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188화 (188/500)

第三十八章 이견(異見) (3)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귀검을 쳐다보는 귀무살들의 눈빛이 곱지 않다.

부대주가 절명했는데, 귀무령은 철수 호각을 불었다. 귀무령이 달려와서 복수를 해줘도 모자랄 판에 남아있던 사람들까지 모조리 빼내 버렸다.

귀무살로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귀무살은 철수라는 말을 모른다.

“공격해야 합니다.”

“저희가 죽겠습니다.”

귀무살들이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귀검은 주위 둘러봤다. 그러다가 개미 굴을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여기 뭐가 있냐?”

“……”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너무 뻔한 질문이다. 모르고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귀검이 검으로 개미굴을 쑤셨다.

그러자 개미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귀검은 급히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도망가는 개미들을 밟아 죽였다.

한 무더기를 밟아 죽이고 또 한 번 무더기를 밟았다.

철부지 어린애 같다. 묵직하고, 침착한 귀무령이 이런 짓을 하니 미친 것처럼 보인다.

귀무령이 행동을 멈췄다.

개미 굴은 완전히 부서졌다. 계속 개미들이 쏟아져 나와서 허우적거린다.

“지금부터 어린애도 답할 수 있는 말을 묻겠다. 답해라.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개미를 죽였습니다.”

귀무살 중 한 명이 답했다.

“개미를 죽였는데…… 개미를 죽이면서 내가 정성을 쏟았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내 행동이 어렵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그야말로 어린애도 답할 수 있는 물음이다.

귀무살은 침묵했다. 귀무령이 무슨 뜻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귀무령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혈마는 우리를 이렇게 죽일 수 있다. 이백 년 전, 혈마가 중원 무림을 피로 물들일 때, 이렇게 죽였다. 이 개미들이 나한테 대항할 수 있겠나?”

개미들은 대항한다.

개미굴을 무너트렸을 때, 개미들은 귀무령을 적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귀무령을 물어뜯고자 달려들었다. 귀무령은 기어오르는 개미를 아주 가볍게 털어냈다. 그리고 밟아 죽였다.

이것을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귀무령과 개미의 싸움? 아니다. 귀무령이 개미를 밟아 죽이고 있다.

귀검이 말했다.

“이 개미들은 적을 알아본다. 그래서 달려든다. 하지만 혈마는 적아 구분까지 없앨 수 있다. 너희들 머릿속에서 혈마가 적이 아니라고 말하게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리고 너희를 죽인다. 이게 진짜 혈마의 정체다.”

귀무령이 허우적거리는 개미들을 툭툭 밟아 죽였다.

심심해서 장난삼아 죽이는 것 같다.

개미도 하나의 생명체인데, 이런 식으로 죽이면 안 된다. 생명은 장난감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 순간 개미는 분명히 장난감이다.

스읏!

귀검이 행동을 멈추고 귀무살을 돌아봤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바보 놈들! 너희는 파옥도가 도천패에게 죽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번 일갈에는 가슴을 후벼파는 호통이 스며 있었다.

호발귀!

이 순간, 호발귀를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귀무살은 파옥도가 느닷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봤다. 마치 심장마비에 걸린 사람처럼 쓰러졌다.

호발귀가 한 짓인가?

그렇다면 귀무살 서른 명, 아니 백 명이 있어도 감당하지 못한다.

호발귀 눈에 띈 사람은 모두 죽는다.

“죽겠다고? 죽어라. 죽는 데는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 죽는 데 무슨 허락을 받나. 죽는 데 명령이 무슨 소용이 있어. 죽고 난 다음에 내가 너희들한테 명령을 할 수 있나? 너 왜 내 명령을 어겼어! 곤장 열 대다.”

귀무살들이 조용했다.

귀검이 말했다.

“싸움터를 만들어 주겠다. 거기서 죽어라. 혈마가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는 알았을 터이니, 나름대로 최선의 대응책을 마련해라. 무엇이든 좋다. 단, 공격 기회는 한 번뿐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운이 없는 놈은 가만히 서 있다가 죽을 것이고.”

귀무살이 부르르 치를 떨었다.

* * *

네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서로 아주 잠깐 헤어져 있었을 뿐인데, 마치 몇 년은 헤어졌던 것처럼 어색했다.

