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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07화 (207/500)

第四十二章 상충(相沖) (2)

“저놈이 미쳤나? 완전히 혈천방을 말아먹으려고 작정한 거 아냐? 도대체 무슨 짓이지?”

일자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하! 인제 보니 혈천방주, 완전히 미친놈이네. 그렇게 강하던 혈천방이 하루아침에 이게 뭐야? 이젠 완전히 알거지가 됐잖아? 저런 식으로 죽으면 남아나는 게 없겠는데.”

일자의 말을 사자가 받았다.

음문촌 사람들의 눈앞에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사연이 있겠거니 추측해봤지만 그럴만한 이유도 없다.

혈천방주가 혈천방을 멸망으로 이끌고 있다.

혈천방 무인들은 매우 강하다. 팔당 무인들은 무공은 귀무살에 버금간다.

솔직히 음문촌도 팔당 존재를 걱정했다.

언젠가 혈천방과 검을 맞댈 순간이 온다면 바로 저들과 싸워야 하는데, 고수가 너무 많다. 한두 명 같으면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그 수가 무려 팔백이다.

저들이 몰아치면 음문촌도 끝장이다.

그만큼 강한 무인들인데, 호발귀에게는 한낱 모기나 파리 정도에 불과하다.

아니, 개미다. 혈천방 무인들은 개미고, 호발귀는 개미핥기다.

개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긴 혀로 쓱 훑으면 한 무더기가 사라진다.

개미핥기 한 마리가 개미굴 한 개를 뭉개는 데는 한 시진도 걸리지 않는다. 수천, 수만 마리에 이르는 개미들이 개미핥기 한 마리에게 잡아 먹힌다.

개미가 개미핥기에게 달려드는 것은 토끼가 호랑이에게 달려드는 것만큼이나 어이없다.

지금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혈천방 문도가 떼를 지어서 달려든다. 한 무더기가 나가떨어지면 두 번째 무리를 투입한다. 하지만 호발귀는 아예 상대가 안 될 정도의 빠름과 파괴력으로 짓이긴다.

혈천방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이러면 생각이 달라지지. 차라리 우리가 혈천방을 접수하는 건 어때? 그것도 가능성 있어 보이는데.”

이자가 외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조용!”

음문촌장이 귀찮다는 듯 일갈을 내질렀다.

“아니, 아버님. 이건 조용할 일이 아닌데요. 정말 이런 식이면 혈천방이 텅 빌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접수하죠?”

육자가 패기만만하게 말했다.

“조용히 하라니까!”

음문촌장이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모두 입을 꾹 다물고 혈투를 지켜봤다.

혈천방 무인들이 끊임없이 투입된다. 투입되는 족족 죽는데도 계속 밀어 넣는다.

정말 뭐 하자는 건가?

지금 혈천방주는 혈천방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혈천방주가 미친놈인가? 머리가 덜떨어진 바보인가? 아니면 자포자기 상태인가?

전부 아니다. 혈천방주는 오히려 정반대 성격이다.

혈천방주는 음흉하고 치밀하다. 야욕이 있지만, 머리는 냉철하다. 일을 벌일 때는 계획에 맞춰서 진행한다. 승부를 걸어야 할 때와 무모한 때를 구분한다.

지금까지 보아온 혈천방주는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그런 사람이 방을 망가트리고 있다. 왜?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거야 원.”

일자가 눈썹을 찡그렸다.

촌장이 조용히 하라고 하니 크게 말할 수도 없다. 그저 멀거니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데, 그러자니 무척 답답하다.

“하아!”

“후우!”

삼자와 사자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마찬가지 심정이다.

‘이런 능구렁이 같은 놈!’

음문촌장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펴지 못했다.

딱 봐도 알겠다. 혈천방주가 혈마록 한 줄기를 가지고 있고, 지금 사용 중이다.

산정에서 솟은 옹달샘이 작은 물줄기가 되어서 흐른다.

물은 한줄기다. 처음부터 두 줄기, 세 줄기로 나뉘어서 흐르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중간에 장애물을 만나면 비로소 갈라진다.

한줄기는 왼쪽으로, 다른 줄기는 오른쪽으로 흘러내린다.

물줄기 두 개는 이후 만나지 않는다. 만나는 수도 있지만 거의 만나지 않는다. 근원은 같지만, 전혀 다른 물줄기가 되어서 완전히 다른 땅으로 흘러간다.

