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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99화 (199/500)

第四十章 혈마(血魔) 시동(始動). (4)

등여산이 보인다.

희뿌연 연기가 등여산을 휘감고 있지만, 호발귀 눈에는 푸른 빛이 뚜렷이 보였다.

등여산이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눈에 봐도 길이 아닌데, 계속 더듬어 간다. 좋은 길을 놔두고 험한 길로 돌아간다.

‘진식.’

호발귀는 진식을 처음 봤다.

밖에서 보면 왜 저렇게 움직일까 싶은데, 정작 당사자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마음을 냉정하게 유지하고, 눈을 똑바로 뜨고, 전신 감각을 바싹 일깨운다.

그렇게 하고도 저런 모습밖에 보이지 못한다.

호발귀는 자신이 보이는 길로 그녀를 유도하려고 입을 벌리다가 다시 다물었다.

파팟! 파파팟!

주변에 살기가 쫙 깔렸다.

살기가 이 정도로 깔렸다면 사전에 이미 눈치챘어야 옳다. 하지만 이제야 알았다.

장진 스님과 상당히 깊은 부분까지 들어갔었다.

감각이 죽어서 외부 상황이 전혀 느껴지지 못할 깊이까지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스읏! 스스스스스!

살기가 자신에게 집중된다.

혈천방에서 봤던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라면 신법으로 피하면서 등여산을 끌어냈을 것이다. 그 정도 시간은 벌 수 있다.

달려드는 자들은 무인이다.

신법이 가볍다. 신형을 쏘아내는데 기척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살기도 정제되어 있다. 난폭한 살기라기보다는 치밀하게 계산된 차가운 살기다.

이것은 진기로 느낀 것이고…… 생기로도 확인된다.

사방에서 푸른 빛이 일렁거린다. 사람이 띄는 생기는 연한 푸른 빛인데, 숲 전체에 쫙 깔려 있다.

아무리 못 잡아도 백여 명은 넘어선다.

그런데 이번에는 푸른 빛 외에도 다른 게 보인다. 푸른 빛이 물결치는 것처럼 흔들린다.

진기가 움직이고 있는 현상이다.

장진 스님을 만나기 전만 해도 생기로는 무인과 범인을 구분하지 못했다.

지금은 구분이 된다.

‘기어이 싸움을 걸어오네.’

스릉!

호발귀는 검을 뽑았다.

이래서 장진 스님이 모습을 보인 것인가?

원래, 가부좌를 틀고 앉았을 때는 혈마록을 탐구할 생각이 없었다. 홀리에게 생기격타를 했는데, 생기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로 되돌아왔다.

그 부분을 생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장진 스님이 불쑥 튀어나와서는 오랜만에 혈마 팔공을 구경하자고 한다.

그때는 무심히 펼쳐 보였는데…… 몸이 싸움을 눈치챈 것이다.

치열하게 싸움을 치러야 하는데, 생기는 될 수 있는 대로 사용하면 안 된다. 혈마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생기를 떨치지 않고 싸우는 법을 모른다.

진기는 쓰지 않을 수 있다.

육신의 힘만으로 싸우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생기는 튀어 나간다. 단순히 주먹질만 해도 활력이 쏟아져 나간다.

생기 없이 싸움하려면 시신이 되어야 한다.

강시처럼 생명 없는 물체가 되어서 검을 쓰면 되는데, 그런 방법까지는 알지 못한다.

‘이래서 잘 사용해 보라고 했군. 혈마 팔공으로 상대할 수 있단 말로 들리는데. 그래도 생기는 사용할 수밖에 없고. 최대한 억제할 수 있다는 말이지. 해보자!’

호발귀는 검을 꾸욱! 잡고 일어섰다.

저벅! 저벅! 저벅!

호발귀는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숲에는 많은 사람이 숨어있다. 은신술이 매우 뛰어나서 일절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호발귀에게는 무의미하다. 숨어있는 모습이 환히 보인다.

저들은 차라리 앞에 나서서 칼을 들고 싸우는 게 낫다.

츠읏!

역천금령공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이령귀화를 쓰지 않았다. 장진 스님이 말했지 않나. 이령귀화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고.

사실, 굳이 이령귀화까지 끌어낼 필요는 없었다.

혈마 무공을 수련할 때, 역천금령공과 이령귀화는 머리 두 개 달린 쌍두사였다. 두 기운이 팽팽했다. 참회동에서 수련할 때는 역천금령공보다 이령귀화가 더 강했다.

