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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92화 (192/500)

第三十九章 첩심인(貼心人 : 허물없는 친구, 애인) (2)

혈마의 혈기는 자신의 혈기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혈마의 혈기를 일부러 만진 것이다. 혈마를 죽이기 위해서 생기격타를 한 게 아니고, 자신의 생기와 얼마나 다른지 알아보고 싶었다.

결론은 똑같다.

자신의 생기에는 푸른 빛이 감돈다. 활력이 넘친다. 혈마의 생기는 희뿌옇다. 칙칙하고 음습하다. 파괴와 죽음이 일렁거린다.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호발귀가 만져본 결과, 두 생기의 본질은 똑같다.

삶과 죽음은 한 몸이다.

삶이 있고,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삶이 있다. 죽음이 따르지 않은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삶이 없는 죽음도 없다.

무덤 속에 들어가 있는 시신도 어느 때 인가는 빛나는 삶을 살았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죽어서 태어난 사산아도 잉태 당시에는 활기찬 생명력을 보였다.

자신의 기운과 혈마의 기운이 이렇게 연결된다.

혈마와 자신은 누가 봐도 완전히 다르다. 한쪽은 사람이고 한쪽은 괴물이다.

하지만 호발귀는 혈마가 자신과 똑같은 사람으로 보인다. 외형적인 모습뿐만이 아니라 혈마의 살기, 혈기까지도 아주 당연한 것처럼 인식된다.

이것이 문제다.

혈마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호발귀 개인 생각이다. 혈마가 되어 가는 과정은 일상생활처럼 평범하다. 혈기가 치민다고 해도 나 자신이 나빠진다거나 못된 인간이 되어간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나는 변한 게 없다.

지금까지는 온종일 베풀면서 살아왔다. 이제부터는 나에게 나쁜 짓을 하는 자는 죽이겠다. 생각이 그 정도 바뀐 것에 불과한데, 그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호발귀에게 혈기는 정말로 그 정도의 느낌밖에 주지 않는다.

끝없이 치솟는 살기? 분노? 상대가 나쁜 놈이기에 죽이겠다는 것인데 잘못되었나?

도천패? 덩치가 좋다. 검을 몇 번이나 찌르면 죽을지 궁금하다. 그래서 알아보려고 한다. 등여산은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 그래서 죽이려고 한다.

이것이 잘못되었나?

세상 사람들에게는 혈마가 나쁜 놈으로 보이겠지만 정작 당사자는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전에는 살기가 치솟으면 당장 알아챘다. 하지만 이제는 감각이 둔해지고 있다. 정당한 생각과 잘못된 생각의 기준이 날이 갈수록 모호해진다.

사망의 골짜기를 건너간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죽음인데,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간다. 죽음을 맞는다.

정신이 똑 떨어진다.

이 상태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면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무척 싱겁다. 죽음이라는 현상은 아주 짧고 간단하다. 죽음에 이르기까지가 어렵지, 일단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되면 오히려 평온해진다.

죽나? 잠드나? 이제 쉬어야지.

죽기 직전에 느끼는 것은 아직도 자신에게 죽음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자각이다. 죽음과 자신과는 영 별개라는 느낌, 죽음이 곧 일어나겠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정말로 죽음의 순간을 느끼면서 절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구혼음소를 읊는다.

구혼음소는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길을 열어준다.

천만다행이지 않은가. 이런 일을 홀리나 등여산에게 맡기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호발귀는 기꺼이 죽음의 골짜기로 들어섰다.

* * *

“도천패와 당홍이 북산(北山)에 있습니다.”

“북산!”

보고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음문촌장이 벌떡 일어섰다.

“혈마! 애들! 애들을 어떻게 해놓고 왔어!”

촌장이 자식들을 쳐다봤다.

“토초가 없으니 당연히 묶여 있죠. 그 악귀들을 누가 건드릴 수나 있나요?”

삼자가 말했다.

현재, 토초는 부상이 심해서 북산 토굴로 가지 않았다. 혈천방 의실(醫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래서 혈마는 묶어 놓은 상태로 있을 것이다.

혈마는 요물이다.

멋모르고 뇌옥 안으로 들어가면 혈마에게 걸려든다. 꼭 손발을 놀려야만 공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혈마처럼 생각만으로도 공격할 수 있다.

혈마를 쳐다보면 숨이 막힌다.

일단 숨이 막힌다고 생각하면 모든 게 끝났다. 이미 혈마에게 걸려들었다.

두 다리가 나른해져서 털썩 주저앉는다.

그때부터 온갖 망상이 시작된다. 갑자기 세상에 대해서 회의가 치민다. 더러운 세상이다. 이따위 생각을 왜 살고 있나. 지금 죽으나 내일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사는 게 힘들기만 하고 차라리 지금 죽어버릴까?

