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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32화 (232/500)

第五十七章 암류(暗流) (2)

혈천방주는 음문촌장을 찾았다.

혈천방주를 막아서는 사람은 없었다.

방주는 혈천방 내에 음문촌의 영역을 떼어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곳이 음문촌의 절대 영역은 아니다.

이 땅의 주인은 혈천방주다.

혈천방주는 가고 싶은 곳은 가고, 오고 싶은 곳은 온다. 그 어디든 마음 내키면 간다.

“고생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음문촌장이 먼저 말했다.

“요즘 세상은 소문이 워낙 빨라서. 이건 뭐, 뭘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다니까. 하하하!”

혈천방주가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면서 말했다.

“여긴 어쩐 일로? 대담이나 나누자고 오신 건 아니실 테고.”

“뭐냐? 여식 때문에 내가 참 곤란해졌어요.”

“홀리 말씀입니까?”

“이번에도 그 뛰어난 따님 덕분에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렸지 뭡니까. 이거 계속 이렇게 방해하면 우리가 힘을 합친 게 맞나 싶기도 하고.”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

음문촌장이 넉살 좋게 말했다.

음문촌장은 이미 뇌옥 안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있다.

뇌옥에서 빠져나온 무인 중 한 명이 사라졌다.

무인이 뇌옥에서 혈마를 보고 난 후, 겁에 질려서 도망갔을 수도 있다.

혈천방에 환멸을 느꼈을 수도 있다. 동료 중 누군가에게 죽었을 수도 있고, 어떤 여자와 배가 맞아서 아직도 침상에 드러누워 있을 수도 있다.

혈천방주는 무인의 실종이 음문촌장의 아들, 육자와 연관 있다고 단정한다.

육자는 매우 뛰어난 고문 수법을 가지고 있다.

음문촌에 잡힌 자들은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토해낸 후에 죽음을 맞이한다.

삭골추혼수(削骨追魂手)!

뼈를 깎고 혼을 말려버린다는 삭골추혼수에 당하면 살려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빨리 죽여달라는 말만 나온다. 빨리 죽여주기만 하면 모든 것을 토설하겠다고 말한다.

육자는 삭골추혼수를 꽤 잘 쓴다.

음문촌장이 혈천방주의 수하 한 명을 감쪽같이 죽여버린 것이다.

그러고도 태연하게 아무것도 모른 척 다시 묻는다.

“후후!”

혈천방주는 실소부터 흘렸다.

“구혼음소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야겠습니다.”

“하하하! 안 될 말씀을……”

“구혼음소가 혈마를 살렸어요.”

순간, 음문촌장의 눈이 번쩍 빛을 뿜었다.

가장 궁금해했던 부분이다.

뇌옥 무인은 직접 보고 들은 것만 말한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부분은 말하지 못한다. 혈마 무공이라거나 구혼음소는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무인이 토설한 것은 단지 움직이는 형상뿐이다.

칼을 어떻게 썼다, 누구를 죽였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얘기만 한다. 그런 것조차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지만.

“호발귀, 놈이 혈마로 변했는데……”

혈천방주가 음문촌장은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뇌옥에서 있었던 일, 호발귀가 혈마로 변해서 석실을 부순 일, 그리고 홀리가 살려준 일까지.

자신이 환혼몽에 당해서 쓰러진 일까지 숨기지 않았다.

방주가 음문촌장에게 사심 없이,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한테 속내를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천만에! 그렇지 않다.

혈천방주는 자신의 속내를 다 꺼내 보였다.

이제는 음문촌장 차례다.

혈천방주가 사실대로 말했으니 음문촌장도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되면, 오늘 이 자리를 죽음의 자리로 돌변한다.

혈천방주는 음문촌을 제거할 생각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다.

스읏!

꾸욱!

음문촌장의 아들들이 각기 병기를 꽉 잡았다.

여차하면 싸움이 벌어진다.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불안감도 치민다. 싸움이 시작되면 어떤 식으로 공격이 쏟아질까. 혈천방주가 자신 없는 자리에 오지는 않았을 테니, 공격도 매우 치열하게 쏟아질 것이다.

‘만일의 경우, 방주부터 잡는다!’

아니다. 그들은 방주를 잡지 못한다. 방주의 무공은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높다. 그래도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혈천방주가 손을 쓰기 시작하면 음문촌은 멸살 당한다.

“너희들은 나가 있어라.”

음문촌장이 말했다.