그래서 이령귀화로 원정을 보호했다.

지금도 그런 뜻에서 같이 사용했다. 두 무공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동시에 일으켰다.

이령귀화는 화(火), 불이다. 양(陽)이다. 그래서 역천금령공을 음(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공을 사용하다 보니 역천금령공은 매우 강한 극양(極陽)이다. 그래서 이령귀화가 소양(少陽), 음의 역할을 한다고 여겼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장진 스님이 이령귀화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모험하는 셈 치고 이령귀화를 내려놓았다.

쌍두사 중 한쪽 머리만 쓴다.

꾸르르르릉!

역천금령공의 강맹한 기운이 전신을 휘돌았다.

숲에 푸른 빛이 있다. 바다처럼 푸른 물결이 출렁거린다. 진기가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다.

자신이 다가가는 것을 안다.

쒜에에엑!

호발귀는 검을 쳐내서 나무를 쳤다.

탁!

검이 나무에 박혔다. 아니, 박힌다 싶은 순간에 빙글 휘돌더니 나무 뒤편에 숨어있던 자를 찔렀다.

“크윽!”

사내가 목을 움켜잡고 쓰러졌다.

호발귀는 서둘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 모두를 죽여야 끝난다. 이들만 죽이고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어쩌면 무림에 나온 이후, 가장 많은 살육을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손속에 사정을 담지 않는다.

스읏! 퍼억!

이번에는 곧바로 나무를 찔렀다.

검이 나무를 관통해서 뒤에 숨어있던 자를 찔렀다.

“컥!”

이번에도 어김없이 짧은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호발귀는 상대방이 어디를 맞았는지 안다. 등을 뚫고 들어간 검이 심장을 정확히 찔렀다.

스읏!

손에 힘을 주어서 검을 뽑아냈다.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갔다. 역시 푸른빛이 넘실거린다.

“나와라! 숨어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내 눈엔 너희들이 다 보여! 차라리 나와서 발버둥이라도 쳐라! 그러려고 왔지 않나! 무인답게 싸워라!”

호발귀는 말을 하면서 검을 던졌다.

쒜에엑! 퍼억!

검이 날카로운 파공음을 흘리며 날아가서 정확하게 나무 한가운데에 틀어박혔다.

“끄으으윽!”

미약한 신음이 들렸다.

나무 뒤에 숨어있던 자는 고개를 푹 떨궜다.

그는 검에 꿰어서 쓰러지지도 못했다. 나무에 못 박힌 것처럼 박혀 버렸다. 검이 그를 꼬치 꿰듯 꿰어놓았다.

이제 호발귀는 검이 없다.

그러자 무인 네 명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우르릉!

호발귀의 손에서 우렛소리가 울렸다. 아니, 그 전에 왼손에서 탁! 하고 번갯불이 번쩍 터졌다.

달려들던 자가 일시 주춤거렸다.

귀화미요공에 시력을 잃었다. 한순간, 앞이 캄캄해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칼로 쳐야 할 호발귀마저 보이지 않으니 공격할 수가 없다.

퍼억!

사내의 머리에 구뢰마권이 터졌다.

동시에 호발귀는 사내의 손에 들린 칼을 빼앗았다. 그리고 신법 마형귀적을 펼쳤다.

스으으으읏!

그의 신형이 마귀의 움직임처럼 흐느적거렸다. 형체는 보이지 않고 그림자만 일렁거렸다. 순간,

“커억!”

“악!”

처절한 신음이 터지면서 혈천방도 세 명이 쓰러졌다.

한 명은 옆구리를, 한 명은 가슴을, 한 명은 머리를 맞았다.

배를 치고, 가슴을 치고, 머리까지 한 번의 궤적으로 세 명을 격살했다.

휘릭!

호발귀는 칼에 묻은 피를 허공에 뿌렸다.

허공이 아니다. 사실은 풀숲 깊은 곳에서 일렁거리는 푸른 빛을 향해서 뿌렸다.

핏방울을 맞은 자들이 벌떡 일어섰다.

숨어있는 모습이 발각된 이상 더는 숨어있을 필요가 없다.

“그래. 잘 생각했어.”

“죽어!”

그들이 달려들었다.

호발귀는 칼을 피하면서 동시에 칼을 쳐냈다.

한 명의 목을 맞고 쓰러졌다. 갈라진 목에서 피가 콸콸 쏟아졌다.

다른 한 명은 가슴 정중앙에 칼을 맞았다. 장도가 자루만 남기고 몸 깊이 뚫었다.

