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十章 혈마(血魔) 시동(始動). (2)
“그냥 보내시는 겁니까?”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음성만 들렸다.
“그놈 잡으려면 팔당 절반이 죽어. 더 죽으려나? 겨우 한둘만 남게 돼. 손해가 커.”
“혈마를 잡는다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소귀(小鬼).”
“네.”
“내가 네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나?”
“아닙니다!”
“그런데 왜 자꾸 의견을 말해. 귀무살 귀검이 왜 저렇게 변한 줄 알아? 응석을 몇 번 받아줬더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고만장한 거야. 너도 그럴래?”
“아닙니다!”
“제발 좀 편하게 살자. 왜 좋게들 대해주면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건지.”
혈천방주가 다른 의자에 발을 얹고 길게 드러누웠다.
소귀는 침묵했다. 방주는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혼잣말을 늘어놓을 뿐이다. 그러다가 궁금한 점을 불쑥 물어오는데, 이때는 즉시 대답해야 한다.
“음문은?”
“혈마 시신을 해체하고 있습니다. 동굴까지 폐쇄한 걸 보면 뭔가를 찾은 듯합니다.”
“흠! 그래? 이럴 때는 발 빠르네. 필요 없으면 치워버릴까 했는데 아직 제 몫을 하고 있다는 말이잖아. 그럼 건드리지 마. 조금 더 숨을 붙여놓자고.”
“혈마를 요구합니다.”
“다섯 명쯤 더 보내. 도구가 있어야 실험도 하고 연구도 하는 거지.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라고 분명히 못을 박아. 더는 한 명도 줄 수 없다고 말해.”
“네.”
“그리고 호발귀 말이야. 이대로 보내줄 수 없잖아? 일단 주변에 있는 놈들부터 떼어내. 싸리나무도 묶어서 다발로 만들면 강해지는 법이야.”
“네. 바로 떼어놓겠습니다.”
“일단 놈들을 떼어내고…… 일을 만들어보자고. 가!”
“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아! 그 뭐야, 비파 잘 타던 얘 있지? 걔 좀 들여보내. 비파 소리가 아주 좋아.”
“넷!”
소귀가 충실히 대답했다.
* * *
“엇! 이건!”
당홍이 걸음을 멈췄다.
“왜?”
도천패가 물었다.
“이거.”
당홍이 힘을 잃고 축 늘어진 다람쥐를 가리켰다.
“아! 죽은 다람쥐야. 하하하! 천하에 당홍이 죽은 다람쥐를 무서워하는 거야?”
도천패가 웃으면서 다람쥐 사체를 치우려고 했다.
“잠깐! 그게 아니고, 이거 아직 죽지 않았어.”
“뭐야? 죽어가는 다람쥐를 살려주려는 거야? 지금? 당매, 우리 그럴 시간이……”
“아휴! 좀 모르면 입이나 다물고 있어 줘.”
당홍이 눈빛을 반짝이며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다람쥐를 살펴봤다.
“왜 그래, 언니?”
등여산이 옆에 와서 같이 다람쥐를 봤다.
“암컷이야.”
“……”
등여산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당홍을 봤다.
“이거 암컷인데…… 암컷 다람쥐는 동물 중에서 가장 성욕이 왕성해. 발정기에는 암컷 한 마리가 매일 수컷 열 마리를 상대해. 붉은색 암컷 다람쥐는 열네 마리도 상대하고.”
“열? 열넷? 하! 대단하네.”
도천패가 흥미로운 눈으로 다람쥐를 쳐다봤다.
“그런데 얘는 너무 많이 상대한 것 같아. 서른 마리 이상? 힘이 완전히 빠져서 죽어가고 있어.”
다람쥐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다가 가끔 숨을 크게 들이쉬어서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한다.
죽기 직전이다.
“암컷 다람쥐가 과다하게 관계해서 탈진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 그래서 다른 동물에게 먹히기도 하는데, 얘는 그것보다 더해. 죽음의 정사를 벌였다고 할까?”
“죽음의…… 정사?”
정사를 벌인 후에 죽는다. 음고!
“설마?”
도천패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주위를 쑥 훑어봤다.
아! 또 있다. 오 장쯤 떨어진 곳에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다람쥐가 보인다.
쉬잇!
도천패는 한달음에 달려가서 다람쥐를 집었다.
“음!”
