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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29화 (229/500)

第五十六章 마존(魔尊) (4)

혈마 무공의 기원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혈마 무공이 어떻게 해서 탄생했고, 왜 혈마에게 이어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혈마록에 적힌 글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글인 줄만 알아도 연원을 찾기가 한결 수월할 텐데.

“방주 상태 좀 볼래?”

홀리가 말했다.

호발귀는 일어서서 혈천방주에게 걸어갔다.

그러자 무인들이 당장 일어나서 앞을 가로막았다.

비록 호발귀 상대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방주가 당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걱정하지마.”

홀리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방주님 상태만 볼 거야. 이 사람, 독의 진전을 이어받았어. 방주 상태를 살필 능력 있어.”

그러자 무인들이 마지 못한 듯 길을 비켜주었다.

호발귀는 무인들이 길을 열어준 후에야 혈천방주에게 다가갔다.

그도 필요 없는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아무리 가벼운 싸움을 해도 당장 혈기가 일어나고, 혈마가 들어선다. 그러니 싸움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할 생각이다.

스읏!

호발귀가 혈천방주의 완맥을 움켜잡았다.

“음!”

호발귀가 침음했다.

“왜? 안 좋아?”

“아직도 약 기운이 강한데. 꽤 중독이 심했나 봐.”

“그러면 무작정 기다려야 하나?”

“내가 독을 좀 뽑아낼 수 있는데, 해볼까?”

“괜찮겠어?”

홀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다른 때 같으면 이런 말, 하지도 않는다.

호발귀는 독의의 독섬칠공 진수를 물려받았다.

독을 끌어당길 줄도 알고 밀어내기도 한다. 단언컨대 호발귀는 중원에서 독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 다섯 명 안에 들어간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운기만 하면 혈기가 일어난다. 아주 잠깐 운기하는 것만으로도 혈마가 될 수 있다.

물론 운기 하자마자 혈마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것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괜찮겠지.”

호발귀도 자신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자. 길어야 하루 이틀이야. 그 안에 깨어날 게 틀림없어.”

“아니,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 이것도 못 한다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소리잖아.”

스읏!

호발귀가 혈천방주의 명문혈에 손을 얹었다.

혈천방 무인들은 방해하지 않았다.

그들도 귀가 있으니 두 사람이 나누는 말을 모두 들었다. 방주의 혼몽(昏懜)을 깨우겠다는 것이니 말릴 이유가 없다.

츠읏! 츠으읏!

호발귀는 독섬칠공 중 삼기에 해당하는 전몰기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진기를 밀어 넣는다. 그리고 다시 회수한다. 회수하면서 혈천방주의 독기를 끌어온다.

이런 방식은 자칫 시전자도 중독될 수 있다. 대체로 매우 위험한 방법이라서 잘 펼치지 않는다.

그러나 독에 대해서 준비만 되어 있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직접 독을 건드려서 빼내오는 것이니 해약을 복용시킨 것보다도 효과가 더 빨리 나타난다.

츠으으읏!

혈천방주의 독기를 뽑아내서 새끼손가락에 응집시켰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으음!”

혈천방주가 신음을 흘리면서 눈을 떴다.

방주는 머리가 아픈 듯 인상을 잔뜩 찡그리면서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내둘렀다.

“으음! 미치겠군. 무슨 약이 이렇게 독해.”

혈천방주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와 홀리를 봤다.

방주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홀리다.

그녀가 방주의 바로 앞에서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다음이 호발귀다.

혈천방주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렸다.

“저 친구…… 깨어났군. 후후! 이거 놀라움 투성이인데. 저 친구가 어떻게 깨어나지?”

혈천방주는 믿지 못하겠다는 둣 호발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방주가 급히 고개를 돌려 석실을 쳐다봤다. 호발귀를 묶어 놓고 있던 석실이다

석실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사멸강진이 발동한 듯 장창이 땅에 떨어져 있기도 하고 석벽에 박혀 있기도 하다.

“이게?”

혈천방주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혈천방주는 호발귀를 쳐다보는 중에 여기저기 죽어있는 시신을 봤다.

방주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 단숨에 알아챘다.

“석벽 이거?”

혈천방주가 홀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맞아요. 생각하신 그대로예요. 인간은 이 정도 석벽을 부술 수 없어요. 이건 혈마가 부순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창! 창은 어떻게 하지 못하는데……”

“혈마를 너무 얕잡아 봤네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창 정도로는 혈마를 죽이지 못해요.”