살아야 한다는 의욕이 싹 사라진다.

혈마 공격 중 이것이 가장 무섭다. 정도가 심해지면 검을 들어서 못을 긋는 일까지 벌어진다.

그러니 혈마는 오직 토초만 손댈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뇌옥으로 들어갔다가는 죽어서 나오지 못하는 수가 생긴다. 그것은 촌장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무공이 어느 정도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한다.

다른 사람이 뇌옥에 침입했다면 코웃음만 흘릴 뿐, 일어서지도 않는다.

상대는 호발귀다. 혈마와 동질의 혈마다.

보고가 이어졌다. 보고는 음문촌장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혈천방 방도가 혈천방주에게 하는 것이다.

“호발귀와 등여산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북산을 뒤지는 중이 아닌지 추측됩니다. 저희는 도천패와 당홍이 북산 입구를 지키고 있어서 올라가 보지 못했습니다.”

“북산을 뒤지는 모양인데, 혈마가 괜찮을까?”

혈천방주가 음문촌장을 보며 말했다.

혈천방주는 걱정하는 투로 말했지만, 얼굴을 웃고 있었다. 재미있는 구경을 한다는 듯이.

“북산을 뒤진다니 가봐야겠지. 호발귀가 혈마 네 명을 간단히 죽였지만, 이번에는 좀 다를 것이야. 혈마는 죽겠지만, 호발귀도 무사하지 못해. 우선 다녀와서 이야기하지.”

촌장이 밖으로 걸어 나갔다.

촌장의 다섯 자식이 놀이라도 가는 듯 뒤따라갔다.

“이번에도 혈마를 잃으면 저것들 치워야겠어. 혈마를 만들기가 얼마나 힘든데, 소모품처럼 던지고 있잖아. 이러려고 그 비싼 돈 들여서 만든 게 아닌데.”

방주가 싸늘하게 말했다.

“준비할까요?”

얼음처럼 차디찬 음성이 들려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들인 건 맞는데…… 그것참…… 먹자니 먹을 게 없고, 버리자니 찜찜하고.”

혈천방주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혈마를 통제하려면 세 가지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 귀색무와 구혼음소다. 그리고 귀색혼령대법이다. 이 세 가지가 없으면 혈마는 통제 불가능하다.

귀색무는 음문촌장이 쥐고 있다. 구혼음소는 팔 하나 잃은 토초가 가겼다.

이 두 개를 준비한 후에야 귀색혼령대법이 쓰인다.

음문촌을 버린다는 것은 혈마를 버리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함부로 내칠 수도 없다.

“일단 준비나 해둬. 눈치채지 않게.”

“넷!”

대답 소리가 믿음직스럽게 울렸다.

“그놈 참…… 내게 올 줄 알았는데, 북산을 뒤져? 혈마부터 처리한 후에 내게 오겠다는 거지? 후후! 그런데 북산에 혈마가 있는 것은 어떻게 알았지?”

혈천방주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 *

당홍은 독이 떨어졌다.

독인이 독을 갖고 있지 않으면 정말로 무기력해진다. 어쩔 수 없이 본신 무공으로 싸우지만 뭔가 심심하다. 꼭 양손을 등 뒤로 묶고 싸우는 기분이다.

“약방부터 들릴 걸 그랬어.”

“약방에 독이 있나? 없을걸? 약방 같은 곳에서 독을 준비해 줄 이유가 없잖아.”

“독을 사는 게 아니라 약을 사는 거야. 약초를 극성으로 배합하면 독이 되거든.”

“그래? 그럼 진작 들릴걸. 난 소용없을 줄 알고 생각도 못 했네.”

“괜찮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 거지 뭐.”

당홍은 도천패가 이해하지 못할 말을 했다.

“쩝! 생각할수록 아깝네. 그 자식, 나한테 원한 있는 것도 아니고 멀쩡한 칼을 왜 분질러!”

도천패가 중얼거렸다.

“취롱도?”

“응. 생각할수록 아까워. 상당한 보검이었는데.”

도천패가 입맛을 다셨다.

도천패는 칼이 없다. 혈천방을 돌아다니면서 아무거나 손을 잡히는 대로 칼을 하나 집어 들기는 했지만, 예전에 쓰던 대도에 비하면 재질이나 날카로움, 강도 면에서 훨씬 못 미친다.

이럴 때 취롱도를 쥐고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선물 하나 줄까?”

당홍의 의미심장한 말을 하면서 등에 지고 있던 봇짐을 풀었다.

쨍그랑!