“혈천방을 샅샅이 뒤졌는데, 사부님은 못 찾았어.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고.”

도천패가 말했다.

“사부님이 어디 계신지 방주가 안다고 했잖아. 식사 끝나면 만나게 해준다고 했는데, 이젠 식사도 끝났고. 방주를 만나면 만나게 해주겠지.”

호발귀가 말했다.

그 말은 그냥 지나가는 말이다. 하지만 호발귀는 직접 방주에게 물어볼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러자면 혈천방 정예를 뚫어야 한다.

도천패가 희망을 품고 급히 물었다.

“혈기는 정리됐고?”

“아직 모르지.”

호발귀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도천패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등여산이 호발귀를 안고 떠날 때, 호발귀는 거의 혈마 직전이었다. 누가 봐도 이번에는 어렵다고 여겼다. 그런데 멀쩡히 돌아와서 이제는 됐구나 싶었다.

아직 모른다…… 변한 게 없다.

“그럼 막 갈 수도 없잖아. 싸우는데 제한이 있으니.”

“누가 막 간다고 그랬어? 방주에게 물어본다고 했지. 후후!”

“어쨌든 다행이다. 살아 돌아와서. 자! 이거.”

도천패가 취롱도를 건넸다.

“이걸 왜 날 줘?”

“혈기가 정리되지 않았으면 싸우는데 제한이 있을 거 아냐. 이거라도 있으면 좀 낫지. 이거 굉장한 보검이더라고.”

“관둬. 칼도 없으면서. 아까 보니까 곰이 날개를 단 것 같던데? 뭔가 큰 덩어리가 쿵쿵거려. 이게 날개야, 이게.”

호발귀가 취롱도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넌 어떻게 얼굴을 보자마자 얄밉게 말하냐! 좌우지간 약 올리고, 속 썩이는 데는 타고났어.”

“어! 너? 보위가 문주한테 너라고 말해도 돼?”

“그럼! 너라고 말하지 뭐라고 말해!”

도천패가 빽 소리 질렀다.

당홍은 등여산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단박에 사정을 눈치챘다.

“좀 앉아서 쉬어.”

“괜찮아요.”

“앉아서 쉬라니까. 근데 난 다 죽을 줄 알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둘 다 너무 멀쩡하잖아.”

“그러게요. 저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너희 합궁했지?”

당홍이 불쑥 물었다.

등여산은 얼굴이 발개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다. 잘 됐어.”

당홍은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약 먹이고 한 거야? 음고?”

“네.”

“음고를 썼는데도 저렇게 멀쩡한 거야? 음고는 색(色)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데? 호발귀, 색에 미친 상태 아니지?”

“네. 아네요.”

“야! 이건 놀랄 일인데? 음고를 이겨내는 사람이 있다고? 이건 말도 안 돼.”

당홍이 두 번, 세 번 호발귀를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호발귀는 멀쩡하다.

음고를 사용하면 음기에 미친 상태가 된다.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다. 여색에 미쳤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여자를 초주검 상태로 짓이겨 놓는다.

“정말 힘들었겠다.”

당홍이 억지로 등여산을 주저앉혔다.

사실, 등여산은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그녀는 털썩 주저앉았다.

“좌우지간 사내들이란. 흠! 사실 궁금하긴 했어. 누가 호발귀를 차지할지. 너도 유력했지만, 홀리도 상당했거든. 결국은 네 차지가 됐네? 행복하게 잘 살아.”

“고마워요.”

“혈기는 이겨낸 거야?”

당홍도 도천패와 같은 물음을 던졌다.

“몰라요. 방금 생기격타를 했는데 이 정도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여기서 더 사용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등여산은 호발귀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소상히 말했다.

당홍은 독의다. 의원으로써 등여산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당홍도 호발귀 상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다만 음고가 소멸한 부분은 예상외로 쉽게 받아들였다.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음고를 사용하면 노예가 된다, 죽이는 수밖에 없다. 별별 말이 많았지만, 멀쩡하잖아. 세상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아.

“네.”

호발귀와 등여산이 멀쩡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다.

호발귀는 여전히 혈마도 둔갑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 * *

저벅! 저벅! 저벅!

