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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27화 (227/500)

第五十六章 마존(魔尊) (2)

대략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호발귀는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섰다.

“괜찮아?”

“괜찮아. 정말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풋! 그럼 됐어.”

홀리가 환하게 웃었다.

“책사는 처음에 장창 공격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반대네? 장창이 먼저 나왔어. 그러면 사멸강진이 역순이라는 건데. 역순으로 나가면 다음은 독수가 쏟아질 거야.”

“독수?”

“사방을 꽉 막아놓고 독수를 쏟아붓는대.”

“어떻게 살라고?”

“지금 이거 웃으라고 한 말이지?”

“풋!”

“호호호!”

호발귀와 홀리는 사멸강진 한복판에서 웃었다.

밀실에 갇혀서 독수를 맞는다면 살 수가 없다. 죽음이 눈앞에 있다. 하지만 어떤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든 움직여야 하는데, 어디로 가지?”

“벽에 구멍을 내볼까?”

“그게 가능해?”

“가능하지. 하지만……”

호발귀가 말을 중간에서 멈췄다.

벽에 구멍을 내려면 혈기를 써야 한다. 다시 혈마무공을 전개한다. 그러면 또 혈마가 된다.

조금 전에 봤던 악마가 다시 튀어나온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돼?”

“참아줄 수 있어?”

“그런 모습을 보는 거? 그게 뭐 어때서?”

“괜찮다면 상관없고.”

“괜찮아. 그런 모습은 얼마든지 봐줄 수 있어. 그런데…… 돌아온다고 약속해.”

“……”

“무슨 지아비가 이래? 부인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 거짓말이라도 해야지.”

“약속해. 돌아와. 반드시.”

“흥! 엎드려서 절 받네. 빈말인 줄 알아. 하지만 그 말 꼭 지켜. 혈마가 되었을 때마다 안 돌아오면 어쩌나 싶어서 항상 조마조마해. 난 뭘 해야지?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만 계속하게 되고. 그러니까 꼭 약속 지켜.”

호발귀는 두 팔을 벌려 홀리를 안았다.

“사부님 말씀이 하나도 안 틀리네.”

“뭐라고 하셨는데?”

“여자 복이 많을 거라고.”

“날 두고 하는 말이야, 책사를 두고 하는 말이야?”

“방금 한 말 취소. 여자 복이 많은 게 아닌 것 같…… 윽!”

호발귀는 난생처음 여자에게 꼬집혀봤다. 그리고 손가락 두 개로 꼬집히는 것이 칼에 맞는 것보다 훨씬 더 아프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스읏! 스으으읏!

호발귀가 벽을 더듬어 갔다.

활로를 찾기 전에 먼저 벽을 부셔야 한다.

활로는 기관장치로 열릴 텐데, 기관을 건드리면 당장 밀실에 갇힌다.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그런 구조일 것이다.

밀실 벽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구멍을 뚫어놓는다.

활로는 그 후에 찾는다. 그러면 밀실에 갇히더라도 구멍이 있으니 몸을 빼낼 수 있다.

물론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멸강진이 이렇게 단순할 리 없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무작정 밀실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도저히 알 수가 없네.”

홀리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호발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퍼뜩 치민 이 느낌을 잡아야만 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

진을 설치한 사람, 기관진식의 달인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사멸강진에 갇힌 사람이 혈마라는 거다.

생기를 사용하고, 타인의 생기를 읽을 줄 아는 혈마 호발귀는 석실 안에서 생기의 흔적을 찾아냈다.

장창이 쏟아질 때도 생기는 존재했다.

장창을 막기 바빠서 생기에 신경을 쓰지 못했지만, 분명히 생기는 존재했다.

그리고 그 생기가 지금 또 느껴진다.

혈마에서 벗어나 호발귀로 돌아왔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다시 원정을 들여다보자 생기가 활활 불타올랐다.

그럼 생기가 어디에 있나? 석벽 속에 있다.

쒜에엑! 퍼억! 쒜에에엑! 퍼어억! 쒜엑! 퍼억!

호발귀는 전력을 다해서 쇠사슬을 쳐냈다.

처음부터 역천금령공을 사용했다. 쇠사슬에 진기를 주입해서 치고 또 쳤다.

“킥킥!”

호발귀의 입에서 괴소가 흘러나왔다.

