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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26화 (226/500)

第五十六章 마존(魔尊) (1)

역천금령공을 담은 쇠사슬!

혈기를 전혀 통제하지 않은 완벽한 혈마의 무공!

꽈꽈꽈꽉! 꽈꽈꽉!

석벽이 강인한 힘에 이끌려서 강제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천지가 붕괴하는 소리라고 할까? 쇠사슬과 철창이 부딪치는 소리가 격렬함의 극을 이뤘다.

꽈꽈꽝!

거대한 폭발을 끝으로 고요함이 찾아왔다.

석실을 돌가루가 뿌옇게 피어나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아!”

홀리는 너무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이것이 인간의 무공인가? 도천패 두 명, 세 명이 일시에 쇠사슬을 휘두르는 것 같다.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았다.

호발귀 발밑은 쇠사슬 자국이 움푹 패어 있다. 그때,

“큭큭! 큭큭큭!”

호발귀가 괴소를 흘렸다.

홀리는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호발귀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

그녀는 또 경악성을 토해냈다.

호발귀 눈이 혈안이다. 새빨갛다.

‘혈마!’

이것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 석실에도 그녀의 목을 조르던 혈마가 다시 나타났다.

그럴 수밖에 없다.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미처 혈기를 조절할 틈이 없었다. 석벽 너머에서 철창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무작정 최강 무공을 일으켜야만 했다.

홀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호발귀가 다시 혈마로 변했다.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죽일 수도 있다.

“키키키킥! 키킥!”

호발귀는 홀리를 알아보지 못했다.

홀리를 장난감처럼 옆구리에 꽉 낀 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정면에서 쏟아지던 장창 공격은 멈췄다.

등여산이 누구도 피할 수 없다던 죽음의 기관을 온전히 무공으로만 견뎌냈다.

꾸우욱!

홀리를 꼭 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으음!”

홀리는 허리가 끊어지는 듯 아파서 신음을 흘렸다.

호발귀가 그녀를 옆구리에 끼고 있는데, 마치 소 두 마리가 끌어당기는 듯이 아팠다.

“킥킥! 킥!”

호발귀가 연신 괴소를 흘렸다.

확실히 정신을 놓았다. 제정신이 아니다. 눈동자도 여전히 새빨갛다. 아니, 먹이를 찾아서 두리번거린다.

“킥! 킥킥킥! 키킥!”

호발귀는 쉼 없이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사람이 숨을 쉬듯이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그때 문득, 홀리는 호발귀의 괴소가 귀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키킥! 킥! 키키킥! 킥킥킥!”

‘이건 구, 구혼음소! 구혼음소야!’

홀리는 눈을 부릅뜨고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는 장창 공격이 끝난 후에도 근 반 시진 동안이나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이쪽저쪽 어느 쪽으로도 가지 않고, 한 자리에 머물면서 괴소만 흘렸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니다.

옆구리를 끼고 있는 게 상당히 아프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홀리는 호발귀를 주시했다.

호발귀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숨소리를 들었다.

호발귀가 중얼거리는 괴소에 맞춰서 구혼음소 음률을 찾아냈다.

‘맞아! 확실히 구혼음소야!’

호발귀는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몸을 바르르 떠는 모습이 무섭다기보다는 불쌍해 보였다.

혈마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너무 처절했다.

반 시진 쯤 지난 후, 호발귀가 머리를 석벽에 퉁! 부딪치며 무너졌다.

그녀를 잡고 있던 손도 스르륵 풀렸다.

홀리는 비로소 호발귀에게서 벗어났다. 아니, 혈마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

“휴우!”

호발귀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돌아왔어!’

홀리는 한달음에 호발귀에게 달려가서 손목부터 낚아챘다.

손목에 손가락을 얹고 진맥했다. 혈류의 빠름을 파악했다. 정상이다.

‘돌아왔어! 돌아왔어!’

홀리는 호발귀가 혈마 상태를 벗어나서 인간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홀리는 호발귀의 머리를 받쳐서 품에 안으며 말했다.

“고생했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소리였다.

정말 묘한 경험을 했다.

혈기가 치솟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힘이 솟구쳤다.