구혼음소는 세 가지다.

혈마가 혈마후에게 가르쳐준 구혼음소가 있다. 하지만 그 후에, 음문촌에서 구혼음소를 연구하고 시험한 끝에 두 가지를 더 만들어 냈다.

토초가 사용한 것이 세 번째다. 음문촌 작품이다.

홀리가 호발귀에게 사용한 것은 첫 번째다. 혈마가 직접 알려준 진결이다. 혈마를 혈마후의 노예로 만드는 진결이 아니라 죽음의 진결이다.

“음!”

혈천방주가 침음했다.

“죽음의 구혼음소를 읊었는데 오히려 살았다? 이백 년 전 혈마 같았으면 당장 죽었을 텐데, 그걸. 살았다? 그러면 혈마가 바뀌었다는 건데. 진결에 뭔가가 빠졌나?”

“아니면 뭔가가 더해졌거나.”

음문촌장이 혈천방주의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봤다.

지금 당장 생각되는 것은 구혼음소가 변질하였다는 것이다. 원본 그대로 유지한다고 했지만, 어쨌든 세월이 이백 년이나 지났다. 수많은 사람 입을 거쳤다.

그동안에 뭔가가 빠졌거나 보태졌을 수 있다.

“방주, 방주 패도 보고 싶습니다만.”

“여기 혈마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음문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토초가 죽기 전에 만들어 놓은 게 있다.

“나한테도 재주가 약간 있긴 한데, 한 번 시험해 볼까요?”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안내하죠.”

음문촌장이 일어섰다.

‘흠!’

혈천방주는 혈마를 봤다.

석실에는 혈마가 쇠밧줄에 사지가 묶인 채 늘어져 있었다.

“묶여 있는 놈을 치는 건 재미없는데, 저거 풀어줄 수 없소?”

“죄송하지만 제 딸내미만 저걸 풀어줄 수 있는데 아시다시피 얼마 전에.”

“그럼 이 혈마는 어떻게 움직일 생각이신지?”

“……”

음문촌장이 말을 하지 못했다.

혈마는 오직 혈마후만 움직일 수 있다. 토초가 자신의 몸으로 만들어 낸 혈마다.

혈마들이 토초의 냄새를 알고 있으며, 몹시 그리워한다.

그러잖아도 혈마의 마성을 다시 돋워야 하는데 토초가 없으니 어쩌나 싶던 참이다.

토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쇠밧줄을 풀었다가는 네 개를 다 풀기 전에 머리가 깨져 죽을 게 분명하다.

혈마의 마성을 억누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현재로서는 혈마를 새로 만들기는커녕, 만들어진 혈마조차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럼 알 수 없지. 재미는 없지만.”

혈천방주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진기를 일으켰다.

원래 혈천방에 전해지는 진결은 구혼음소 같은 주문, 주술이 아니다. 음성에 진기를 실어서 뇌를 강타하는 뇌전(雷電)이다. 음전(音箭), 소리의 화살이다.

사혼진령음을 제대로 펼치면 혈마는 즉사한다.

수십 번도 넘게 시험해 봤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도 다시 혈마 앞에 앉은 것은……

쇠밧줄에 묶여 있는 혈마는 혈천방에서 만든 혈마가 아니라서다.

토초가 만든 혈마에게는 사혼진령음이 어떤 작용을 할까?

홀리가 했듯이 주술적인 방식으로 사혼진령음을 발출하지 않고 원래 그대로 토해낸다.

“꾸주 바흐 부이러! 하수내 따! 사루 칠!”

혈천방주의 입에서 일갈이 터졌다.

거대한 창룡음(蒼龍音)!

말 탄 장수가 적군을 질타하는 듯,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떨어지는 듯 석실을 쩌렁 울리는 고함이 터졌다.

꾸주 바흐 부이러! 하수내 따! 사루 칠!

혈천방주의 고함이 회음이 되어서 석실들을 회오리쳤다.

“끄으윽! 끄윽!”

혈마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몸부림쳤다.

“사시 미다! 하! 무으저 아르사! 라처!”

혈천방주가 토해내는 창룡음은 매우 강렬했다.

음문촌의 구혼음소와는 전혀 다르다.

음문촌장은 혈마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이다. 그런데도 화살이 머릿속에 확확 틀어박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음공이다!’

음문촌장이 눈을 부릅떴다.

확실히 음문촌에 전해진 구혼음소와는 다르다.