진기가 밖으로 쏟아져 나가고, 다시 회수되면서 매우 급격하게 오염되었다.

쒜에엑! 퍽퍽퍽! 퍼어억!

시작은 역천금령공으로 했지만, 종래에는 호발귀가 파악하지 못하는 미증유의 거력이 담겨서 터져 나왔다.

쩌어어억!

석벽에 금이 갔다.

퍽! 퍽퍽퍽! 퍼어억!

호발귀는 미친 듯이 쇠사슬을 휘둘렀다. 역천금령공이 쏟아져 나오든, 혈기가 터지든 상관하지 않았다. 이 순간, 호발귀는 오직 벽을 허무는 귀신일 뿐이다.

“큭큭! 크으으……!”

시간이 지날수록, 석벽을 때리는 강도가 강해질수록 호발귀의 신음도 짙어졌다.

팟!

눈동자에 혈기가 스며들었다.

혈마가 되어간다는 표시다. 혈기가 상승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눈동자가 충혈된다.

코와 귀로 가는 핏줄기를 흘리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은 매우 심한 경우에만 나타난다.

“아!”

홀리가 나직이 탄식했다.

호발귀가 혈마가 되어가는데도 말릴 수가 없다.

지금 호발귀는 홀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등여산이 옆에 있다고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혈마가 혈마후를 알아본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혈마후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구혼음소에 이끌리는 것이다. 진짜 혈마일 경우에만.

가짜 혈마는 혈마후를 알아보는 게 맞다.

알아본다기보다는 주술적 주문에 이끌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머릿속에 각인된 주문을 따라온다.

“크아아악! 크악! 까악! 까아악!”

드디어 호발귀가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완벽한 혈마로 들어섰다.

두 눈에서 새빨간 광망이 줄기줄기 뻗어 나온다.

입 주변의 근육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지 어린애처럼 침도 질질 흘린다.

석벽을 내리치는 힘은 더욱 거세졌다.

‘저게 정말 인간의 힘……’

인간이 쇠사슬을 내리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곰이 내리치는 것 같다.

황소조차 단숨에 찢어버릴 만큼 거대한 곰이 석벽을 허물고 있는 중이다.

호발귀의 힘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강했다.

퍼억! 쩌어억!

금이 간 석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두께가 무려 두 뼘에 이르는 거대한 석벽이 인간의 힘에 갈라지고 쪼개진다.

퍽! 퍼억! 퍽!

석벽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가락 정도 집어넣을 수 있는 구멍이었는데, 곧 주먹만 하게 커졌다.

“아!”

홀리는 깜짝 놀라서 경악성을 내질렀다.

벽을 무너트리면서 돌가루가 뿌옇게 피어났다.

쇠사슬을 휘두를 때마다 눈이 매울 정도로 먼지가 일어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히 구멍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봤다.

사람 얼굴이 보였다. 곧이어 또 다른 사람 얼굴도 보였다.

한두 명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석벽 너머에 있다. 그리고 지금 뚫려가는 구멍 속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누구지?

사내들은 분명히 혈천방 무인들이다. 혈천방 무복을 입고 있다. 하지만 무공은 그리 고명하지 않다.

눈빛이 밝지 못하고 움직임도 무뎌 보인다.

석실을 지키던 뇌옥지기들로 보인다.

저들은 호발귀가 석실을 부수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다. 안색이 파랗게 질린 자도 있다.

확실히 얼굴 한가득 죽음의 공포가 가득하다.

호발귀는 누가 봐도 혈마다. 새빨간 안색에 피를 묻혀 놓은 듯한 눈동자를 보면 오금부터 저린다.

그런 혈마가 벽을 부수고 있으니 당장 죽음부터 떠올릴 것이다.

까앙! 쉑!

일부 몇몇 무인이 저항을 해왔다.

석벽에 구멍이 어느 정도 뚫리자, 구멍을 통해서 검을 찔러넣기 시작했다.

그들은 구멍 안쪽에서 호발귀를 노린다.

쇠사슬이 석벽을 두들기면 즉시 구멍으로 다가와서 구멍 안으로 검을 틀어넣는다.

거리조차 맞지 않으니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제발 맞아라 하는 심정으로 쳐낸다.

