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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28화 (228/500)

第五十六章 마존(魔尊) (3)

“크크크! 크크크!”

호발귀가 음침한 괴소를 흘리면서 홀리를 노려봤다.

그의 눈에는 조금 전에 보여주었던 다정함이라든가 사랑스러움 같은 감정은 담겨있지 않았다.

호발귀에게 홀리는 죽여야 할 생명체일 뿐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살아서 숨 쉬고 있으니, 저 숨을 끊어서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만 남는다.

호발귀에게 홀리는 딱 그 정도의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

쒜에에엑!

혈천방 무인들을 공격했던 행태 그대로 쇠사슬이 허공을 날아왔다. 다짜고짜 공격을 시도한다.

홀리는 이미 쇠사슬이 날아올 줄 알고 있었던 터라 급히 신형을 굽혔다.

그녀는 호발귀를 상대하지 못한다.

‘피하지 못할 공격!’

쇠사슬의 변화가 무척 빠르고 현란하다.

호발귀가 혈마가 되었다고 해서 단순히 정신 나간 괴물 정도로 보면 큰 착각이다.

호발귀는 사라졌다.

그 대신에 혈마가 나타났다. 혈마의 모습이 정상적이지는 않다.

말도 하지 못하고 괴소만 흘린다. 살인 외에 다른 감정을 품지도 않는다.

그래서 혈마를 인간이 아닌 괴물로 착각한다.

아니다. 이중인격자처럼 호발귀가 사라진 대신에 혈마라는 인간이 나타났다.

지극히 멀쩡한 살인마, 혈마의 정신을 가진 살인마다.

혈마는 초식을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안다.

시기적절하게 내공을 주입했다가 풀어낼 줄도 안다.

홀리는 혈마가 전혀 다른 사람이지만 정신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반 시진 전에야 알아냈다.

호발귀가 석벽에 구멍을 내려고 쇠사슬을 후려칠 때에서야 안 것이다.

쇠사슬로 석벽에 구멍을 낼 때, 호발귀는 계속 한 점만 가격했다.

무지막지하게, 마구잡이로 석벽을 두들겨 팬 것이 아니다.

한 군데 목표를 정해놓고 딱 그곳만 쳤다. 정신 잃은 사람의 행동이라고 볼 수 없었다.

고도의 정신 집중!

이건 분명히 정신 잃은 사람의 행동이 아니다. 정신이 아주 멀쩡한 사람의 행동이다.

쒜에에엑!

홀리는 급히 신형을 낮추면서 옆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이미 쓰러진 혈천방 무인의 시신을 낚아챘다. 그리고 재빨리 쇠사슬 앞으로 내던졌다.

촤르르륵!

쇠사슬이 시신을 휘감았다. 아니, 감아온다 싶은 순간 어느새 석벽으로 거칠게 내던졌다.

쒜에엑!

쇠사슬이 다시 돌아왔다.

혈마가 시신을 그녀로 오인하고 시신을 낚아챈 것이 아니다.

정신이 멀쩡하다고 하지 않았나. 눈앞에 방해물이 날아오기에 낚아채서 던져버린 것이다.

여전히 목표는 홀리다.

‘막지 못해. 죽어.’

홀리는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혈마를 상대할 수가 없다.

누군가는 혈마의 공격을 일 초나 이 초쯤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아니다. 혈마의 일 초도 받아내지 못한다.

홀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차분하게 일어섰다. 그리고 말했다.

“그만. 이제 그만해.”

그녀의 음성은 다급한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차분했다.

사람은 화나면 소리친다. 기쁘면 웃는다. 슬프면 눈물을 펑펑 흘린다.

숨죽여서 흐느끼는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감정의 변화가 매우 극심하게 일어난다.

마음속에서 일어난 감정의 변화가 표정을 바꾸고 행동을 유도한다.

홀리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지금 매우 다급하다. 그러면 몸도 다급하게 움직인다.

늑대 무리가 쫓아오면 들소는 사력을 다해서 도망간다.

뒷다리가 물리고, 엉덩이가 깨물리고, 배를 물고 늘어지는 늑대가 나타나도 계속 도주한다.

결국, 늑대 몇 마리가 다리를 물고 늘어져서 더는 움직일 수 없을 때에서야 멈춰 선다.

