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八章 이견(異見) (2)
“독타하자. 나 내려놓고 싸움에 집중해.”
당홍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당매. 당매 눈에는 내가 무식하게 힘자랑만 하는 놈으로 보여?”
“갑자기 무슨 소리야? 싸움에 집중하라는 게 잘못된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게 이렇게 핀잔들을 소린가?”
“독, 얼마나 남았어?”
“아직 넉넉해.”
“얼마나 남았어?”
“……”
“너는 내가 책임진다고 했지! 한 번 동타면 끝까지 동타야. 다른 말 하지 마.”
“내가 독이 없으면 아예 싸움을 못 하는 줄 아나 봐? 독이 없어도 마지막 수단이 있지.”
당홍이 도천패의 등을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당홍은 독을 다 썼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일신 무공으로 귀무살과 싸워야 한다.
매우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한다.
당장 귀무살이 대여섯 명만 달라붙어도 크게 손발이 어지러워질 것이다.
당홍은 검은 수투(手套)를 꺼내 양손에 꼈다.
수투에는 독이 빨라져 있다. 수투에 맞는다고 해서 독에 중독되는 것은 아니다. 독 묻은 방망이에 맞은 것과 똑같다. 하지만 몸에 상처라도 있으면 당장 독이 상처를 타고 스며든다.
코나 입, 귀 주변도 위험하다.
독이 몸 안으로 파고들만 한 틈을 주면 안 된다. 어떤 구멍도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다.
“이제 됐어. 지금부터 독타다!”
당홍이 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조심해야 해!”
“나는 걱정하지 말고 취롱도나 조심해. 대도가 잘리는 걸 보니까, 어휴!”
당홍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홍이 떨어져나왔다. 독도 떨어졌다. 수투를 끼고 있지만, 육박전에서나 유용하다. 병기를 들고 싸우는 한, 수투에 직격당할 우려는 없다.
귀무살이 기다리던 때가 왔다
스스스슷! 스스슷!
귀무살이 빠르게 다가왔다
“너희들 내가 정말 만만한가 봐?”
스릉!
당홍은 검을 뽑았다.
할머니는 독의다. 당연히 독에만 집중했다.
독섬칠공이라는 뛰어난 독공이 있지만, 독물을 다루는 공부이지 사람을 살상하는 공부는 아니다.
독섬칠공이 일정 경지에 이르면 사람 자체가 독인(毒人)이 된다는 말이 있다. 독인 곁에만 다가가도 중독되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사람이 된다.
당홍은 그 정도까지 독섬칠공을 수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독의에게 무공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매우 뛰어난 무공이 있다.
독활칠수(毒滑七手)!
독물을 채집하는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어있다. 위험한 지형을 내 집 마당처럼 돌아다녀야 하고, 맹수들로부터 습격당하는 일도 많다.
그러니 무공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독의처럼 무리 짓지 않고 홀로 떨어져서 독물을 채집하고, 연구하는 사람은 특히 그렇다.
독활칠수는 자연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무공이다.
독활칠수 수련은 언제나 목숨을 담보로 한다. 극한의 상황에 직접 부딪혀서 터득한다. 초식을 가르쳐주고, 수련시킨다. 그리고 늑대 굴로 집어넣는다.
초식을 수련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늑대 굴에서 나오면 초식이 완벽하게 습득되어 있다.
당홍은 여섯 살 때부터 독활칠수를 수련했다.
쒜에에엑! 쒜엑! 쒝!
귀무살 다섯 명이 당홍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귀무살은 살인 전문가다. 사람을 많이 죽여봤다. 그중에는 자신들보다 무공이 강한 자도 있었다.
약자가 강자를 죽이는 일, 얼마든지 가능하다.
싸움에서도 그런 일이 가능하다. 허점을 파악하고, 허점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된다.
첫 공격은 허점을 파악하는 유도 공격이다.
당홍이 대처하는 방식을 보고 어느 곳에 허점이 있는지 파악하려는 것이다.
귀무살 합공은 당분간 유도 공격에 집중된다.
위험하지 않다.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스읏! 탕탕! 스으으읏! 타앙!
당홍은 검이 지척에 이를 때까지 방치했다가, 슬쩍 검을 들어서 막았다.
아주 짧은 거리에서 효율적으로 격타가 이루어진다.
만약 의도적으로 상대를 놓아주지 않았다면, 당장 상대방을 병기를 타고 들어가서 몸통을 쳤을 것이다.
