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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04화 (204/500)

第四十一章 혈미훈천(血味熏天) (4)

으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골짜기를 울린다.

“응? 이게 무슨 소리지?”

도천패가 눈살을 확 찡그리며 비명이 터진 곳을 쳐다봤다.

“아!”

당홍도 비명을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서 멀리 떨어진 곳을 쳐다봤다.

불길한 생각이 와락 치민다.

“무슨 일이지?”

“싸움이 벌어진 것 같은데. 설마 호발귀가?”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아아악! 크아아악!

비명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이가 산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야. 호발귀가 간 쪽 맞아. 아무래도 탈이 난 것 같아.”

당홍이 말했다.

두 사람은 음고를 찾아서 산을 넘었다. 죽은 다람쥐들을 쫓다 보니 어느새 산등성이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호발귀에게 탈이 났을 것 같으면 벌써 났다. 또 탈이 난다고 해도 누가 호발귀를 막을 수 있나. 오히려 호발귀에게 좋은 먹잇감만 될 뿐이다.

혈천방에서 혈마를 양성하고 있지만, 그것조차도 두렵지 않다.

문제는 긴 싸움이다. 또 호발귀의 뱃속에서 혈기를 끄집어내는 끈적끈적한 싸움이다.

등여산은 음고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저번에는 운이 좋아서 구혼음소에서 빠져나왔지만, 이번에는 결코 죽음을 벗어나지 못한다.

두려운 것은 딱 그것뿐이다. 그때!

“앗!”

갑자기 당홍이 손을 들어서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왜?”

“내가 잘못 본 것 같아.”

“뭘?”

“이거. 다람쥐들이 죽은 것. 이거 정사로 죽은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뭐라고!”

“의원들이라면 이런 죽음쯤은 침으로도 조작할 수 있을 것 같아. 독을 썼으면 내가 모를 리 없지. 그러니 독은 쓰지 않았고…… 다람쥐를 생으로 쪼아죽인 거야.”

“뭐, 뭐, 뭐라고!”

도천패가 깜짝 놀라서 경악성만 내질렀다.

“아무래도 이거 우리를 떼어내려고 만든 함정인 것 같아. 지금 우리가 듣는 저 비명은 호발귀가 만든 거야.”

아아악! 크악!

지금도 비명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처절하게 울려 퍼진다.

당홍이 말하지 않아도 호발귀가 아니면 혈천방 근처에서 저런 비명을 만들어낼 사람이 없다.

틀림없이 호발귀다.

비명을 들어보면 이것은 싸우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도살하고 있다.

도천패와 당홍은 이런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안다.

호발귀가 싸우는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비명이 이런 식으로 터지는 것에도 익숙하다.

“우리를 떼어놓는다는 것은 호발귀에게 한 번이라도 더 움직이라는 주문이야. 이런 식으로 장기전을 치르면 매우 위험해. 틀림없이 혈마가 될 거야.”

“옆에 책사가 있으니 잘 조절하지 않을까?”

쒜에에엑!

도천패와 당홍은 말하는 중에도 어느새 비명이 들리는 쪽으로 신형을 쏘아내고 있었다.

음고도 중요하지만 지금 제일 선급한 문제는 호발귀에게 가는 것이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벌써 늦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혈마는 안 되겠지?”

“아마도. 구혼음소가 있으니까.”

호발귀는 자진을 할망정 혈마는 되지 않는다. 그것만은 확신한다. 실제로 호발귀는 혈마가 되기 직전에 구혼음소를 읊조려서 자진한 경험이 있다.

“이거 어쩌다가 이런 얕은수에 당한 거지? 음고를 보자마자 눈이 뒤집혔잖아.”

“음고가 얼마나 귀중한지 알았으니까. 지금 호발귀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고.”

호발귀에게 음고를 사용하려면 한 여인이 희생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희생할 여인이 있다. 더욱이 호발귀를 위해서 모든 것은 던진 후에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그런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음고를 찾으면 당장 쫓아갈 수밖에 없다.

숲에서 죽어가는 다람쥐가 음고를 흉내 낸 것이라면 혈천방 역시 호발귀 상태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함정을 팔 수 있고.

쒜에에엑! 쒜에엑!

두 사람은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면서 힘차게 달렸다.

“잠깐!”

“하!”

