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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10화 (210/500)

第四十二章 상충(相沖) (5)

호발귀가 자진했다. 스스로 검을 심장에 찔러넣었다. 실수를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런데 어떻게 숨이 붙어 있을까?

스읏!

의원이 검을 뽑았다.

그러자 곧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확실히 살아있다. 죽은 시신을 피를 이런 식으로 뿜지 않는다. 작은 개울물처럼 졸졸 흘린다.

의원이 집게로 가슴살을 벌렸다.

심장이 보인다. 아주 멀쩡하다. 가슴이 벌어진 지금도 정상적으로 쿵쿵 울린다.

검이 깊게 들어갔는데 다행히 손상된 장기는 없다.

호발귀가 일부러 검을 조절해서 찔렀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깨끗하다.

물론 호발귀가 일부러 자진을 흉내 냈을 리는 없다.

좌우지간 의원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검으로 심장을 찔렀는데 아무런 손상도 없다니.

의원은 바늘로 살을 꿰맸다.

“목숨을 구했습니다.”

의원이 납작 엎드려서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보고했다.

“수고했다. 힘들었을 텐데.”

“아닙니다. 그런데 그게……”

의원이 말을 잇지 못하고 쭈뼛거렸다.

“무슨 일이 있군. 뭐냐?”

“목숨은 구했습니다만 의식이…… 의식이 정상적으로 돌아올지는 깨어나 봐야 알겠습니다. 지금으로써는 의식이 돌아온다고 장담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서.”

“뭣? 의식이 없어?”

“네. 아무래도 자진할 때 뇌에 강한 충격을 받은 듯합니다. 맥은 정상인데 뇌호혈(腦戶穴)로 가는 기운이 매우 위태롭습니다. 어쩌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의원이 매우 불길한 소리를 했다.

“음! 더는 할 일은 없고? 약이라든가 시술 같은 게 남지는 않았고?”

“네. 어떤 조처도 무효한지라.”

“알았다.”

“그리고…… 그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 있어서…… 말씀드려도 될지.”

“뭐냐?”

의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검에 찔렸는데 장기 손상이 없습니다. 내부가 정말 깨끗해요. 뭐라고 할까? 일부러 심장을 빗겨서 검을 찌른 것 같다는 느낌이 확 드는 상처입니다.”

“으음!”

혈천방주는 또 미간을 찡그렸다.

호발귀를 잡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계속 미간만 찌푸린다.

‘알았다. 더 할 말 있나?’

“이젠 없습니다.”

혈천방주는 의원에게 물러가라고 손짓했다.

의원의 말을 다 듣자 ‘수고했다’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팔당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해서 얻어낸 혈마인데, 이 지경이니.

예상치 못한 일이 계속 벌어진다.

호발귀 같은 자가 검을 찔렀는데 심장이 빗겨 가? 이런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네놈, 어떻게 살아난 거냐?”

혈천방주가 호발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물론 호발귀는 듣지 못한다. 호발귀는 정신을 외부와 철저히 차단한 상태다. 어떤 말도 듣지 못한다. 어떤 위험도 감지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식물인간이다.

“귀색혼령대법이면 깨울 수 있을까?”

호발귀를 음문촌에 내어주는 것은 너무 아깝다. 다 잡은 고기를 내주는 격이지 않나.

“어쨌든 이놈을 여기 두면 안 되겠지? 지심옥(地心獄)으로 옮겨.”

“지, 지심옥요?”

소귀가 놀라서 되물었다.

“그래. 지심옥. 이놈은 이제 제정신으로는 세상에 못 나와. 혈마가 되어서 나오던가, 아니면 죽어서 묻혀야겠지? 지금 당장 지심옥으로 옮겨.”

혈천방주가 차갑게 말했다.

호발귀는 지하 석실에 눕혀졌다.

암석을 깎아서 만들어 놓은 석실인데, 사방 십여 장 정도로 매우 넓다. 높이도 십 척 정도로 상당히 높다. 장창 수련을 해도 충분할 것 같다.

석실에서 횃불이 열 개가 꽂혀 있다.

하지만 집기 비품은 전혀 없다. 석실 한가운데 돌 침상 하나 놓여 있는 게 전부다.

지심옥이라고 불리는 지하 석실은 극악 마공을 수련하는 곳이다.

척! 척! 척!

호발귀의 두 손목과 두 발목에 철갑이 채워졌다.

본인 스스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인간 상태인데도 구속한다.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철저하게 얽매어 놓는다.

