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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90화 (190/500)

第三十八章 이견(異見) (5)

“원정을 치지 않겠나니! 그건 혈마 무공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이잖아! 무인이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럼 무공 수준도 서로 맞춘 다음에 싸워야지! 그건 왜 안 해!”

도천패가 약이 오르는지 씩씩거렸다.

“나도 반대. 그런 약속은 하는 게 아닌 것 같아. 편하게 이길 수 있는데, 괜히 험한 길로 돌아가는 거잖아.”

당홍도 말했다.

“무지와 월도가 어디 있는지 알았으니까, 이제 귀무살 쪽은 급할 이유가 없어졌고.”

등여산이 말문을 돌렸다. 하지만 도천패가 호발귀를 놓아주지 않았다.

“왜 그런 약속을 했는지 알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비무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목숨을 걸었잖아. 그럼 서로 최선을 다라는 거지. 귀검, 적이야! 정신 차려!”

도천패가 쏘아붙였다.

“이건 여기서 일단락 짓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하나만 집중해요. 사부를 찾는 것. 어때요?”

등여산이 다시 화제를 돌렸다.

“당연히 찾아야지. 여기까지 왔는데.”

도천패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사부가 어디 있는지 귀검도 모른다면 혈천방주에게 직접 물어봐야 한다는 거잖아. 찾아가 볼 거야?”

당홍이 호발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찾아가 봐야지.”

대답은 역시 도천패가 했다.

도천패는 아무래도 귀검을 놓아준 것이 못내 섭섭한 듯했다.

그때, 조용히 말만 듣고 있던 호발귀가 말했다.

“그것보다…… 방금 싸울 때 역천금령공을 썼어. 혈기가……”

“아!”

모두 깜짝 놀라서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가 너무 자연스럽게 싸움을 이어가서 아무 탈이 없는 줄 알았다.

아니다! 호발귀는 분명히 생기격타를 했다. 생기를 사용한 무공은 크고 작건 간에 오염을 일으킨다.

호발귀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나 좀 쉬어야 해.”

“그럼 변한 게 하나도 없네?”

호발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기가 오염되면 혈기가 일어난다. 살기가 일어난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정신 상태가 올바르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게 조금 다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살기나 분노가 일어나면 본인 스스로가 알아챈다. 화가 치솟는데 모를 수 없다.

호발귀는 알아채지 못한다.

살기?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 그게 뭐? 당연하지 않나? 사람이면 누구나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는 거 아닌가? 세상을 뒤엎고 싶은 분노? 그게 뭐? 너도 그런 분노가 있잖아. 당연한 거 아냐? 그런 게 없는 사람도 있나?

호발귀에게는 분노, 폭력, 살인 같은 행위가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다른 사람이 보면 혈마가 살인귀이지만, 혈마 자신은 자신을 스스로 매우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이 더 무서운 것이다.

“언니, 보위님. 호법 좀 서 줘요.”

등여산이 재빨리 말했다.

누가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호발귀가 말한 쉬어야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당홍과 도천패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도천패는 귀검을 왜 놓아주었냐고 다그쳤는데, 사실을 호발귀가 더 위급한 상황이다. 귀검을 생기격타로 죽였다면 또 혈마로 둔갑하지 않는다고 보장하지 못한다.

반대로 귀검이 호발귀 상태를 알았다면 순순히 물러났을까? 아니면 혈마로 변할 때까지 계속 다그쳤을까.

호발귀가 혈마로 변하면 귀검은 죽는다. 하지만 호발귀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혈마가 되려다가 멈춘 상태가 아니라 완전히 바뀐 상태로 변할 테니까.

어느 쪽이 놔줬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순간, 호발귀가 고개를 뚝 떨궜다.

호발귀는 어느새 구혼음소 속으로 들어갔다. 죽었다.

등여산이 당홍에게 속삭였다.

“언니. 음고 좀 구해줄 수 있어요?”

“음고? 그걸 내가 어떻게 구하니!”

“못 구해요?”

“호발귀가…… 또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등여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 가능성 있는 사람이니까.”

“흠! 음고는 구하기가 쉽지가 않아. 산삼을 열 번 정도 발견할 운이 있어야 음고 한 마리를 구할 수 있어. 그러니 구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봐야지. 아마 음문촌도 세상을 이 잡듯이 뒤진 끝에 그걸 찾아냈을 거야.”