두 사람은 일제히 신형을 멈췄다.

깊은 산속인데도 풀벌레 소리가 울리지 않는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주위가 쥐죽은 둣이 적막하다.

“뭐야? 장난질인가?”

도천패가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매복을 눈치챘다. 눈에 보이는 사람은 없지만 누군가가 분명히 숨어 있다.

스스슷! 스스스스!

뱀이 기어가듯 조용히 움직인다.

귀에 들리는 소리는 없다. 하지만 마음으로 소리가 들린다. 눈에 보이는 사람은 없지만, 마음으로 느껴지는 사람은 있다. 그것도 매우 많다.

“이미 포위됐어.”

“독은?”

“없지. 하지만 이자들 정도는 괜찮아. 내가 독 없으면 바보인 줄 아나 봐?”

“독활칠수가 있는데 누가 바보라고 해.”

“당신이.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잖아.”

“내가?”

“항상 날 보호하려고 애쓰잖아. 그럴 필요 없어. 싸움이 벌어지면 나는 상관하지 말고 마음껏 싸워.”

“후후! 그러지.”

도천패가 당홍의 볼을 살며시 만졌다.

스스슷! 스슷!

저들이 가까이 달라붙었다.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저들의 냄새, 느낌, 난폭함이 전신으로 느껴진다.

도천패와 당홍은 걸음을 멈췄다.

생각 같아서는 최대한 빠르게 이들을 뚫고 나가고 싶은데, 현실은 녹녹지 않다.

잠입해 있는 모습만 봐도 무공을 읽을 수 있다.

숲에 있는 자들은 두 사람이 최선을 다해야 간신히 뚫을 수 있을 만큼 강하다.

‘팔당!’

두 사람의 머릿속에 후딱 스쳐 간 생각이다.

만약 팔당 무인이 앞을 가로막은 것이라면 단순히 길을 막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도천패와 당홍을 죽이겠다는 심정으로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쌍학(雙鶴), 어때?”

도천패가 말했다.

“쌍학? 그건 아직 미완성이잖아? 미완성인 무공을 실전에서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해보자.”

“훗!”

당홍이 피식 웃었다.

“왜 웃어?”

“쌍학 핑계를 대고 날 보호하려는 거잖아. 속이 환히 보이기는 하는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그래? 그럼.”

도천패가 등을 내줬다. 그러자 당홍이 펄쩍 뛰어올라 도천패의 등에 올라탔다.

등에 업힌 것은 아니다. 두 발을 등에 붙이고 언제든 튀어 나갈 준비를 끝냈다. 두 손은 어깨를 잡고 있지만 업히려는 목적보다는 발판으로 이용하려는 측면이 커 보였다.

두 사람은 이런 모습을 실전에서 터득했다.

언제인가 다수를 상대로 싸웠을 때 무의식중에 이런 전법을 구사했는데, 아주 잘 통했다.

그때부터 이런 모습을 ‘쌍학’이라고 이름 짓고 수련했다.

스읏! 쒜에에엑!

도천패가 숲을 향해 한 걸음 내딛자, 숲에서 거센 광풍이 몰아쳤다.

예상했던 공격이다. 앞에서 덮칠지, 뒤에서부터 덮쳐올지 궁금하던 차이다.

“크하하!”

도천패가 앙천광소를 터트리며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쒜에에에엑! 퍼억!

두 손으로 잡은 월도가 힘차게 내리쳐졌다. 그리고 단숨에 공격해 온 자를 가격했다.

순간, 등에 업혔던 당홍이 등을 박차고 솟구쳤다.

당홍과 도천패는 서로의 허리에 줄을 묶어 놓았다.

그 줄에 의해서 서로 당기고 밀어내며 허공을 날아다닌다. 도천패가 잡아당기면 당홍이 당겨진다. 등을 박차고 솟구칠 때는 아무 거리낌 없이 날아간다.

쒜에엑! 퍽!

당홍도 숲에 있던 자를 가격했다.

그자는 당홍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즉시 뒤로 물러섰다.

당홍이 쫓아오면 주위에 있던 자들이 와락 달려들어서 포위한다. 즉시, 오방검진(五方劍陣)이 전개된다. 도천패와 당홍을 분리해놓고 당홍만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쉬잇! 탁!