생명을 가진 동물은 모두 같은 행동을 취한다.

누가 죽고 싶겠나. 위험이 닥치면 마지막 한순간까지 살려고 발버둥 친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마찬가지다.

홀리는 그러한 저항을 없앴다.

그래, 네 손에 죽어도 좋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이렇게 하는 거야. 나중에 정신이 돌아온 후에 나 죽었다고 슬퍼하면 안 돼.

그런 마음으로 호발귀 앞에 섰다.

“그만둬.”

그녀의 음성이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쒜에에엑!

쇠사슬이 한치의 용서도 없이 날아왔다.

‘마지막……’

홀리는 웃는 얼굴로 호발귀를 쳐다봤다.

쇠사슬을 피할 수 없으니 맞아 죽는다.

억울하지 않다. 호발귀를 보면서 죽을 수 있으니 위안이 된다. 순간,

삐 두둑!

쇠사슬 중간 어림에서 무엇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공격 방향이 홱 꺾였다.

쉬이익!

쇠사슬이 그녀의 머리 옆을 스치며 흘러내렸다.

꽈앙!

석실 바닥에 철추가 떨어진 것 같은 거대한 굉음이 흘렸다.

쇠사슬이 돌바닥을 내리치는 충격으로 돌가루가 깨져서 거칠게 튀어 올랐다.

“끄으으으…… 끄으윽!”

호발귀가 신음을 토해냈다.

호발귀는 핏빛 어린 눈으로 홀리를 쳐다봤다.

홀리를 쳐다보는 눈에서 혈기가 가신다. 아니, 혈기는 여전히 떠올라 있다. 살기가 가신다.

‘나를 알아봤어! 알아볼 줄 알았어!’

홀리는 왈칵 울음이 솟구쳤다.

자신이 그렇게 약한 여자가 아닌데, 이상하게 호발귀 앞에만 서면 약해진다.

“그만해. 이제 그만해.”

홀리는 용기를 내서 호발귀에게 걸어갔다.

그때 혈천방 무인들이 멈춰선 호발귀를 공격하기 위해서 슬금슬금 움직였다.

“죽기 싫으면 멈춰.”

“……”

“혈마가 한 번 더 뒤틀리면 나도 장담 못 해.”

혈천방 무인들이 비로소 움찔거렸다.

그들은 홀리가 방금 구혼음소를 읊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친 듯이 날뛰던 혈마가 어떻게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얌전해질 리 있을까.

천만에! 지금 혈마에게는 구혼음소가 필요 없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호발귀는 구혼음소를 씹어 먹는다.

구혼음소를 말하면 장진 스님이 다른 말로 바꿔서 읊어준다. 그러면 호발귀는 또 다른 말로 바꾼다.

결국, 호발귀는 전혀 다른 말로 전해 듣는다.

구혼음소를 읊는 것은 의미가 없다.

홀리는 의미 없는 말 대신 차라리 진정으로 말하는 쪽을 택했다.

쇠사슬이 던져지던 매우 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구혼음소를 읊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사실,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홀리도 모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만해’라고 말해도 장진 스님이 반야심경으로 대체해주고, 호발귀는 자신의 진언으로 받아들인다.

요점은 간단하다. 혈마가 홀리라는 여자를 알아보느냐 알아보지 못하느냐다. 알아보면 호발귀는 스스로 멈춘다. 알아보지 못하면 말할 것도 없이 머리가 깨진다.

홀리는 호발귀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어루만졌다.

“수고했어. 수고했어.”

털썩!

호발귀가 무릎을 꿇었다.

“크으으으…… 끄으으……!”

호발귀의 입에서 나오는 괴음은 여전히 살벌하다.

짐승의 울음소리,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이제 곧 탈진하겠지?’

혈마에서 벗어날 때, 호발귀는 극심한 탈진 증세를 일으킨다.

아까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면 대략 일다경 정도는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혈기가 생기로 변화하는 순간이 손바닥 뒤집듯이 간단하지는 않다.

‘참아!’

홀리는 호발귀를 품에 꼭 안아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호발귀의 괴음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홀리에게는 굉장히 고통스럽게 들린다.

무인이 몸에 있는 진기를 밖으로 완전히 쏟아내고, 단 한 올의 진기까지 다 쏟아낸 후에, 다시 새로운 진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이 순간, 호발귀는 어린아이도 죽일 수 있는 몸이 된다.

