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九章 첩심인(貼心人 : 허물없는 친구, 애인) (4)
“후후후! 여우와는 말을 섞는 게 아니지. 무조건 보자마자 죽이는 게 최선이야. 죽여.”
일자가 육자에게 말했다.
스릉!
육자가 검을 뽑았다.
육자는 상당한 미남자다. 음문촌 사람답게 거친 면이 있지만, 그것조차도 매력으로 보인다.
“아! 죽이기 아까운데.”
육자가 영 싸우기 싫다는 투로 말했다.
“이봐, 그냥 항복하지? 검만 내려놓으면 내 목숨을 걸고 안위는 보장해줄게.”
‘천만다행!’
등여산은 육자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바로 말했다.
육자가 명령을 쫓아서 즉시 공격했다면 말할 기회조차도 없었다. 그때부터는 죽음의 절차를 따르게 된다. 다행히 육자가 말을 해주는 바람에 딱 한 마디는 더 할 수 있다.
“호발귀가 혈마를 만들고 있어. 이 작업, 방해하면 너희 정말 죽어. 혈마가 화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여기 진령산맥, 피바다로 변할 거야. 농담 아냐.”
등여산이 묘한 소리를 했다.
호발귀가 혈마를 만든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일자가 물어왔다.
‘됐어!’
등여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이런 거짓말로 벌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짧다. 곧 거짓말이 들통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투리 시간이 모이고 모이면 긴 시간이 된다.
“호발귀가 혈마를 죽인 것 같아? 천만에. 예전 같으면 죽였지만, 지금은 아냐. 혈마에게서 혈기를 뽑아내고 있어. 귀색혼령대법보다 더 확실하게 노예를 만드는 중이지. 지금 완성된 게 혈마 세 개. 마지막 작업 중인데, 시비 걸 거야?”
“혈마에게서 혈기를 뽑는다고?”
“안 믿어져? 길 열어줄 게 들어가 볼래. 책임은 못 져.”
등여산이 길을 열었다.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혈기를 뽑아? 차라리 원정을 뒤바꾼다고 하지 그래?”
육자가 안으로 들어가려는 듯 걸음을 옮겼다.
등여산은 검을 내리고 완전히 길을 비켜주었다. 싸우지 않을 테니 마음 놓고 들어가 보라고 어깨까지 으쓱거렸다.
육자는 두 걸음을 옮긴 후 멈춰 섰다.
“이거 믿어야 하는 거야?”
육자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등여산이 너무 태연하다. 믿는 구석이 없으면 이렇게 태어날 수가 없다.
등여산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살단 책사였다. 그만큼 머리를 잘 굴린다. 연극 같은 것도 할 수 있다. 계략에 밝아서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등여산의 말이 사실이라면 육자가 제일 먼저 죽는다.
육자는 혈마를 이기지 못한다. 호발귀는 그런 혈마 네 명을 단숨에 베어냈다.
호발귀가 혈마를 노예로 만드는 중이라면, 그가 멀쩡하다는 뜻이다.
모든 예상이 빗나갔다.
일자가 육자에게 말했다.
“이런! 바보 같은 놈. 지금 망설인 거야? 밖에 나가서 바깥 공기 좀 쐬고 와!”
“아무리 형이라도 말이 심하네.”
“나가!”
얼핏 보면 자존심이 구겨질 정도로 질책하는 것 같다. 그리고 육자가 대드는 것처럼 보인다.
“제길! 다음에 태어나면 꼭 형으로 태어나야지. 이거 아니꼽고 더러워서.”
육자가 투덜거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지하 광장을 가로질러 계단을 밟았다. 그리고 거침없이 위로 걸어 올라간다.
정말로 바깥 공기를 마시러 나간다.
아니다. 뜻밖에도 일자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음문촌장에게 현재 상황을 보고하러 가는 것이다.
‘혈마를 노예로 만드는 게 가능해?’
등여산은 눈빛을 반짝 빛냈다.
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정말 가능했나?