철갑에 이어진 쇠밧줄 길이는 한 자밖에 되지 않는다. 몸을 뒤트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뒤집어 누울 수는 없다.

아무 움직임도 없이 누워 있으면 등창이 생길 우려가 있어서 시종을 배치했다. 시종이 반 각마다 몸을 움직여주고 마른 수건으로 땀을 닦아준다.

의원은 한 시진에 한 번씩 호발귀를 진찰한다. 의식이 돌아올 기미가 없어도 매 시진 호발귀를 살핀다.

보통 호발귀처럼 깊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면 한두 시진 혹은 하루 이틀 만에 깨어난다는 것은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우 긴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켜보게 된다.

물론 호발귀도 그런 안목에서 지켜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진찰은 매 시진마다 한다. 길게 기다릴 생각이지만 매시진 살핀다. 탈이 나면 안 되니까.

호발귀가 비록 이상 징후를 보이지만 그래도 혈마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이다.

철컥!

철문이 닫혔다.

잠시 후, 또 철컥! 하고 철문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철컥! 철컥! 철컥!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철문이 닫혔다,

호발귀가 정신을 차린다고 해도 육중한 철문 다섯 개를 뚫고 나가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철문마다 기관이 설치되어 있어서 허락 없이 문을 열면 암기 세례를 경험해야 한다. 독수가 흘러내릴 수도 있고, 독화살이 퍼부을 수도 있다.

지심옥은 천신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지옥 중의 지옥이다.

혈천방주는 오랜만에 서고를 찾았다.

서고에 있는 책은 혈천방주의 머릿속에 모두 담겨 있다.

눈 감고도 줄줄 외웠던 때가 삼십여 년 전이다. 그때는 내일 당장 혈마라도 만들어질 것처럼 흥분해서 외웠다. 여기 있는 책들만 외우면 천하를 움켜쥘 수 있을 줄 알았다.

“후후!”

혈천방주는 오랜만에 손때 묻은 책들을 보면서 옅게 웃었다.

혈천방은 이백 년 전부터 천하를 뒤져서 혈마록 혹은 생기에 관계된 모든 책을 모아왔다. 혈마록을 해석하는 데 필요하다 싶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고 책을 끌어모았다.

그 모든 것이 이 서고에 있다.

혈천방은 만일에 대비해서 비급을 필사하여 네 곳에 소장해 놨다.

대별산 혈천방 본단에 있는 서고가 그중 하나다. 다른 세 곳은 혈천방주만 안다.

원래 본단 서고는 오늘 중에 불태워질 예정이었다.

귀무살이 떠나고, 팔당이 전멸 상태에 이르렀다.

현재 본단은 매우 위험한 상태다. 만약 천살단이 이 상황을 알고 공격해 온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

약한 곳은 버려야 한다.

한데 뜻밖에도 호발귀가 저런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지하고 있다.

“좋아. 차분히 해보자고.”

혈천방주는 어렸을 때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젊었을 적에 잡았던 붓을 들어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혈마록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적었다.

그리고 자신이 쓴 것을 읽었다.

머릿속에 기억해 놓고 있지만, 혹시 빠진 부분이 있는가 싶어서 글로 써봤다.

없다. 아무리 혈마록을 뒤져봐도 호발귀처럼 이상 징후를 보이는 예는 없다.

혈천방주는 자신이 쓴 글을 화톳불에 얹었다.

화르르륵!

종이에 불이 붙으면서 불길이 확 솟았다.

‘어떻게 살았을까?’

이 부분은 혈마록 밖에서 찾아야 한다. 혈마록에는 어떠한 내용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

“아냐! 아냐!”

혈천방주는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서 급히 붓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 써 내려갔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문득 답이 되는 글자를 본 것 같다.

종막(種膜)!

종막이라는 글자가 나왔다.

‘씨앗의 얇은 보호막’이라는 뜻인데, 혈마론 추론편(推論編)에 기재되어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혈마록에 이런 글자가 있는 것 같다. 향후 참고하라.’

선조들은 추론편에 이런 글자들을 모아놓았다.

흘려버려도 좋고, 혹여 연결되는 부분이 없나 다시 뒤져봐도 좋다. 하지만 혈마록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서 거의 사장되다시피 하는 부분이다.

‘종막…… 씨앗을 얇은 막이 감싼다. 보호막이 감싼다. 생기가 무형의 막에 감싸여 있다. 생기는 원정이다. 하지만 생기는 근본적으로 몸 전체에 퍼져 있다. 목숨이 끊어지면 생기도 끊어진다. 생기를 보호하려면 몸을 보호해야…… 이거였군!’