“하하하! 그렇군.”

혈천방주는 예의 여유를 되찾았다.

그는 자신이 혈마에게 잡혔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여길 도대체 얼마나 부순 거야?”

혈천방주가 일어섰다.

혈천방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놀라움에 입을 벌렸지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호발귀는 석벽을 뚫을 정도로 강렬하게 날아간 창을 막아냈다.

‘어떻게 이런 창들을……’

혈천방주도 사멸강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런데 호발귀는 묶인 사슬을 끊어냈을 뿐만 아니라 기관으로 쏘아진 창까지 거뜬하게 막아냈다.

‘이놈 이거…… 사람이야, 귀신이야.’

혈천방주는 현장을 보면 볼수록 놀라움에 기가 질렸다.

확실히 호발귀가 일으킬 수 없는 파괴력이다.

석실에 남아있는 흔적은 혈마가 만든 것이다. 보지는 못했지만, 호발귀는 완벽한 혈마가 되었었다.

한 가지 의문은, 혈마가 되고도 어떻게 다시 멀쩡해졌냐는 것이다.

구혼음소는 혈마를 죽인다. 호발귀가 정말로 혈마가 되었다면 구혼음소의 제물이 되었거나, 혈마후의 조정을 받는 실혼인이 되어 있어야 한다.

혈천방주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호발귀가 혈마가 되었다면 혈천방에도 기회가 있다.

호발귀가 혈마가 되는 순간, 그를 죽일 수 있는 진결이 혈천방에도 있다. 다만 혈마를 죽이는 것이 아무런 득도 되지 않기 때문에 실행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일단 혈마를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고. 통제하는 방법은 이차적인 문제. 세상에 혈마가 나타났다면 이놈을 이용하는 방법은 수만 가지지. 후후!’

혈천방주는 웃었다.

혈천방주는 정신을 차렸지만,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안에서 호발귀를 주시했다. 정신은 멀쩡한지, 몸은 괜찮은지…… 여러 부분에서 살폈다.

“그만 나가죠?”

홀리가 말했다.

“내가 아쉬운 건 없는데? 난 여기서 천년만년이라도 살 수 있어. 하하하! 홀리. 호발귀도 사멸강진은 어쩌지 못하는구나? 장창은 피했어도 독수는 어쩌지 못해. 하하하!”

“방주를 제압한 후에 고문을 가할 수도 있는데, 그 부분은 생각을 못 하네?”

“고문? 좋지. 어디 안마 좀 받아볼까? 아! 안마, 잘해야 해. 너무 아프면 기억이 사라져. 그러다가 탈출구인 줄 알고 문을 열었는데, 독수를 가동하면 어떡하려고?”

“그땐 다 같이 죽는 거지, 뭐.”

“내가 원하는 게 그거라니까. 다 같이 죽는 거. 그것도 괜찮잖아? 난 정말 괜찮아. 원한다면 지금 죽여도 돼. 저항하지 않고 칼 받을 테니까.”

혈천방주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긴다.

혈천방주만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것도 맞다.

“원하는 게 뭐예요?”

홀리가 물었다.

“혈마. 혈마에 대한 모든 것. 일단, 내가 쓰러지고 난 후에 벌어진 일들부터 말해보지.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저 석실을 보면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럼 다 같이 죽지.”

이번 말은 호발귀가 했다.

“그것도 좋고. 난 정말 괜찮아. 사실, 혈천방주로 이만큼 살았으면 호사는 다 누린 거니까.”

혈천방주가 석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때,

쉬잇!

호발귀가 빠르게 다가섰다.

호발귀는 무척 빠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혈마 무공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진기를 끌어내서 공격한 것도 아니다. 방주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다.

혈천방주는 피하지 않고 호발귀가 쳐낸 주먹을 맞았다.

퍼억!

“훅!”

혈천방주는 금방이라도 숨이 꺼질 듯이 격한 신음을 쏟아냈다.

진기로 몸을 감쌌으면 타격을 거의 흘려버릴 수 있는데, 진기도 쓰지 않았다. 아무 저항도 없이 맨몸으로 맞은 것이다. 죽을 수 있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고문이라도…… 하려고?”

혈천방주가 호발귀를 보며 씩 웃었다.