등여산은 임시방편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지만, 음문촌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정말로 이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혈마의 혈기를 쳐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귀색혼령대법처럼 혈마에게 호발귀를 인식시키는 것이다.
가능성이 있다. 무심코 만들어낸 거짓말이 어쩌면 진실이 될 수도 있다.
일자가 망설인 것이 그 때문이다.
음문촌 사람들은 혈마에 관한 것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모두 연구해 봤다.
온갖 가능성을 다 열어두고 연구했다.
그중에 자신이 말한 것도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 아니,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단번에 먹힌 것이다. 지금도 뇌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지 않나.
등여산이 말했다.
“난 분명히 경고했으니까 판단은 알아서 해.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 하지만 누가 들어가는 즉시 난 탈출할 거야. 그때 싸움이나 걸지 마. 여기서 같이 죽기는 싫으니까.”
등여산은 완전히 길을 열었다.
호발귀에게 가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누구도 들어가지 못했다
뇌옥 안으로만 들어가면 등여산의 말이 맞는지, 틀린 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을 말했다면 뇌옥 문을 여는 즉시 공격당할 것이다.
죽음이 몰아친다.
“후후후!”
일자가 웃었다.
등여산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확인해야 한다.
일자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러자 사자가 즉시 일자의 읽고 화섭자를 꺼내 불길을 일으켰다.
타타탁! 타탁!
화섭자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고, 주머니에서 뿌연 연기가 확! 피어났다.
독분에 불이 붙었다.
독분이 타들어 가면서 뿌연 연기를 피워낸다.
“아!”
등여산은 속으로 탄식했다.
동굴로 들어오기 전에 피독단을 복용했는데, 겨우 동굴 안에 퍼져 있는 여독을 감당하기도 벅찼다. 지금도 귀색무 여독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번에는 진짜 귀색무다.
사방이 확 트인 곳에서 맡는 귀색무와 밀폐된 곳에서 맡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지하 동굴에서는 감당할 수 없다.
파아앗! 푸와아아악!
가죽 주머니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났다.
귀색무가 이제 막 번지기 시작했는데, 벌써 머리가 띵하고 울린다.
‘안 돼!’
등여산은 머리를 쥐어짰지만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저들은 이미 뇌옥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연기가 조금 더 번지면 바로 들어간다. 그러면 쓰러져 있는 호발귀를 발견할 것이고…… 모든 게 끝난다.
‘공격하자!’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끄는 방법은 공격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다.
“후욱!”
등여산은 몸의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귀색무가 벌써 신경을 차단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호발귀가 죽음에 들기 직전에 생기를 북돋워 주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그녀의 생기는 굉장히 맑고 청량하다. 조밀하고 강하다.
숨을 조절하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다.
“으으!”
등여산이 검을 들어 올리자, 일자가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헛수고하지 마. 이걸 피운 이상 끝났어. 나도 네가 하던 그대로 할 수 있는데. 일절 저항하지 않을 테니까 공격할 수 있으면 해봐. 날 찌르면 물러서지.”
일자의 장담은 허언이 아니다. 사실이다.
“으으!”
등여산은 신음만 흘릴 뿐,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귀색무가 몸을 마비시켰다. 아직 정신이 툭 떨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저벅! 저벅! 저벅!
사자가 뇌옥으로 걸어갔다.
귀색무를 피우는 순간부터 이들은 뇌옥 안으로 들어갈 결심을 굳혔다. 등여산 말이 사실이고, 목숨에 위협을 느낀다고 해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덜컹!
뇌옥 문이 열렸다. 그리고 사자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들어갈 때보다 더 빠르게 튕겨 나왔다.
“헉!”
그는 뇌옥을 벗어난 후에야 헛바람을 토해냈다.
“뭐야!”
“호발귀! 나오려고 해!”
“뭣!”
일자와 사자는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행동은 신속했다. 그들은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광장을 가로질러서 계단을 밟았다. 그리고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동굴 밖을 향해 쏘아갔다.
‘나오려고…… 한다고? 그럼 깨어난 거야?’
등여산은 믿을 수 없는 말에 비틀거리면서 뇌옥으로 걸어갔다.