탈진해서 죽어가는 다람쥐다. 외상이 전혀 없는데, 거의 숨을 쉬지 못한다. 눈도 절반밖에 뜨지 못하고 있다.
“이것도 정사를 벌인 거 맞아?”
도천패는 다람쥐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 외에 다른 점은 찾아내지 못했다.
당홍이 다람쥐의 다리를 들어 올리고 밑부분을 살폈다.
“생식기가 완전히 망가졌어. 교미한 게 아니라 파괴한 거야. 특히 지금은 발정기가 아냐. 발정기도 아닌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어. 음고가 아니면 불가능해.”
등여산은 다람쥐를 쳐다보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음고에 침식당한 결과가 이렇구나. 하마터면 자신도 이렇게 죽을 뻔했구나.
단순히 ‘정사를 벌인 끝에 죽는다’ 정도만 생각했는데, 다람쥐 모습을 보니 죽음이 실감 난다. 사람이 만져도 전혀 저항하지 못한다. 완전히 축 늘어졌다.
다람쥐는 입가로 가는 피까지 흘리고 있다.
음고는 마물(魔物)이다. 사람이 손댈 물건이 아니다.
홀리는 음고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음고를 사용하면 다람쥐처럼 죽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데도 아무 주저함이 없이 사용하려고 했다.
당홍이 말했다.
“음고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게 음고에 침식당한 증세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진령산은 영산(靈山)이다. 산이 높고 골이 깊다. 물은 맑고 차다. 양지와 습지가 고루 분포되어 있어서 야생초가 자라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다.
약초꾼들에게 진령산은 천하에 다시 없는 보고다.
그만큼 약초가 즐비하다. 몇 걸음 걷다가 아무 풀이나 뜯어도 약초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우연히 독초나 독물을 발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음고, 아직도 필요해?”
당홍이 등여산에게 살짝 말했다.
“언니, 여긴 혈천방과 너무 가까워요. 이게 혹시 혈천방의 함정이면 상당히 위험해요. 안 되겠어요. 이번에는 포기해요.”
“음고는 천하의 다시 없는 보물이야. 일부러 찾아 나서도 찾을 수 없어. 그러니 그냥 갈 수 없고, 혈천방은 괜찮아. 내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어. 음고를 쫓아가면서 독물도 채집하면 돼. 음고를 사용하면 이렇게 되는데, 정말…… 필요해?”
당홍이 다람쥐를 들어 보였다.
등여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홍을 혼자 보내기가 불안하다. 하지만 같이 움직이는 것은 더 안 좋다.
호발귀는 이미 감시 대상이다. 주변에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다.
호발귀가 다른 쪽으로 움직여서 시선을 빼앗아 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당홍이 음고에 집중한다.
“그래, 그럼. 난 이쪽으로 갈게. 우리 나중에 수정(水亭) 마을에서 만나.”
“잠깐만요. 보위님, 언니와 함께 가주실래요?”
등여산이 도천패를 보면서 말했다.
“나야 괜찮은데…… 괜찮겠어?”
도천패가 호발귀를 쳐다봤다.
“같이 가세요. 형수님 혼자 보낼 수는 없으니까.”
“정말 그래도 돼?”
도천패가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좋은가? 말 안 했으면 큰일 날뻔했네.”
도천패는 이미 호발귀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당홍 옆에 찰싹 붙어서 벌써 움직일 채비를 갖췄다.
당홍이 말했다.
“얘 일 당한 지 반 시진도 안 된 것 같아. 수컷이 근처 어디에 있을 거야. 이르면 오늘 저녁, 늦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갈 수 있어. 먼저 가 있어.”
“그래요. 우리 먼저 가 있을게요.”
당홍이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그리고 재빨리 죽음 다람쥐를 쫓아서 숲으로 달려갔다.
등여산은 청죽진(靑竹陣)을 발견했다.
현재는 진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저 깨끗하게 자른 대나무를 꽂아놓았을 뿐이다.
물론 현재 상태만으로도 진로를 방해한다. 나무를 피해서 돌아가게끔 만든다. 함정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그러면 함정도 파놓아야 하는데, 함정은 아직 파지 않았다.
거기에 암기와 연무(煙霧)를 혼합하면 완벽한 청죽진이 된다.
청죽진에 팔괘(八卦)의 묘리를 보태면 팔괘진(八卦陣)이 되고, 형태를 어지럽게 변화시키면 미로진(迷路陣)이 된다.