물론 이론상으로만 그렇다. 정작 호발귀를 죽이려고 달려들면, 호발귀는 즉시 혈마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변한 혈마가 어떤 살의를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홀리는 죽은 무인의 검을 집어 들었다.

혈천방주가 눈을 뜨고 있다면 모를까, 다른 자들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

“내가 지켜줄게. 편히 쉬어. 편히 쉬어도 돼.”

홀리가 말했다.

“크크크! 크크크크!”

호발귀가 신음 같은 괴음을 내지르다가 푹 쓰러졌다. 하지만 여전히 의식을 지닌 채 거친 숨을 쏟아냈다.

홀리는 검을 들고 혈천방 무인들의 앞을 막아섰다.

“움직이는 자는 모두 죽어. 이 정도 선에서 혈마를 놓아주지 않으면 너흰 뼈도 못 추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자신 있으면 해봐도 돼. 말리지는 않아.”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홀리가 나중에 한 말을 거짓이다. 혈마가 자발적으로 쓰러진 상태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없다.

호발귀가 탈진 상태라는 것은 알지만, 재차 공격을 당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해본 적이 없어서.

혈천방 무인들은 혈마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움직이지 못했다.

혈마가 기운을 잃은 것이 눈에 보이지만 그래도 움직이지 못했다.

호발귀는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혈천방주는 그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방주는 약에 취한 상태다. 충분히 잠을 청한 후에만 깨어날 수 있다.

“먹을 거 좀 가져와.”

홀리가 말했다.

혈천방 무인들이 재빨리 요깃거리를 가져왔다.

홀리와 호발귀는 그들이 내준 음식을 먹었다.

적이 준 음식을 태연히 먹었다. 혹시 음식에 독 같은 거를 타지 않았을까?

누구도 그런 모험을 하지 않는다. 호발귀가 혈마로 변하면 모두 다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은 홀리가 구혼음소로 혈마를 막아주었지만, 독 같은 걸 타면 아무도 막아주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혈천방주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방주가 깨어날 때까지 호발귀와 홀리가 도발하지 않으면 천만다행이라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호발귀와 홀리도 할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혈천방 무인들이 탈출로를 모른다. 알고 있다면 진작 뛰쳐나갔을 것이다.

최소한 석벽이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즉시 뛰쳐나갔다면 따라잡지 못했다.

이들은 탈출구를 알지 못한다.

오직 한 사람, 혈천방주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었다.

“내가 보였어?”

“아니.”

“그만 하라니까 공격을 멈추던데.”

“몰라.”

“정말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아?”

기억이 나기는 한다. 다만 꿈결처럼 아련하게 보인다.

마치 신기루 속에서 어떤 광경이 어른거리는 것 같다.

정신을 잃은 이후, 그는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구혼음소는?”

“외웠지.”

“스님이 바꿔준 거로?”

호발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들렸어.”

홀리는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가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아마도 그는 마음의 소리를 들은 것 같다. 홀리가 구혼음소를 읊지 않았지만, 본인 스스로 일으킨 소리를 들었다.

호발귀는 이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인가?

“혼자서 돼?”

호발귀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중에 네가 한 말을 들었어.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정말 구혼음소를 읊지 않았어?”

“아니. 난 그만하라고만 말했거든.”

“음!”

호발귀가 침음했다.

맑은 정신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명확하게 알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호발귀는 혈마와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다.

혈마가 되어서 저지른 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예전에는 혈기가 치밀어도 쉽게 혈마가 되지 않았다.

상당히 오랫동안 호발귀로 버텼다. 하지만 지금은 혈기가 치밀기만 하면 어김없이 혈마가 된다.

혈마가 되는 과정이 짧아진 것이 아니다. 호발귀가 혈마 무공을 거침없이 쓴 탓이다.

전에는 조심스럽게 혈마 무공을 펼쳤지만, 이제는 거침없이 펼친다.

전에는 혈기 상태를 살펴 가면서 무공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상관없이 사용한다.

혈마가 빨리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도 다시 돌아왔으니까 됐어.”

“그러니까. 나도 계속 약속을 지켰으면 좋겠는데. 후후!”

호발귀가 쓴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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