석벽이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석벽에 구멍이 뚫리는 일은 확실히 저들의 예상에는 들어있지 않다. 무척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하지만 홀리는 저들에게서 곧 눈길을 거뒀다.

호발귀가 다시 혈마 세계로 침잠했다.

제정신을 잃고 피와 죽음만 그리워지는 세계에 파묻혔다.

다시 온전히 돌아와야 하는데.

홀리는 호발귀의 안위가 걱정되어서 좀처럼 눈길을 뗄 수 없었다.

퍽! 퍼어어억!

석벽에 큰 구멍이 뚫렸다.

석벽에 구멍이 생겼지만, 독수가 쏟아지지는 않았다. 아주 멀쩡하다.

사멸강진을 만든 사람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출구다.

구멍 난 석벽 안은 조그만 공간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무인 십여 명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호발귀를 향해 병기를 곧추세웠지만 달려드는 자는 없었다.

그저 겁에 질린 얼굴로 호발귀를 조심스럽게 쳐다볼 뿐이다.

“엇!”

홀리는 무인들이 몸으로 가린 곳에서 한 사람을 발견해냈다.

무인들이 아주 영악하게 몸으로 가리고 있지만, 혈천방주가 틀림없다.

아직 혼절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미혼약에 중독되어서 아주 깊은 잠에 빠져있다.

“크큭! 크크큭!”

호발귀가 무인들을 발견하고는 눈에 핏발을 세웠다.

무인들은 잔뜩 경계심을 끌어올린 채 노려보기만 했다.

호발귀는 혈마로 변하면 얼마나 무서운지 숲에서 똑똑히 보여주었다.

팔당 무인 팔백여 명 중에 살아남은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

두 시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에 숲이 시신으로 덮였다.

하물며 뇌옥 무인들은 무공 면에서 팔당 무인들보다 못하다.

쒜에에엑! 퍼억!

호발귀는 다짜고짜 쇠사슬을 휘둘렀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무인이 발로 걷어챈 고양이처럼 힘없이 붕 날아가 떨어졌다.

아니, 석벽에 박혀서 머리까지 깨졌다.

그는 즉사했다.

쒜에엑!

쇠사슬이 또 움직였다.

“이익!”

멍청하니 손 놓고 있다가 죽을 수는 없다는 듯이 무인들이 쾌속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든 호발귀의 움직임이 한 수 더 빨랐다.

퍼억!

거칠게 휘둘러진 쇠사슬이 무인의 머리를 으깨버렸다.

무인은 땅에 처박혔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신법을 따라잡을 수도 없고, 파괴력에서도 밀린다.

무인들은 인원이 많지만, 빙빙 휘둘러대는 쇠사슬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다. 그때,

“그만!”

홀리가 날카롭게 일갈을 내질렀다.

호발귀의 쇠사슬이 무인들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쓰러져 있는 혈천방주를 노린다.

“그만! 그만! 그만!”

홀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호발귀가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리 없다.

아니, 그녀가 소리치면 그녀도 위험해진다.

지금 호발귀의 모든 신경이 검 든 무인들에게 쏟아지고 있는데, 오히려 주의를 그녀에게 끌어당기고 있지 않나.

“그만! 그만!”

홀리는 자신의 위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거세게 고함쳤다.

혈천방주를 보는 순간, 아직 살길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방주는 빠져나갈 길을 알고 있을 테니까.

스읏!

혈마가 뒤돌아섰다. 그녀를 쳐다봤다. 그때,

슈웃!

혈마를 노리고 검이 불쑥 찔러왔다. 무인 중 한 명이 틈을 잡고 검을 찔렀다.

쫘아아악!

공기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찢어졌다.

퍼억! 퍼어억!

쇠사슬이 무인을 후려쳤다. 거센 충격을 받고 허공에 둥실 떠오른 육신을 재차 가격했다.

그리고 석벽에 맞고 튕겨 나온 육신을 또 한 번 가격했다.

한 사람을 세 번이나 격타했다.

털썩!

무인이 바닥에 쓰러졌다.

무인은 이미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얼굴이 완전히 짓뭉개지고 가슴뼈도 함몰되었으며, 두 다리도 꺾여서 제멋대로 휘어졌다.

“큭큭! 큭큭큭!”

혈마가 괴소를 흘리면서 뒤돌아섰다. 그리고 홀리를 향해 쇠사슬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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