혈천방주는 긴장이 풀려서 몸을 의자에 털썩 눕혔다.

호발귀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심장을 찔렀는데도 살아난 이유를 알았다.

“후후후! 후후!”

혈천방주는 웃었다.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호발귀는 절대로 자진하지 못한다. 죽으려고 하면 생기가 목숨을 보존시킨다.

다른 사람이 호발귀의 심장을 찔렀다면 생기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몸을 뚫고 들어오는 병기를 막아낼 방법은 없다. 호발귀가 삶을 포기했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호발귀 자신이 자신을 찌르는 것은 다르다.

호발귀는 정확히 심장을 관통시키려고 검을 썼지만, 몸 안에 있는 혈기가 죽음을 거부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삶의 본능이라고 불리는 부분이 호발귀에는 지극히 심하게 일어난다.

호발귀는 검을 찌르기 전에 ‘심장을 찔러야지.’하고 생각한다.

이 생각이 생기에 영향을 미친다.

생기는 말한다.

‘심장을 찌르면 죽어. 죽으니깐 안 돼. 살아야지!’

호발귀가 검을 쓰기 전에 생기가 이미 다른 작용을 한다. 무의식중에 손목의 방향을 바꿔서 심장을 찌르지 못하게 만든다. 다른 곳을 찌른다.

의원이 한 말이 이것이다.

- 일부러 심장을 비켜서 찌른 것처럼.

그 말뜻이 이것이다.

일단 호발귀가 자신의 손으로 심장을 찌르고도 죽지 않은 이유는 찾아냈다.

혈마 무공을 수련하면 본인 스스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

자진이 얼마나 어려우면 이백 년 전 혈마가 자신을 죽여달라고 혈마후와 혈의검 소위에게 진결까지 남겼을까.

절대로 자진하지 못한다.

생기는 호발귀 몸속에서 하나의 영처럼 존재한다.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게 생기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생기를 이렇게 현실적으로 느끼지는 못한다.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 알게 하는 것이 혈마 무공이다.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가지고 있던 것을 ‘너 가지고 있어. 써봐!’하고 알려주는 것이 혈마 무공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전 중원에서 오직 한 사람, 호발귀만 알고 있을까.

“됐어. 이제 살아난 이유는 알았고……”

그러면 왜 의식불명,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는지 알아야 한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거냐?”

이 부분도 호발귀가 자진하지 못하는 이유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자진할 수 없는 사람이 자진했기 때문에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

‘자진하지 못하는 것은 생기가 방해해서인데, 호발귀는 죽으려고 검을 썼다 이거지. 생기가 검은 막아냈고…… 그러면 살아야 하는데 왜 정신이……’

생각이 깊어진다.

생기는 사람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호발귀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것은 생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것에 영향을 받았다.

‘구혼음소 때문인가?’

아니다. 구혼음소는 생명을 끊는다. 생기를 죽인다. 생기가 일어설 틈을 주지 않는다. 생기가 보호막을 일으키기 전에 생기 자체를 흩어버린다.

“엇!”

혈천방주는 비스듬히 누웠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기를 말살시키는 구혼음소와 생기의 보호막이 동시에 일어난다면?

혈천방주는 얼어붙었다.

호발귀는 자진하기 위해서 단지 검만 사용한 것이 아니다. 구혼음소도 사용했다. 구혼음소를 읊으면서 동시에 검을 썼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구혼음소를 알고 있는 홀리가 호발귀와 붙어 다녔다. 보통 관계도 아니고 아주 깊은 관계로 보인다. 그렇다면 구혼음소가 전해졌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호발귀가 구혼음소에 집중했다면 호발귀는 죽었다.

하지만 호발귀는 이백 년 전 혈마처럼 구혼음소에 집중하지 못한다. 끝까지 구혼음소를 유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검을 쓴 것인데.

그 순간, 생기는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최정점을 향해 치닫게 된다.

죽으려는 행동과 살려는 행동이 가운데서 부딪쳤다.

꽝!

그 부딪침의 여파는 뇌로 전달된다.

“아!”

혈천방주는 탄식했다.

호발귀가 의식불명 상태가 된 것까지도 어렴풋이 알아낸 것 같다.

한데 호발귀를 어떻게 깨워야 하느냐 하는 부분에서 또 막힌다.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찾아보지. 후후!”

혈천방주는 머리가 아픈 듯 손을 들어서 목덜미를 주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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