“크으으으! 끄으으!”

혈마가 고통에 못 이겨 고개를 뻣뻣이 쳐들었다.

‘최후!’

느낌이 맞다.

혈천방주는 사혼진령음을 끝맺지도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이다. 그런데도 혈마는 견디지 못하고 칠 공에서 검붉은 피를 주르륵 쏟아냈다.

두 눈, 코, 입, 두 귀.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뚫렸다. 검붉은 핏물이 꾸역꾸역 흘러나와 옷섶을 적신다.

“끄으으으!”

혈마의 신음이 미약해진다 싶더니, 머리가 툭 꺾였다. 사지도 축 늘어졌다.

철컥!

혈마를 매달고 있던 쇠밧줄이 무거운 몸뚱이를 받치느라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때,

“끄아아악! 끄으윽!”

혈마의 괴성이 또 들여왔다.

다른 방에 있던 혈마까지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혈천방주의 사혼진령음에 자극을 받고 발광하는 것이다.

“이거 재밌네. 사혼진령음이 여기서는 통하네.”

혈천방주가 다른 석실로 갔다.

그곳에도 혈마가 묵혀 있다. 하지만 역시 칠 공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사혼진령음의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하다.

“혈마를 조정할 수는 없고, 죽일 수만 있는 거였나? 후후!”

스릉!

혈천방주가 검을 뽑았다. 그리고 혈마를 향해 일 검을 날렸다.

촤락!

혈마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둥실 떠올랐다.

“혈마를 죽일 방법은 많아. 이렇게 검 한 자루면 죽일 수 있는데, 이걸 죽이기가 그렇게 힘들어. 후후! 자!”

혈천방주가 음문촌장에게 앞장서라는 손짓을 했다.

“타악 투 파 비투 쏘 추우 탄 치 미탕 호”

음문촌장은 혈마를 앞에 두고 구혼음소를 읊었다.

토초에게 가르쳐 준 구혼음소가 아니라 홀리에게 가르쳐 준 살인 주문이다.

구혼음소는 오직 여자만 펼칠 수 있다. 아니, 혈마후가 읊는 구혼음소만이 혈마를 자극한다. 혈마후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구혼음소는 한낱 잡음일 뿐이다.

혈마는 음문촌장의 구혼음소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음문촌장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확실히 다른 혈마야.”

혈천방주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호발귀는 홀리가 만든 혈마가 아니다.

혈마록이 만든 혈마다. 저 스스로, 자발적으로, 혈마 무공에 의해서 탄생한 혈마다.

호발귀에게는 혈마후가 없다. 그런데 홀리의 구혼음소에 영향을 받았다. 그런 식이라면 사지가 묶여 있던 혈마는 음문촌장의 구혼음소에 영향을 받았어야 한다.

귀색혼령대법으로 만들어진 혈마와 혈마록이 만들어 낸 혈마는 전혀 다르다.

일단, 토초가 만들어 낸 혈마는 음문촌이나 혈천방이 생각한 혈마가 맞다.

혈마후만이 통제할 수 있고, 세상을 피로 물들이는 죽음의 병기로 활용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음문촌에는 토초가 없다.

혈천방은 혈마를 만들 수 있는 재료만 준비할 수 있을 뿐, 귀색혼령대법 같은 것이 없다.

정신을 피폐 시켜서 억지로 혈마를 만들어 내기는 해도 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예 미친놈을 만들어 냈다고 하는 편이 맞다.

혈천방주 어깨를 으쓱거렸다.

“토초가 아쉽군. 이런 혈마라도 있으면 큰 힘이 될 텐데.”

“제가 홀리를 만나보죠.”

“만나서 뭐 쓸모 있겠어요? 내가 보기에는 이미 물 건너갔던데. 호발귀에게 단단히 빠져있어서.”

“어쨌든 방주의 진결이 통한다는 건 증명됐잖습니까?”

“이것도 이런 혈마들한테나 통하는 것이고. 호발귀, 이건 미지의 존재죠. 내 진결이 통할지는 써봐야 아는 것인데…… 분명한 건 홀리의 구혼음소는 통한다는 겁니다.”

“음!”

음문촌장은 침음했다.

혈천방주는 홀리를 끌어들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홀리에게서 혈마 조정법을 알아내라는 주문이다. 어쩌면 이곳에 방문한 목적이 이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당분간 우린…… 같은 길을 걸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럴 것 같군요.”

혈천방주와 음문촌장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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