청죽진은 아직 미완성이다. 대나무는 완벽하게 꽂혀 있는데, 함정과 암기 설치되지 않았다. 아직 활동하기 전이기 때문에 전혀 위험하지 않다.
등여산이 청죽을 만지면서 말했다.
“잠깐 이것 좀 봐야겠어.”
“대나무를 희한하게 꽂아놨네?”
호발귀는 청죽진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게 혈천방을 가리는 진법 중 하나인 것 같아. 지금 살펴두면 나중에 진법이 본격적으로 발동했을 때, 뚫고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어.”
“살펴봐. 급한 일도 없어.”
“여기 잠깐 있어. 빨리 들어갔다가 나올게.”
“혼자 가게?”
“혼자 가는 게 좋아.”
등여산이 웃었다.
진법은 여러 사람이 건드리면 좋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진법을 모르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당장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래, 그럼 다녀와. 나는 여기 있을게.”
호발귀가 나무 그늘에 앉았다.
등여산은 청중이 꽂힌 형태를 유심히 살피면서 걸었다.
역시 진형이다.
각각의 대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꽂혀 있다. 반걸음, 한 걸음, 두 걸음…… 걸음 수에 차이는 있지만, 꽂힌 간격이 자로 잰 듯 정확하다.
‘여긴 혈천방 외곽이야. 차후, 진입할 때 도움이 될 거야. 별로 특이한 점은 없는데……’
함정을 파놓으면 좋을 만한 자리를 찾았다. 암기를 설치하기 좋을 곳도 파악했다.
청죽진의 성패는 혼동을 일으키는 데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방향 감각을 상실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청죽진 안에서 요리할 수 있다. 그때,
푸웃! 파앗! 촤아아악!
주변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렸다.
“앗!”
등여산은 깜짝 놀라서 물러서려고 했다.
갑자기 뿌연 연기가 피어난다. 사방에서 한꺼번에 일어난 연기가 주위를 감싼다.
청죽진이 발동되었다.
호발귀는 미완성의 진이 발동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 진은 완전히 새로운 진이다. 자신처럼 진법을 아는 사람을 노리는 진이다.
등여산이 급히 뒤돌아섰지만 이미 사방이 희뿌옇다.
갈 길을 잃었다!
‘정신 차리고!’
등여산은 자신을 질책하며 걸어온 길을 상기했다.
청죽진이 발동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폭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진법 안으로 들어서면서 무심히 걷기까지 했다. 치명적인 실수다.
등여산은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꺾고 들어왔는지 되새겨봤다.
뒤로 두 걸음하고 반보를 더 물러섰다.
좌측으로 꺾어져서 걷다가 우측으로 돌아서 두 걸음을 걸어왔다. 그러니 두 걸음 반을 물러서면 우측으로 돌아서는 길이 나타나야 한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길이 있는데 운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것일까?
등여산은 제 자리에 서서 숨부터 골랐다.
분명히 보여야 할 길이 보이지 않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진법에 갇히면 무조건 침착해야 한다. 침착이 제일이다. 그 후, 냉정하게 사리 판단을 한다.
‘여기 분명히 길이 있어.’
등여산은 우측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길 대신에 딱딱한 대나무가 앞을 막았다. 그리고,
쒜에에엑! 쒜에에엑!
암기가 날아온다. 허공을 찢는 파공음이 매우 날카롭다.
등여산은 급히 허리를 낮추고, 왼발을 축으로 빙글 돌았다.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옆으로 두 걸음이 물러났다.
이 간단한 행동 때문에 청죽진이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뀌었다.
진영이 바뀐 것이다.
‘치잇! 걸렸네.’
문득, 등여산은 혼자 있을 호발귀를 떠올렸다.
“함정이야!”
그녀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도 청죽진은 소리까지 차단하지는 못한다.
호발귀가 대답하지 않는다. 그녀의 음성을 분명히 들었을 텐데 조용하다.
‘그럼 혹시!’
등여산의 머릿속에 퍼뜩 불길한 예감이 스쳐 갔다.
당홍이 본 음고…… 음고처럼 귀한 것이 단번에 눈에 띄었다. 당홍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그 일이 당홍을 떼어내기 위한 함정이었나?
당홍과 도천패는 음고로 유인하고, 자신은 청죽진에 가뒀다.
목표는 호발귀다.
“함정이야! 조심해!”
등여산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