또 화도 치솟았다. 아니, 화는 아니었다. ‘네 따위가 감히!’, ‘이것들이 감히!’ 이런 느낌이었다.

원정에서 치솟은 열기는 통제할 수 없는 폭력으로 변했다.

이런 경험은 이미 많이 해서 익숙하다.

오염된 생기가 혈기로 변하고, 성정까지 변하게 만든다. 폭력적인 행동을 일으킨다.

이런 광적인 행동이 극한으로 치닫다가 마침내는 제정신을 잃어버리고 미친 행동만 남는다.

호발귀는 극한까지 치달린 경험도 많다.

정신을 차려서 생각해 보면…… 어느 순간까지는 기억난다. 하지만 그 후에는 아무 기억도 없다.

혼절한 사람처럼 전혀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을 참 많이 죽였다.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사람을 죽인다. 그것도 무적에 가까운 무공으로.

이런 것이 싫어서 구혼음소로 죽고자 했다.

구혼음소!

혈기가 정신을 빼앗을 때, 구혼음소는 육신을 빼앗는다.

어느 순간, 혈기 때문에 정신을 놓아버린다. 바로 그때, 구혼음소가 육신을 죽음으로 밀어 넣는다.

혈기가 강하게 작용하면 놓아버린 정신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혈마가 되는 것이다.

구혼음소가 강하게 작용하면 정지된 신체가 회복되지 않는다. 죽는다.

이백 년 전 혈마도 호발귀처럼 죽었다가 깨어나는 일을 반복했다.

혈기가 치솟아서 혈마가 되기 직전, 구혼음소가 육신을 정지시켰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소생했다.

구혼음소가 죽을 만큼 작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다.

혈마가 되기 직전에 구혼음소가 정확하게 작동만 해주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

하지만 작동하지 않으면? 혹은 아주 미약하게 작동해서 육신을 정지시키지 못하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바로 이 지점을 넘어서면 혈마가 된다.

이백 년 전 혈마는 이때를 생각해서 혈마후에게 진짜 구혼음소를 남긴 것이다.

죽여달라!

혈마가 바란 것은 너무도 분명했다.

중원을 삼분지 이나 피로 물들인 마인치고는 매우 처절한 바람이었다.

여기까지는 호발귀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아주 색다른 경험을 했다.

정신을 잃지 않았다!

혈기가 치솟고 몸이 미쳐서 날뛴다. 육신을 통제할 수 없다. 손발이 마음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는 느낌이다.

미친 듯이 쇠사슬을 휘둘렀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거 정말 미친놈이구나 싶다. 다행스럽게도 죽일 대상은 없었다.

만약 사람이 있었다면 당장 죽였을 것이다. 그만큼 살심이 거세게 들끓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물 한 방울 먹지 않고 사막을 건너온 사람이 물을 봤을 때처럼 살인에 극심한 갈증을 느꼈다.

‘아! 혈마가 되었구나!’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았다.

입에서 구혼음소가 흘러나왔다.

육신을 정지시키는 구혼음소가 아니다.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한 자신만의 구혼음소다. 추락보다도 굳건함을 유지한다.

이백 년 전 혈마는 이 길을 가지 않았다.

과거 혈마에게는 장진 스님이 없었다.

홀리가 죽음을 말한다. 장진 스님은 죽음도 삶이고, 삶도 죽음이라도 말한다. 호발귀는 삶을 읊는다.

똑같은 구혼음소가 각기 다른 말을 한다.

과거 혈마에게는 중간에 구혼음소를 변형 혹은 희석해주는 단계가 없었다.

혈마는 호발귀만큼 운이 좋지 않았다.

혈마는 참 오래 살았다. 지금도 중원에서는 ‘혈마’라는 말이 금기시된다. 그만큼 많은 피를 뿌렸다.

중원 무인들에게 절망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정작 혈마는 그 오랜 시간 동안 번민했다.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오늘 혈마가 되나, 내일 혈마가 되나. 구혼음소가 말을 안 들으면 어떡하지?

예전에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시간이 좀 걸렸는데, 요즘은 왜 혈기가 치솟았다 하면 정신을 잃지?

왜 혈마가 되는 순간이 점점 빨라지지.