벽을 짚고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서 간신히 문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안쪽을 살펴보기만 했다.
호발귀는 깨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죽은 상태다.
꼼짝도 하지 않는다. 혈색도 돌아오지 않았다.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온기가 없다.
사자는 무엇을 보고 호발귀가 걸어 나온다고 한 것일까?
호발귀가 서 있기는 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축 늘어져 있었는데 벌떡 일어나 있다.
귀색무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일어섰던 것 같다.
사자는 일어서 있는 모습이 걸어 나오는 모습으로 착각했다. 차분히 쳐다봤다면 단지 서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았을 텐데, 선입견이 너무 강했다.
호발귀는 손가락 하나면 쓰러트릴 수 있는데 지레 겁을 먹고 도주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약 올라 할까.
“일어서준 덕분에 우리 또 살았네. 고마워.”
쿵!
등여산은 기어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귀색무를 흡입하고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용하다.
“후우!”
호발귀는 가늘고 긴 숨을 내쉬었다.
음고처럼 귀색무도 자극을 준다. 분명히 혈기에 자극을 받았다. 죽음에서 깨워주었다. 하지만 음고처럼 여색에 미친 인간은 만들지 않는다.
귀색혼령대법에서 앞뒤가 바뀌었다.
귀색무로 제압하고 구혼음소로 혈마후를 인식시켜야 하는데, 구혼음소가 먼저 터진 후에 귀색무가 터졌다. 구혼음소는 인식 작용 대신 죽음으로 이끌었고, 귀색무는 제압하는 역할 대신 정반대 성격인 원정을 일깨우는 작용을 했다.
호발귀는 귀색무 덕분에 구혼음소에서 깨어났다.
“후우우우!”
긴 숨을 내쉰다.
귀색무 자극을 받고 육신에 생기가 들어찼다. 그리고 동시에 강한 살기를 읽었다.
상당히 강한 진한 살기가 주위에서 풍긴다.
적이다. 등여산이 감당할 수 없는 적이 왔다. 어쩌면 등여산은 벌써 제압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보려고 노력했다.
그런 몸부림이 그를 일어서게 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갓 죽음에서 벗어난 상태다. 아직 멀쩡한 상태가 아니다. 구혼음소를 완전히 떨쳐내고 죽음에서 깨어나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다.
일자나 사자가 그를 쳤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츠으으읏!
생기가 급격하게 밀려들었다.
등여산은 뇌옥 문을 등지고 쓰러졌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호발귀를 보호하려는 안간힘이 쓰러진 모습에서 읽혔다.
츠으으읏!
호발귀는 독섬칠공을 일으켜서 등여산이 흡입한 귀색무를 빼냈다.
진기를 이끌어서 몸에 박힌 독기를 깔끔히 거둬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몸 안으로 끌어들였다.
귀색무 독기는 단전에 응축되었다.
독섬칠공은 귀색무 독기를 외부로 흘려보낼 수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체내에 가두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일부러 가뒀다. 귀색무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발귀는 등여산의 전신 경혈을 타통시켰다.
타타탁! 타타타탁!
태산금나처럼 뛰어나지는 않지만, 호발귀는 탁기를 밀어내는 데는 따를 사람이 없다.
독기와 탁기를 깔끔하게 거둬냈다.
“하아아악!”
등여산이 거친 숨을 쏟아냈다.
호발귀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모두 말했다.
귀색무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까지도, 그래서 귀색무 독기를 가둬놨다는 사실까지 모두 말했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등여산이 생각할 수도 있다.
“귀색무가 음고처럼 작용했다는 거네? 이건 언니한테 말해봐야겠다. 언니가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제발 여기서 뭐라도 건졌으면 좋겠다.”
등여산이 몹시 기뻐했다.
음고 외에 호발귀를 죽음에서 꺼내줄 독기를 또 찾아냈다.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때, 호발귀가 미간을 찡그렸다.
“왜? 어디가 잘못됐어?”
등여산이 급히 물었다.
“사람이 있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지금에야 발견했네.”
호발귀가 동굴 한구석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