“사람에게는 격이라는 게 있는 거야. 고문을 하더라도 최소한 내게 맞는 격으로 대해야지. 아직 어려서 격까지 기대하기는 무리인가? 후후!”

호발귀는 한 번만 타격했을 뿐, 더는 달려들지 않았다.

호발귀가 뒤돌아서며 차분하게 말했다.

“방주가 깨어나기 전에 방주가 중독된 독들을 흡취했지. 그 독기, 지금 방금 다시 넣었어.”

“……!”

혈천방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두 개의 독에 당했다. 하나는 귀색무이고, 다른 하나는 귀색무와 함께 퍼진 미지의 독이다.

그 독은 홀리가 살포했다.

두 개의 독은 살독(殺毒)이 아니다. 혈마에게는 강한 영향을 미치겠지만 멀쩡한 인간에게는 그저 단순한 미약에 지나지 않는다. 한 줌 푹 자고 나면 깨끗해진다.

호발귀가 독을 흡취한 덕에 일찍 깨어났다는 사실은 수하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그 독을 다시 넣었어? 그게 뭐 어떻다고? 그럼 또 한잠 푹 자고 일어나야겠네?

“후후후! 그 말은 전혀 협박이 안 되고.”

“방금 한 말은 협박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이고, 협박은 이제부터지. 방주, 방주는 곧 의식을 잃고 쓰러질 거야.”

“그렇겠지.”

“그게 이승에서 감는 마지막 눈이니까, 눈이 감기기 전에 세상 실컷 봐.”

“하하하! 죽음 같은 것은 상관없다니까. 어차피 발버둥 쳐도 혈마 상대는 안 될 터이니, 죽도록 하지. 잠자면 죽는다고? 고맙군. 편히 죽을 수 있겠어.”

혈천방주가 눕기 편안한 장소를 골라서 앉았다.

호발귀도 석벽 한구석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혈천방주를 쳐다봤다. 말은 하지 않았다.

“다음 협박 없어? 나 잠자면 죽인다는 게 끝이야?”

스릉!

호발귀가 손에 묶인 쇠사슬을 들어 보였다.

“방주가 잠들면 이 석벽을 부수려고. 석벽 네 군데를 모두 부수면 뭐든 나오겠지. 독수가 떨어지면 모두 녹아서 죽는 것이고, 아니면 탈출구가 나올 테고.”

“뭣!”

“아마도 독수가 나올 거야. 혼자 죽는 거 아니니까 너무 억울해하지 말고. 푹 자.”

호발귀가 혈천방주에게서 눈길을 떼었다.

“왜? 지금부터 하지 그래.”

“아니, 잠든 후에.”

“하하하하! 이게 협박이 될 것 같은가?”

“협박 아닌데. 난 단지 당신에게 혈마에 대한 단서를 조금도 주기 싫은 것뿐이야. 내가 맨정신으로 이 석벽을 깰 수 있을 것 같아? 혈마가 되어야만 깰 수 있는데, 그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고. 영원히 궁금한 채로 죽어.”

혈천방주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밝게 펴졌다.

“이번 것은 조금 협박이 됐어. 신선해.”

“당신 협박하려고 한 말이 아니니까 신선하게 받아들이든 말든 내 상관할 바가 아니고…… 홀리, 됐어?”

“내 부탁, 잊지 않았지?”

“홀리!”

“구혼음소를 다섯 번 연속 읊으면 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해. 그러니까 버리고 가. 나까지 데려가려고 하다가는 독수를 견디지 못해. 독의가 가르쳐 준 독섬칠공, 단단히 준비하고.”

“고맙다. 홀리.”

“고마워할 필요 없어. 혈마후도 되지 못했으니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잖아. 자! 준비됐어! 시작해.”

홀리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공 준비를 했다.

“조금만 더 있다가. 저 친구 떨어지고 나면.”

호발귀가 쇠사슬을 꽉 쥐며 말했다.

홀리가 한 말은 거짓이다. 구혼음소를 다섯 번 읊조려서 뭘 어떻게 하자는 건가?

그건 다섯 번이 아니라 밤새도록 읊조려도 탈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혈천방주를 자극한다.

독의의 독섬칠공까지 들먹였으니 독수와 싸워보겠다는 생각이 얼토당토않은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거기에 호발귀는 홀리도 놓고 갈 생각인 것 같다. 그렇다면 정신없이 잠에 곯아떨어진 혈천방주는 당연히 놓고 간다.

이거야말로 진짜 협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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