맹수와 싸울 때는 떨어져서 싸우는 게 좋을까, 바싹 붙어서 육박전을 벌이는 게 좋을까?
힘이 없다면 당연히 떨어져야 한다.
단숨에 심장을 찌르고, 또 동시에 이빨과 발톱을 피할 수 있다면 바싹 붙어야 한다.
아주 당연한 말이다.
자연에서는 아주 당연한 현상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당한다.
독활칠수는 어떤 상대를 만나든 바싹 붙는다. 그리고 단숨에 심장을 찌른 후, 뒤로 빠진다. 심정을 찌른 후에는 무조건 빠져나와야 한다. 이미 칼을 썼으니 붙어 있을 필요가 없다. 괜히 스치는 발톱에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지금은 일부러 바싹 달라붙지 않았다.
당홍은 귀무살과 싸울 생각이 없다. 그러니 자신의 싸움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도천패의 싸움을 지켜본다. 정작 위험한 쪽은 도천패다.
쒜에에엑!
칼바람이 일어난다. 취롱도가 공기를 얇게 썰어내며 달려든다.
파옥도의 공격은 상당히 위협적이어야 맞다. 칼도 날카롭고, 무공도 강하다.
그런데 도천패는 전혀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칼의 움직임이 뚜렷하게 보인다. 너끈히 피할 수 있다. 그리고 반격도 가능하다.
도천패는 도신이 삼분지 일밖에 남지 않은 대도를 들었다. 상반신을 젖혀서 취롱도를 피하고, 역습을 가했다. 대도로 부대주의 옆구리를 찍었다.
쒜에에엑!
취롱도가 급히 방향을 꺾어서 대도를 쳐냈다.
까앙!
또 도와 도가 부딪쳤다.
옆구리를 찍는 방법은 유효했다. 대도만 멀쩡했다면 피를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칼이 너무 짧다. 더욱이 취롱도와 부딪치기만 하면 잘린다.
퍼억!
도신이 또 잘려 나갔다.
도천패는 손잡이만 남은 대도를 들고 훌쩍 물러섰다.
“이거야 원!”
도천패는 쓸모없어진 대도를 던져버렸다.
상대방의 병기를 잘라버리고, 육신을 난자한다는 파옥도.
옥을 깨트리는 칼!
파옥도의 옥(玉)이 사람 몸뚱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새끼 정말 치사하게 싸우네.”
우둑!
도천패는 손가락 관절을 우두둑 꺾었다.
이제 파옥도는 육신을 저며올 것이다. 대도를 잘라버린 취롱도를 앞세워서 공격해오면…… 막기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
권법, 각법으로 취롱도를 상대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권법으로 싸울 수는 있지만, 파옥도보다 최소한 두 배는 빨라야 한다. 취롱도를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한다.
도천패의 무공이 강해졌지만, 아직 그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쒜에에엑!
취롱도가 가볍게 바람을 탔다.
파옥도는 상대가 빈손이라고 해서 방심하지 않는다. 이번 칼에도 온 정신을 집중시켰다.
“후웃!”
도천패는 헛바람을 내지르며 급히 물러섰다.
그때, 빙 둘러서 있던 귀무살들이 일제히 병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앞으로 쭉 뻗었다.
물러설 공간이 없다.
앞에는 파옥도, 삼면은 귀무살들이 병기로 철벽을 세웠다. 물러서면 병기에 다친다.
“항복하지?”
파옥도가 말했다.
“미친놈! 무인이 항복하는 게 어디 있냐? 죽으면 죽는 거지. 그런데 너희 정말 말이 많아. 너희 귀무살 맞아? 무슨 냉혈한들이 떡처럼 물러터졌어?”
도천패는 말을 하면서도 취롱도와 맞설 방법을 궁리했다.
병기가 없다는 것이 이처럼 난감할 줄은 몰랐다. 발로 기와 몇 장 차올릴 수는 있다. 하지만 상대가 귀무살 부대주다. 어린애 장난이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파옥도가 당장 살수를 쓰지 않고 있는 게 천만다행이다.
파옥도는 두 사람을 사로잡을 생각이다. 하지만 멀쩡하게 생포할 생각도 없다. 사지 중 일부를 잘라낸 후, 데려갈 생각이다. 취롱도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대책이 없다.
‘위험해!’
당홍은 위기를 직감했다.