“음고가 몹시 귀한 거였네요?”

“사람에게 아주 해악을 끼치는 물건이니 차라리 구하기 어려운 것이 더 낫지.”

“그러네요.”

등여산이 힘없이 말했다.

“정확하게 어떨 때 쓰이는 물건을 원해?”

“죽은 상태에서 깨어나는 약이요. 음고는 호발귀를 죽음에서 끄집어냈어요.”

“음!”

당홍이 신음했다.

“그런 용도라면 신경을 일시에 자극한다거나, 뇌를 건드리거나, 심장을 강하게 쳐야 할 거야. 마땅한 게 있을지 모르겠다. 한번 생각해볼게.”

“고마워요. 언니.”

“그러나저러나 책사 팔자도 우습네. 어쨌든 이제 책사는 천살단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잖아. 우리랑 같은 부류가 됐는데, 억울하지 않아?”

“억울하기는요. 전혀요.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해서 날아갈 것 같아요. 호호호!”

등여산이 활짝 웃었다.

호발귀는 네 시진 만에 깨어났다.

긴 밤을 꼬박 죽은 채로 지냈다.

파옥도를 생기격타하고 귀검과 싸우면서 잠깐 혈기를 흘린 정도인데, 아주 긴 죽음이 찾아왔다.

‘시간이 길어지고 있어.’

호발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정도의 생기격타는 길을 오는 도중에 진기를 향상하기 위해서 던졌던 생기격타와 비슷하다.

파옥도를 칠 때 강하게 쳐내기는 했지만, 순간적인 타격이라서 오염이 심하지 않았다. 귀검에게 흘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저 냄새가 풍긴 정도다.

그런데도 네 시진, 반나절이나 죽어있었다.

등여산이 자신을 희생해가며 깨우기 전에 비하면 죽음 상태가 거의 두 배는 늘어났다.

구혼음소에서 회복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다면 생기격타는 함부로 쓸 수 있는 무공이 아닌 게 된다.

“이번에는 조금 길었네?”

등여산은 호발귀 상태를 정확히 파악했다.

“……”

호발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원해서 길어진 것도 아닌데 괜히 등여산에게 미안했다.

등여산이 손을 꼭 잡았다.

“앞으로는 내 앞에서만 무공을 사용해. 나 없는 데서는 절대 사용하지 마. 내가 뒤를 봐줄게.”

“여산. 휴우!”

호발귀는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등여산이 어떤 짓을 당할지 안다. 몸으로 부딪칠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안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벌이고 싶지 않은데, 상황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등여산이 말했다.

“난 괜찮아. 나중에 나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 알지?”

호발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저벅! 저벅! 저벅!

귀검이 대청을 걸어 들어갔다.

띠디디딩! 띵띵띵! 디디디딩!

비파 소리가 맑게 대청을 울렸다. 음률의 고저장단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매우 아름다운 비파음이다.

“상초창창충절절(霜草蒼蒼蟲切切) 촌남촌북행인절(村南村北行人絶)……”

비파를 타는 여인이 백거이(白居易)의 촌야(村夜)를 노래했다.

서리 내린 풀이 푸르고 벌레가 찍찍거려, 마을 남쪽과 북쪽에 오가는 사람이 없어졌다,

방주는 장의자에 비스듬히 누워서 비파와 노랫소리를 들었다.

“호발귀는 북촌(北村)에 있습니다.”

귀검이 보고했다.

방주는 이미 호발귀 동정을 알고 있다.

비파 타는 여인이 귀검이 걸어오는 것에 맞춰서 촌야를 노래한 것도 방주가 시킨 것일 거다.

촌남촌북행인절이라는 노래에서 촌북은 북촌을 지칭할 수 있다. 북촌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네가 전력을 다해서 싸우지 않았다는 추궁인가?

“호발귀는……”

“노래 좀 듣지. 마저 해봐.”

혈천방주가 비파 타는 여인을 재촉했다.

여인이 계속 비파를 타면서 노래를 불렀다. 아무 이유도 없는데, 괜히 술 한잔하게끔 만드는 노랫소리다. 시골의 밤이 주는 쓸쓸함이 마음을 적신다.

이윽고 비파음이 멎었다. 노래도 끝났다.