호발귀는 칼을 뽑을 생각도 않지 않고 놓아버렸다.

이미 다섯 명을 죽인 칼이다. 칼날에 사랑 기름이 묻어 있어서 매끄럽지가 않다. 핏물이 손막이를 타고 손아귀까지 흘러든다. 끈적끈적한 느낌이 싫다.

저벅! 저벅!

호발귀는 다시 걸었다.

“와라!”

호발귀는 도무지 거침이 없었다. 음성도 얼음처럼 차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 순간, 호발귀는 혈기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혈기가 꿈틀대고 있다. 역천금령공만 사용했는데도 혈기가 따라 올라온다. 원정 진기를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밖으로 터져나갔다가 돌아온다.

어쩔 수가 없다.

호발귀는 생기를 진기처럼 사용한다. 그러니 강하다.

본신진기만 사용했을 때보다 세 배, 네 배, 아니 열 배 이상 힘이 증폭한다.

그런 만큼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

이번에 처음으로 이령귀화를 완전히 배제하고 역천금령공만 사용해 봤다. 가능한 생기가 튀어 나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붙잡아두고 무공만 사용했다.

그런데도 생기가 쏟아져 나갔다가 돌아왔다.

혈마와 싸울 때처럼 전력을 다해서 생기를 사용하는 것이나 지금처럼 무공만 펼치려고 노력했을 때나 생기 사용에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들을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난다.

‘시간을 끌면은 곤란해.’

타악!

귀화미요공이 터졌다. 순간, 앞에 가로막던 푸른 빛이 움찔거렸다.

너무 밝은 빛이 눈앞에서 번쩍거렸다. 한순간에 온 세상이 캄캄해졌다.

꾸르르르릉! 꽈앙! 퍽퍽퍽퍽!

호발귀는 상대방의 복부를 연달아 다섯 번이나 가격했다.

구뢰마권은 매우 강력한 권법이다. 주먹을 쇳덩이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구뢰마권을 떨칠 때마다 우렛소리가 울리는데, 용수철처럼 손을 비틀면서 공격하기 때문에 파공음이 크게 일어난다. 그 소리가 마치 우렛소리처럼 들리는 것이다.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은 구뢰마권을 한 대만 맞아도 즉사한다. 하지만 호발귀는 무려 다섯 번이나 타격했다.

이미 살기가 거칠 것 없이 치솟는 중이다.

단지 죽이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완전히 짓이겨놔야 직성이 풀린다.

츠읏!

상대방의 검을 빼앗아서 꽉 쥐었다.

‘은호, 망흡. 일층우일층적몽경……’

호발귀는 살기가 치솟는 것을 깨달은 즉시 무심무실공을 일으켰다.

역천금령공을 버리고 명경지수처럼 차분하고 고요한 선도(仙道)의 기운을 불러왔다.

무심무실공은 어찌 보면 도가(道家) 무공처럼 보인다.

호흡에서 시작해 호흡으로 끝나는 것도 특이하다. 진기 운용이 삼(三)이라면 심공(心功)이 칠(七)이다.

원충노인은 도가 출신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천금령공이나 무심무실공이나 생기를 움직이는 것은 변함이 없다. 어떤 공부를 사용하든 생기가 따라서 움직인다. 다른 사람은 사용하지 못해서 안달인 공부인데, 호발귀는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래도 무심무실공을 일으킨 것은 그나마 무심무실공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기 때문이다.

‘제발 가라앉아라!’

호발귀는 칼을 잡고 푸른 빛을 향해 걸어갔다.

혈천방도 역시 이제는 숨지 않았다.

호발귀의 공격이 잔인해지자, 비로소 때가 되었다는 듯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호발귀는 이들이 대략 백여 명쯤 될 것으로 짐작했다. 하지만 싸움을 하는 동안 숫자가 불어났다. 이제는 거의 이백 명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이들은 하나같이 고수다.

호발귀가 너무 간단하게 죽여서 하수나 아니면 갓 입문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분명히 고수다.

호발귀의 무공에 생기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이들은 충분히 피했을 것이다. 칼을 막고 역공을 취해왔을 터이다. 도천패나 등여산이 공격했다면 그러고도 남는다.

“흐음!”

호발귀가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압도적인 무공을 가졌지만 사용하는데 시간제한이 있다.

혈기가 정신을 삼켜버리기 전에 싸움을 끝내던가, 아니면 혈마가 되어야 한다.

정말…… 빌어먹을 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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