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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18화 (218/500)

第五十四章 사결(死訣) (3)

저벅! 저벅!

사방이 꽉 막힌 석실 안이라서인지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홀리는 묶여 있는 자에게 다가섰다.

“안녕! 나 홀리라고 해.”

홀리가 망혼자에게 말했다.

망혼자는 멍한 표정으로 어둠만 쳐다봤다. 홀리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홀리는 망혼자의 눈높이로 쪼그려 앉았다.

서로 눈높이를 맞췄다. 연인을 다정하게 대하듯 손을 뻗어서 망혼자의 손을 잡았다.

“우리 서로 알지? 오래전부터 서로 느끼고 있었잖아. 먼 길을 돌아서 이제야 만났네?”

혈천방주는 팔짱을 낀 채 홀리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특히, 홀리가 하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타악 투 파 비투 쏘.”

드디어 구혼음소가 시작되었다.

홀리의 구혼음소는 매우 날카롭다. 칼로 푹푹 쑤시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친다. 그런데도 망혼자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평안하기만 하다.

“럼 로럼 루미리.”

구혼음소가 중반을 넘어섰다.

쇠사슬에 묶인 망혼자는 졸린 듯 스르르 눈을 감았다. 구혼음소가 마치 자장가라도 되는 듯 벽에 머리를 기댔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망혼자인데, 입가에 미소까지 머금었다.

“티록 타 미 고토 고토 하.”

망혼자가 달콤한 꿈을 꾼다.

너무 편안해 보여서 석실 안에 불이 났어도 깨우지 못할 것 같다.

“산 파라 가새 처마 이공산 차무.”

구혼음소가 절정에 이르자 망혼자는 길게 한숨을 내뿜었다. 그리고 고개를 밑으로 툭 떨궜다.

절명이다!

“엇!”

혈천방주가 깜짝 놀라서 경악성을 흘렸다.

홀리는 단지 주문만 외웠다. 망혼자를 혈마로 만들 때 사용하는 귀색무도 없었다. 망혼자의 혈기가 치솟지도 않았다. 정사를 벌인 것도 아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쉬이익!

혈천방주가 급히 다가와서 망혼자의 상태를 살폈다.

눈동자를 뒤집어보며, 맥문을 잡아보고, 웃옷을 벗긴 후에 상반신에 이상 징후가 있는지도 살폈다.

사슬에 묶인 자는 아직 혈마가 아니다. 생기를 오염시켜서 혈마를 만드는 방식도 아니다. 그런데도 절명했다.

구혼음소가 죽음을 부르는 주문인가?

아니다. 혈천방주는 누구보다도 홀리의 구혼음소에 귀를 기울였다. 음의 높낮이를 살피기 위해서 소이구혼공까지 끌어올린 상태다. 구혼음소는 한 번밖에 듣지 않았지만 벌써 십 분의 일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다. 오직 망혼자만 죽었다.

홀리가 손을 들어서 망혼자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잘 가라는 듯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홀리가 일어섰다.

“어때요?”

“구혼음소에 네 가지 있다고 했는데 하나는 이거고 다른 하나는 혈마를 조정하는 거고 다른 두 개는 뭐지?”

“비밀이에요. 다 말해주면 뭘 먹고 살라고요.”

“여기가 미로진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닌지 모르겠는데.”

“아! 내 정신 좀 봐. 협박을 잊었구나. 그러세요.”

“뭐?”

“저 여기 있으면 돼요? 아니면 쇠사슬로 묶어놓으실래요?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분명하게 알아두세요. 절 묶어놓으면 저도 호발귀처럼 의식불명 상태가 돼요. 구혼음소가 내 머리에도 작용할 수 있거든요. 호호!”

“그건 협박이 안 되는 것 같고.”

“아뇨. 되죠. 제가 의식불명이 되면 호발귀를 깨울 수 있는 사람이 영원히 사라지는 거예요.”

“깨워봤자 뭐하나. 네 앞에 서면 말 한마디에 죽을 텐데.”

“그건 사혼진령음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단, 나는 조정까지 할 수 있는데, 방주님은 죽일 수만 있다는 거죠. 솔직히 이번에 혈마를 조정해 볼까 하고 일을 만드셨는데, 실패했잖아요. 변형된 사혼진령음도 써먹지 못하고.”

“음! 확실히 아는 게 너무 많아.”

“혈마후니까.”

“……”

“어때요? 혈마후를 인정하고 협의할래요? 아니면 여기?”

홀리가 쇠사슬을 들어 보였다.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촌장과는 농담을 꽤 많이 하는데, 그걸 진담으로 받아들인다고? 하하하! 나가지.”

혈천방주가 먼저 몸을 돌렸다.

홀리는 호발귀를 만나지 못하고 천화전을 벗어났다.

- 일단 생각해 보고, 필요하면 연락하지.

혈천방주는 쉽게 지심옥을 알려주지 않았다.