“이건 뭐 귀무살도 쓸모없고, 귀검은 더 쓸모없고.”

혈천방주가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귀검이 차분히 대답했다.

“귀검. 많이 물러졌어. 죽도(竹島)에 가서 한 이 년 굴러. 칼이고 정신이고 바짝 좀 당기고 와.”

죽도는 남해에 있는 무인도다. 육지와 연결된 섬이라서 썰물 때는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크기는 대략 삼천 평 정도다. 일반 대지라면 크지만 섬으로써는 작다. 경사가 급하고 잡목이 우거졌으며, 군데군데 바위와 절벽이 혼재한다.

무엇보다도 물이 없다. 물만 있어도 벌써 사람이 둥지를 틀었을 것이다.

죽도는 혈천방 무인들의 유형지(流刑地)다.

죽도에 들어가면 어떤 식으로든 혼자서 생활해야 한다. 썰물 때라고 해서 육지에 발을 디디면 안 된다. 물과 식량을 혼자 만들어내야 한다.

대체로 물은 빗물을 받아서 먹고, 식량은 생선을 잡거나 갈매기를 잡아서 먹는다. 운이 좋으면 멋모르고 헤엄쳐 온 멧돼지를 잡을 수도 있다.

죽도에서 이 년.

몸과 마음이 모두 황폐해진다.

“알겠습니다.”

귀검이 순순히 대답했다.

혈천방주가 귀검을 쳐다봤다. 하지만 귀검의 얼굴에서는 어떤 것도 읽을 수 없었다.

방주가 귀검을 쳐다보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했다.

“지금부터 귀무살로부터 손 떼. 그대로 놓고 가.”

“죄송합니다만.”

“하하하! 하하하하!”

혈천방주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큰 웃음을 터트렸다.

귀검이 계속 말했다.

“귀무살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이미 본방 귀무살 모두 임무를 위해 출발한 상태입니다.”

“끝까지 지랄이군.”

“……”

귀검은 묵묵히 대천 바닥만 내려다봤다.

“귀무살이 임무를 완수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아! 가만! 내가 맞춰볼까? 대략 이 년. 맞지?”

“……”

“귀검. 어쩌면 우리 살아생전에 마지막으로 보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솔직히 말해 보지. 불만이 뭐야?”

“혈마를 만들면 안 됩니다.”

이번에는 혈천방주가 침묵했다.

“정 혈마를 만드시고 싶으시면 방주님께서 직접 혈마가 되십시오.”

“후후후! 싸움에 미치면 약도 없는데.”

“중원 무림, 지금 당장이라도 피로 씻을 수 있습니다. 그 일을 맡기시면 실망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귀검이 말하는 혈마는 혈천방 혈마가 아니다. 혈마는 상징적인 말이다. 방주가 직접 무림을 치라는 말이다. 정도 무림과 결사를 벌이는 마왕이 되라는 직언이다.

혈천방주가 장의자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병기대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검, 풀어놓고 가.”

귀검은 방주에게 포권지례를 취했다. 그리고 병기대로 걸어가서 자신의 검을 올려놨다.

귀검이 말했다.

“호발귀가 올 겁니다.”

“와야지. 오지 않으면 재미없지. 하지만 귀검은 필요 없어. 어차피 호발귀 목도 따지 못하는 검이잖아. 부대주가 죽었어도 겨우 칼이나 자르고. 칼 대신에 도천패를 벨 수도 있었잖아? 그렇게 호발귀가 무서웠어?”

“지금 바로 죽도로 출발하겠습니다. 따로 인사는 드리지 않을 터이니.‘

혈천방주가 나가라고 손짓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 귀검을 쳐다보며 말했다.

”참! 말하지 않은 게 있었네. 사천, 운남, 광동 귀무살 말이야. 아무래도 고생이 심한 것 같아서 불렀어. 대략 이백 명 정도 되지? 꽤 많이 불었더라고. 중원 전역에 있는 귀무살을 다 소집해도 백 명 안짝이었는데.“

귀무살이 멈칫거렸다.

”다른 생각은 없어. 있어도 할 수 없고. 그저 좀 쉬게 하고 싶어서. 일이 생기면 일도 좀 시키고. 하하하! 아무래도 정치에서는 내가 한 수 위지?“

귀검은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내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대청을 걸어 나가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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