한 사람이 걸어왔다. 모두가 아는 사람, 귀검이다.

“제길! 저놈은 또 왜 와?”

도천패가 눈살을 찌푸렸다.

호발귀가 혈기를 이겨냈다면 누가 와도 상관없다.

하지만 호발귀는 혈마와 공존한다. 언제 혈마가 튀어나올지 모를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혈마 무공을 쓰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일단 내가 막아볼게. 내 무공도 예전 같지 않고, 이것도 있으니까 조금은 버틸 수 있어.”

도천패가 취롱도를 들어 보였다.

될 수 있는 한, 호발귀가 귀검과 싸우는 일만은 피하게 만들려는 생각이다.

도천패가 칼을 들고 귀검을 가로막았다.

도천패는 잔뜩 긴장했다. 귀검은 어떤 상대라도 긴장하게 만드는 사내다.

“취롱도군.”

귀검이 칼을 보며 말했다.

“파옥도가 내 칼을 잘라버려서. 또 죽은 자는 칼을 쓰지 못하니까 내가 좀 쓸까 하고.”

“그건 안 되지. 무인에 대한 예의가 아냐.”

“예의?”

“무인이 쓰는 병기는 주인과 생명을 함께 하지. 주인이 죽으면 병기도 소멸하는 게 마땅해.”

“헛소리. 취롱도가 원래 파옥도 것도 아니었잖아? 파옥도도 남의 것을 챙겼는데, 죽은 사람 것을 챙기지 말라는 건 너무 억지인데? 시비를 걸라면 제대로 된 것을 가지고 걸어.”

“취롱도는 파옥도가 마지막 주인이었어. 그 칼, 내려놓으면 자네와 싸울 일은 없을 것 같은데.”

“후후후! 어차피 싸우러 왔잖아. 싸우고 싶으면 싸우자고. 괜히 엄한 핑계 대지 말고.”

귀검의 말이 너무 억지스럽다.

귀무살은 다른 사람의 병기를 취해도 되고, 다른 사람은 귀무살의 병기를 취하면 안 된다? 그러면 귀무살이 사용하는 병기는 모두 마지막 주인을 모시고 있는 건가?

‘일부러 시비를 걸고 있어.’

스읏!

도천패는 취롱도를 들어 올렸다.

순간, 귀검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도천패를 감정 없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걸어왔다.

“쾌검이야. 무척 빨라.”

호발귀가 말해주었다.

호발귀는 귀검의 검에서 살의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도천패와 싸우도록 내버려 두었다.

도천패도 귀검 같은 장자와 싸워봐야 한다.

스읏!

귀검이 검을 들어서 도천패를 겨눴다. 순간,

쒜에에에엑! 쒜엑! 쒝! 쒝!

귀검의 검이 신랄하게 파고들었다.

머리, 허리, 다리, 어깨, 손, 발…… 신체 모든 곳을 일시에 타격해 온다. 검이 너무 빨라서 전신이 난자당하는 느낌이 든다. 검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훗!”

도천패가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귀검은 물러설 틈도 주지 않았다. 귀검의 검을 상대하다 보면 숨 쉴 틈도 얻지 못한다. 하물며 물러설 틈인들 주겠나.

쒝! 쒝! 쒝! 쒝!

이제는 허공을 뚫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도천패는 급히 칼을 들어서 막았다. 취롱도의 신기를 빌려서 귀검의 검을 잘라버릴 생각이다. 그런데,

까앙! 깡! 깡! 깡!

검과 칼이 연신 격돌했다.

“엇!”

도천패는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경악성을 토해냈다.

취롱도가 잘려 나간다.

한 마디, 또 한 마디, 또 한 마디…… 검은 취롱도와 부딪쳤지만, 칼날과 마주치지는 않았다. 정확하게 도신을 때리면서 한 마디씩 끊어나간다.

스읏!

도천패가 화들짝 놀라서 물러섰다.

취롱도는 이미 다섯 토막이 나서 땅에 뒹굴었다.

놀라운 무공! 엄청난 실력 차이다.

흔히 귀검을 당대 제일 검사라고 하는데, 그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

“아!”

도천패는 탄식을 쏟아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