혈마록에 휘말린 후, 본방을 옮겼는데…… 그때, 천살단에서는 혈천방의 움직임을 알았나?”

“아니.”

“천살단도 몰랐어? 본방이 움직이려면 물자며 인원이며…… 상당히 움직임이 클 텐데, 그걸 어떻게 숨겼지?”

“혈천방이 움직이면 누구도 알지 못해. 지난 이백 년 동안 그래왔어. 오죽하면 천살단에서 혈천방 이동 방법만 연구하는 당(堂)을 따로 뒀을까.”

“그런 당이 있어?”

“제사당(第四堂)이라고 불러.”

“제사당?”

“이쪽, 저쪽. 이쪽도 저쪽도 아니면 이것.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네 번째 방법. 머리 위에 머리. 그 머리 위에 또 머리. 거기서 한 걸음 더. 이렇게 생각해야만 혈천방 이동 방법을 알아낼 수 있어. 내가 단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결정적인 이동 방법은 알아내지 못한 상태였거든. 추격 포기해.”

“포기해야지. 찾지 못하는 것을 찾으려고 짓은 바보짓이니까. 자, 가자고.”

호발귀가 손을 탁탁 털며 일어섰다.

“어디로?”

“한적한 곳으로. 당분간 쉬면서 장진 스님도 만나야겠어. 뭔가 길이 살짝 보인 것 같기도 하고.”

등여산은 말없이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는 폐관 수련을 하고자 한다.

정말로 폐관하여 수련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집중해서 혈마 무공을 탐구할 생각이다.

그러자면 혈마가 되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혈마가 되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호발귀의 수련 목적이 돌아오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홀리가 했던 것처럼 누가 정신 밖에서 말을 해주던, 아니면 정신 안에서 길을 찾든……

혈마를 벗어나서 다시 호발귀로 돌아오는 길을 찾을 생각이다.

말릴 수 없는 수련이다. 하지만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혈마가 되었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면 어떡하나. 또 그렇게 혈마 속으로 자주 들어갔다가 혈마에게 물들기라도 하면 어쩌나.

‘패관수련’ 한 마디에 오만 가지 생각이 치민다.

“걱정하지마. 안전하게 수련할게.”

“늘 이래.”

“……?”

“믿지 못할 약속을 하는데, 그걸 또 믿어. 이번에도 믿을게.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 떠나보내기 싫어. 혈마라는 새 남자 사귀게 하지 말고, 네가 돌아와.”

호발귀는 등여산을 안았다.

“약속한다니까.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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