호발귀는 적어도 그 단계는 벗어났다.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혈기가 치솟으면 혈마가 된다. 영원히 미친 상태로 살인마가 되어서 날뛰는 일이 없다는 것뿐이다.

어느 순간에는 구혼음소가 제정신을 찾게 해준다.

그때까지는 혈마가 되어서 살인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죽이는 자를 선택하지도 못한다.

정신이 완전히 괴물에게 점령당해서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 된다.

지금은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혈마가 되었지만, 사람이 있을 때 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스읏!

호발귀가 눈을 떴다.

홀리가 그의 머리를 허벅지에 올려놓고 지긋이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호발귀가 눈을 뜨자 홀리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힘들지?”

홀리는 호발귀가 혈마에게서 벗어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아는 듯했다.

“널 죽이는 줄 알았어. 미안.”

호발귀가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건 기억해?”

“후후! 미안.”

“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내 허리 상당히 굵어. 안아봐서 알잖아. 그 정도 끌어안아서는 터지지 않아. 호호호!”

홀리가 맑게 웃었다.

“훗!”

호발귀는 힘없이 피식 웃었다.

정말로 이러다가는 옆구리에 낀 홀리를 죽일 수 있겠다 싶어서 구혼음소를 얼마나 읊어댔는지 모른다.

그때의 절박한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다.

홀리를 강하게 끌어안아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손을 풀어주고 싶은데,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사실, 홀리를 껴안은 것보다도…… 미친놈이 언제 홀리를 가격할지 몰라서 걱정되었다.

한 몸에 두 놈이 산다.

하나는 정신이 멀쩡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오직 빨리 빠져나오라고 구혼음소만 읊어댄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때려 부순다.

“이런 일, 차차 익숙해져야 해. 자주 벌어질 거야.”

“그 정도야, 감수!”

“그런데 이거 쓰면 쓸수록 진짜 혈마가 돼. 이백 년 전의 혈마가 두려웠던 것은 혈마 무공은 쓰면 쓸수록 성정이 변한다는 거야. 진짜 혈마가 되는 거지.”

“지금 방금 깨어났잖아. 지금은 좀 쉬어. 그런 생각하지 말고.”

홀리가 말했다.

“후후!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했잖아. 어차피 듣기 싫은 소리일 테니까, 빨리하는 게 낫지.”

“일단 좀 쉬고……”

“나 결국은 죽을 거야. 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것 같은데, 이제는 죽을 방법도 못 찾겠어. 홀리, 네가 읊는 구혼음소 이제 나 못 죽여.”

“그래, 알아. 너 죽으라고 진짜 구혼음소를 말했는데도 살았잖아.”

“정말 때가 되면 어떻게 죽지?”

남들은 이게 무슨 대화인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호발귀는 절실하다.

생기가 너무 강해져서 스스로 죽기를 거부한다. 장진 스님까지 만들어내서 구혼음소를 방해하고 있다.

장진 스님의 반야심경은 정확하게 구혼음소를 정화한다.

홀리에게도 호발귀의 절절함이 닿은 것 같다. 홀리가 호발귀를 꽉 껴안으며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악착같이 살아.”

“홀리……”

“잠시만, 잠시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잠시만. 우리 이대로. 조금만 이따 가자.”

홀리가 호발귀의 입을 막았다.

“그래. 조금…… 이따 가자.”

홀리가 호발귀를 꼭 껴안았다.

홀리는 눈물이 떨어지려는 것을 참기 위해서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호발귀는 이제 수시로 혈마가 될 것이다.

방금 공격을 받았을 때처럼 위협이 느껴지면 한순간에 혈마로 변해서 날뛴다.

호발귀의 회복력은 상당히 빠르다. 생기를 이용해서 회복하기 때문에 혈기만 몰아내면 금방 일어난다.

다만, 석실은 생기를 받아들이기에 환경이 좋지 않다.

사방을 둘러봐도 탁기밖에 없다.

귀색무에 환혼몽까지 번져 있어서 맑은 기운을 흡수할 수가 없다.

“일어날 수는 있지?”

“조금만 있으면 일어날 수 있어.”

호발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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