음문촌이 물줄기 하나를 잡았다.

혈천방도 물줄기 하나를 잡았다.

음문촌장은 혈천방이 혈마록 물줄기를 잡은 사실조차도 오늘에서야 알았다.

‘여우 같은 놈!’

아무리 생각해도 혈천방주의 얼굴이 유들유들하다. 뻔뻔하다. 낯짝을 한대 후려갈기고 싶다.

혈마록이 갈라진 곳에는 혈마가 있다.

혈마는 음문촌에 구혼음소와 귀색혼령대법을 남겼다. 어떻게 하면 혈마를 조정할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그렇다. 다른 사람이 알려준 게 아니다. 음문촌이 깨우친 것도 아니다. 혈마가 직접 알려주었다. 어떻게 하면 혈마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지 구술로 전했다.

- 당신은 내 여자. 내가 미치면 혈마후가 되어서 날 조정해라. 추하게 내버려 두지 말고 죽여라. 당신이 죽으라고 하면 군말 없이 죽을 것이니.

혈마가 가르쳐준 귀색혼령대법, 구혼음소는 진결이다.

진결 그대로 운용하면 혈마는 자진한다.

자신 스스로 천령개(天靈蓋)를 후려친다. 물론 그 전에 생기 소멸도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두 번 다시 깨어날 수 없는 완벽한 자진이다.

그러면 남는 게 없잖나.

혈마후가 되어서 혈마를 조정할 수 있다면 천하에 다시 없는 강병을 손에 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병기를 허투루 버릴 수야 없지 않나.

혈마는 마도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마도가 어쩔 수 없이 원한다면 때로는 의식 없는 상태에서도 살인 정도는 해줘야 한다.

그래서 구혼음소를 변형시켰다.

구혼음소의 변형은 삼 단계로 이루어진다.

토초와 홀리가 알고 있는 구혼음소는 제일 마지막 단계다. 혈마를 조정하는 가장 약한 단계다. 아니, 음문촌에서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단계다.

삼 단계가 통하지 않으면 두 번째로, 두 번째마저도 통하지 않으면 제일 첫 번째로 옮아간다.

혈마가 첫 번째 단계마저도 거부하면 진결 그대로 구사한다.

혈마를 죽인다.

음문촌에는 최소한 혈마를 죽일 수 있는 진결이 있다. 오직 여인만이 시전할 수 있지만.

음문촌장은 호발귀가 혈마를 가볍게 제압했을 때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호발귀가 강하면 강할수록 음문촌에도 도움이 되니 좋기만 했다.

이제 토초가 두 번째 구혼음소를 숙지하는 중이다.

두 번째 구혼음소는 세 번째와는 상당히 다르다.

세 번째는 음고에 중독된 상태에서 펼치지만, 두 번째는 혈마가 된 상태에서 펼친다.

토초가 위험할 수도 있다.

혈마가 토초를 거부하면, 혈마후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토초는 죽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구혼음소가 펼쳐진 후이다. 혈마는 조정 상태에 빠진다.

지금 혈천방주가 호발귀를 몰아붙이는 것이 촌장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면 혈천방주는 왜 호발귀를 밀어붙이나.

그에게도 혈마를 조정할 방법이 있다. 그래서 혈천방 전력을 모두 소진하면서 난리를 치고 있다.

그러면 혈천방주가 왜 이 시점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혈천방주에게 혈마록 한 줄기가 남겨졌다면 굳이 음문촌 사람들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지 않을까? 혈천방이 직접 혈마를 만들면 되지 않나?

그게 아닌 것 같다.

혈천방이 가진 혈마록은 음문촌처럼 혈마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이 아니다.

오직 한 명, 진정한 혈마만 만들어낸다.

음고나 구혼음소를 통해서 조정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귀색혼령대법 같은 것도 없다.

대신 무엇인가가 있다.

그 ‘무엇’은 미완성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추측에 불과한데, 혈천방주가 완성된 혈마록을 지녔다면 굳이 음문촌 사람들을 끌어들일 이유가 없었다. 혈마를 만들라고 사람을 내어줄 리도 없다.

혈천방 혈마록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혈마록을 완성했을 것이라는 추측만은 떨치지 못한다.

‘여우 같은 놈!’

촌장은 혈천방주를 떠올리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혈천방주는 혈마가 어느 정도 완성되었는지 진행 과정을 보겠다면서 지하 뇌옥을 종종 방문했다.