혈천방주가 그녀를 내보낸 의도는 뻔하다.

먼저 홀리 정도는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음문촌을 멸살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 촌장을 받아들였는데, 홀리 한 명을 겁내겠나.

두 번째로는 정말 홀리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우려다.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마지막 수단으로 홀리를 쓸 것이다.

사실, 지심옥 위치는 이미 알고 있다.

형제들이 혈천방을 수소문하면서 알아냈다.

그런데 지심옥은 매우 위험한 곳이다. 무턱대고 들어갈 수가 없다. 아니, 뚫고 들어갈 만한 틈이 보이지 않는다. 티끌만 한 틈이라도 보였다면 벌써 시도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홍의 독이 잘 먹혀서 천만다행이다.

당홍은 독 두 개를 만들어 주었다. 하나는 일시에 전신을 마비시키는 섬마독(蟾痲毒)이고 다른 하나는 심장을 일다경 정도 정지시키는 지심독(止心毒)이다.

홀리는 섬마독과 지심독은 세침(細針)에 묻혀서 오른손과 왼손 손가락 사이에 감춰두었다.

먼저 섬마독을 찔러서 전신을 마비시킨다.

몸이 축 늘어지면서 매우 편안한 모습이 되는데, 전신 신경과 근육이 완전히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지심독을 찌른다.

지심독은 심장을 일다경 정도 정지시킬 뿐이지만, 그 정도 시간 동안 심장이 뛰지 않으면 십 중 십 죽는다. 지극히 일부만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평균적으로 보면 사망이다.

섬마독과 지심독은 효과가 반 시진이다. 반 시진이 지나면 독기가 몸을 떠난다. 반 시진 후에는 천하 명의라고 해도 독살 흔적을 찾아내지 못한다.

당홍은 혈천방주의 눈을 속이기 위한 독이라서 더 심혈을 기울였다.

사실, 구혼음소는 망혼자에게 작동하지 않는다. 구혼음소는 오직 혈마만을 위한 주문이다. 다만, 혈천방주의 이목을 끌어낼 필요가 있어서 약간 연극을 했다.

일단, 주의를 끌어당기는 데는 성공했다.

‘책사가 뭐 좀 알아냈을까?’

홀리는 혈천방주가 자신을 다시 부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혈천방주에게는 다른 수가 없다. 그러니 그녀를 불러서 구혼음소를 펼치도록 할 것이다. 어쨌든 호발귀는 깨워야 하니까. 그러려면 일단 그녀를 호발귀에게 데려가야 한다.

여기서 홀리가 결정할 게 남는다. 이것은 혈천방주가 우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를 지금 당장 호발귀에게 데려가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다.

홀리가 호발귀를 깨우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여버리면?

홀리가 호발귀를 만나려는 목적이 깨우는 것이 아니라 죽이려는 의도라면?

홀리는 아직 이 결정을 하지 못했다.

호발귀에게 죽음을 선물할 것인지 아니면 귀색혼령대법을 사용해서 호발귀를 혈마로 만들 것인지.

이 모든 것이 구혼음소로 호발귀를 깨울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야 하는데, 사실 깨울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호발귀의 상태를 봐서 결정한다.

‘계속 버텨. 목숨 끊지 말고 버티고 있어. 제발.’

홀리는 무거운 걸음으로 혈천방을 벗어났다.

* * *

드르르륵!

석문이 열리고 닫혔다.

문은 안쪽에서 연다. 밖에서는 열 수 있는 장치가 없다.

밖에서 밀마를 말하면 안에서 작은 구멍을 통해 신분을 확인한 다음에 문을 열어준다.

철저한 보안장치다.

적인 줄 알면서도 문을 열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문을 열자마자 각종 암기가 튀어나올 것이다.

“이런 곳에 뇌옥이 있을 줄 어떻게 알겠어. 이건 뇌옥이 아니라 연공실 분위기잖아.”

당홍이 말했다.

홀리가 지심옥 위치를 말해주지 않았다면 정말 애먹었을 것 같다.

“아까부터 말이 없던데, 무슨 진인지 알아본 거야?”

당홍이 등여산을 보며 말했다.

등여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기 힘든 건 알아. 그러니 툭 터놓고 말해봐. 책사가 무슨 말을 해도 우린 못 알아들어. 그러나 대충 어떤 진인지는 알아야 방법을 찾지?”

“사멸강진(死滅强陣)이에요.”

등여산이 말했다.

“그게 뭔데?”

당홍이 물었다.

“생로(生路)를 만들지 않고 오직 사로(死路)로만 만들어진 진이에요. 진법이 발동되면, 저 석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요. 호발귀를 포함해서.”

“뭐!”

당홍이 깜짝 놀라서 석문을 다시 쳐다봤다.

“그걸 어떻게 보자마자 알아?”

등여산은 손을 들어서 석문 왼쪽 기둥에 음각된 도형(圖形)을 가리켰다.