취롱도의 위력이 너무 크다. 쇠붙이를 무처럼 잘라버리니 대처할 방도가 없다.
당홍은 자신의 장검을 던져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자신의 장검 역시 단박에 잘라질 것이다. 목숨을 겨우 한두 초 정도밖에 연장하지 못한다.
파옥도가 칼을 들어 올렸다.
저 칼이 떨어지면 도천패는 사지 중 하나를 잃는다. 칼의 목표가 너무도 분명하다.
“비켜!”
당홍은 품에서 독분을 꺼내 확 뿌렸다.
독분이 아니다. 독은 모두 소진되었다. 귀무살에게 뿌린 것은 신경독에 효과가 뛰어난 해독분이다.
독분이 날아오자 귀무살이 펄쩍 뛰어서 물러섰다.
그 사이, 당홍은 파옥도를 향해 쏘아갔다.
독활칠수 중 추천낭추(秋千囊墜)를 펼쳤다.
곰이 쳐낸 앞발을 피하면서 복부에 검을 찔러넣는다. 검을 두 손으로 잡고 도르래를 타고 절벽을 건너가듯이 두 다리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러면 검이 밑으로 그어 내려진다.
복부에서부터 두 다리 사이까지 두꺼운 가죽을 쭉 찢어낸다.
쒜에에엑!
검이 파옥도의 복부를 노렸다. 신형은 벌써 파옥도의 두 다리 사이로 빠져나갈 모양새다. 순간,
쒜에엑! 까앙!
취롱도가 그녀의 장검을 거세게 받아쳤다.
당홍은 검신이 싹둑 잘려서 허공에 치솟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다리를 향해 달려드는 칼도 봤다.
그때, 취롱도 밑으로 두툼한 물체가 쑥 밀어졌다.
도천패가 자신의 팔로 취롱도를 막아가는 중이다. 한쪽 팔은 취롱도 제물로 바치고, 다른 주먹으로는 턱을 갈긴다.
츄릿! 파아아앗!
취롱도가 방향을 틀었다.
턱을 가격하는 왼손을 잘라간다.
거리가 너무 가깝다. 칼날이 떨어지는 중에 변화를 보였기 때문에 피할 틈도 없다. 그런데,
“크윽!”
칼을 거세게 쳐내던 파옥도가 갑자기 안색이 새하얗게 변하더니 풀썩 주저앉았다.
아무 이유 없이 주저앉았다.
생기격타!
도천패는 주저앉는 파옥도의 얼굴과 차디찬 시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자신만의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파옥도는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분명한 생기격타다.
“호발귀!”
도천패는 호발귀 이름을 쩌렁쩌렁 부르면서 주먹을 쳐냈다. 파옥도의 관자놀이를 주먹 망치로 내리쳤다.
퍼엉!
파옥도가 머리를 맞고 줄 끊어진 연처럼 풀썩 쓰러졌다.
도천패는 즉시 취롱도를 빼앗아 잡고 쓰러진 파옥도의 목에 일도를 쳐냈다.
싸아아악!
칼이 목을 자르는데 마치 종이 자르는 듯한 소리가 울린다.
칼이 살을 파고들었고, 피를 머금었고, 뼈를 잘랐다. 그런데 도신을 살펴보니 피는 물론이고, 살에서 묻어나오는 기름기조차 배지 않았다.
보검인 줄은 알았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명도다.
도천패는 즉시 당홍을 부축해 일으키면서 다른 귀무살들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경계했다.
“호발귀?”
당홍이 물었다.
“맞아. 호발귀야. 생기격타.”
“아!”
당홍이 즉시 주위를 살폈다.
보인다. 두 사람이 보인다. 집을 둘러싼 나무들 사이에 다정하게 걸어오는 두 사람이 눈에 띈다.
호발귀와 등여산은 너무도 멀쩡해 보였다.
“저것들 살아 있었네.”
도천패가 중얼거렸다.
“살아 있을 줄 알았어. 죽으면 말이 안 되지. 이렇게 죽으면 너무 억울하잖아.”
당홍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아휴! 문주놈 저거…… 언제나 사람 고생 안 시킬까?”
삐익!
어디선가 호각 소리가 울렸다.
주위에 늘어섰던 귀무살이 매서운 눈길로 네 사람을 쳐다봤다. 하지만 싸움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억울하다는 눈빛을 띤 체 일제히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