그때 모종의 단서를 찾은 게 틀림없다.

그렇다. 혈천방주는 혈마 완성 과정에서 미완성 혈마록을 완성했다. 틀림없다. 그래서 호발귀가 나타날 때까지만 해도 전혀 싸울 의사가 없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돌변해서 혈천방 전력을 쏟아붓고 있다.

“후후후!”

음문촌장은 웃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보기 좋게 당했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한다.

“아버님 왜 웃으십니까?”

일자가 물었다.

음문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길은 피로 물든 숲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이렇게 되면 혈마 완성은 정해진 것이고…… 일단은 혈마가 방주 손에 건너가는 건가? 어렵게 됐군. 방주가 가진 것을 빼앗아오려면 무척 힘들겠어.’

촌장은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혈마를 빼앗긴 것은 아니다. 아직도 음문촌에는 혈마를 제거할 수 있는 무기가 있다. 얻지는 못해도 최소한 죽일 수는 있다.

‘그럼 수련 방향을 달리해야겠군. 이 단계에서 그치면 안 되겠어. 곧바로 진결까지…… 음!’

촌장은 또 미간을 찡그렸다.

다 좋은데 또 하나 걸림돌이 있다.

진짜 진결까지 가르쳐주면 그때부터는 촌장이 필요 없어진다.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형제들과 힘을 합쳐서 제거 움직임까지 일어날 수 있다.

피가 섞인 부녀지간? 음문촌 사람들에게 핏줄은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만도 못하다.

‘토초, 토초.’

토초는 싸움꾼이다. 혈마를 손에 넣으면 중원을 피로 물들이지 못해서 안달 낼 것이다.

토초보다는 차라리 홀리가 낫지 않을까?

아니다. 홀리는 이미 호발귀에게 정을 주었다. 한 번 마음이 빠져나간 계집은 다시 쓰지 못한다.

‘못난 것 같으니.’

촌장은 고개를 저었다.

불안하더라도 토초에게 기대본다.

천천히 이 단계 주문을 가르치고, 일 단계까지 가르쳐본다. 그리고 진결을 전수한다. 물론 진결을 전수하면서도 뭐가 더 남은 듯이 여지를 남겨 뇌야 한다.

“가자!”

음문촌장이 돌아섰다.

“정말 저걸 내버려 둘 겁니까?”

이자가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지금 저기를 내려가겠다고?‘

”호발귀와 싸우자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혈천방주만 잡으면 될 것 같은데요.’

“후후! 저기 있는 저놈들…… 저놈들은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것으로 보이냐?”

“방주가 싸우라고 하는데 싸우지 않을 놈들이 어디 있어요?”

사자가 말했다.

음문촌장은 고개를 내둘렀다.

입에서는 ‘못난 놈!’이라는 질책이 쏟아진다. 그런 말을 들을 가치도 없지만.

“잘 봐라. 잘 보고 나서 말해. 난 먼저 간다. 그래도 혈천방주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내려가고.”

“정말 그래도 됩니까?”

삼자가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모두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다.

“혈천방주를 잡아준다는데 내가 왜 말려. 말리지 않을 테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

“함정이 있군요.”

육자가 말했다.

음문촌장은 육자를 지긋이 쳐다봤다.

자식놈들이 줄줄이 있지만, 촌장이 제일 아끼는 자식은 일자와 육자다. 일자는 믿음직하고, 육자는 총명해서 귀엽다. 이자는 야망이 크고, 나머지는 그저 그렇다.

물론 후계자 중 홀리와 토초는 열외로 한다.

“여기서 저놈들 싸우는 걸 잘 봐라. 혈천방 놈들이 싸우기 싫어서 도망 다니는 게 보이겠지. 저놈은 숨은 놈들을 쫓아다니고 있고. 누구든 저 밑으로 내려가면 좋든 싫든 저놈과 싸워야 해. 저놈을 이길 자신이 있으면 내려가.”

음문촌장이 동굴을 향해 걸어갔다.

촌장이 말한 ‘그놈’이 호발귀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한다.

“음!”

일자가 신음을 흘렸다.

촌장 말을 듣고 다시 싸움을 보자 방금까지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확연히 보인다.

촌장 말이 맞는다. 혈천방도가 도망 다니기 급급하다. 그걸 쫓아다니면서 죽이고 있다.

“저놈 산 놈은 모두 죽이고 있어,”

이자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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