맑은 쇳소리가 보자기 안에서 울렸다.

“이게 뭐야?”

“취롱도. 풀어봐.”

도천패는 취롱도라는 말에 재빨리 보자기를 풀었다.

그러자 보자기 안에서 다섯 조각으로 갈라진 도편이 나왔다.

잘린 칼 조각에는 아직도 날카로움이 번뜩인다. 아직도 사람을 벨 수 있을 것 같다.

당홍이 말했다.

“이걸 옆에 두고 이것과 똑같은 칼을 만들어. 대장장이였다면서? 못 만드는 칼이 없다며? 취롱도도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일부러 가져왔어.”

“아이고 예쁜이.”

도천패가 당홍을 와락 껴안았다.

당황은 거부하지 않았다.

“색시 잘 얻은 줄 알아.”

“이 정도로?”

“이런 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아! 이 자식들! 분위기 딱 좋은데, 반 시진만 내버려 두지.”

도천패가 말하면서 칼을 잡았다.

“그러게. 분위기 깨는 데는 뭐 있네.”

당홍도 검을 뽑았다.

사람들이 걸어온다. 음문촌장이 자식 두 명을 데리고 유유히 걸어왔다.

음문촌 사람들하고는 한 번 겨뤄봤다. 일 대 일 상대다. 이 대 일로 가면 확실히 불리해진다. 싸울 상대는 비록 세 사람뿐이지만 벅차다는 느낌이 든다.

“그나마 셋만 왔으니 천만다행이네. 저놈들 모두 여섯이지?”

“토초까지 일곱.”

당황이 품에서 작은 쇠 구슬을 꺼냈다.

“뭐야?”

“쇠 구슬.”

“그걸로 뭐하게? 암기로 사용하게?”

“저놈들에게 이런 게 통하겠어? 이걸로 속여보려고. 안 통하면 말고.”

당홍이 쇠 구슬에 손에 쥐고 달그락달그락 굴렸다.

“큿큿! 큿큿큿!”

두 명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다가왔다.

도천패를 향해서 다가오는 사람은 이자다. 대청에서 싸워본 경험이 있다.

당홍에게는 삼자가 달라붙었다.

“우리 승부를 내야지? 이번에는 도망가지 말라고. 치사하잖아. 싸우다가 뒤꽁무니를 보이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주둥이는 살았네?”

이자가 칼을 들어서 도신을 혀로 핥았다.

“난 칼을 닦지 않아. 여기에 묻은 피와 기름을 이렇게 핥아먹어. 네놈 것도 먹어줄게.”

“이거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간 놈이네. 아무래도 오늘 너 죽어야겠다.”

스읏!

도천패가 칼을 들어 올렸다. 그때,

“모두 움직이지 마. 나, 이거 사용하기 싫거든.”

당홍이 낭랑하게 말하며 쇠 구슬을 만지작거렸다.

“그게 뭐야? 먹는 거야? 먹는 거면 빨리 줘. 난 소화력이 좋아서 그따위 쇠 구슬 따위는 단박에 소화해.”

삼자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이놈은 몰라. 저놈은?’

당홍은 삼자 뒤에 있는 촌장을 쳐다봤다.

뒤에서 팔짱을 끼고 싸움을 구경하려던 음문촌장의 미간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안다!’

당홍은 자신감을 얻었다.

“소화를 잘한다면 줘야지. 와! 와서 내 멱 따.”

당홍이 검을 들지 않았다. 쇠 구슬도 던지지 않았다. 달그락달그락 움직이기만 한다. 정말로 삼자의 칼에 목숨을 맡기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건 또 무슨 장난이지?”

삼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 설마 유부굉(幽府轟)이냐?”

음문촌장이 말했다.

‘유부굉’이라는 말이 나오자 희희낙락하던 이자와 삼자가 사색이 되어서 뒤로 물러섰다.

“맞아. 이거 하나면 여기는 완전히 죽음의 땅이 돼.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다 같이 죽자는 거지.”

당홍이 활짝 웃었다.

“독이 다 떨어진 줄 알았는데, 진짜를 가지고 있었군.”

음문촌장이 사나운 눈길로 당홍을 노려봤다.

유부굉은 지옥까지 죽음으로 물들인다는 전설적인 독단이다.

유부굉을 터트리면 사방 삼십 장이 죽음의 땅으로 변한다. 모든 생명체가 말살당한다. 땅속에 있는 지렁이까지 죽는다. 그리고 향후 십 년 동안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땅이 된다.

유부굉이 터지면 모두 죽는다. 음문촌장도 죽고 당홍, 도천패도 죽는다.

“하! 악독한 것!”

삼자가 당홍을 쏘아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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