번개가 하늘을 찢으면서 떨어지는 그림이다.

대체로 번개 그림은 하늘을 그리고 그 밑에 번쩍이는 섬광을 그리는데, 석문 옆 도형은 번개가 하늘 위에서 시작된다. 하늘을 찢어발기고 땅으로 꽂힌다.

물론 땅도 터진다. 땅도 하늘처럼 구멍이 뻥 뚫렸다.

“저게 뭔데?”

“진법가의 서명이요.”

“서명? 그럼 이 진법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는 거네?”

“보통은 그런데 저건 자신을 밝히는 서명이 아니라 사멸강진을 말하는 서명이에요. 내가 사멸강진을 만들었으니까 뚫을 수 있으면 뚫어보라는 거죠.”

“하! 아예 대놓고 무슨 짓을 했는지 알려준다는 거요?”

도천패가 물었다.

“저 서명, 거짓이 아네요. 청죽진도 그렇고 혈천방에 기관 진법의 명인이 있는 거 같네요.”

“어떤 놈인지 발을 잘못 담갔네. 하필이면 혈천방에 들어와서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어.”

당홍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말했다.

“책사. 저 석문 말인데. 암기가 쏟아진다면, 일단 석문을 칼로 쪼개고 암기는 방패로 막으면 안 될까? 저 석문만 한 크기로 방패를 만들지 뭐.”

도천패가 성문을 노려보며 말했다.

“진법가들 사이에 사멸강진에 대한 논의가 있었어요. 이렇게 하면 죽음을 피할 수 없겠다 하는.”

등여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석문을 보며 말했다.

“첫 번째가 바로 저것, 암기에요. 석문을 열면 높이 삼 장, 넓이 삼 장 되는 석벽이 나올 거예요. 거기서 암기가 쏟아지는데, 암기 간격은 위아래로 한 뼘. 암기는 기관으로 쏘아진 철창. 코끼리도 단숨에 관통시킬 정도로 빠르고 강력해요.”

“그건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도천패가 중얼거렸다.

“맞아요. 일차 관문을 막는 방법은 귀신처럼 빠른 신법, 또는 두 자 두께의 철벽 뒤에 숨는 것. 그러면 막을 수 있어요. 이차 관문은 밀실에 갇히는 거예요.”

“이차? 몇 차까지 있는데?”

“이차는 위에서 기름이 쏟아지고, 불이 붙죠. 화염지옥.”

등여산이 계속 말했다.

“삼차도 밀실이에요. 이번에는 화염지옥 대신에 독수로 밀실을 꽉 채워요. 독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살이 녹아버린다는 초염독(醋炎毒)을 쓰죠. 독기를 들이마시면 폐가 녹는데, 폐가 녹기도 전에 전신이 먼저 녹아버려요.”

“하아!”

당홍이 한숨을 내쉬었다.

초염독은 그녀도 잘 안다. 밀실에 갇힌 상태에서 초염독을 당하면 꼼짝없이 죽는다. 피독단, 독공 등등 어떤 대응책도 소용이 없다. 일명 무적지독(無敵之毒)이다.

“사차도 있어요. 딛고 있는 발판을 치워버리는 거죠. 사방 벽은 기름처럼 매끄러워서 잡을 게 없고, 칼도 박히지 않아요. 결국, 십 장 아래로 떨어지는데. 밑에 뭐가 있을지는 짐작하죠? 거기에 초염독이 부어지고, 기름이 쏟아진 다음에 불을 붙여요. 앞에 열거된 모든 함정이 일시에 터지죠.”

“진법가란 놈들이 이걸 논의했다고?”

당홍이 놀라서 물었다.

“네.”

“말은 쉬운데, 이걸 만들 수는 있고? 다른 건 모르겠는데, 초염독으로 밀실을 채우려면 돈이…… 아! 혈천방은 가능하겠다. 쳇! 정말 돈을 물 쓰듯 쓰네.”

등여산의 말을 듣고는 석문을 뚫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마디로 허락 없이 들어서면 누가 되었든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소멸시키겠다는 거다.

이러니 음문촌 사람들도 감히 들어갈 엄두는 내지 못했겠지.

“그럼 우리는 들어갈 방도가 완전히 막힌 거네. 맞지?”

“네. 이건 뚫고 들어갈 수 없어요.”

등여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홀리는 언제 만나기로 했어?”

“이따 저녁에요. 방주를 만나서 얘기가 잘 됐으면 좋겠는데. 일이 잘 풀렸다면 약속 장소에 못 나올 거예요. 호발귀를 만나러 들어갔을 테니까.”

“잠시 못 봐도 괜찮으니까 제발 약속 장소에 안 나왔으면 좋겠다.”

당홍이 석문을 보며 말했다.

“그럼 정말 미안하지. 홀리 혼자서 사지로 보내는 거잖아. 사멸강진, 저 속으로.”

도천패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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