도천패가 허리에 묶인 줄을 낚아챘다.

그러자 막 일 검을 떨쳐낸 당홍이 훅 당겨졌다. 그녀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도천패에게 끌려갔다.

사실, 이런 부분들은 사전에 조합되었다.

도천패와 당홍은 쌍학에 대해서 부단히 연구했다. 언제 나가고, 언제 당겨야 하는지 실전을 통해서 구분해 나갔다. 그 조합 중 하나가 방금 펼쳐진 것이다.

두 사람이 쌍학을 연구한 이유는 두 사람의 무공이 워낙 다르다는 점에 있다.

도천패는 굉장한 패도다. 힘으로 짓누르는 무공이다. 월도로 강하게 쳐낸다.

당홍의 무공은 조용하고 부드럽다.

독을 펼칠 때는 더욱 은밀해진다. 움직이는 듯 마는 듯 살짝살짝 흔들거리면서 살수를 떨쳐낸다.

한 사람은 완전한 폭풍우이고, 한 사람은 완전한 고요함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장점을 상대방의 무공 속에 녹여 넣을 수 없을까 하는 부분을 상의했다.

호발귀를 쫓아다니다 보니 두 사람의 무공은 그리 강한 게 아니었다. 호발귀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이나 되지 않았으면 좋을 정도였다.

호발귀 앞에 음문촌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 자들이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강하다. 귀무살은 어떤가? 수없이 나타나서 검을 휘두른다. 언제든 싸워야 한다.

기가 막힌 것은 혈마다.

결코, 무공으로 상대할 수 없는 초거력의 마인이 나타났다.

호발귀가 비교적 쉽게 제압하는 편이지만, 호발귀가 없으면 두 사람이 상대해야 한다.

어떻게든 무공을 증진시킬 필요가 있었다.

자신의 무공을 상대방의 무공에 녹여보자는 발상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그래서 쌍학을 탄생시켰다.

쌍학은 아직 무공이라고 할 수 없다. 검진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지금은 시험 단계에 불과하다. 하나씩 초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까?

탁!

당홍이 등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 순간, 도천패도 신형을 날렸다. 당홍이 날아간 방향과는 전혀 다른 쪽이다.

퍼억!

당홍이 먼저 가격했다. 그리고 그 순간, 도천패도 월도를 내리쳤다.

따앙!

검과 검이 부딪쳤다.

당홍이 내리친 검은 적을 살상하지 못했다. 도천패가 워낙 강하게 쏘아져 갔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 약간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덕분에 거리를 놓쳤다.

퍼어어억!

도천패는 아무 거리낌이 없이 상대방을 내리찍었다.

상대방은 검을 들어서 월도를 막았지만, 월도는 단숨에 검을 부수고 상대방의 안면을 내리찍었다.

휘이이익! 투욱!

당홍이 줄을 타고 날아와 도천패 등에 안착했다.

“시간 차이를 조금 맞춰야겠어.”

“좋아!”

도천패가 신이 나서 말했다.

당홍이 먼저 공격하고 그 후에 도천패가 공격하는 것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줄을 당기는 시간이 약간 늦는다. 제대로 귀환하지 못할 수가 있다.

줄을 늘이는 방법도 생각했다. 그러면 활동영역은 넓어지지만, 줄이 공격당한다. 쌍학의 묘리를 눈치채고 두 사람이 사이를 파고들 때, 마땅한 대처 방법이 없다.

당홍은 엄수(暗手)가 되어야 한다. 상대방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튀어나와 공격한다. 손을 뻗으면 반드시 살상할 수 있는 위치와 시간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두 사람은 반대다. 도천패는 적을 살상하는데, 당홍은 아직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 공격했다가 포위당할까 봐 재빨리 물러나곤 한다.

아직 쌍학이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다.

타악! 쉬이이익!

당홍이 도천패의 등을 박차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노리는 자가 보인다. 이번에는 반드시 격살하고자 검에 진기를 돋웠다.

‘서둘지 말자. 이제 시작이야.’

숲 전체에 적이 깔려 있다.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할지 모르지만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그러니 쌍학도 싸우는 중에 발전시키면 된다.

까앙!

검과 창이 부딪쳤다.

당홍은 이번에도 적을 격살하지 못했다.

그녀가 공격하는 모습이 너무 환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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